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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디 선가에서 난 울었다.

그것도 소리 없이 울었다. 

이곳의 주소는 

10 Lincoln Center Plaza. New York, NY 10023 이다.


이곳의 명칭은  " 링컨 센타 " 이다. 


뉴욕 맨하탄에 있다. 


지금으로 부터 정확히 25년전이다. 

내가 미국으로 이민 와서 

소리없이 흐느껴 운 곳이다. 



내가 왜 울었는지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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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91aQuf_cX6k


이것 크릭해서 음악 들으며,,,, 읽으시기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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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첫째 주책스러운 나이 때문이기도 하다. 

둘째는 나를 아시는 분들에게 나의 과거를 그냥 풀어 놓고 싶어서 이기도 하다.

세번째는 학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에게

작은 동기부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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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의 객석 수는 3,800 인데 

나는 2 층 맨 뒤 어느 기둥 뒤에서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


아이란 저 혼자 잘 자라는 아이는 없다.

단 1초라도 쉬지 않고 자녀를 보살펴 줘야 한다. 

이 말의 의미는 부모는 자녀를 낳았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신의 성공보다도

자녀의 성공이 더욱 마음을 기쁘게 한다.

자녀가 옳게 자라 주는 것을 보는 것은 종교 이상으로 

기쁨과 행복을 가저다 준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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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마친 내 딸 아이가

H 와 Y 대학원에 입학을 하려 했으나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내 딸은 대학 재학 시절에 

이미  미국의 어느 대학원을  가던지 2년간 수업료 일체를 

받게 되는 장학금을 

가지고 있었다.  


H 와 Y  대학원이 아니면 아니간다 해서 

장학금의 유효기간이 2년이기에 

다음해에 다시 도전을 하기로 했다. 


Image result for íë²ë ëí 이 두  대학원 지원  Image result for ìì¼ ëí



일년 동안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고민을 했다.


여러가지로 고민을 하다가 

졸업한 대학의 카운셀러를 만나서 조언을 듣기로 했다. 

당시의 나의 재정 상태로는 불가능한 일이였지만,

딸과 둘이서 동부로 비행기를 타고.

딸이 졸업한 S 여자대학으로 갔다. 


내가 굳이 학교로 가고자 했던 것은 내 딸아이가 

4년 동안 무슨 과목들을  공부 했으며

성적은 어느 정도 였는지를 정확히 알고 싶어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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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여자대학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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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를 갔다 온후에 

내 딸은 내가 지킨다 ?  아니면 내가 만든다 ?

뭐 이런 엉뚱한 생각을 했다. 


나는 뭔가를 발견이라도 해야 하는 강박 관념을 갖고

딸 아이와 

UCI, UCLA, USC  세곳의 도서관을 탐방을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

난 뭔가를 찾았다. 


RAND Corp.  여기에 연구원으로 일년을 있게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아주 엉뚱한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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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로 눈 까 뒤집고 

연줄을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세상은 어디나 다 같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등을 비빈다고 하지 않는가 !

미국 소나 한국 소나 다 같다. 

비빌데가 있으면 비빈다.


어찌 어찌 하여 

RAND의 책임자 앞에 앉게 되었다. 

마치 그 사람이 동물의 왕인 사자 였다면, 

나는 다람쥐 새끼만도 못한 아주 작게만 느꼈다.


그 분 말씀이 자기 평생에 나 같은 사람은 처음 만났다고 했다. 

한국의 대통령 부터 장관, 교수, 등등 

수 많은 한국 사람을 만났지만,  

나 같은 사람은 처음이라 했다. 


***


물론 내 딸은 무 보수 연구원이 되었다. 

RAND의 위치는 엘에이 산타모니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파트 방하나를 근처에 얻어 주고는 

그 곳에서 생활을 하며 출퇴근을 하게 했다. 


나는 주말이면 열심히  딸네 아파트로 가서 같이 공부도 하고 

UCLA 도서관에서 자료도 찾고 했다.

마치 내가 무슨 영어라도 잘 하는 사람 같지만, 난 아니다.

난 아직도, - 자랑이 아니라 - 사실이지만,

햄버거 집에 가서도 번호로 말을 한다.  




딸과 공부 한것은 미국 청소년의 파트 타임으로 일 하는 

발달사 와 성인 직업군의 발달사. 등등.


*** 


미국엔 1900 년 까지

직업 분류를 

농부냐 아니냐로만 구분을 했단다.


산타모니카의 홈레스들을 위한 쉘터 건립에,  

내 딸이 최초로 붐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5개월 반 정도 일을 하고는 

백악관으로 가게 되었다. 


누가 추천을 해서 

당시 대통령 부인의 " 스피치 라이터 " 가 되었다.

대통령 부인이 어디에 가서 연설을 하게 되면 그 원고를 써 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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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저 사람이 !~~


링컨 센타에서 3,800 명의 미국의 예술가들을 모아 놓고

40여분간의 연설을 하였다.


여러번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저 입에서 나오는 말들의 원천은 ??????


***


난 세상을 다 얻은 양.

기쁨에 

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 때만 해도 난 젊었다.


한국인이라면 다 안다.

나는 지금

희수 (  )라는 나이를 갖게 되었다. 



중국의 공자가 말을 했던가.

희수가 넘은 사람의 말은 듣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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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대학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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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그 당시 딸 아이는 시카고 대학원에서 

매달 천불의 생활 보조금을 2년간 준다 해서 

시카고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지금 내가 시카고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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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가 분.


청산 님 금년에도 이거 하나 만들어 주실래요 ?


https://gopro.com/v/D7l8NmOMaG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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