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EBS '세계 테마기행9시 뉴스 외에는 TV를 거의 보지 않던 나는 어제 우연히 MBC TV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처음부터 보지않아 정확한 기획의도와 취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만히 지켜보니 당대에 내로라하는 톱 가수들 7명을 출연시켜 이중 노래를 제일 못하는 1명을 탈락시키는 게임(?)이었다.

 

TV를 켜니 내가 좋아하는 윤도현이 막 노래를 시작하는 중이었고 그저 그렇고 그런 식상한 주말 예능 프로그램이려니 하고 채널을 돌리려다 어... 그게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혼신을 다하는 가수들의 열창에 빠져들었다. 기존의 익숙한 노래들을 창의적으로 편곡(이를 테면 트로트, 발라드와 락을 결합한)한 곡들의 분위기도 색다르고, 참가한 가수들 모두가 자기만의 색깔로 재해석해 내 멋진 리메이크 곡들이 탄생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오랜만에 전율을 느낄 정도로 멋진 무대였고 가수들의 그런 진지한 태도와 몰입이 시청자와 방청객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주고 사로잡기에 충분해 보였다.

특히 백지영의 무시로’, 김범수의 그대 모습은 장미등이 인상 깊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김건모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는 다른 가수들과는 확연히 비교가 되었다. 김건모의 가창력이 워낙 뛰어나 평소 그의 노래도 좋아하고 그가 당대의 최고의 가수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날 그가 부른 노래는 지극히 평범한 수준에 그쳤다. 노래를 끝내고 그는 입술에 시뻘건 립스틱을 왕창 발라 잔뜩 긴장하고 진지해진 분위기를 단번에 폭소로 반전시켜 놓았다. 역시 김건모 다운 위트와 재치가 돋보이는 깜짝 퍼포먼스였고 이런 행위는 결코 가볍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어쨌든 노래 만큼은 다른 가수 들에 비해 지극히 평범한 수준이어서 성의와 준비가 부족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7명 가수의 노래를 모두 들으며 김건모를 내심 꼴찌로 정해놓았는 데, 놀랍게도 방청객들의 투표 결과 또한 일치하였다. ‘, 역시 보는 눈은 다르지 않구나라며 생각하고 있는데, 이후 황당한 상황이 벌이지게 되었다. 7명 가수중 김건모가 꼴찌가 된 것은 뭔가 잘못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재도전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그가 마지막 보여준 퍼포먼스 때문이란다. 그것도 제작진이 앞서 부연설명을 하고 있었다. 공중파 TV에서 많은 시청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뭐야 그럼 투표를 한 방청객이나 우리 시청자들은 안중에도 없고 아무렇게나 무시당하고 우롱당해도 된다는건가???

 

실력있는 가수가 꼴찌가 돼 탈락됐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가히 충격으로 다가올만 하다. 동료 가수들 모두 의외의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나 역시 그가 떨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을 못했으니까... 그러나 내가 지켜본 바로는 빅매치 현장에서 그가 보여준 것은 실제 꼴찌할 수 밖에 없었던 지극히 평범한 수준이었고, 방청자 들이 그것을 냉정하게 평가한 당연한 결과라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립스틱이라는 깜짝 퍼포먼스 때문에 점수가 깎였다거나, 원래는 실력이 좋아 떨어질 수 없는 가수이므로 기본 룰을 깨고 재도전의 기회를 주자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되는 참으로 어줍짢고 구차한 자기합리화에 불과할 뿐이었다.

 

상황이 그렇더라도 김건모가 깨끗이 수용하고 양보하는 모양새가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든다. 중간에 스탭들과 상의했을 때의 태도와는 달리 재도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실망감은 더욱 커질 뿐이다.

 

나는 가수다..’와 같은 이번 프로는 참으로 참신한 기획이요 칭찬받을만한 아이디어로 여겨진다. 가수 들에게 단순히 경쟁을 불러일으킨다는 측면보다는 그들에게 꼭 필요한 창의력과 재해석력 그리고 대중들을 감동시키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과 분발을 유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와 공감대가 확산될 때 가수 자신의 발전은 물론 그것을 향유하는 우리 대중들의 공익 또한 커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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