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서 제공한 따뜻한 차와 토스토로 아침을 먹었다식사비용이 500엔이라 크게 기대는 안했지만 밥이 아니라서 조금은 아쉽다그러나 양이 부족할까봐 이제 막 구운 토스트를 추가로 건네는 주인 아주머니의 마음씀이 느껴져 가슴이 따뜻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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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무라 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쓰스지소에 하차오늘 하루는 여기서부터 천천히 야외작품을 감상하며 베네세 하우스이우환 뮤지엄지추 뮤지엄 순으로 이동하며해진 다음 진행하는 Night Program인 ‘Open Sky’로 마무리할 계획이다.

 

 

 

 

 

<야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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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mpkin, Yayoi Kusama>

 

마을 버스에서 내려 눈을 돌리니 맨 먼저 평화로워 보이는 해변과 선착장에 설치된 노란 호박이 눈에 들어온다미야노우라 항의 빨간 호박과 함께 이미 나오시마의 명물이 된 구사마 야요이의 설치미술 작품이다노란 호박으로 인해 한적한 해안의 풍경이 더욱 돋보이고 있는 듯 하다.

 

잠시 후 중년의 부부 한쌍이 다가와 호박 앞에서 사진을 찍고 서로 번갈아가며 모델이 되어주기도 한다그냥 무심코 지나쳤을 해변의 풍경이 작품의 존재로 인해 이렇듯 사람들에게 재미와 즐거운 추억거리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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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lephant, Niki de Saint Pha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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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Banc, Niki de Saint Phalle>

 

발걸음을 옮겨 베네세 하우스 앞 마당에 이르면 세계적인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야외 곳곳에 설치돼 있어 눈을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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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ree Squares Vertical Diagonal, George Ricky>

 

세장의 정방형모서리로 지탱하여 바람이 불면 금방 넘어질 듯 위태해 보이지만 바람에 따라 움직이도록 설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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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en/ Unseen known/ Unknown, Walter De Maria>

 

화강암의 커다란 원형구가 빛과 아름다운 세토내해를 빨아들이며 보는 위치에 따라다양한 풍경을 선사한다구와 유리창에 비친 풍경은 실재와 허상현상과 왜곡의 경계를 넘나들며 묘한 느낌을 갖게 하는데, 작가는 주변의 자연환경과 빛을 잘 활용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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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ipyard Works : Cut Bow, Shinro Ohrake>

 

난파선을 소재로 한 오타케 신로의 작품으로 하이샤, I Love 湯(You) 공중목욕탕의 작품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저멀리 현수교, 사장교, 트러스교 3종류의 공법이 동원된 세계 최장 13.1km에 이르는 세토 대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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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me Exposed Mirtoan Sea, Sounion, Hiroshi Sugimoto> 

 

경치좋은 해안 절벽에 왠 뜬금없는 사진??? 뉴욕에서 활동 중인 히로시 스키모토 사진 작가의 '시간이 노출된 Mirtoan 바다'라는 작품이다. 시간이 캡쳐된 사진의 정적인 분위기로 인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이 공간 마저 모두 멈춰버린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작가는 수시로 변화하는 자연 속에 저렇게 사진을 걸어두고 풍화작용에 의해 그것이 점차 색이 바래는 변화 과정을 보여주며 뭔가를 말하고 싶었나 보다. 의외의 기발한 착상이 아닐 수 없다. 

 

사진이라고 하는 것,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단순히 눈앞의 대상이나 현상을 재현하고 모방하는 것을 넘어, 이처럼 내면의 깊은 생각을 표현하고 의미를 담아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잠시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이외에도 야외 곳곳에 독창적인 작품들이 설치돼 있어 그야말로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임을 실감할 수 있다무심코 넘길 수 있는 소박한 섬 풍경이 섬 환경에 어울리는 다양한 작품들로 인해 이토록 개성있고 느낌이 풍부한 예술의 섬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배네세 하우스 뮤지엄

 

베네세 하우스는 지하 1, 지상 2층 규모의 미술관과 리조트 호텔을 일체화한 복합형 건물로, 실내외에 팝아트미니멀아트정크아트개념미술 등 1980년대 이후의 현대미술 작품들이 전시돼 있는 현대 미술관이다.

 

이곳의 작품들은 다른 미술관의 작품들과는 달리 작가들이 현장에 직접 와서 나오시마의 자연과 섬 환경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든 것들로, 장소 특정적 작품(Site Specfic Art) 개념이 담겨있다.


 

BenesseBene(좋다)Esse(존재)의 합성어로 좋은 존재’ ‘좋은 곳의 의미라고 한다산업폐기물과 오염물질로 황폐화되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 소외받던 이 섬을 세계인들이 동경하는 '예술의 섬'으로 재탄생시킨 후쿠타케 소이치로 베네세 홀딩스 회장은 잘 사는 것(Benesse)’에 대해 늘 생각해 왔다고 한다.

 

인간이라면 행복해지고 싶은 게 당연하다. 그련데 도시에서는 물건이며 정보며 오락이 넘치는 데도 불구하고 고독하며 행복하지 못하다....(중략)

 

좋은 곳이란 대체 어떤 곳인가? 나는 노인이 웃으며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노인은 인생살이의 달인다. 그런 그들에게 약간의 돈이나 물건 같은 것은 기쁨이 될 수 없다. 우리의 미래인 노인의 얼굴에서 웃음을 되찾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주민의 대부분이 노인인 세토내해의 섬들에서 현대미술을 도구 삼아 노인이 웃는 얼굴로 살 수 있는 지역을 만들고자 한다.”

 

나오시마가 오늘날 세계인들로부터 예술의 섬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나 운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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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Live and Die,  Bruce Nauman, 펌_구글 이미지>

 

여러 작품 중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 중의 하나는 ‘100 Live and Die(100개의 삶과 죽음)’이다큰 전광판에 네온사인으로 "Well and Live", "Old and Die" "Kiss and Live" "love and die" "cry and live" "run and die"... 등 삶과 죽음을 나타내는 글자가 여기 저기서 빠르게 점멸하는데이 글자 들을 따라 읽다보면 문득 우리의 삶과 죽음존재에 대해 잠시나마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 외에도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내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는데, 전시 작품 못지않게 공간 활용이 돋보이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적 특징 또한 눈길을 끈다.

 

 

 

 

 

이우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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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도착한 이우환 뮤지엄이우환은 한국인 작가이기에 반가움이 더욱 크다이곳 나오시마에서 오직 이우환 작가 1인의 작품만을 위해 이토록 큰 규모의 전시관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파격적인 대우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그 만큼 이우환의 작품성을 높게 평가한 것일게다.

 

이우환의 작품을 더욱 돋보이도록 미술관을 설계한 인물은 안도 다다오이다자연과 인간을 존중하는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과 안도 다다오의 이념과 철학이 이우환의 정신세계와도 맥을 같이 하기에 이런 멋진 미술관의 탄생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우환은 우리나라 작가 최초로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 정도로 세계적인 작가이며현재 한국 생존작가 중 작품이 가장 비싼 값에 거래되는 작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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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환 미술관 입구, 펌_구글 이미지>


세토우치 트리안날레가 끝난게 바로 엊그제여서 인지 미술관 주변에는 관람객이 거의 없었다동굴 안으로 끌리듯 들어가는 미술관 입구의 동선과 구조가 낯설지가 않다노출 콘크리트벽 안으로 빛을 끌어들이고그 빛을 따라 한참 걷도록 유도하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적 특징에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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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응의 광장, 이우환, 펌_구글 이미지>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차가운 콘크리트 공간 안에 철판 하나와 돌덩이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조응의 광장과 마주하게 된다돌은 지구의 생성과 함께한 자연의 상징물이고철판은 인간이 만들어낸 산업화의 상징물이다자연과 인공근원이 다른 것끼리 만나 교감하고 소통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우환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을 통해 사물과 공간 상황관계 등에 접근하는 예술즉 모노하 운동의 대표주자로 알려져 있는데눈앞에 놓인 작품을 유심히 보면서도 그의 심오한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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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 이우환, 펌_구글 이미지>

 

입구를 통과하여 만남의 방에 들어선다이미 눈에 익숙한 그의 회화 작품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 연작 시리즈와 '조응'돌과 철판으로 표현한 '관계항(Relatum)' 등이 제작 시기에 따라 전시돼 있다.

 

간결함과 절제끊임없는 생성과 소멸... 동양적 정서가 물씬 풍기는 그의 작품에 빠져 바닥에 한동안 앉아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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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응, 이우환, 펌_구글 이미지> 

 

대상이란 거기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반드시 거기 관련되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나의 예술은 내가 만드는 부분을 한정하고 내가 만들지 않은 부분을 받아들임으로써서로 침투하기도 하고 거절도 하는 다이나믹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이 관계 작용에 의해 시적이고 비평적이며 초월적인 공간이 열리기를 바란다하지만 그저 빈 공간을 여백이라고 하지는 않는다거기엔 무언가 리얼리티가 결여돼 있다예컨대 큰 북을 치면 소리가 주위 공간에 울려 퍼지게 된다큰 북을 포함한 이 바이브레이션의 공간을 나는 여백이라 하고 싶다." - 이우환

 

막연하게 여겨왔던 여백의 개념이 그의 작품과 함께 쉽고 설득력있게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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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의 방, 이우환, 펌_구글 이미지>

 

침묵의 방명상의 방을 거쳐 돌 그림자 영상의 방에 다다라 호흡을 가다듬고 한동안 영상물을 지켜본다마치 돌의 내력을 더듬는 듯 지구의 생성에서 현재 까지의 진화과정이 돌 그림자 속에서 영상으로 흐르는 데그 안에는 무수한 언어와 메시지가 함께 흐르고 있는 듯 하다.

 

 

얼마전대구와 부산에 그의 개인 미술관이 건립돼 2015년경에 완공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이제 멀리가지 않고도 그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생겨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엊그제는 정부에서 수여하는 문화훈장 가운데 최고의 영예인 금관문화 훈장을 수상한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이런 영예로운 계기로 인해 앞으로 그에 대한 국내외적 명성과 관심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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