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중학교 다닐 때 까지만 하더라도 가족 자동차 여행을 자주 다녔다.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숙소는 캠핑장을 이용하며 자동차 여행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즐겼다. 그런데 아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쉽지 않았다. 가끔 아내를 포함한 형제 가족들과 함께 하기도 했으나, 대개는 나홀로 혹은 친구, 지인과 함께 배낭여행과 사진여행을, 아내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여행를 따로 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는 늘 아내와 단 둘이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3년전 결혼 25주년 은혼식은 그 좋은 구실이 되었다. 여행지를 터키로 정하고, 1년 전부터 항공권, 렌터카, 숙박 등 주요 예약을 마쳤다. 그러나 아들의 호주 2년차 생활이 아직 안정되지 않아 아내가 썩 내켜 하지 않은데다, 직장에서 휴가를 낼 수 없는 부득이한 상황이 발생하여 가슴 속에 품어왔던 꿈을 잠시 접어야 했다. 

3년 만에 다시 기회가 찾아 왔다. 약 10일간의 추석 황금연휴다. 아이도 그동안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돼 주저할만한 이유가 없었다. 이번 만큼은 예전과는 다르게 가급적 여유롭게, 여행 중에도 아내가 매일 미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고려하여 일정을 짰다. 아내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수년간 평일 미사를 빠지지 않고 해오고 있다. 나는 흉내만 내는, 소위 나이롱 신자에 불과하다. 

우리는 부부간의 공감대를 키우기 위해 노력해왔다. 부부가 마음을 열고 깊이 있는 대화를 하는 ‘ME’(Marriage Encounter)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매일 묵상 글에 대해 10분간 생각하고 10분간 생각을 나누는 ‘텐텐’(10/10)을 꾸준히 실천해오고 있다. 이렇게 다져진 부부간의 공감대를 이번 여행을 통해 다지고 싶었다. 



여행 일정은 총 15박 17일이다. 이스탄불 5일, 카파도키아 3일, 파묵칼레 및 에페스 등 남서부 지역 7일을 잡았다. 십자군 기사단의 활동지 그리스 로도스 섬도 일정에 포함시켰다.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 등 장거리 구간은 저가항공으로, 거리가 짧은 남서부 지역은 렌트카를 이용할 계획이다. 


그러나 당초 계획했던 것과는 다르게 예기치 못한 많은 일들이 일어나 우여곡절이 많은 여행이 되고 말았다. 평생동안 여행하며 한 두 번 겪을까 말까 한 일들을 한꺼번에 몰아서 다 경험한 느낌이다. 출발 전부터 항공편 일정이 취소되는가 하면, 비행기가 늦게 출발해 경유지에서 연결편을 놓치기도 했다. 비행기에 실었던 짐이 딸려오지 않는 일들도 벌어졌다. 

여행 중에는 숙소의 청결 문제로 호텔 매니저와 얼굴을 붉히며 실랑이를 벌인 뒤 4일치 숙박비를 날리고 다른 숙소를 찾아 다녀야 했다. 어렵사리 구한 낡은 숙소에서는 주변 클럽의 밤새 쿵쾅거리는 소음으로 새벽까지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렌트카를 픽업한 첫 날 저녁, 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정면에서 질주해오던 차량과 충돌 사고가 나기도 했다. 상대 차량의 운전자는 음주 운전을 한데다 주머니에 권총을 숨기고 있었고, 거친 언사와 행동으로 나와 차에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며 위협을 가했다. 보험회사와 연락이 긴요한 상황에서 내 휴대폰은 켜지지 않았고, 사고 조서 작성을 위해 경찰서에 다녀오는 등 아찔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엄습하는 심리적 충격과 불안감에 아내는 당장 돌아가자고 하고... 아내의 의견을 따를 수도 따르지 않을 수도 없는 곤혹스런 상황에서 많은 갈등이 따랐다. 여행을 중단하고 당장 돌아가자니 평생 트라우마로 고통을 받을 것이 뻔하고, 계속하자니 아내의 상처가 더 깊어질까 염려됐다. 

이번 여행의 컨셉이 '아내 중심으로, 아내를 배려하여 가급적 여유롭게' 하자는 것이었는데, 어떤 것이 아내를 위한 길인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여행의 한 중간에서 자책감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러나 위기를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직면하면서 평소에 텐텐하듯 부부가 서로 의견을 나누며 그 상황들을 헤쳐 나왔다. 계획했던 일정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한 곳에 머무르며 미사 참례와 휴식으로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렌터카 사고를 통해 여간해서 잘 고쳐지지 않는 나의 나쁜 운전 습관과 지나칠만큼 안이한 안전불감증에 대해서도 스스로 되돌아보며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평소 조급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던 내가 위기의 순간에 인내하며 차분히 대처하는 '의외의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낯선 시간이기도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우리 부부의 터키여행이 마침내 끝났다. 여행을 마치고 나니 부부애와 신뢰가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깊어진 느낌이다. 아마 앞으로도 우리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여행을 통해 부부애는 물론 부부가 함께 성장하는 시간을 계속 열어가고 싶다. 










댓글은 로그인 후 열람 가능합니다.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