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여행 자체가 우연과 의외의 연속이다. <여행의 기술> 저자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여행에는 출발지와 목적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에는 무수한 상황과 우연, 의외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우연과 의외성 또한 여행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여행은 보다 다채롭고 풍성해질 것이다.





항공편 스케줄의 일방적 취소, 변경


여행지를 터키로 정하고 1년 전에 항공권 예약을 했다. 기다리면 좀 더 싼 항공권을 구할 수도 있겠지만, 미리 예약하고 차분하게 여행 준비를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 같았다. 예전 같으면 값싼 항공권을 구입하기 위해 항공사 사이트에 회원 가입하여 뉴스레터와 이메일로 전달되는 저가 이벤트를 기다리거나, 항공사 홈페이지를 기웃거리며 프로모션을 찾기도 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항공사간 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스카이스캐너(Skayscanner) 만으로도 편리하게 합리적인 가격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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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약한 터키행 비행기는 카자흐스탄을 경유하여 이스탄불에 도착하는 아스타나항공(Airastana)이었다. 환승 대기시간이 1시간 10분으로 촉박한 것이 맘에 걸렸다. 그러나 출발편과 연결편이 같은 항공사이므로 환승에 문제는 없으리라 믿었다. 국제선에 이어 터키내 국내선 세 개 구간도 저가항공으로 예약을 마쳤다. 

그런데, 출발 전부터 문제가 생겼다. 예약하고 6개월이 지난 시점에 터키행 항공편이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항공권 구매 대행사와 수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겨우 다시 예약을 했지만, 출발일을 이틀이나 당겨야 했다. 이 때문에 터키 국내선과 렌터카, 숙소 예약도 줄줄이 변경을 해야 했다. 

한숨을 돌리자, 이번에는 터키 국내선 항공기(Pegasus Airlines) 일정이 취소됐다는 통보가 날라왔다. 한 곳도 아니고 세 개의 노선이다. 비수기라 탑승객이 적어 공항이 폐쇄되거나 항공편 일정이 취소된 것이다. 항공사 약관에 사전에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변경될 수 있다는 문구가 있어 뭐라고 불만을 제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폐쇄된 카파도키아 네브쉐히르(Nevshehir) 공항은 목적지에서 더 멀리 떨어진 카이세리(Kaiseri) 공항으로 변경하고, 1시간 20분에 불과하던 이즈미르행 직항편은 5시간이나 걸리는 이스탄불 경유의 항공편으로 바꿔야 했다. 여행자에게 시간은 금보다 소중한 법인데…….





비행기 지연 출발로 연결편을 놓치고...
 
출발 전부터 항공사의 일방적인 취소로 애를 먹었는데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경유지 카자흐스탄에서 이스탄불행으로 갈아타야 하는 데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출발이 늦어지면서 연결편을 놓쳤다. 그렇지 않아도 경유지에서의 환승 대기시간이 1시간 10분으로 워낙 짧아 연결편을 놓치지 않을까 은근히 염려하고 있었는데,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카자흐스탄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다음 비행기는 새벽 3시다. 터키로 가는 연결편을 놓친 여행객은 15명 정도였다. 히터도 들어오지 않는 추운 공항에서 7시간 정도를 무료하게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다. 항공사 측에서는 저녁 식사와 호텔을 제공해 주겠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여행객은 연결편을 다시 놓칠까봐 불안해하며 공항에 남았다. 그러나, 우리 부부와 다른 두 명은 항공사 측에서 제공하는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쉬다가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셔틀을 타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연결편을 놓쳐 일정에 차질이 생겼지만, 이 또한 여행의 일부요, 과정이다. 여행을 즐기는 매니아라면 이런 의외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호텔과 공항을 오가며 일정에 없던 생경한 이국의 풍경을 즐기는 것은 이번 여행의 덤이요, 선물인 셈이다. 

9월 하순 카자흐스탄의 날씨는 초겨울의 문턱에 들어서 있었다. 아스타나시 거리의 사람들은 두툼한 겨울 외투를 입고 있었다. 여인들은 추위를 막기 위해 목과 머리에 스카프를 둘렀다. 

공항에서 시내 호텔에 이르는 도로변 양쪽에는 형형색색의 루미나리에 가로등 조명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카자흐스탄 전통 문양을 한 이 조명들은 구간 구간 그 형태를 바꿔가며 은근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이곳만의 고유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아 인상이 깊었다. 

시내에 접어들자 이색적인 건물들이 눈에 많이 띈다. 그중 우주선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몽골 초원의 게르나 유목민의 모자를 연상케 하는 비스듬히 누운 기이한 건축물 (Kyan Shatyr)이 유독 시선을 끈다. 그 모양이 이곳 카자흐스탄이 한때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실크로드의 중심지이자, 유목민들의 주요 터전이었음을 떠올리게 한다.  

호텔 주변엔 우리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언어는 그곳 현지어를 사용하는데, 외양은 틀림없는 우리 한국인이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연해주에 살고 있던 고려인들이 이곳으로 강제 이주됐던, 아픈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서려있었다. 

호텔 저녁 식사로 나온 스파게티는 빈약하고 맛이 없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것이라 근사할 것이라 내심 기대했었는데…….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혼자 김칫국부터 마신 격'이어서 괜스레 민망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이렇듯 부푼 기대와 환상이 맥없이 깨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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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중심에 접어들자 이색적인 건물들이 눈에 꽤 많이 띈다. 그중 우주선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몽골 초원의 게르나 유목민의 모자를 연상케 하는 비스듬히 누운 특이한 건물(Khan Shatyr)이 특히 시선을 끈다. 

호텔 주변엔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꽤 많이 띈다. 언어는 그곳 현지어를 사용하는데, 외양은 우리 한국인이다. 아마도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이곳에 정착한 고려인 2세들이 아닐까 싶었다. 

호텔 방을 배정받아 개운하게 샤워하고 휴식을 취한 다음 호텔에서 제공하는 저녁 식사를 했다. 호텔 식사라 근사할 것이라 내심 기대했으나, 막상 나온 메뉴는 소박한 스파게티로 너무 빈약하여 실망스러웠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혼자 김칫국부터 마신격'이어서 괜스레 민망함과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여행 중에는 이렇듯 막연한 기대와 환상이 의외의 장소,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보기좋게 깨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비행기에 실은 짐이 딸려오지 않은 황당한 사고

이즈미르 공항에 내려 짐을 찾는데 웬일인지 짐이 나오지 않는다. 마음은 이미 파묵칼레를 향하고 있어 조바심이 났다. 우리처럼 짐을 찾지 못한 손님들이 5~6명이나 더 있었다. 공항 내 페가수스 항공사 사무실을 찾아 짐이 없는 이유를 확인했다. 경유지였던 이스탄불에서 짐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공항측의 실수로 연결편 비행기에 짐을 옮겨 싣지 않아 몸만 이즈미르에 오게 된 것이다. 황당했다. 

  항공사 측에서는 짐을 숙소로 보내 주겠다고 한다. 공항에서 내가 묵는 파묵칼레 숙소까지는 3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호텔 주소를 적어주며 미심쩍어 오늘 확실히 받을 수 있겠느냐고 재차 물었다. 항공사 직원은 무심한 표정으로 짧게 ‘No problem’으로 답을 한다. 미심쩍었지만, 짐 때문에 공항에서 무작정 대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단 렌터카를 픽업하여 파묵칼레로 이동했다. 그러나 결국 그날 짐을 받지 못했다. 다음날 오전 호텔 매니저에게 짐이 어디에 있는지, 언제쯤 올 것인지 항공사 측에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다. 항공사 측에서는 곧 연락을 주겠다고만 하고 묵묵부답 연락이 오지 않는다.

 호텔 매니저가 서너 차례 확인 전화를 하는 중에도 항공사측 담당자가 계속 바뀌어 처음부터 다시 묻고 설명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동안 터키 사람들에게 품었던 막연한 호감이 점차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호텔 매니저를 통해 두 세 차례 더 채근한 후에야 호텔이 아닌 데니즐리 시내에 위치한 어느 여행사 사무실에서 받기로 하고, 우리는 그 곳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여행 계획을 아무리 잘 짠다고 하더라도 의외의 상황과 변수는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의 이번 여행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돌발 변수들로 계속 꼬여만 가고 있다. “여행에는 출발지와 목적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여행의 속성을 잘 간파한 알랭 드 보통의 말의 의미가 새삼 깊이 각인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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