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터카 사무실은 이즈미르 공항 1층 로비에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보험은 렌터카 예약 시 종합보험에 가입해 두었다. 그러나 렌터카 직원이 이 지역에 교통사고가 빈발하고 있고, 경찰이 출동할 경우에는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있을 수 있으므로 추가로 보험 가입할 것을 진지하게 권유한다. 잠시 망설였으나 가입을 했다. 내게 돈보다는 아내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 결정 때문에 이날 저녁 차량 충돌사고로 발생할 수도 있었던 큰 경제적 손실을 면할 수 있었다. 차도 내가 신청했던 소형이 아닌 좀 더 크고 안전한 독일산 신형 세단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주어 차량 충돌 시에도 다치지 않았던 것 같다. 추가 보험가입을 권유한 그 직원에게 얼마나 큰 고마움을 느꼈는지 모른다. 

  렌터카 수속을 마치고 이윽고 파묵칼레를 향해 출발했다. 짐을 찾았더라면 한국에서 준비해 온 차량용 GPS에 미리 즐겨찾기를 해둔 지점을 찍고 가면 됐지만, GPS를 넣어둔 짐이 오지 않아 스마트폰의 구글맵을 이용해야 했다. 구글맵 내비게이션을 실행해 보니 의외로 정확하다. 얼핏 전용 GPS나 차량용 내비게이션이 없더라도 별 불편함이 없었다.  

  파묵칼레 마을 입구 주차장에 주차하고 석회붕을 올라가며 이곳만의 독특한 경관을 만끽했다. 유네스코 복합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 파묵칼레는 과연 상상 이상으로 신비롭고 경이로운 곳이었다. 석회 성분을 함유한 온천수는 지하로부터 솟아나와 언덕을 흐르며 석회 침전물을 남기고, 그 위를 다시 온천수가 흐르며 석회층을 쌓고 또 쌓아 지금의 석회 언덕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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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로운 풍광의 석회붕, 고대 유적이 나뒹구는 온천 풀(Pool)과 고대 극장 등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지역을 둘러보는 사이 어느덧 어스름이 내려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여행자들보다는 터키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카라하이트(Karahayit) 온천 마을에 위치해 있다. 저녁에 온천욕을 즐길 계획으로 이곳에 정한 것이다. 숙소 요금은 다른 지역에 비해 저렴하면서도 온천욕과 풀장, 근사한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등 소위 가성비가 뛰어난 호텔이다.  


  그러나 숙소로 향하던 중 사달이 났다. 숙소에 거의 다다른 지점에서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막 핸들을 꺾는 순간 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정면에서 질주해 오던 차가 내 차 왼쪽 앞 부분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내 차를 보고 급히 피하기는 했지만 워낙 속도가 붙은 상태라 충돌을 피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런 출현이어서 나는 미처 브레이크를 밟지도 못한 상태였고, 내 차 뒤를 따르던 차는 내 차가 좌회전하는 것으로 알고 뒤를 바짝 따라오다 내 차를 추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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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사고가 나자마자 상대방 차량 운전자는 차에서 내리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뭐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잔뜩 흥분해 있다. 보조석에 있던 남자도 따라 내렸지만 그는 별 반응없이 조용히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다행히 몸을 다치지 않았고 아내 역시 무사했다. 안도감이 들며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후,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아내가 "저 사람 총 가지고 있어! 내리지 마요!"하고 다급히 제지한다. 그사이 내 앞차 운전자와 뒤차 운전자가 서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실랑이가 끝나고 앞차 운전자가 내 차 옆으로 오더니 차 문을 발로 차며 소리를 지른다. 그제서야 내가 차에서 내리니 손으로 요란한 제스쳐를 취해가며 욕인지 뭔지 외쳐대며 잔뜩 흥분해 있다. 사고 이후 주변에는 어느덧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차에서 내린 나는 일단 차 보험회사에 전화부터 하려고 하는데 아무리 해도 휴대폰 작동이 안된다. 뭘 잘못 눌렀는지 재부팅된 후 유심칩 비밀번호를 요구하며 화면이 뜨지 않는 것이다. 그 사내는 계속해서 나에게 뭐라 소리를 지르며 위협적인 언사를 내뱉고 있다. 내가 '폴리스' 하며 경찰을 부르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후, 가지고 있던 여분의 휴대폰으로 차 주변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가 갑자기 달려들어 내 얼굴에 주먹질을 하고 다시 나와 차에 발길질을 해댄다. 다행히 고개를 숙여 피하는 바람에 다치지는 않았다. 

  조심스레 상황을 지켜보던 아내가 황급히 ‘폴리스!’ ‘폴리스!’를 크게 외치며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그러나 난 의외로 차분하고 담담했다. 그 자의 거친 행동과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난 아내에게 아내는 나에게 괜찮으니 염려말라며 서로 등을 두드리고 위로하며, 안심시켰다.

  나는 주변에서 그저 구경만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조금 과장되게 ‘help me, please!’ ‘help me, please!’를 크게 외쳤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 곤란을 겪고 있는데, 그렇게 방관만하고 있어도 되느냐는 일종의 항의인 셈이다. 잠시 후 60대로 보이는 사람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서툰 영어로 자기는 미니버스 운전자라 소개하고, 저쪽에서 사고 장면을 목격했는데 명백히 저쪽 차가 잘못했다고 귀뜸하듯 조용히 말해준다. 아마 처음부터 지금까지 현장을 쭈욱 지켜보고 있었던 듯 싶다.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에 다소 위안이 된다. 큰 소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나서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어 내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모두 저쪽 편을 두둔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는 사이 경찰차가 와 주변 상황을 정리하고, 곧이어 견인차도 도착했다. 다행스럽게도 경찰 중에 영어를 잘 하는 경찰이 있어 우리의 상황을 전달할 수 있었다. 그(Sadam)는 내내 우리에게 우호적인 태도로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 저 사람은 음주운전을 하여 감옥에 갈거라며 우리를 안심시키는가 하면, 그 와중에 자기는 한국을 좋아하여 언젠가 한국에 꼭 가고 싶다는 말도 전한다. 

  잠시 후 다른 경찰의 요구로 나와 그 운전자는 차례로 음주 측정을 하였다. 그는 완강히 거부하다 측정 결과가 안 좋게 나오자 불만스럽게 계속 소란을 피워댔다. 나는 무엇보다 우리가 다치지 않은 걸 크게 감사했다. 그리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보험 가입도 이중으로 하여 경제적 피해도 없다는 점에 크게 안도했다. 난 우리에게 우호적인 경찰 사담에게 렌터카 업체 전화번호를 건네며 나 대신 전화해 줄 것과 빠른 사고 처리를 부탁했다. 

  현장을 정리하는 경찰관들은 마치 비상계엄하의 군인들을 보는 듯 모두 완전 무장한 복장이었고, 위압적이었다. 이런 모습들은 공항이나 관광지의 길목 곳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목격되었다. 최근 터키를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 예방 활동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현장을 정리하는 동안 반장으로 보이는 경찰이 주변 사람들을 향해 매우 고압적인 자세로 소리를 꽥 지르며 해산을 종용하자 구경하는 사람들이 슬금슬금 흩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현장 정리가 끝나고 사고 조서를 작성하기 위해 경찰차를 타고 경찰서로 향했다. 14년전 로마 여행 당시 지하철에서 지갑을 소매치기 당해 사고보고서를 받기 위해 가족과 함께 현지의 경찰서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보험금 환급 목적보다는 다분히 재미와 경험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들렀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경찰의 사고 처리가 끝나기 전까지는 싫어도 경찰서에 붙잡혀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억압적인 분위기는 아니지만 사고 후 심리적 충격과 긴장으로 인한 피로감이 점차 엄습하고 있는 상태다. 
  
  조서 작성을 위해 기다리는 동안 현장에 함께 있었던 경찰관들이 따뜻한 차와 커피를 권하며 직간접적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 우리가 피해자라는 걸 그들도 이미 인식하고 동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경찰서에 온 후 아내는 오히려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듯 보였다. 옆 방에 그 운전자가 조사를 받고 있었고, 그가 두 세 번 화장실을 오가는 사이 우리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뭔가 잘못돼 저자가 풀려나 우리에게 해코지나 하지 않을까... 이런 저런 우려로 불안과 공포감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아까 현장에서의 그 거친 기세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다소 위축된 순한 표정으로 읽혔다. 같은 상황을 보면서도 이렇게 서로가 전혀 상반된 해석을 하고 있었다. 

  사고 조서가 작성되기까지 지루하게 기다리는 동안 그제서야 AVIS 렌터카 업체로부터 사담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사고 처리는 자기네들이 알아서 할테니 걱정하지 말고 새 차를 보내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내는 불안해서 더 이상 렌터카를 타고 싶지 않다고 하던 터여서, 차를 받지 않겠다고 사양했다. 

  이윽고 저쪽 운전자의 조서 작성이 다 끝났나 보다. 반장으로 보이는 경찰이 우리에게 다가와 조그마한 권총을 내보이며 아까 봤던 것이 이 총이냐고 묻는다. 아내가 그런 것 같다고 하자 이 총이 우리 차안에서 발견됐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럴리가 없다고 하자, 예상했다는 듯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관광객이 총을 소지하며 다닌다는 것은 상식 밖이라는 걸 그들도 공감하고 있을 터이다. 아마 사고 초기에 혼란한 틈을 타 그자가 우리 차에 슬쩍 넣어 놓았지 싶다. 아내는 사고 직후 그가 차에서 내릴 때 땅에 떨어지는 권총을 얼른 주워 자기 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았다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진술한 바 있다. 

  사고 조서 작성을 마친 후 반장 경찰관이 내게 서명하라고 보고서를 건넨다. 보고서는 터키어로 작성돼 있었다. 사담에게 무슨 내용인지 영어로 읽어달라고 부탁하여 들어보니 그자에게서 권총이 나왔으며, 음주 운전을 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의 권총 소지가 합법적이었던 것인지 아닌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나를 폭행했다는 내용이 누락돼 있었지만 이미 음주 문제만으로도 형량이 커 보여 굳이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서명이 끝나고 반장과 사담이 동승한 가운데 경찰차를 타고 마침내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넓고 깨끗했지만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아내 또한 숙소에 도착하자 심신의 상태가 말이 아니다. 사담이 우리에게 다음 행선지를 물었을 때 폐티예와 그리스의 로도스섬이라고 얘기했는데, 그게 누설돼 그자의 패거리들이 호텔이나 여행지까지 따라와 위해를 가하지는 않을까? 아내는 그렇게 생각하며 극도의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나는 호텔 프런트의 젊은 매니저에게 우리 방이 안전한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No problem! Security zero!'라며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으로 OK 사인을 만들어 보이며 우리를 안심시킨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진지하고 순진해 보이는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나는 그에게 누가 우리의 신상이나 방 번호를 물어보더라도 절대로 얘기해서는 안된다고 일러두었다. 그 매니저도 경찰차가 우리를 직접 에스코트하고 온 걸 봤으니, 우리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각별히 신경쓰고 있는 눈치다. 

아내는 마음이 안놓였던지 문 안쪽에 소파를 놓자고 하여 소파로 바리케이드까지 쳐 놓았다. 또 발코니로 향하는 문이 잠궈지지 않아 매니저를 불러 안전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 후 문을 잠그기도 했다. 아내는 여행을 중단하고 당장 내일이라도 돌아가자고 한다.  

  여행을 계속하는 것도, 이쯤에서 중단하고 돌아가는 것도 나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난 즉답을 피하고 피곤하니 일단 자고 내일 결정하자고 했다. 아내가 샤워를 하는 동안 항공권을 검색해 보니 추석 연휴 기간이라 1인 편도 최소 170만원 이상, 경유가 아닌 직항편은 250만원이 넘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지만 몸은 피곤하나 이런저런 상념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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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진행하여 저쪽 차가 우리 차 오른쪽 옆구리를 받았다면 아내는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사고로 크게 다치거나 죽기라도 했다면 그 죄책감과 상실감에 과연 나는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나를 지켜보는 아내의 심정은 또 어떨까?

명백히 상대방의 과실로 사고가 나긴 했지만 평소 아내가 내게 입버릇처럼 ‘과속하지 말라. 조심해서 운전하라’고 했던 충고를 깊이 새기고 내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사고를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내가 이토록 불안해하는데 이 여행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 아내의 의견에 따라 당장 여행을 중단하고 이대로 귀국을 하는 것이 옳은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귀국을 하면 아내는 평생 두고두고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나 역시 후유증과 자책감을 떨치지 못하고 무거운 기억으로 고통받을 것이 뻔하다. 

나이가 들면 생각과 행동도 바뀌어야 하는데 여전히 여행에 대한 미몽과 허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단지 호기심을 충족하고,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치기어린 과시욕 때문에 여행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종환 시인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단풍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타고 생의 절정에 선다'고 했는데, 이제 나는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여행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홀연히 털어버려야 하는 시점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오늘 상황은 너무도 운이 좋았다. 결과적으로 아무런 피해없이 사지 멀쩡하고 건강하지 않은가? 살아가며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시련과 위기가 찾아오기 마련인데, 우리에게도 그런 류의 일이 잠시 일어났을 뿐이다. 그런 맥락에서 받아들이고 오늘 일을 과감히 털어버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쨌든 오늘 일을 계기로 나는 내 자신을 진중하게 돌아보고 성찰해야 한다. 어쩌면 나는 지금 신영복 선생이 언급한 여행의 본질, 즉 ‘떠남', '만남', '돌아옴’ 중에서 '자신과의 만남’을 깊숙이 직면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이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고 성찰하여 좀 더 성숙하고 겸손한 자세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떠날 때의 나'가 아닌, '변화된 새로운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오늘 사고의 메시지가 바로 이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상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겨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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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의외로 콘디션이 괜찮았다. 아내나 나나 어디 아픈데 없이 괜찮은 걸 보면 어제 사고로 인한 신체적 후유증은 확실히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듯 했다. 아내의 상태 또한 어제 저녁보다는 한결 나아 보였다. 그런 상황에 안도하며 즉시 돌아가자고 한 어제 저녁 아내의 제안에 대해 차분하게 내 생각을 꺼냈다. 

  "지금 이대로 돌아가면 서로가 평생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우리가 과연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에페스(Efes, 에배소)가 이곳에서 가깝다. 그 곳 성모마리의 집에서는 미사가 가능하니 이대로 집에 돌아가는 대신 남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그곳에서 푹 쉬며 안정을 취한 후 예정된 날짜에 귀국하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어제 저녁 경찰서에서 그 운전자와 눈을 마주친 상황 또한 내가 보기에 분명 뉘우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당신이 너무 불안하고 과민해 있던 것은 아닐까? 명백한 과실이 그 쪽에 있고 여행객인 우리에게 오히려 큰 피해를 입혔다. 그런 그가 우리에게 보복을 한다는 것은 지나친 상상인 것 같다. 그 운전자의 거친 행동은 술기운에서 나온 일시적 허세일 뿐이다." 
  여행 막바지 10.9~10.10일에 에페스에 들를 계획이었는데, 아내도 에페스의 성모 마리아의 집은 꼭 방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또 내가 이번 여행을 준비한 노력과 여행에 걸었던 기대를 아내도 익히 잘 알고 있던 터이다.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문을 연다. 

  "어제 경찰서에서 당신이 그렇게 봤다면 그게 맞을 수도 있다. 사고 자체는 불행이요 유감이지만, 어제의 일로 그 운전자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좀 더 나은 삶을 사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고가 없었다면 경찰 사담의 얘기대로 그가 훨씬 더 불행한 사고를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어제의 사고가 어쩌면 그에게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당신 말대로 에페스에서 미사도 하고 휴식을 취한 후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아내는 내 의견에 동조하고, 표정이 한층 더 밝아졌다. 

  지난밤 그토록 절망스러웠던 상황으로 복잡했던 심경이 오늘 아침의 밝은 햇살을 받은 듯 눈녹듯 사라졌다. 평소대로 텐텐(10/10)하듯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 내린 결정이라 뒷끝없이 크게 홀가분해진 느낌이다. 
  정오가 지나 어제 비행기에서 딸려오지 않았던 짐을 찾은 후 데니즐리에서 셀축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렌터카도 없어 크게 신경쓸 일이 없으니 더없이 홀가분하다. 버스로 이동하며 우리는 다시 한번 어제의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공감대를 가졌다. 

  “만약 그 청년의 권총에 실탄이 있었고 그가 악한 마음을 먹었다면 우리에게 총을 쐈거나, 다른 그 누군가를 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지 누군가를 겁주고 과시하기 위해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후자의 개연성이 더 커 보인다. 총을 소지하고 있던 사실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우리 차 안에 슬쩍 넣어 놓았던 것을 보더라도 그렇게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어쨌든 그가 평소에도 어제처럼 음주 운전과 과속, 거친 행동을 별 경각심 없이 해오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어제의 사고가 그에게는 더 큰 불행한 사고를 미연에 막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비록 젊은 혈기에 잠시 허세를 부렸지만, 이번 일로 지금쯤 크게 반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그 자에 대한 연민이 밀려왔다.

  버스 안에서 에페스 주변 숙소를 검색해보니 예전에 예약한 바 있던 Marys house가 뜬다. 부킹닷컴 리뷰는 9.2이다. 더 좋은 리뷰의 숙소가 있었지만, 숙소의 명칭 때문인지 아내는 Marys house에 마음이 이미 기울어 있다. 망설일 필요없이 이곳에 숙소를 정했다. 버스터미널과도 가깝고, 주택가와 성요한 교회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어 아주 조용했다. 그곳에서 성모 마리아의 집과 성모 마리아 교회(Virgin Maria Church)의 유적지, 그리고 한국인 신부님이 운영하는 셀축 공동체에서 미사 참례를 하며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미사를 하며 잠시나마 미국인, 독일인 등 낯선 사람들과 훈훈한 만남을 갖게된 것도, 주변 에페스 유적지와 아름다운 에게해 연안의 쿠사다시 해변, 그리스의 사모스 섬등을 둘러보면서 여유를 찾은 것도 아내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부부가 위기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대면하며 함께 고민을 나누고 대처했기에 빠른 치유와 극복이 가능했을 것이다. 악몽과도 같았던 순간이 오히려 우리 부부가 함께 성찰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그동안 우리가 애써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온 텐텐의 달달한 결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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