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이번 여행의 컨셉을 '아내 중심으로 가급적 여유있게, 그리고 미사가 가능한 곳에서는 미사에 참례하며' 여행하는 것으로 잡았었다. 그렇기에 렌터카 충돌사고 후 계획했던 일정을 별 미련없이 취소할 수 있었고, 이후 셀축 한 곳에 머무르면서 미사에 참례하며 빠르게 안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여행 중에 미사에 참례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여행자에게 볼거리는 많고, 시간은 늘 부족한 법이다. 더욱이 터키와 같이 무슬림이 90% 이상인 이슬람 국가에서는 성당을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터키에서 만난 한국인 신부님 말씀에 따르면 터키에서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 있기는 하지만, 기독교인이 드러내놓고 종교 활동을 하거나 선교 행위를 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런 일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보름간의 여행 일정 중 10일 이상을 미사에 참례했다.


이스탄불에서의 미사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맨 먼저 미사 참례를 했던 곳은 갈라타 탑 아래에 위치한  'Church of SS Peter and Paul' 이다. 아침 7시 30분에 미사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캐리어를 끌고 찾아갔다. 어제 아스타나 공항에서 연결편 비행기를 놓친 까닭에 비행기에서 밤을 새고, 이스탄불에는 새벽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을 풀기도 전에 곧장 이곳으로 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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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당에 도착하니 이제 막 미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미사에 참석한 분은 신부님 두 분, 수녀님 한 분, 평신도로 보이는 두 분이 전부다. 매우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미사 전례는 라틴어로, 성가는 반주없이 육성으로 진행되었다.  

  미사가 끝나고 그곳 신부님과 수녀님께서 관광객 행색의 우리에게 관심과 친절을 보이신다. 그리고 근처에 한국인 신부님이 계시다며 신부님이 계시는 산타마리아 성당(Church of Santa Maria Draperis)의 주소를 적어주셨다. 나중에 한국인 신부님을 만나 이곳의 분위기를 말씀드리니 이곳은 교구 성당이 아닌 성 도미니코회 수도원이라고 하신다. 어쩐지 그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더라니... 

다음날부터는 숙소에서 3~4분 거리의 성 안톤 성당(Sent Antuan Kilisesi)과 산타마리아 성당에서 미사에 참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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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톤 성당은 주로 외국인 이주 노동자, 특히 흑인들이 많았다. 어제 수도원에서의 엄숙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흑인 청년들의 독서와 그들이 부르는 성가는 엄숙함보다는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가 배어있었다. 

  미사가 끝난 후 한 흑인 청년은 수줍게 다가와 한국어로 안산에서 일했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늘 웃는 인상이어서 금세 친근감이 든다. 2년 후 다시 한국에 갈거라며 너덜너덜해진 여권에서 터키 비자 만료일을 보여준다. 고단한 이주 노동의 삶 속에서도 매일 아침 성당에 나와 위로와 힘을 얻나보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구입한 한국 전통혼례 의상이 새겨진 손톱깎기를 선물로 건넸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많은 이주 노동자들의 상황도 떠오르고..., 호주에서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힘겹게 병행하고 있는 아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모두 비슷한 처지일 터. 아무쪼록 건강하게 현재의 힘든 상황을 이겨내 각자가 바라는 삶을 잘 이어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에페스 성지에서의 미사 행운

  셀축 시내에는 초기 기독교를 전도했던 바오로 사도와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성요한의 흔적, 일곱교회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또한 에페스 고고학 박물관, 아르테미스 신전 터, 로마 수도교 등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도 잘 보존돼 있다. 셀축 시내와 3km 떨어진 외곽으로는 로마시대의 유적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에페스 유적지와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집(Meryemana or Mary's house)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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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사도 요한과 함께 에페스(에베소)에 정착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 거주했다고 전해져 수많은 기독교인이 찾는 성지가 됐다. 이슬람교에서도 기독교의 구약성경을 공유하고 있고, 예수를 중요한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다.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또한 성자의 반열에 올라 있다. 때문에 무슬림들은 성모 마리아를 '선지자 예수의 어머니'를 뜻하는 '메리에마나(Meryemana)'라고 부르며, 이곳을 역사적 신앙의 현장이자 성지로 여기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시간에도 무슬림 복장을 한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미사는 프란치스코회 소속 신부님이 이탈리아어로 집전하였고, 미사에 참석한 사람은 우리를 비롯해 소수 몇 명, 그리고 7~8명의 미국인 소규모 단체 노인들이었다. 미사는 사뭇 엄숙하고 경건했으며, 아내는 감개무량해 하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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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가 끝나고 숙소에 돌아가야 하는데 타고 갈 차가 없다. 함께 미사했던 미국인 단체와 인사를 나누고 나오면서 돌아 갈 차가 없다고 하니 선뜻 자기네 차를 타고 가자고 한다. 일행은 모두 8명으로 대부분 70~80대 노인들이다. 그들에게는 미국인 특유의 개방적이고 낙천적인 분위기가 배어있다. 2004년 유럽 가족여행을 할 때에도 미국인 관광객들을 보며 그런 분위기를 느낀 적이 있었다.  

단체는 메리가 인솔하고 있었다. 메리의 설명에 따르면 그들은 미니 버스를 임대하여 며칠간 이곳 성모 마리아의 집에서 매일 미사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주일은 야외에서 특별한 미사가 있는데, 함께 참석하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 셀축에 있는 동안 매일 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들의 배려로 그들의 차를 타고 다음날 다시 한번 성모 마리아의 집에서, 주일은 에페스 유적지 야외에 위치한 성모 마리아 교회(Virgin Mary's Church) 터에서 편하게 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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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에페스의 유적지 성모 마리아 교회 터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여러 주교님들과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로 진행되었다. 이 교회는 431년 제3차 에페소 공의회가 열렸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성모(聖母)라고 부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논쟁에,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갖춘 존재이며, 따라서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임을 선언'하는 종교회의였다. 여행 중 이런 역사적인 곳에서 미사를 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오늘은 우리의 결혼 28주년 기념일이기도 하다.   

  주일 미사를 위해 세계 각지에서 온 많은 신자들이 들뜬 표정으로 폐허가 된 고색창연한 교회 터로 속속 입장하였다. 그곳으로 이동하는 도중 필리핀 여성들과 인사를 나눴는데, 한 분이 한국말을 꽤 잘했다. 그 여성은 안산에서 일을 한 적이 있으며 곧 한국을 재방문할 것이라고 한다.   

  미사는 오전 10시부터 영어, 라틴어로 섞어가며 진행되었다. 주변은 허물어진 건물의 잔해로 가득했다. 이렇게 파괴된 것은 이 지역에 수차례 반복적으로 일어난 지진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한다. 바실리카 형태의 건물 터와 제대(祭臺)로 짐작되는 일부 벽체가 이곳이 한 때 성당 건축물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 폐허의 유적지에도 한때 예수의 신성과 성모 마리아의 위치를 둘러싼 논쟁으로 열기가 뜨거웠을 것이다. 수천 년 전의 그 열기가 오늘의 이 특별 미사로 되살아나고 있는 듯, 참석한 신자들의 가슴과 표정에는 벅찬 감격이 새겨져 있다. 

미사가 끝나고 미사를 주례한 주교님으로부터 직접 강복을 받고 기념 촬영까지 하였다. 주교님은 우리에게 어디서 왔느냐며 묻고... 우리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얼굴에는 부러움이 가득하다. 

어제 성모 마리아의 집에서 미사가 끝난 후 잠깐 인사를 나눈 독일인 할아버지와도 다시 만났다. 우리에게 호감이 많은 모양인지 서툰 영어로 더듬더듬 질문하며 우리와 계속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신다. 연세를 물어보니 85세라고 한다. 내가 두 손을 붙잡고 건강하게 오래 사시고 나중에 꼭 다시 뵀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니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며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 주신다. 손이 떨려 글씨 쓰는 것이 힘겨워 보인다. 

  야외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미니버스 안에서 어제 오늘 배려해준 미국인들에게 한국 전통혼례 의상이 새겨진 마그네틱과 태극이 새겨진 조그만 부채 모양의 기념품을 선물하니 얼굴 가득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예기치 못한 이들과의 인연, 오늘의 뜻깊은 시간과 기억들로 인해 우리의 여행이 한층 더 깊어지고 풍성하게 채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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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을 보며 비행기 안에서 아내가 보던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Another year)의 장면들이 주마등 처럼 스친다. 내 노년의 삶이 영화 속 톰과 제리 부부처럼 풍성한 인생의 가을을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친구 메리와 켄 그리고 톰의 형처럼 고독과 회한이 가득한 혹독한 겨울을 맞이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톰과 제리처럼 노년에 풍성한 가을을 맞기 위해서는 매순간 '지금 여기'를 충만하게 살아내야 할 것이다. 너무 먼 이상만을 추구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고, 작지만 소중한 일상에 집중하며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시나브로 다가오는 내 노년의 시간을 두려움없이 맞이하기 위하여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즐기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좋은 사람들과의 따뜻한 관계 유지에도 소홀함이 없어야겠다. 지금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 내 노년의 삶의 질이 결정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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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들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없이 빛나는 것들은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내 삶이 매일 매순간 행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행복은 늘 있기 마련이다. 바로 내 마음 속에. 내가 그걸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별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소중한 의미를 발견해 내고 나만의 가치를 부여하며 스스로 만족을 느낄 때, 내 삶에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기쁨도 차곡 차곡 쌓여갈 것이다.


  * 부부 터키여행 중 겪은 숱한 에피소드는 이것으로 마무리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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