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의 시

2002.11.11 13:42

green 조회 수:6400 추천:5

<꽃 2>

바람도 없는데 꽃이 하나 나무에서 떨어진다.
그것을 주워 손바닥에 얹어놓고 바라보면, 바르르 꽃잎이 훈김에 떤다.
화분도 난다.
"꽃이여!"라고 내가 부르면, 그것은 내 손바닥에서 어디론지 까마득히 떨어져간다.
지금, 한 나무의 변두리에 뭐라는 이름도 없는 것이 와서 가만히 머문다.


<분수>

1
발돋움하는 발돋움하는 너의 자세는
왜 이렇게
두 쪽으로 갈라져서 떨어져야 하는가,

그리움으로 하여
왜 너는 이렇게 산산이 부서져서 흩어져야 하는가,

2
모든 것을 바치고도
왜 나중에는
이 찢어지는 아픔만을
가져야 하는가,

네가 네 스스로에 보내는
이별의
이 안타까운 눈짓만을 가져야 하는지.

3
왜 너는
다른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떨어져서 부서진 무수한 네가
왜 이런
선연한 무지개로
다시 솟아야만 하는가,


<석류꽃 대낮>

어제와 오늘 사이
비는 개이고
구름이 머리칼을 푼다.
아직도 젖어 있다.
미루나무 어깨너머
바다
석류꽃 대낮


이즈음의 시도 아주 낭만적이고 멋지지만 옛시인의 정취를 따라갈 수 있을까요.
마치 옛 일기장을 꺼내 읽을때의 느낌이랄까.....
아직도 일기를 쓰느냐고 혹 친구들과 주변 누군가가 얘기할 때 아주 벅찬 얼굴로 "그럼요"라고 말할 수 있는 이로 살아갈 수 있기를.......
살아온 동안 쓴 일기장이 숨쉬고 있는 서랍을 하나씩 갖고 사는, 그리고 그 글들이 바보처럼 마냥 시처럼 잘쓴듯 느껴지는 이로 살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일기장 여백에 시 몇줄씩 써놓을 줄 아는 이로 살아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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