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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추미술관, 펌_구글이미지>

 



안도 다다오의 건축

 

세토 내해와 나오시마 해변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지추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미술관이라는 말에 얼핏 웅장한 건물을 떠올릴 수 있으나밖에서 볼 때에 건축적인 부피감이 거의 없이 겸손하게 땅 속으로 숨어 들어간 땅속(地中미술관이다아름다운 자연의 경관과 해변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의 모습을 해치지 않기 위해 땅 속에 지은 것이다땅 속에 있지만 실내는 빛이 풍부하게 스며들고지척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어 이른바 자연과 건축과 예술이 공생을 이루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이곳은 인상파의 대가 클로드 모네빛의 마술사 제임스 터렐대지예술가 월터 드 마리아 오직 세 사람만의 작품을 영구 전시하기 위해 지어진 상설 미술관이다다른 건물들처럼 미술관을 짓고 그 안에 작품을 채워넣은 것이 아니라오직 3명의 아티스트들의 작품 특성을 고려해 지은 것이다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를 맡아 작품들의 존재감이 더욱 빛나고 있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제주도 섭지코지의 지니어스 로사이, 한라산 중산간의 산록도로상에 자리한 본태 박물관에서 이미 몇번 본 적이 있으며이번 일본여행 중에는 도쿄의 21-21 Design Sight와 오모테산도 힐스나오시마 혼무라 지구의 안도다다오 박물관 등을 눈여겨 봐온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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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추미술관, 펌_구글이미지>

 

그의 건축적 특징은 일관되게 노출 콘크리트와 기하학적인 외양을 고수하고 있다사실 콘크리트 재료는 차가운 느낌의 반 환경적인 소재인데다기하학적인 외양은 부드러운 자연의 곡선을 거슬리는 측면이 있어 결코 자연친화적이지 않다그럼에도 실내에 들어서면 자연의 빛을 풍부하게 활용하며차가운 콘크리트와 대비시켜 푸른 하늘과 공기 등을 확연히 느끼게 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자연의 소중함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안도는 그의 저서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서 "예술과 자연과 인간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 자극하는보다 높은 차원의 가능성의 공간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건축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환기하고예술이나 자연과의 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치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의 건축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건축한 건물 안에 들어서면 짧은 시간이나마 높은 시멘트 벽을 따라 일정 구간 걷도록 유도하고 있는데걷는 행위를 통해 관람자로 하여금 공간적인 체험과 시간적인 체험을 동시에 느끼도록 의도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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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추미술관, 펌_구글이미지>

 

지추미술관 역시 예외가 아니다입구에서부터 드라마틱한 빛의 줄기를 따라 조금씩 앞으로 진행하다보면 매끈한 시멘트 벽 사이로 다양한 프레임이 형성되면서그 프레임 속으로 빛과 푸른 하늘싱그런 녹색의 공간 등이 번갈아 나타난다. 자연과 건축이 빚어내는 조화빛과 공간을 활용하는 안도의 건축적 감각과 발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월터 드 마리아의 Time/ Timeless/ No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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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me/ Timeless/ Notime, Walter De Maria, 펌_구글이미지>
 

전시관에 들어서자마 실내의 화려하고 장엄한 광경에 완전히 압도되며 말문이 막힌다천장에서 쏟아지는 부드러운 자연광이 신비감을 자아내고넓은 실내 중앙의 계단 위에는 커다란 검은 화강암 구체가 그 빛을 받으며 아우라를 발하고 있다신성하고도 장엄한 신전 앞에 서있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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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me/ Timeless/ Notime, Walter De Maria, 펌_구글이미지>

 

계단을 오르내리며 관람자가 움직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빛과 구체에 비치는 풍경과 그림자도 바뀌며관람자의 느낌도 달라진다.

 

 

 

제임스 터렐의 Open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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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en Field, James Terel, 펌_구글이미지>

 

전시실 안에 들어서면 벽을 가득 채운 스크린이 눈에 들어온다계단을 오르며 스크린을 향해 조심 조심 발걸음을 옮기면 곧 부딪힐 것 같았던 스크린 벽은 푸른 빛의 공간으로 변하며관람객은 다시 그 푸른 빛의 공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마치 무한의 공간이 연결되는 듯한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 것이다.

 

이 작품을 설치한 제임스 터렐은 빛 그 자체를 물질과 같이 다루는 빛의 마술사로 알려져 있는데이날 저녁 Night Program인 ‘Open Sky’에서 그의 작품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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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련, Clode Monet, 펌_구글이미지>

 

이 전시실에는 클로드 모네의 후기 작품 수련 시리즈 중 5점이 걸려 있는데이중 정면에 걸린 메인 작품은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이 뉴욕의 경매에서 1,000억원에 구입했다고 알려져 있다만약 모네가 살아 있었더라면 어떻게 공간을 구성했을까 모네의 심정을 헤아리며 만든 공간이라고 한다.

 

모네가 이 그림을 그릴 때 까지만 하더라도 당시의 화가들은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현실 세계의 대상을 화폭에 그대로 재현하고자 애썼다그러나 카메라의 출현으로 화가들은 카메라의 정확한 재현 능력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그래서 화가들은 현실 세계의 재현이나 그림의 주제보다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과 자연의 현상에 주목하고 그 분위기와 느낌을 담아내고자 했는데그 선두에 섰던 화가가 바로 인상파 클로드 모네이다.

 

모네와 인상파 화가들은 고전 미술의 틀을 탈피하고 현대미술의 지평을 이끈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는데바로 그 점 때문에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은 현대미술의 섬 나오시마에 클로드 모네의 전시관을 특별히 마련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클로드 모네의 작품과 정신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 것으로 보이는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은 어떤 방식으로 수련 작품의 전시 공간을 설계했을까과연 의도대로 잘 구현이 되었을까여행을 준비하며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해 했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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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련, Clode Monet, 펌_구글이미지>

 

새하얀 벽면으로 구성된 전시관은 부드러운 자연 광이 스며들며관람자의 위치와 시선에 따라 작품의 느낌이 미묘하게 달라진다뿐만 아니라 계절과 날씨시간의 흐름에 따라서도 그림의 느낌과 분위기는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먼 발치에서 작품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기존의 고착된 관습과 틀을 과감히 탈피하고 새로운 관점과 시도로 새 시대를 열고자 했던 클로드 모네와 그런 작가의 의도를 관람자들에게 충실히 전달하고자 한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의 정신이 읽혀지는 듯 하다.

 

그런데데시마 미술관에서의 감흥이 너무 컸던 탓일까데시마 미술관 처럼 관람자가 빛과 자연의 소리 등 자연을 좀더 입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느끼면서 이 걸작을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했다면 또 어떤 느낌이었을까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궁금증이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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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관람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지추미술관 카페를 찾아 시원스럽게 펼쳐진 세토내해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을 기울인다새파란 하늘과 흰 구름햇살에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바다 물결은 방금봤던 걸작들 못지 않게 자연이 빚어내는 대작으로 가슴 속에 짙은 여운을 남긴다.

 

 

 

 

오픈 스카이, James Terel

 

이 프로그램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만 운영되며, 1회 35명으로 제한되는 사전 예약제이다예약이 일찍 마감되는 걸로 봐서 인기가 꽤 있나보다참가한 사람들은 주로 젊은이 들이다.

 

일찍부터 질높은 문화와 예술 환경에 노출돼 있는 젊은이들이 많은걸 보면나이가 들어서도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층 또한 많을 게다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생활 속에 녹아든 문화와 예술일진데우리 보다는 분명 나은 환경에서 질높은 문화예술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 같아 이들이 무척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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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en Sky, James Terel, 펌_구글이미지>

 

오픈 스카이는 해진 후 약 1시간 동안 진행되는 경이롭고 신비한 상상 이상의 체험이었다풍경 사진가들이 좋아하는 일몰 후 골든 타임에 해당되는 시간이기도 하다하얀 벽면이 설치된 사각의 방안에서 관람자들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지붕이 뚫린 천장으로 해진 후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을 감상하는 프로그램이다낮에 보았던 오픈 필드가 인공 빛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라면, ‘오픈 스카이는 자연 빛의 실제 하늘을 감상하는 것이다마치 천장에 유리액자로 된 투명의 스크린을 통해 그 안의 영상물을 보는 느낌이다.

 

전시실의 불이 꺼지고뻥 뚫린 천장에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짙고도 푸른 자연의 색이 펼쳐지고그 스크린 속으로 구름이 흐른다구름의 형상은 시시각각 변하고파란 색의 농도도 조금씩 변한다늘상 보는 하늘이 이렇게 아름답고 다채로울 수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하얀 벽 중간에 보이지 않게 조명이 설치돼 있고이 조명이 하얀 벽면을 쏘아 하늘 색이 더욱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도록 효과를 주고 있다.

 

20여분이 흐르니 고요함 속에 비로소 풀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여태 온통 하늘에만 집중하다보니 잘 들리지 않았던 것일까어제 데시마 뮤지엄에서 맛보았던 것처럼 시각에 이은 청각의 체험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짙어가는 어둠과 함께 이제 점점 벽면의 조명이 약화되며 빛이 엷어지더니파란색 조명으로 바뀌며 신기하게도 하늘의 색이 바뀌고 하얀 구름이 부각이 된다.

 

잠시 후...,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이걸 옅은 연두색으로 표현해야 하나부드러우면서도 모호한 색채가 마치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를 연상케 한다연두색에서 옅은 고동색으로다시 보라색회색으로...

 

구름의 기운이 점차 온 하늘을 덮으면서 이제 한편의 추상화를 그리고 있다마티스가 구사했던 원색적이고 화려한 색이 아니라부드럽고 은은한 파스텔 톤이다어느 덧 건너편 주변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형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실내는 어두워져 있다.

 

하늘은 그대로일 뿐인데 조명의 색깔과 농도에 따라 하늘의 빛이 이렇게 다양하고 오묘해 질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기만 하다제임스 터렐이 왜 빛의 마술사로 불리우는지 이해가 될 듯 하다마냥 감동할 사이도 없이 이번엔 별이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구름이 흐르며 별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구름과 별의 리드미컬한 흐름에 맞춰 풀벌레의 합창이 하모니를 이룬다.

 

골든타임은 이미 지나고 풍경 사진가들도 촬영을 포기하고 삼각대를 접었을 시간다시 벽면이 밝아지면서 이번엔 하늘이 아주 새까맣게 변한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새파랗던 하늘이 역동적인 변화를 거쳐 하얀 구름과 별이 흐르는 공간으로 변하더니이제는 두꺼운 검은 천으로 스크린을 가려놓은 듯 온통 까만 색 뿐이다. 그 까만 스크린 속으로 하루살이 한 마리가 날아들어 유영을 하고 있다.

 

어제 데시마 뮤지엄에서의 감동스러웠던 순간과 함께 오늘 이 프로그램 또한 결코 잊혀지지 않을 환상적인 체험과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마침내 프로그램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비로소 각자의 소감을 나누느라 재잘 재잘 주변이 소란스럽다.

 

 

 


 

 * 이것으로 일본여행 후기를 모두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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