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일)~10.5(화) 23~25일째

 

코스 노틀담 성당 → 뤽상부르 공원 → 판테옹 → 몽마르뜨 언덕 → 자동차 박람회

 

 

 

 

 

노틀담 성당 미사


런던의 웨스트 민스터 사원, 빈의 왕궁교회, 로마 테르미니역 근처의 성당미사 참석에 이어 오늘은 여행중 네 번째 미사에 참석하는 날이다. 성당에 도착하니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성당 입구에서는 오스트리아 빈의 왕궁 미사 때와는 달리 미사 참례자와 일반 관광객을 구분지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안내를 해주는 사람이 배치돼 있었고, 이 안내인 덕분에 아내는 별 어려움없이 성체를 모실 수 있었다며 만족해 했다. 아내와 진영이는 미사에 참석을 하고 난 뒤에 남아 성당의 외관과 내부 구석구석을 구경하며 카메라에 담았다.


노틀담 성당은 고딕양식을 대표하는 유럽 3대 성당의 하나로서 짓는데만도 200년 가까이 걸렸으며, 이곳에서 잔다르크의 명예회복 심판, 나폴레옹의 대관식, 드골장군과 미테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거행된 역사적인 장소이자 상징성때문에 세계 각지의 관광객 들의 이목이 더욱 집중되고 있고, 안소니 퀸이 곱추로 열연했던 영화 '노틀담의 곱추'의 생생한 기억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한번쯤 꼭 보고 싶어했던 곳이었다.




건물 외벽에 정교하게 새겨진 많은 성상 조각과 내부의 벽화와 천정화, 화려하고 신비로움이 감도는 스테인드글라스는 더욱 성스럽고 위엄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성당에 이렇게 장식문화가 발전하게 된 것은 당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던 일반인 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이해시키는데 말로 설명이 힘든데다 대부분 문맹자여서 보조도구로 발전한 것이 라고 하는데, 그 시대 신의 위엄과 교회의 권위가 일반인들의 정신세계를 얼마나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나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성스러운 미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도중 매너없는 한 중국인 때문에 눈쌀을 찌뿌리는 일이 발생했다. 키가 크고 건장한 40대로 보이는 이 남자는 여행객임에도 불구하고 청자켓에 검은 양복 바지와 구두를 신은 촌스런 모습으로 실내의 엄숙한 미사 분위기에 전혀 아랑곳 하지않고 사진을 찍기위해 큰 보폭으로 휘젖고 다녔는데, 뚜벅뚜벅 걷는 구두 발자국 소리가 너무 요란해 미사를 보고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일제히 쏠리고 있는데도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 여느 관광객처럼 실내를 차분히 둘러보다 중간 중간에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니고, 어디 전장터에 나가는 투사처럼 저돌적으로 휘젖고 다니며 카메라 후레쉬까지 터뜨려가며 사진을 찍다가 이윽고 임무가 다 끝났다는 듯 휘리릭 밖으로 나가버린다.


잠시후 건물 외관을 구경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보니 일행으로 보이는 중국인 5~6명 틈에 끼어 큰 소리로 일행과 같이 떠들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여행하며 중국인 들과는 좋지않은 추억 들이 있는지라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었는데, 오늘 일로 인해 그네들이 더욱 얄밉게만 여겨진다.


미사가 끝나고 성당 안에서 파는 기념품을 사가지고 나와 탑에 올라가 볼까 하는데 줄서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포기하고 먹자골목 생미셸 거리로 향했다. 일요일 오전이라 문을 닫은 가게가 많았고 한산해 보여 또다른 먹자골목 무프타르 거리로 발길을 옮겼다.

 

 

 

 

벼룩시장 / 무프타르 거리


지하철에서 내리니 벼룩시장이 바로 눈앞에 펼져져 있었는데, 진열된 갖가지 물건 들에서 높은 국민소득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 들의 검소한 생활과 알뜰한 소비행태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한참동안 이것 저것 흥미롭게 구경하다 괜찮아 보이는 와인 한병과 먹거리 약간을 샀다.


벼룩시장을 나와 이동한 무프타르 거리에는 관광객보다는 파리지앵 들이 눈에 더 많이 띄었고, 이곳 저곳에서 거리연주가 흘러나오고 있어 거리 곳곳에 여유와 낭만이 가득해 보였다. 근처 적당한 레스토랑에서 프랑스식 요리를 맛볼 생각으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메뉴를 정하기가 쉽지않아 가까이에 있는 뤽상부르 공원에 음식을 싸가지고 가 그곳에서 먹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음식을 사가지고 공원으로 향했다.

 

 

 

 

 

뤽상부르 공원


이곳은 파리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원으로 프랑스 혁명당시 감옥으로 이용된 바 있고 지금은 프랑스 상원 의사당으로 이용되고 있는 곳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준비해온 음식을 먹거나 따사로운 햇살 아래 한가롭게 낮잠을 자며 휴일 여가를 즐기고 있었고, 공원에는 붙박이용 벤치 외에도 누구나 가져가 이용할 수 있도록 곳곳에 이동용 철제의자가 놓여 있는 것이 특이해 보였다. 도심 속의 오아시스같은 아늑한 공원에서 한가롭게 휴식을 즐기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공원에 우거진 나무는 많이 있었으나 런던이나 독일에서 처럼 흔하게 보았던 넓고 푸른 잔디는 그렇게 많지 않아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나무 그늘아래 벤치에서 점심을 먹은 후 여유롭게 휴일을 즐기는 파리지앵 들 틈에 끼어 나른한 오수와 망중한을 잠시 즐겼다.


 

 

판테옹


빅토로 위고와 에밀졸라, 볼테르, 쟝자크 루소 등이 묻혀 있는 판테옹 건물은 원래 성당으로 이용돼 오던 것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 자유를 위해 희생된 자를 추모하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판테옹 앞 광장에 세워진 빨간색의 현대식 구조물(작품)은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만큼이나 고풍스런 판테옹 건물과 부조화를 이뤄 매우 어색해 보였다. 어찌보면 이 때문에 판테옹 건물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듯도 하고... 안목이 없는 나로서는 한참동안 이 구조물과 판테옹 건물을 비교해 보며 헷갈려 했는데, 어쨌든 발상의 기발함이 돋보이는 매우 감각적인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몽마르뜨 언덕


몽마르뜨 언덕은 한때 창조적인 예술과 문학의 기운이 활발한 문예의 중심지였으나 오늘날에는 순수성이 많이 퇴색되고 상업적인 색채가 농후한 파리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의 하나가 되었다. 몽마르뜨 언덕에 오르니 로마 비잔틴 양식의 하얀 샤크르꿰르 성당이 무척 인상적이다. 많은 관광객들 틈에 끼어 계단에 앉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파리 시내를 굽어 보며 주변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를 느긋하게 즐기며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데르뜨르 광장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무명화가 들이 달라 붙으며 우리말로 "싸게 해줄께요, 싸게 해줄께요"하며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고, 그 수가 관광객 만큼이나 많아 보인다. 진영이는 그간 이곳에 오면 초상화를 꼭 그리겠노라고 별러 왔으므로 이들의 청에 못이기는 척 하며 흥정 끝에 5유로를 깎은 다음 초상화를 그렸는데, 불과 5~6분만에 완성된 초상화를 받아보니 영 아니다.



그림을 그린 후 데르뜨르 광장에 내려오니 왠걸, 진짜 실력파 들은 이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 두말할 나위없이 진영이의 얼굴에 아쉬움과 후회가 가득하다.^^ 이들 화가들이 그리고 있는 모습을 옆에서 한동안 지켜보는데 사력을 다해 집중하는 모습이었고, 가격이 아깝지 않을만큼 실력들이 뛰어나 보였다.

 

 


 

퐁네프 다리


저녁식사를 마치고 낮에 벼룩시장에서 샀던 와인을 꺼내놓고 어제의 젊은 부부와 함께 한참동안 얘기를 나누었고, 잠자리에 들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다소 알딸딸한 기분으로 아내와 함께 밤마실에 나섰다.


지하철에서 내려 뚜렷한 목적지없이 걸어 당도한 곳은 빠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로 유명한 퐁네프의 다리였다. 다리위에서 바라보는 세느강과 주변의 야경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대학시절 그토록 애청했던 감상적이고 애절한 에디뜨 삐아프의 음색과 바이브레이션이 낭만적인 이곳 퐁네프 다리와 세느강과 주변 야경무드에 기가 막히게 조화가 될 것 같은 분위기이다. 특히 독창적인 창법과 풍부한 감정으로 연인간의 사랑을 절절하게 찬미한 '사랑의 찬가'는 오직 그녀만이 표현해 낼 수 있을 것이며, 바로 이런 분위기가 있었기에 탄생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모터쇼

 

파리에서 국제 모터쇼가 열리고 있다는 정보를 진영이가 민박집에서 듣고 꼭 가보고 싶다고 해 민박집의 젊은 부부와 함께 아침 늦게 버스를 타고 국제 모터쇼 관람에 나섰다. 당초 계획에는 없었지만 주요 관광지는 거의 둘러본 터라 부담없이 나섰는데 진영이가 무척 좋아한다. 이동도중 버스내 전광판에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경고문구가 흐르고 있어 로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 파리 역시 소매치기가 빈발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모터쇼는 국내에서 한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고 그 자체에 그리 큰 흥미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막상 참석해 둘러보니 세계적인 명차들과 멋지고 세련된 디자인의 차들에 흠뻑 매료가 되는 듯 하였다.



 

별도로 마련된 우리나라 부쓰에 가보니 오피러스, 쏘나타, 마티즈와 같은 차들이 자랑스럽게 전시돼 있었다. 구경하고 있는 도중 실수요자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마티즈와 같은 경차에 특히 관심을 많이 보이며 기웃거리고 있어 그들의 검소한 소비 행태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고, 우리의 신장된 경제력과 국력을 보는 것 같아 가슴 뿌듯했다.


 

 


차량 반납

 

오랜만에 차를 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부근에 이르러 P3 터미널 입구를 놓쳐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한참을 헤메야 했다. 푸조카 사무실은 주차장 입구 우측에 간이건물 형태로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었고 주차장에 차를 세운 다음 푸조카 직원의 확인을 받아야 했는데, 직원이 쭈욱 훑어보더니 반납절차에 관한 서류를 내주며 작성할 것과 키를 반납하라고 한다.

 

잘츠캄머구트 B&B 주차장에서 주차하다 차체가 심하게 긁혀 혹 추가 비용을 요구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을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직원이 혹시 보지 못했나 싶어 긁힌 자국을 가리키며 괜찮냐고 물으니 "No problem!" 이다. 이로써 가족과 함께 25일간에 걸친 자동차 유럽여행에 마침표를 찍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출국장으로 향했다.

 

 



파리 여행과 숙소에 대한 소감

 

자유로운 정신과 예술적 영감을 펼치려는 예술가 들뿐만 아니라 세계각국의 젊은이 들과 관광객들이 한결같이 동경하는 '예술과 낭만과 자유의 도시' 그리고 '유럽문화와 예술의 메카'... 파리에 대해 쏟아지는 이런 찬사들이 결코 과장은 아닌 듯 하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아니면 여행 막바지에 긴장과 집중력이 떨어져 여행에 대한 흥미가 반감된 탓일까? 5일간 파리에 머물며 낭만적이고 마냥 좋았던 기억보다는 런던등 타도시에 비해 감흥이 그리 크지는 않았으며, 전체적으로 지저분하다는 느낌과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 또한 컸다. 지저분한 이미지 마저 자유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야 할만큼 온통 장미 빛 도시는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한껏 부풀려진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 들을 접하며 마음 한 구석에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며 여행을 마칠 때까지 뭔가 미진한 생각을 떨쳐 버리질 못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무엇보다 기대치가 너무 컸고, 신비롭고 호기심을 끄는 유럽의 여러 명소들을 이미 둘러본 후라 흥미가 반감된 탓도 있을게다. 만일 파리 방문이 여행의 마지막이 아닌 첫 일정이었다고 하면 그 느낌은 아마 또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요인 외에도 또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숙소의 위치와 관련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숙소의 위치가 여행의 느낌과 분위기를 결정짓는데 매우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민박대신 처음 세느강변의 볼로뉴 캠핑장에 그대로 묵었더라면 아마 파리에서의 감흥이 많이 달라졌으리라.

 

처음 세느강변 볼로뉴 공원에 위치한 볼로뉴 캠핑장에 숙소를 잡았을 때 주변 경관과 분위기가 너무도 좋아 과연 빠리구나 라는 생각에 흥분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주말연휴로 인해 캠핑장에 빈방이 없어 부득이 민박집으로 옮긴 이후로 그런 들뜬 기대와 감상은 점차 실망으로 바뀌어 갔다. 민박집 분위기가 그랬던 게 아니라, 민박집을 둘러싼 주변환경 때문이었다. (민박집에서는 매일 점심으로 김밥을 싸주었고, 비수기라 성수기에 비해 여행객이 그리 많지 않았던 탓에 비교적 대접을 잘 받은 편이었다)

 

민박이 위치한 아파트 주변환경과 7호선 D'lvery역 주변의 거리는 밝고 깨끗한 환경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고, 고층 아파트가 밀집해 있어 늘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중국인 들이었고 흑인들도 눈에 많이 띠었다. 때문에 오가며 집주변이나 지하철에서 행색이 꽤재재한 이들을 많이 접할 수밖에 없었고, 주변의 어두칙칙하고 지저분한 분위기, 더욱이 D'vley역의 한 역무원의 불친절하고 동양인을 대하는 오만한 눈빛 등에서 그간 품어왔던 파리에 대한 환상과 한껏 부풀려진 기대가 상당히 감소될 수밖에 없었다.

 

환상이 깨지는 실망감 또한 여행을 통해 얻는 값진 보상 중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아무튼 다시 파리를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 때는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숙소의 위치와 선정에 결코 소홀함이 없을 것이다.

 


사진 Click    파리 자동차 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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