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유럽은 나를 미치게 했었고, 지금도 나를 숨막히게 합니다.


작년 이맘 때 나는 거의 미쳐있었다..

학교 생활은 뒷전이었고,

시험도 레포트도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핸드폰에는 출국일자까지의 카운트다운이 설정되어 있었다...그 날짜가 줄어들수록 나는 흥분되기도했고, 한편으로 두렵기도 했었다..그것은 참 묘한 쾌감이었다...

친구들의 소소한 일상 얘기들은 다 꿈결처럼 먼 얘기였다..나와는 상관 없는 얘기..

난 오직 내 안에 들어차있는 유럽이라는 놈만을 상대하고 있었으니까~~

학교에서는 틈틈히 도서관에서 유럽에 관한 책들을 뒤졌고,

수업이 마치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나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의 유럽 정보들을 뒤적였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진해져도 상관하지 않았다..매일 컴퓨터와 씨름하다가 새벽 2~3시가 넘어서야 잠이들었다..

주로 수업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공상을 했다..

'냉정과 열정사이'의 쥰세이와 아오이처럼 두오모에서 피렌체의 하늘을 볼 수 있기를..

카프리의 푸른동굴에서 오묘한 에메랄드 빛을 볼 수 있기를..

알프스에서 하이킹을 하기를..

파리의 센강에서 유람선을 타기를..

베네치아에서 곤돌라를 타고 안개 자욱한 밤을 느낄 수 있기를..

프라하의 야경을 볼 수 있기를..

산토리니에서 지독한 파랑에 물들어 지기를..

한 달간 유럽에서 버티려면 건강해야 한다고

악작같이 헬스를 했다..

러닝머신 위에서 힘이 들때도 유럽을 공상하면 시간이 금방 가곤 했다..

그렇게 내 생활을 유럽으로만 가득 채웠다..

참으로 지독한 집착이었으나, 더 없이 기쁜 시간들이었다..

드디어 출국을 했다.

비행기 한번 못 타본 내가 무슨 용기로 그렇게 지를 수 있었는지,,지금도 미스테리다..

여행에 관한 공상은 낭만이었고,

여행은 현실이었다..

나는 거의 한달내내 피곤에 찌들어야 했다..

끊임없이 걸어다닐 때에는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는 느낌이었다..

그럴 땐 이게 다 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달간 다니면서 사기를 당한 적도 있었고,

야간 열차를 두번이나 갈아타면서 이가 덜덜 떨릴 정도로 춥고 무섭게 새우잠을 잔 때도 있었고,

나를 원나잇스탠드상대로 생각하며 접근하는 외국 남자의 찝적거림에 기분이 상하기도 했었다.

융프라우요흐에 올라갔을때에는 고산병 때문에 거의 쓰러질 뻔 했으며,

페리를 20시간 이상 탔었을 때 배 갑판에서 거지처럼 침낭을 깔고 자기도 했다..

또 그리스에서는 모든 지하철과 버스가 파업을 하는 바람에 애를 먹기도 했다..

한마디로

하루도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초기에는 무척 당황했었으나,

나중에는 어지간한 사건에는 눈도 깜빡하지 않게 된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 또한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몸이, 현실이 힘들수록 여행은 너무 아름다웠다..

런던의 모던함, 수많은 박물관에서 보았던 명화들, 초록빛과 하얀빛의 알프스,

스위스의 에메랄드빛 브린츠호수,

베네치아의 종루에서 바라본 베네치아의 정경은 지금도 나를 눈물나게 한다.

이태리의 곳곳에서 느꼈던 역사는 나를 전율시켰으며,

중세가 고스란히 남겨진 아씨지는 갔다 온 지금도 마치 꿈같이 느껴진다.

지중해의 파랑빛, 그 위에 부서지던 하얀 거품은

차마 나의 짧은 글로는 묘사할 수 없을 정도이다..

여행이 끝나고,,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지금은 여행 당시에 힘들었었던 감정보다는

아름다웠던 기억들만 아련히 남아있다..

정말 손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콜로세움이, 지중해 빛이, 베네치아가, 프라하의 야경이..

다시 가기 위해선 많은 절차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또한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렇게 지금도

유럽의 기억은 방심하고 있는 순간 밀려들어 나를 숨막히게 한다.

마치 권태로운 일상에서의 시원한 청량음료같이, 목이 따끔거려도 기분은 좋다.

지금 나의 삶은 무료하다..

그래서 다시 유럽이 떠올랐다.

다시 지독히도 미칠 수 있는 곳이 필요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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