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아! 지리산...., 천왕봉 일출

2006.06.04 13:49

victor 조회 수:3200

천근 만근, 온몸이 쑤시고 결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고 이제야 겨우 정신을 차려 간단히 후기를 정리해 봤습니다.
6.2(금) 휴가를 내어 1박 2일의 일정으로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왔습니다. Juni님의 요청도 있고하여 간단한 후기와 함께 사진을 실어봅니다.  



애초부터 천왕봉을 오르겠다, 일출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나 특별한 각오같은 건 없었다. 그저 막연히 신록이 무성한 계절에 바쁜 일상을 벗어나 싱그러운 자연과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간 꽤 오랫동안 바쁘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건강이 많이 악화돼 부심해 오던 차에 마침내 지리산에 오를 기회를 갖게 됐다.


평소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고 따르는 같은 직장의 형에게 무심코 지리산에 한번 다녀오자고 제의하니 고맙게도 흔쾌히 수락한다. 인터넷을 통해 등산코스를 확인해 보니 초보인 우리에게 당일치기는 힘들고 1박 2일이 소요되는 백무동-장터목-천왕봉 코스가 적당해 보였다.

그런데 중간 장터목 대피소에 하룻밤을 묵기위해서는 인터넷을 통해 필히 사전 예약을 해야 하는데, 하루 전에 인터넷 예약상황을 살펴보니 이미 오래 전에 예약이 완료된 상태이다. 국립공원 안내소에 전화를 걸어 알아보니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대기소에 묵기 어려우니 당일 산행으로 변경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며, 등산로 입구에 마련된 야영장이나 대피소 이외의 장소에서는 야영이 일체 금지된다고 한다. 환경훼손을 막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난감하여 형에게 전화하니 텐트가지고 무조건 떠나자고 한다.


6월 2일(금) 05:20에 기상, 형차로 07:00 서울을 출발하여 경부, 중부내륙을 타고 함양IC를 빠져나왔다. 백무동에 도착하기 전 길가에 위치한 한적한 음식점에 들러 맛있게 점심을 먹고, 13:00부터 산행을 시작하였다. 출발전 주변의 음식점 아줌마에게 중간에 약수터 같은 것이 있는지 문의하니 그냥 흐르는 계곡물을 걱정하지 않고 마셔도 된다고 한다. 정말 괜찮을까? 순간 의심이 든다.


등산로는 평일이라 인적이 드물고 호젓하였으며, 등산로 초입부터 경쾌하게 흐르는 계곡의 시냇물 소리와 맑은 새소리, 무성한 신록은 자유롭고 여유로운 산행무드를 한껏 고조시켜 주었다. 1박 2일의 산행에 대비한 배낭의 무게는 꽤 무거웠고 가파른 등산로는 끝없이 이어졌으나, 결코 무리하지 않고 중간 중간 계곡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계곡물을 마시며 쉬엄 쉬엄 한발짝 한발짝씩 장터목을 향해 올라섰다. 두사람 마음이 워낙 잘 통하는 지라 차안에서부터 쉼없이 얘기를 주고 받으며 오르니 힘든 줄 모르고 마냥 즐겁기만 하였다.  





5시간 30분만에 마침내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하였다. 대피소 마당 양쪽으로 확트인 시야와 첩첩산중의 부드러운 능선이 한눈에 들어와 지친 다리를 이끌고 애써 올라온 보람을 느끼게 한다.

일단 대피소 리셉션을 찾아 잠잘 자리가 있는지 문의하니, 예약자가 취소하여 빈자리가 생기면 19:00경 안내방송을 할거라고 한다. 바람이 들지않는 적당한 자리를 잡고 형이 준비해온 버너에 카레라이스가 딸린 햇반과 라면을 끓여 정말 맛있게 저녁을 해먹었다. 저녁을 먹으며 한편으로는 밖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밤을 지새울 생각에 내심 염려가 됐으나, 다행히 예약을 취소한 팀이 있어 대피소 내에 잠잘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요금은 1인당 7,000원. 마치 유스호스텔을 연상케 하는 구조이나 훨씬 비좁고 불편해 보인다.

21:00경부터 잠을 청했으나, 수시로 들락거리는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의 수면은 안중에도 없는 듯 매너없이 행동하는 사람들 때문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잠을 설치다 새벽 3시경 눈을 떴다. 더 누워있어봐야 잠이 올 것 같지않아 짐정리를 한 후, 4시경 천왕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밤하늘의 별들이 무수히 반짝이고 있었으나 이미 여명이 시작된 듯 그 밝기가 점차 엷어져 가고 있어 기대만큼의 감동은 느끼지 못했다. 둘다 렌턴을 챙기지 못한 까닭에 다른 사람들의 렌턴조명에 의지하며 더듬 더듬 발길을 옮겼다. 다행히 장터목 이후 등산로의 경사가 무척 심해 조명을 따라가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채석봉 고사목 현장을 지나 통천문에 이르기까지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주변의 실루엣에 가쁘게 몰아쉬는 숨 만큼이나 가슴이 벅차 오른다. 어둠이 걷히고 따사로운 햇빛이 비출 때면 이런 경관 들이 기가 막히게 멋질 것 같은 예감 때문이다.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을 통과해 마침내 천왕봉에 올랐다.
아, 이 벅찬 감격! 어떻게 필설로 다 형언할 수 있으랴!!!
과연 민족의 영산이요, 신령스러운 기운이 넘치는 듯 하다.


* 이후는 시간관계상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곧 가나전도 봐야하고.... ^^





05:10경. 천왕봉에 도착하여






설레임으로 해돋이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일출직전의 모습






05:30경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 대자연의 신비 앞에 그저 넋을 잃고 감격에 겨워하다.
천왕봉의 일출은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으며,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답니다.












일출 반대편에서. 신령스러움이 감도는 장엄한 장관.

1년전 이맘때쯤 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에 앞서 일주일 가량 제가 짜준 스케쥴대로 그랜드써클을 둘러보고 왔습지요.^^





살아 백년 죽어 천년이라는 채석봉 고사목의 경관.
어느 몰상식한 도벌꾼이 도벌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불을 질렀다고 하는데, 아직 나무 한포기 자라지 않은 황량한 모습이었다.
요세미티 정상에서 보았던 고사목이 생각남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시  이원규,  곡/노래 안치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 거든
  불일 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 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 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 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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