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자유게시판에 빈잔님께서 여행중에 만난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글을 작성하신 것을 읽고 문득 생각이 나 10년 전의 일을 꺼내봅니다. 평소에 제가 작성하는 여행기나 관련글들은 여행정보 공유의 목적이 큰 편인데 오늘 이 하이킹 후기는 backcountry hiking 경험이 없던 시절 개고생한 경험담, 그야말로 주관적인 경험담에 가깝습니다. 재미삼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장소는 와이오밍에 있는 그랜드 티턴(Grand Teton) 국립공원입니다. 매우 유명한 옐로스톤 국립공원 남쪽에 바로 위치해 있어서 처음에는 옐로스톤 방문의 별책부록(?)쯤으로 생각하고 방문했다가 그 멋진 경치에 넋을 잃게 만드는 매우 아름다운 곳이지요. 이곳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여행객은 주요도로를 따라 난 전망대와 가까운 하이킹 약간, 그리고 호수 위를 달리는 보트 투어 정도만 하고 하루 정도 구경한 후 떠납니다. 여기에 조금 더 시간을 들일 경우 말타기나 래프팅 등을 할 수 있구요. 그런데 우리가 포장된 도로에서 편하게 바라보는 그랜드티턴은 동쪽면밖에 보이지 않아 어찌보면 병풍을 보고 있는 느낌도 듭니다. 매우 아름다운 병풍, 달력같은 풍경을요. 그런데 이곳도 시간내어 산의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backcountry 하이킹 코스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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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는 그랜드티턴 지역의 입체지도인데요. 제일 아래 파란 점선이 보통 여행할때 다니는 포장된 도로이고 노란 별표가 일반적으로 많이 방문하는 포인트들입니다. 지도상으로 보면 일반적으로 많이 다니는 관광코스에서는 그랜드티턴의 산 속으로는 거의 들어가보지 않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어느날 하루를 다 투자해서 저 산 속으로 들어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답니다. 1번에 주차하고 순서대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장거리 하이킹을 계획했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동안 유명 국립공원들의 하이킹을 참 많이 했지만  잘 정리되고 보이든 보이지 않든 관리인의 보호를 받으며 온실속의 화초처럼 안전하게 다니기만 했었다는 것을 이날 깨달았습니다. 평소에 등산도 잘 안하는 저질체력 일반인이 오고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그야말로 편의시설은 아무것도 없는 산 속을 하루에 20마일, 32km를 걷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지 몰랐습니다. 그래도 히말라야 산 속을 가는 것은 아니니까 거리가 먼 것은 어찌어찌 걸으면 되긴했는데 결정적인 실수는 8온스짜리(236ml) 물 열두병과 게토레이 중간사이즈(아마도 600ml전후) 두병만 달랑 들고 8월달에 성인 두명이 산으로 들어갔다는 것이었답니다. 


오늘 가장 큰 실수 - 그러니까 8온스짜리 물병이 무엇이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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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제일 아래 엄청 귀엽게 생긴 저 물병 말입니다. 8oz를 환산해보니 236ml짜리라네요. 

방문 전에 슈퍼마켓에서 물을 구입할때 다른 병물이 안보여서 무심코 저것 열두병짜리 한짝을 집었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더 큰 병을 집었으면 그걸 다 들고 갔겠지요. 트레일 고도차이 4300피트(1310미터), 트레일 거리 20마일(32km)짜리 하이킹을 하루만에 하는데 성인 두명이 총 2.8리터의 물과 1리터 조금 넘는 게토레이, 약간의 씹을 간식만 들고 들어가는 바보같은 짓을 해버린겁니다. 이 하이킹이 끝난 후 10년이 되도록 저는 저 8온스짜리 물병을 아직도 산 적이 없습니다. 수퍼마켓에서 저 귀엽고 앙증맞은 병만 보면 목이 바싹바싹 타오르고 그날 고생한 것이 떠오르거든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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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가 길었으니 이날 아침으로 얼른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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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티턴의 봉우리들이 떠오르는 해에 붉게 물이 드는 장관을 바라보며 오늘의 트레일 시작점인 Leigh Lake Trailhead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아직 차가 한대도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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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기분으로 String Lake를 따라 걸으니 이른 시간이라 아직 바람이 없어서 이렇게 Mt.Moran이 호수에 반영된 풍경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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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가 아직 가시지 않은 String Lake를 따라 걸으며 아주 신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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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지점의 다리를 건너 호수를 등지고 이제 산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니 어느새 우리를 추월하는 하이커들이 나타납니다.

이날 트레일이 끝날때까지 우리를 지나갔던 사람들이 돌아 내려오는 것을 다시 본 적이 없으니 저분들도 아마도 loop 코스로 완주를 계획하고 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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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지점을 지나 본격적으로 Paintbrush Canyon 속으로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또다른 커플이 우리를 추월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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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오르막이라 약간 힘들어지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는 뭐 좋았습니다.

하늘도 예쁘고 풍경도 좋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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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기 무스가 트레일을 막고 서 있어서 잠시 기다리니 길을 건너 숲속으로 들어가더군요.

어느 동물이든 새끼와 함께 있는 경우는 매우 조심해야합니다.

무스도 눈 앞에서 봤다며 흥분해서 아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저녁에 더 크고 무시무시한 뿔을 머리에 달고 있던 수컷 무스와 일대일로 마주칠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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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티턴의 호수들도 이제는 많이 멀어져서 저렇게 작아보이고 길은 계속해서 오르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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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혼자 걸어가는 하이커도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곳을 혼자 가볍게 걷는 분들은 아마도 다른 명산들 장거리 하이킹 경험이 풍부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는 흉내내다가 죽을뻔 했지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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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져온 물도 반이나 먹었고 몸이 살살 힘들다 신호를 보내는데 고작 4번 Holly Lake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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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지도를 가져와보면 아침에 1번에서 시작해 물의 절반을 먹었는데 이제 4번이라는 것이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수준은 딱 4번 Holly Lake까지였고 호숫가에서 놀다가 다시 내려왔었어야했습니다.

평소에 운동을 즐겨하지 않는데 그랜드티턴의 산 속 경험, 특히 페인트브러쉬 캐년 경치 보고싶은 분은 Holly Lake 까지만 왕복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다음부터가 사실 진짜이긴하지만 확실히 준비된 하이커가 아니라면 욕심 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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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에서 잠시 쉬었구요.

좀 힘들었지만 조금만 더 가면 오르막이 끝나고 pass에 도착한 후 그다음부터는 신나게 내리막을 뛰어(?) 내려가면 된다는 착각을 하며

갈 길을 재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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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ly Lake를 지나니 드디어 눈밭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가 2011년 8월말이었어요. 평균적으로 8월말이면 패스 가까이 가서야 일부 눈이 남아있다는데 하필 2010-2011년 겨울은 서부 산악지역에 기록적인 눈이 내린 해였고 그랜드티턴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상보다 일찍(낮은 고도에서) 눈을 만났고 기동력이 떨어져 체력 방전이 일찍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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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래도 아직은 웃으면서 >.< 열심히 오르니 조금 전 Holly Lake와 저 멀리 그랜드티턴의 호수들이 멋지게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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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가니 이제 제대로 눈밭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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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밭을 살살 가다보면 잠깐 눈 녹은 구간 -  흙길이 나오고 또 금방 눈길이 나오는 식이었어요. 

일년전에 그랜드캐년 하이킹을 오를때도 그랬지만 뻔히 눈으로 보이는 저 꼭대기가 목적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설마 내가 저기까지 가야하나??? 라는 현실부정을 하고 있던 단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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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뒤에서 우리를 추월하는 분들이 나타났습니다.

저분들은 축지법 쓰듯 너무나 빠르게 움직이시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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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우리를 앞질러 저 멀리 가버린 사람들..

올라갈수록 흙길보다 눈길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며 우리의 이동속도는 더더욱 느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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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은 캠핑장비까지 갖추고 며칠 제대로 하이킹을 하는 것 같았어요. 

우리 반대편에서 내려오던 분들이니까 그랜드티턴의 뒷산 하이킹이 끝나는 날이었겠네요.

본인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였다며 힘내라는 격려를 하고는 내려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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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가야 할 길입니다. 저 점선이 끝나는 곳이 아마도 Paintbrush Pass 정상 부근일겁니다.

이제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지경이 되었어요.

그리고 저 눈밭이 멀리서 보면 쉬워보여도 경사가 꽤 있어서 이동 중간에 서서 곁눈으로 아래 절벽을 바라보면 무섭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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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눈이 다 녹아서 걷기가 편한 길을 기대했건만...

오를수록 대부분 눈길이라 정말 느리게 힘들게 움직였답니다. 눈밭에서 시간과 체력을 너무 많이 소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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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뒤에 또다른 분들이 접근중이었고 순식간에 추월해서 사라지셨어요. ㅠ.ㅠ

우리 홈페이지 회원 snoopydec님 정도의 하이킹 경험과 체력을 가진 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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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오르막 구간입니다. 

저게 쉬워보여도 돌밭이라 걷기가 힘들고 마지막 눈밭을 더듬어 나가면 드디어 Paintbrush Divid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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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을 다 오르니 우리를 추월했던 분들이 휴식을 마치고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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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생스럽게, 그리고 예상보다 너무 늦게 도착한 Paintbrush Divide.

아침 7시쯤 주차장을 출발했는데 벌써 오후 두시였어요. 해가 8시 전후에 질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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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숨 돌리며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경치는 좋습디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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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작 5번 밖에 오지 않아 갈 길이 너무 많이 남아있어서 많이 쉬지 못하고 바로 이동을 시작했어요.

이때 아마 가져온 물의 대부분을 소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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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상의 5번이 Paintbrush Divide - 정상지역이랍니다. 아침에 1번을 출발해 무려 일곱시간이나 걸려 5번밖에 못온셈이지요.


이날 저의 가장 큰 판단착오는 5번을 지난 후부터는 내리막과 평지길이라 매우 빠르게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backcountry hiking의 경험이 많지 않은자의 무지함과 실수였던 것이지요.

이런 고지대의 트레일 코스는 개발이 많이 되지 않아 거칠고 위험한 곳이 많으므로 실제로는 빠르게 이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페인트브러쉬 디바이드에서 Cascade Canyon을 거쳐 주차장까지 돌아가려면 11마일(17.7km) 이상 남아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남은 물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요.

이날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8시 30분쯤이었으니까 11마일을 6시간 30분만에 이동을 했다는 결론이 뒤늦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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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병 세개쯤 남은 상태에서 11마일(17.7km) 가량을 더 걸어야하는 앞날이 깜깜했지만

그래도 내리막이니까 오르막보다는 낫겠지...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 + 죽든 살든 일단 내려가야하니까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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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가다보니 지도상의 6번 Lake Solitude가 저 멀리 보입니다. 

트레일 안내지도를 보면 페인트브러쉬 디바이드에서 저 호수까지 거리만해도 2.2마일이라고 나옵니다.

호수 옆을 지나 오렌지색으로 점 찍은 것이 호수를 지나 내려가야 할 길이구요. 보기만해도 까마득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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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내리막을 걷는데 여기서 저의 판단미스를 깨달았습니다.

내리막은 빠르게 걸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어요.

거친 돌들을 깨어놓은 곳이 상당수라 발목 접지를까봐 조심하며 살살 걸어야 하는 곳이었어요.


그래도 저는 꾹 참고 열심히 내려가는데 아까부터 말이 없던 남편 상태가 이상합니다.

얼굴이 노랗고 시커매지면서? 축 쳐지는거 아니겠어요.

탈진하려는 것 같아서 남아있던 그 작은 물병 세개 중에 먹다남은 반병 하나만 제가 챙기고 나머지 물을 다 양보했답니다.

저는 앞으로 남은 10마일(16km)을 8온스짜리(236ml) 물병 반병으로 새 물 먹듯 입술만 축이며 버텼어요.

나도 목이 타서 죽을 것 같았는데 남편은 그 아까운걸 들이키며 겨우 따라오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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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Lake Solitude가 다가옵니다.

그 와중에 경치는 참 좋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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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내려가다 문득 뒤를 돌아보고는 할 말을 잃었답니다.

책에서 보았던 빙하가 만득 작품, U자 협곡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고 그 와중에 아름답기까지 했어요.

이날 가장 인상깊었던, 감동스러웠던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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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때 죽더라도 저 경치는 즐겨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사진을 찍었답니다.

그때 저 산봉우리 주변에 몰려드는 구름을 인지하지 못했네요. ㅠ.ㅠ

무시무시한 소나기 구름이 생성되고 있는 것을 알았었다면? 정신적으로 더 지쳤을테니 ㅋㅋ 모르고 있던 것이 나았나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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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근처에 도착하니 이제 반대로 올라가는 하이커도 만납니다. 저분들은 며칠 다니시는 것 같네요.

제가 다음에 오지 하이킹을 준비한다면 가장 먼저 도전하고 싶은 곳이 바로 이 그랜드티턴 뒷산이에요. ^^

제대로 준비해서 좀 천천히 즐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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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마일을 걸어서 드디어 고독의 호수 Lake Solitude에 도착합니다.

정상적이었다면 호숫가에서 좀 쉬고 놀아야 하는데 그럴 여건이 안되어 통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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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시면 호숫가 왼쪽 나무 아래 돌 위에서 즐기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두 딸과 엄마로 구성된 가족이었는데 나중에 저분들 없었으면 남편은 아마 물 찾으러 개천에 뛰어들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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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경사도 거의 없고 열심히 걸어야해요.

제가 애초에 기대했던 - 빠르게 걸을 수 있는 편한 길이 여기부터 시작인데 이미 반 탈진한 남편 상태로는 빨리 걷는 것이 힘들었어요.

내 주머니 속에 든 남은 물 반병은 아까워서 못먹고 출렁이고 있는데

남편은 타는듯한 갈증에 물을 계속 들이켜도 힘들어하더라구요.

지금 생각하면 물이 아니라 염분을 같이 먹어줘야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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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올랐던 디바이드가 아마 저 위 어디쯤일겁니다. 

아무도 없는 그랜드티턴 산 뒤의 풍경은 야생화가 지천에 피어있고 냇물이 흐르는 소리만 들리는, 세상과 단절된 곳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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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 중앙에 우리 말고 또다른 생명체가 바위 위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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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걷다보니 남편이 물을 다 마셔버렸어요. 

나는 아~~~~~~~~~까 정상에서부터 가지고 있던 반병짜리를 주머니에 넣고(너무 작아서 주머니에도 들어감) 아끼며 입술만 축이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도저히 안되겠다며 아까 Lake Solitude 부터 내려오던 시냇물이라도 마셔야겠다며 물로 돌진하려는 사람을 말리고 있는데 호숫가 사진 속의 세모녀가 우리를 추월하려고 다가오고 있었어요. 


평소에는 굶었으면 굶었지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들 붙잡고 다짜고짜 물좀 나눠달라고 말 하네요. 

엄마로 보이는 아주머니께서 그 말을 듣고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배낭을 내려놓고 지퍼를 열어보이니 

이런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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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긴 물병을 무려 두개나 주셨어요. 하도 정신이 없어 기억이 잘 안나는데 700ml나 1리터짜리 물병 두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새 물은 아니고 리필한 물이라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그분 배낭에 물병이 많긴했는데 거의 다 비었었고 우리 나눠주고나면 두병 정도만 남아있었는데 괜찮다며 무사히 끝내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우리를 앞질러 가셨답니다. 그 후로도 한동안은 걱정이 되었는지 빠르게 가지 않고 계속 돌아보며 잘 따라오나 확인하다가 우리가 너무 느리니까 >.< 결국은 빠르게 사라지셨답니다. 물 얻을때 혹시 냇물을 그냥 마시면 안되냐 물어보니 필터 없으면 마시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아무튼 큰 물병 두개 특템한 남편과 아~~~~까부터 주머니에 있던 작은물병 반병짜리 그대로인 저 이렇게 둘은 다시 힘을 내어 열심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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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헉.. 하늘이 새까맣습니다.

정신이 없어서 여름철 흔한 오후 소나기 구름이 생성되는 것을 몰랐고 구름속에서는 심상찮은 우르르릉~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어요. 

저 산봉우리 사이로 번개가 번쩍번쩍 치기 시작하는, 당황스러운 마음보다 두려운 마음이 생길 정도의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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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피할 곳이 없었습니다. 

번개가 칠 때 나무 아래는 피하면 안된다는건 어디서 본 것 같고, 

하필 이 구간은 또 오픈된 곳이라 숨을 곳도 없어서 맨몸으로 탈진해서 죽으나 벼락맞아 죽으나 별 차이가 없던터라 무조건 직진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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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벼락이 치는데 그냥 저 길을 걸어갔습니다.

사실 벼락보다 저는 목이 타는듯한 갈증이 더 힘들었거든요.

피할 곳도 없고,,, 그나마 아직 비는 몇방울 날리는 수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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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봉우리 사이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있네요. 이때부터는 카메라도(이 와중에 엄청 큰 DSLR을 아침부터 그때까지 메고 다녔답니다. ㅋㅋ)

접어서 가방 안에 넣고 가방 안에 있던 등산재킷을 덧입고 비를 맞으며 한참을 걸으니 벼락은 좀 잦아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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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걷다보니 비구름은 사라지고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 Cascade Canyon 구간 분기점에 도착했습니다.

지도상의 7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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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 호수를 출발해 3분의 1지점쯤에서 물을 공급받고 

이후로 7번까지는 번개와 소나기를 뚫으며 정신없이 걸었던,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구간이었어요. 

이제는 정말 속도를 내어 캐스케이드캐년을 거쳐 주차장으로 가는 후반부가 남았는데 

제 기억에 남편은 아까 얻은 물 한병을 벌써 다 먹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작은 물병 4분의 1정도 남겼던 것 같구요. 

그랜드티턴 일반 관광을 하는 분들은 제니레이크 셔틀보트를 타고 9번 선착장에 내린 후 8번 Inspiration Point까지만 갔다가 다시 돌아갑니다.

8번 포인트에서 뒤가 궁금할 경우 이 Cascade Canyon을 따라 걷게되는겁니다. 

트레일 지도상으로 7번-8번 거리가 4.5마일(7.2km)라고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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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름이 물러가고 해가 나기 시작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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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구간이 이런 완만한 내리막 평지에 아주 쉬운 코스였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체력은 벌써 바닥이 났고 물도 거의 없는 시점이라 갈증이 정말 죽고싶을 정도로 심했다는 것이었어요.

오전에는 곰 만날까봐 떠들기도하고 소리도 내며 걸었는데 이제는 곰이고 나발이고 ㅋㅋ 말 없이 최선을 다해 쉬지 않고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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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쯤 오니 모기는 아닌데 파리도 아닌 이상한 것들이 엄청 따라다녀서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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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니 해가 거의 넘어갑니다.


이쯤 와서 생각해보니 선착장에 도착하더라도 우리가 주차해놓은 Leigh Lake 주차장까지는 또 2마일 넘게 남았다는 사실이 너무 좌절스럽더군요.

그래서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셔틀보트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트 출발전에 도착하면 관광객도 몇명 있을테고 물 좀 얻어먹고 ㅠ.ㅠ 일단 제니레이크 주차장으로 간 후 Leigh Lake 주차장까지는 히치하이킹이라도 해야겠다는 희망을 품고 열심히 걷고 또 걸었어요. 계속 보여드리는 지도를 잘 보시면 제니레이크 주차장과 Leigh Lake 주차장은 위치가 완전히 다릅니다. 


아무튼 마지막 보트 출발 시간을 오후 7시로 본 것 같다는 기억이 나서 나름 빠르게 걸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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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piration Point에 도착하니... 헉!!!

유유히 가고 있는 보트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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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등 뒤로 넘어가 그림자가 지고 있고 보트는 떠났고 낮에는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inspiration Point에는 아무도 없었답니다.

이제는 넘어가는 해와 싸우며 남은 2마일 넘게 어떻게 걸어야할지 정말 눈앞이 캄캄하고 울고싶었어요.

페인트브러쉬 정상에서부터 남겨온 내 물병 반병은 이제 다 먹었고 남편도 얻은 물병 두병을 거의 다 마신 상태에

해는 넘어가고 물은 없고 사람도 없고..

저는 정신력으로 어찌어찌 가겠던데 얼굴이 시커매진 저 남의 편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군요. 


여기서부터 다시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남편이 메고 있던 배낭을 뺏았습니다.

그전부터 달라고 했는데 마지막 자존심인지 @.@ 절대로 안주더군요.

빈 물병만 달랑거리는 가방을 넘겨받고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어 마지막 제니레이크를 따라 도는 구간을 걸어갔어요. 


물 한방울도 없이 걷는데 남편이 이제 못 걷겠다는겁니다!!!!!!!!!!

머릿속에는 "한국인 부부 그랜드티턴에서 조난, XXX채로 발견" 이런 신문기사가 맴돌고.. 이게 뭔 일인가 싶더군요.

해가 넘어가는 시간 물가에 동물 출몰이 잦은 것은 알고 있었기때문에 곰 생각도 났지만

곰 걱정할 상황이 아니라서 곰같은 몸을 한 남편을 부축해서 힘들게 걷고 있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는겁니다. 분명 동물은 아니고 사람 발소리였어요.

40대로 보이는 미국인 남녀가 우리 뒤를 추격해오고 있어서 급한 마음에 물 좀 남았냐고 물어보니 그 커플도 벌써 떨어졌답니다. ㅠ.ㅠ

그런데 남편 상태를 보더니 점심때 먹으려고 싸온 샌드위치가 남았는데 그 안에 든 야채를 좀 먹여보잡니다.

호일에 싸인 샌드위치 속의 토마토를 무려 두개나 빼먹고 잠깐 쉬니 신기하게 눈에 생기가 돌아오네요.

그때 느낀 것이, 그동안 물만 먹어서 탈수가 더 왔나.. 였습니다. 소금기를 같이 먹어야하는데 목이 마르다고 물만 찾았거든요.

아무튼 그쪽 여자분도 엄청 지쳐보였는데 더 급한 지친 곰 때문에 미국인 남자분이 남편을 부축하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답니다.

주차를 어디 해놨냐 물어보시길래 Leigh Lake라고하니 너무 머니까 저보고 먼저 가서 차를 트레일 끝나는 곳에 가져오라고 권하더군요.

미안했지만 남편을 맡기고 저는 배낭을 메고 달리기 시작했답니다.

그전까지는 강한 모습을 보여야하니까 아무렇지 않은듯 열심히 걸었는데 혼자 어둑어둑한 숲을 걷기 시작하니 눈물방울이 눈에 맺히더군요.

그래도 상황이 급하니 거의 뛰듯이 걷다가 커브를 도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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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원본링크


사진을 못찍어서 그때 제가 본 모습과 가장 유사해 보이는 사진을 퍼왔습니다.

처음엔 곰인줄 알았어요.

어두컴컴한 호숫가 좁은 트레일에 엄청 크고 시커먼 동물이 딱!! 서있더군요. 심장마비 걸릴뻔 했답니다.

여행 다니며 무스를 많이 보았고 오전 시간에는 어미와 새끼 무스를 바로 앞에서 보며 웃었는데

같은날 해질무렵에는 엄청 큰 수컷 무스가 길을 막고 있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뿔이 어마어마한 수컷 무스가 엄청 기분나쁜 표정으로 쳐다보며 대치하기를 1분 정도...

요즘같으면 주머니에 휴대폰이 있을테니 그 와중에 사진 몇장 찍었겠지만

이미 카메라가 가방 안에 든 상태라 사진을 찍을 수 없었던 것이 아쉽습니다.

지금 생각하면요. ^^

1분쯤 지난 후 저를 째려보던 무스가 먼저 슬금슬금 물쪽으로 내려가길래 다시 후다다닥 달리기 시작했어요.


우여곡절끝에 먼저 10번 분기점에 도착을 하니 인근 Jenny Lake Lodge에 묵는 것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다리 위에서 한가롭게 서 계시더라구요.

그러면서 저에게 묻습니다.

"방금 곰(grizzly) 봤니?"


헉@@@@@@@@@@@

어두컴컴한데다 정신이 없어 모르고 달렸는데 ㅠ.ㅠ

트레일 근처에 엄청 큰 그리즐리가 있었는데 저와 아슬아슬하게 스쳤다네요.

해질무렵이 되니 동물들이 물가로 이동했나봅니다. 

그 와중에 뒤따라오는 남편과 구세주님들은 괜찮을지 걱정이 되면서도 나는 차를 가지고 와야한다는 생각에 도로를 뛰어서 차에 도착했답니다.


차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트렁크를 열어 갤론 물병(3.78리터)을 통째로 들고 반병쯤 마시는 것이었어요.

내 배가 그렇게 크다니 ㅋㅋㅋ 

10마일을 100ml 정도의 물로만 버텼으니 사실 저도 미칠뻔했거든요. 

급한대로 갈증을 해결하고 차를 타고 트레일이 끝나는 지점으로 가져가니 저 멀리 남편과 구세주분이 걸어오고 있더군요.

물병을 챙겨서 물부터 먹이고 그분들께는 고맙다는 인사를 엄청 말로만 하고 ㅠ.ㅠ 제정신이 아닌 남의 편을 차에 태우고 캠핑장으로 향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분 이름과 연락처를 받아와서 어떤 방식으로든 감사를 표시했어야했는데 정말 정신이 없어서 그대로 헤어지고 말았답니다.

그분들이 이 글을 읽지 못하겠지만 Georgia에서 오셨다는 구세주님들!!!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분들 안만났으면 해가 진 제니레이크에서 둘이 울면서 걸었을겁니다.


여기까지가 이날 트레일의 결론이구요.

우리 부부는 뉴스에 나지 않고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답니다.


끝~~~이라고 쓰고 싶은데 이날 뒷이야기 잠시 적어봅니다.



우리의 숙소는 Colter Bay 캠핑장이었답니다. 

제가 결벽증은 아닌데 그날그날 샤워를 못하면 잠을 잘 못자는 습성이 있어서 죽어도 샤워는 해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콜터베이 캠핑장 입구에 샤워장, 세탁장을 같이 운영하는 건물이 슈퍼마켓 옆에 붙어 있습니다. 닫는 시간이 9시라고 본 기억이 있어서 8시 20분경 트레일 주차장으로 돌아온 우리는 샤워를 해야겠다는 집념 하나로 열심히 차를 몰아 슈퍼마켓 앞에 도착했습니다. 차 시계로 8시 42분을 본 기억이 분명히 납니다. 차에서 내린 남편은 게토레이 사러 슈퍼에 들어갔고 저는 트렁크를 열고 샤워 용품을 챙기고 있었어요. 그러고 먼저 샤워장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샤워장 벽시계가 8시 47분이더군요. 돈을 내려고하니 샤워장 관리하는 아주머니께서 오늘은 마감했다고 못들어간다는겁니다!!! 닫는 시간은 9시지만 마감 시간은 8시 45분이라 이미 마감을 했으니 내일 오라고 하네요. ㅠ.ㅠ 제가 살면서 아쉬운 소리 웬만해선 안하는데 오늘 새벽부터 하루종일 걸었다느니, 온갖 말로 부탁을 열심히 했는데 절대 안된다는겁니다. 포기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게토레이 한봉지 가득 사서 슈퍼에서 남편이 나오네요. 왜 다시 밖으로 나오냐?고 묻는 말을 들으니 너무 서러워서 그자리에서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샤워를 못해서 울었다기보다는 하루종일 받았던 스트레스와 긴장이 그자리에서 폭발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으니 남편이 다시 들어가서 한참 사정을 했다고하는데 그 단호박 할머니는 거절을 했다네요. 이런 경우에는 보통 레지스터 앞에 마지막 입장 시간이 몇시까지라고 붙여놓는데 그때까지는 그런 표시가 전혀 없었어요. 


아무튼 샤워는 포기하고 캠핑장으로 돌아와 물만 마시고 화장실에 가서 찬물에 세수와 양치질만 대충 하고 텐트로 돌아와 누웠는데... 씻지 않으면 잠을 못잘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30초 후에 곯아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 여름이지만 밤에는 섭씨 0도 가까이 내려가 상당히 추운데 그것도 못느끼고 아침 6시에 남편이 깨울때까지 잤어요. 샤워장이 6시부터 영업을 해서 일찍 깨우더군요. 전날 못한 샤워를 하고 개운하게 나오는 길에 아침에 일하던 분께 남편이 전날 이런일이 있었다 이야기하고 마감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을 미리 고지를 해놓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 후에 저는 여길 안가봐서 모르는데 다른분 여행기 사진 중에 카운터 위에 마지막 입장 시간이 8시 45분이라고 적혀있는 문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벌써 10년 전 이야기라 이제는 웃을 수 있지만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이날 사진을 몇년간 열어보지도 않았어요. 오랜만에 사진 고르면서 찬찬히 살펴보니 참 아름답네요. ^.^ 지금은 또 경험들이 쌓여서 그때 했던 실수를 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시행착오를 통해 오늘의 제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날 큰 물병 두개 주신 아주머니와 저녁에 남편 부축해서 도와주셨던 부부... 아직도 종종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도 여행중에 우연히 도움을 줄 기회가 왔을 때 기꺼이 베풀어 주실 것이지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모두 안전한 여행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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