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19년에 처음 장기 여행 계획을 짜면서 사이트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그 때 여행에서 여러 모로 상처받은 일이 좀 있어서 

빨리 잊고 싶은 마음에 후기도 못 쓰고 성의껏 덧글 달아주신 분들께 제대로 고맙단 인사도 못 드린 채로 잊고 있다가 

졸업하고 취업하고 정신없이 살다보니 이제야 좀 숨을 돌리고 보잘 것 없지만 후기 남겨봅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가을, 급히 노스다코타로 거주지를 옮겨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차에 꾸역꾸역 세간살이 욱여넣고 난생처음 열네시간 스트레이트 장기운전을 해봤는데 

그 전엔 운전 오히려 싫어하고 되도록 안 하려는 성향이었건만 이 때 처음 장거리 운전의 매력에 눈을 떴습니다

한창 일로 스트레스 받을 때는 진지하게 트럭커로 전직할까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 때 주말마다 닥치는대로 하이킹 + 드라이빙을 나갔는데요 

대부분은 저 혼자만 즐겼던 wildlife preserve/refuge 지역이고 

그나마 알려진 곳이라면 저 두 곳이네요 


루즈벨트 테오도어 내셔널 파크는 노스림, 사우스림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저는 왕복 6시간 당일치기로 노스림 한 번, 사우스림 한 번 두 번에 나눠갔는데 

아침부터 볼 수 있다면 하루에 전부 둘러보기도 가능합니다 두 곳의 경치 차이는 유의미하지 않고요 


저는 사전 정보 전혀 없이 충동적으로 가서 비지터 센터에서 픽한 맵에서 제일 시닉하다고 소개하는 트레일 하나를 세 시간 정도 돌고

프레리독 서식지 + 히스토릭 사이트 있는 트레일이 흥미로워보여서 한 시간 돌고 왔습니다 

둘 다 좋긴 했는데 막 엄청 추천! 이 정도는 아니고요 시닉 드라이브로 충분했습니다 


코로나라 사람이 정말 하-나도 없었는데 프레리독은 어마무지하게 많더라고요…

걔들도 인간을 간만에 보는지 제가 트레일 나타나자마자 보초 서던 프레리독이 휙 신호 보내니까

다른 독들 죄다 나와서 저를 구경하기 시작… 프레리독 구경하러 갔다가 오히려 구경 당하고 왔습니다

어찌나 사람같이 잘 웅성대고 잘 기웃대는지… 


다른 분들처럼 자세히 잘 쓰고 싶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ㅜ

사진을 원체 못 찍고 즐겨찍지도 않아서 그나마 볼만한 사진도 이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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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이 저것보다 훨씬 웅장하고 멋집니다!


로컬에게 물어보니 이 근처 관광지로 Medora 라는 마을이 유명하다고 해서 거기도 들렀습니다 

여기는 들를 수밖에 없는 게 입구 바로 앞에 있어요 

유명한 샵도 있고 식당도 있고 하던데 이 때 코로나라 싸그리 문을 닫아서 유령 마을 같더군요… 그래도 아기자기하고 예뻤는데 아쉬웠습니다


https://medora.com/  마을 정보는 여기서 확인하실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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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유소에서 영화에서나 보던 이런 개스 펌프로 주유한 게 기억에 남네요

카운터에서 돈 지불하고 나오면 숫자가 주문한 만큼 올라가있고 숫자가 0으로 돌아갈 때까지 채우고 떠나면 되는 시스템이더라고요


루즈벨트는 노스다코타에, 배들랜드는 사우스 다코타에 있는데요 

배들랜드는 노스다코타 일이 끝나고 다시 장거리 운전을 해서 본 거주지로 돌아와야 할 때 마지막으로 로드트립 한 번 더 하자 싶어서 들렀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루즈벨트도 코로나라 사람 보기가 힘들긴 했는데 거긴 그래도 프레리독이 저와 함께였어서 외롭지 않았는데

배들랜드는 하루종일 머무르면서 오버룩 포인트 전부 다 여유롭게 둘러봤는데도 사람을 단 한 명도 못 봤습니다 


그 거대한 대자연에 저 홀로 존재하는 경험 당연히 처음이었고, 아마 마지막이겠죠 마지막이어야 하고요


래피드 시티에서 이박인가 삼박하면서 하루 꼬박 배들랜드에서 보냈는데 

이 때 홀로 본 풍경, 특히 석양이 너무 인상에 남아서 그 감동 다시 느끼려고 다음 날 일출 맞춰서 또 들렀는데 일출은 일몰만 못 하더라고요

제가 정말 너무너무 사진을 못 찍지만 이 때만큼은 어떻게든 남겨보려고 노력해서 그래도 건진 샷이 몇 개 있습니다… 그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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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사진은 정말 너무 아쉬운 게, 석양이 진짜 너무너무너무 예뻤거든요 그래서 한 장 쯤은 무조건 제가 나오게 찍어야겠다

하고 폰을 바위에 올려놓고 겨우겨우 구도 잡아서 찍었는데 폰이 너무 후져서 석양이 하나도 표현이 안 됐어요ㅜ 


사실 래피드 시티는 러시모어 큰바위 얼굴 보러 가는 곳인데 저는 왠지 거긴 끌리지 않아서 패스하고 Custer State Park로 갔습니다

커스터 스테잇 파크는 알고보니 사우스 다코타에서 제일 유명한 주립공원이더라고요

사시사철 온갖 아웃도어 액티비티 즐길 수 있는 곳이라 가는 길에 액티비티 샵들이 즐비했습니다 코로나라 다 닫혀있었지만요 

저는 East Entrance로 들어갔는데 코로나라 매표소 닫아서 비지터 센터 가서 표 사야된다고 써 있길래 


비지터 센터 들어갔더니 불 다 꺼져있고 다 닫혀있어서 헬로? 했더니 한참 뒤에 레인저 한 분이 나오더라고요

저한테 too honest 하다고 입장료 내란다고 진짜 내러오는 사람 처음 봤다네요 ㅋㅋㅋ


레인저 추천에 따라 우선 남쪽은 시닉 드라이브 따라 쭉 돌고 the highest point of SD 라는 Black Elk Peak를 오르기로 했습니다 

레인저 분이 별로 안 힘들다고 반나절이면 충분히 다녀온다고 하길래 겁도 없이 방수도 안 되는 러닝화 신고 물도 없이 올랐다가 죽을 뻔 했습니다 


산 아래는 선선한 가을 날씨였는데 중반부터는 눈밭이더라고요 

발이 젖어들어갈 때부터 어라? 했었는데 여지껏 올라간 게 아까워서 그냥 쭉 갔거든요

올라갈 때 내려오던 어떤 등산객이 제 신발 보고 여기 미친 사람 “또” 있구먼 ㅉㅉ 하길래 내가 미친 건 알겠는데 또는 대체 뭐지 했는데

올라가다보니까 발목 다 드러난 레깅스 입은 등산객 둘이 오들오들 떨고 있길래 아… 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끝까지는 올라갔더니 장관이 펼쳐지더군요 

산 정상에 대피소 겸 전망대가 있고요 여긴 웬만한 가벼운 분들은 자칫하면 날아갈 수도 있을 정도로 바람이 세서

밖에서는 도저히 사진을 못 찍고 실내 들어와서 겨우 영상만 찍었습니다 역시 풍광이 1/100도 구현이 안 됩니다만… 



여기까진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내려갈 때 오판을 했습니다 

온 길로 내려가는 건 지루하다 싶어서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험하고 이정표도 없고 사람도 없더라고요

중간에 길 잃고 헤매던 어떤 부부가 저한테 길을 묻길래 나는 여기서 쭉 따라내려가기만 하니까 괜찮겠지 하고 가지고 있던 맵을 부부에게 줬는데

그걸 주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제가 길을 잃어서… 해는 져가는데 길은 모르겠고 사람은 안 보이고 발은 젖어있고 배는 고픈데 물도 없고 기운도 다 빠지고

될대로 되라 하고 바위 위에 누워서 이번 생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 하고 눈 퍼먹고 있는데

어디서 힙합이 들리길래 뭐지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힙합이 들리나 했더니 저 멀리서 어떤 남자가 폰으로 크게 음악 틀고 오더라고요

너무 반가워서 그 사람한테 막 달려가니까 그 사람도 멀리서 바위 기어올라가는 저를 보고 쟤는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했대요


쿨하게 구글맵으로 길 알려주고 가더라고요 너무 고마워서 연락처 받고 사례라도 하고 싶었지만 해지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속력으로 달려내려오느라 인사도 제대로 못한 게 생각나서 내려오는 길에 눈에다가 크게 땡큐 써놨는데 그 사람이 봤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암튼 다 내려오기도 전에 해는 이미 져버려서 앞은 안 보였지만 사람들 말소리가 들리길래 그쪽으로 어영부영 차까지 찾아왔습니다

주차장에서 제가 맵을 준 부부가 기다리고 있다가 아깐 고마웠다 인사하더라고요

제가 막 웃으면서 나도 길잃었어 하니까 왠지 그럴 것 같아서 기다렸다고 해서 넘 고마웠습니다


여러 모로 잊지 못할 산행이었습니다 물론 다시는 저렇게 안일하게 안 다닐 겁니다… 



아 그리고 커스터 스테잇 파크 시닉 드라이브에서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정말 여러 가지 의미로 잊지 못할 산행이었습니다 

아 생각해보니 저러고 밤 운전해서 숙소 가다가 바이슨도 박을 뻔 했네요 

다행히 바이슨이랑 눈싸움 하다가 제가 져서 길을 돌아가는 걸로 마무리 됐지만… 


뭔가 저도 도움이 되고자 글을 시작하긴 했는데

쓸만한 정보는 하나도 없고 저한테만 의미있는 추억을 늘어놓아서 죄송하네요…


그래도 저 곳을 들르실 분들이 혹시 계실지 몰라 마지막으로 요약하자면 


1. 루즈벨트 테오도어 내셔널 파크는 시닉 드라이브 + 메도라 구경으로 충분 


2. 배들랜드 내셔널 파크는 러쉬모어 갈 일 있으면 같이 엮어서 갈 가치 있음 

여기도 시닉 드라이브로 충분하고 특히 일몰이 아름다움


3. 커스터 스테잇 파크 매우 가볼만 함 

블랙 엘크 픽 하이킹 강력 추천, 겨울이라 접근 불가해서 본문에는 쓰지 않았지만 

여름에 오픈하는 Peter Norbeck Scenic Drive가 미국 10대 시닉 드라이브로 유명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 안전하고 즐겁고 편안한 여행 하시고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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