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경험 정숙희기자의 킹스캐년 여행기

2005.06.10 14:06

Juni 조회 수:8864 추천:184


바햐흐로 휴가의 계절이 돌아 오고 있나 봅니다. 모두들 여행 준비하신다고 바쁘시군요. 다른분들의 계획들을 보며 마치 본인들의 그것인양 신나 할수 있는것 또한 본 홈이 주는 매력이라 생각됩니다. 한국일보 LA지사에 근무 하시는 정숙희 기자의 킹스캐년 여행기를 게재합니다. 여름 여행 계획에 다소 시원함을 주는 여행기가 될줄로 압니다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1)
<킹스 캐년 국립공원>
메모리얼 연휴에 우리 가족은 1박2일로 간단하게 킹스 캐년 국립공원에 다녀왔다.
킹스 캐년은 LA에서 4시간여 거리로 비교적 가까운데다, 산 좋고 물 좋고 나무 좋고 공기 좋아 한인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이다. 뿐만 아니라 아름드리 나무들이 쭉쭉 뻗어있는 세코이야 국립공원과 바로 붙어있어 한여름 캠핑 피서지로 이만한 곳을 찾기 힘들 것이다.
누군가 킹스 캐년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랜드 캐년, 브라이스 캐년, 자이언 캐년등, 캐년들마다 각자 특징을 담은 이름이 붙어있는데 킹스 캐년이야말로 그 이름처럼 캐년 중의 왕”이라고 감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대로 계곡들의 왕, 킹스 캐년의 장엄한 위용은 갈 때마다 우리를 압도하곤 한다.

이번에는 특히 엄청나게 불어난 물 때문에 정말 장관이었다. 올겨울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계곡을 굽이치며 달려 내려오는 물살이 콸콸콸콸~ 거세다못해 용트림을 하면서 하얗게 물안개를 일으키며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잠깐 어느 부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수마일에 걸쳐 차로 달리는 동안 쉬지 않고 차보다 더 빠른 속도로, 마치 막혔던 댐이 터져 나온 홍수처럼, 어찌나 성난 듯 몸부림을 치고 포효하며 쏟아져 내리는지, ‘도대체 저 많은 물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궁금해질 정도였다.
이어 두군데 방문했던 폭포 역시 나이아가라가 울고 갈 정도의 강도로 미친 듯이 폭포수를 쏟아내고 있었다. 가까이는 갈 엄두도 못 낸 채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는데도 날아오는 물보라에 금방 온 몸이 젖어버릴 정도였고, 곳곳에 무지개가 피어났으며, 그 시원한 물소리가 사람들의 말소리를 차단하고 있었다. 일생에 다시 보기 힘든 물 구경을 하고 싶은 사람은 올 여름 꼭 킹스 캐년 국립공원에 다녀오라고 권하고 싶다.

이번 메모리얼 연휴에 사상 최대의 인파가 떠난다 하여 킹스 캐년도 너무 북적이지 않을까 걱정하였으나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고 쾌적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갔을 때는 물가에 곰이 나타나 함께 하이킹을 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큼직한 노루가 뛰노는 것을 보았고 한번은 갑자기 달리는 차 앞에 노루가 나타나 대형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다.
아직 눈이 녹지 않아 길이 끊어진 트레일도 있었고, 많은 곳에 물웅덩이가 생겨 하이킹에 또 다른 도전이 되기도 했지만 ‘흄 레이크’ 호숫가에서 놀기도 하고 ‘미스티 폴스’라는 깊은 산중 폭포까지 4시간 동안 걸어야하는 트레일도 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
국립공원을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자연을 거의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높은 산꼭대기까지 차로 50마일이상 속력을 내어 달릴 수 있도록 길을 닦아놓은 미국이란 나라가 경탄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정부가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인공적으로 손대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이 다녀가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국립공원(National Parks) 시스템은 우리 자신도 함께 지켜 나가야할 자연관광 제도라고 생각한다.

1872년 옐로스톤이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래 미국에는 50여개의 국립공원들이 산재해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에는 요세미티, 킹스 캐년, 세코이야, 데스 밸리, 조슈아 트리, 래슨 볼캐닉, 레드우드, 채널 아일랜드 등 8개가 있는데, 국립공원이 한 개도 없는 주가 20여개나 되는 것을 감안할 때 우리는 아름다운 천혜의 환경에서 살고 있음을 감사해야겠다.  

우리 가족은 캘리포니아 내의 8개 국립공원을 모두 방문했는데 그중 가장 좋았던 곳은 래슨 볼캐닉(Lassen Volcanic) 국립공원이었다. 북가주에서도 한참 더 올라가 LA에서 8시간 이상 운전해야하는 곳이라 한인들은 잘 모르는 곳이지만 오래전 그곳에 갔을 때의 기쁨과 감동을 우리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화산 폭발로 이루어진 래슨 볼캐닉 산은 요세미티와 킹스 캐년과 옐로스톤의 특징을 골고루 갖춘 국립공원이다. 장엄한 산세와 함께 수많은 호수, 온천과 간헐천 등이 곳곳에 산재해있고 아기자기한 수많은 트레일이 있으며 무엇보다 방문객이 적어 호젓하고 한적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던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기억된다.
숨막히듯 돌아가는 삶의 여정에서 쉼표 한번 찍게 해주는 여행은 인생의 중요한 활력소다. 때로는 떠나기 위해 사는 것처럼 새로운 여행을 기다리며 일 속에 몰입하다보면 어느새 또 다른 떠남이 훌쩍 다가온다. 다음 번에는 또 어느 곳으로 떠날까? 벌써부터 기대가 밀려오는 것이다.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
<캠핑>


지난 주 킹스 캐년에 다녀왔다는 주방일기와 관련, 몇몇 독자와 동료들이 개인적으로 질문을 해왔다. 좀더 자세한 여행정보와 우리 가족이 다녀온 코스들을 물어왔는데, 그 중에 여자들마다 공통적으로 조심스럽게 묻는 질문이 있었다. “거기서 캠핑했어요?”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캠핑하기 싫어하는 여자들의 심리를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또 있으랴. 일단 그 질문에 답부터 해두자. “아니요, 캠핑 안하고 모텔에서 잤어요”  

나는 ‘캠핑 알레르기’ 체질이다. 나와 캠핑의 악연은 지금으로부터 8년전 다음과 같은 회복불능의 관계를 통해 맺어졌다.
그때도 메모리얼 위켄드, 교회의 구역식구 다섯집이 세코야 국립공원에 2박3일 캠핑을 간다며 우리를 초청하였다. 캠핑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우리 가족은 멋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텐트며 슬리핑백을 새로 장만해 단체여행에 따라나섰다. 산 속에 텐트를 치고 맑은 공기 속에서 별을 보며 잠드는 캠핑을 해야 진정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는 말은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텐트에서 자야 하는 밤이 얼마나 추운지, 샤워를 하지 못하면 얼마나 꾀죄죄해지는지, 밤에 화장실에 가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버너에 밥을 하고 찌개를 끓이고 쪼그리고 앉아 설거지하는 일들이 얼마나 귀찮은지에 대해서는 사전에 전혀 들은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 모든 불편 중 나를 가장 분노케한 것은 해 떨어지고 난 뒤에 찾아오는 산중의 추위였다. 가져간 옷을 모조리 껴입고, 밍크담요까지 깔고 덮고 슬리핑백에 들어갔지만 온몸에 저며드는 한기는 그 무엇으로도 달랠 길이 없었다. 이를 딱딱 마주치며 사시나무 떨 듯 떠느라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으며, 온 몸에 하도 힘을 주고 오그린 탓에 팔 다리 어깨 허리 등 삭신이 쑤셔서 운신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한사람 두사람 텐트에서 나오더니 모닥불을 피우기 시작했고 결국 일행의 반 정도는 그날 밤 밖에 나와 두런두런 캠프파이어 불을 쪼이며 훤하게 동터오는 새벽을 맞이했던 것이다.

밤새 1초도 못 자고 떨었던 나는 해가 뜨자 양지바른 곳에 쪼그리고 앉아 어떻게 또 오늘밤을 보낼 것인지로 걱정과 고민을 거듭하였다. 나는 우선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그만큼 고생했으면 다들 ‘우리 고만 집에 가자’, 그럴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를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하룻밤을 또 그 추위 속에 보내려는 것인가?' 내 눈에는 다들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결국 남편을 꼬시기 시작했다. 또 하룻밤 벌벌 떨며 밤을 새우는 것은 미친 짓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내게 말을 해달라. 남들이 뭐라든 우리가 먼저 돌아가는 용기를 보이자… 단체여행이었던 관계로 눈치를 보며 망설이던 남편은 나를 어떻게든 설득해보려 하였지만 도대체 왜 그런 고생을 또 해야하는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지 못한 탓에 짐을 꾸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들 놀라서 쳐다보는 가운데 우리는 텐트를 접고 단체에서 이탈하여 하루만에 떠나오고 말았다. 그때 이후 우리 가족은 구역 식구들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혔으며 캠핑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두고두고 씹혀야 했다.

그때 이후 내 인생에서 캠핑이란 낱말은 아예 지워버렸다. 따라서 우리 가족은 산이고 바다고 사막이고 어디로 놀러가든 인근 가까운 곳의 숙박시설을 찾아 미리 예약하는 것이 당연시되어 있다. 지난 번 킹스 캐년 여행 때도 한시간이나 떨어진 프레스노의 베스트 웨스턴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다시 한시간을 운전하여 산에 들어갔다 나왔던 것이다.

여자들은 씻고, 자고, 샤워하고, 화장하고, 머리하고, 화장실 가고… 그런 것이 편하지 않으면 여행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다. 편안하고 기분 좋게 쉬려고 떠나는 것이 여행인데, 가장 기본적인 추스림이 편안하지 못한 여행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젠 나이도 이만하게 먹고 나니 고생이 될 만한 여행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여행을 가면 고생을 해야 추억이 된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고생 안 하고 잘 먹고 잘 놀다온 여행이 훨씬 더 즐거운 추억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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