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도시에서 만난 황금광 시대, 애리조나 제롬

Arizona Jerome..Wickedest Town in the West & Largest Ghost Town in America


1492년 콜럼부스는 인도로 가는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항해에 나선다. 70여 일 간의 긴 항해 끝에 마침내 그가 도착한 곳은 중남미의 산살바도르 섬이었다. 그러나 콜럼부스는 이곳이 인도인 줄 알았다. 원주민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고 스페인으로 돌아간 그는 1502년까지 네 번에 걸친 탐험을 더 하지만 네 번째 방문에서도 이 땅이 신대륙인 사실을 몰랐다. 아니, 그는 죽을 때까지도 인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 것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콜럼부스의 뒤를 이어 유럽의 많은 탐험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항해를 하고 돌아가 신대륙에는 금은보화가 지천으로 널렸다고, 그곳에서는 황금이 발에 차인다고 왕실에 고한다.

이들의 보고가 있은 후 황금에 눈이 먼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고 프랑스 왕실은 대규모 군대를 신대륙으로 보낸다. 수 세기에 걸쳐 원정에 나선 스페인 군대는 멕시코를 비롯해 페루 등 중남미 전체를 황폐화시켰는데, 이로 인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과 문화는 송두리째 파괴되었고, 원주민들의 보물은 스페인 왕실의 창고에 가득가득 쌓여만 간다. 이후 포르투갈은 브라질, 프랑스는 북미 캐나다에서 황금을 찾아 나선다.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늦게 신대륙 약탈에 뛰어든 영국은 17세기 초 지금의 미국 버지니아에 최초의 정착촌을 세운 이후 20여 년에 걸쳐 북미대륙의 서부로 진격한다. 백인들이 서부 개척시대라고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이 시기는, 북미 원주민의 입장에서는 멸망의 시대였다. 수많은 종족이 이 시기에 멸족되었다. 원주민들은 그들의 터전을 빼앗겼고, 황무지에 만든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 당하게 된다. 때론 저항도 해보지만 백인들의 진군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인디언들의 슬픈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하게 된다.

서부 개척의 선발대는 언제나 노다지 탐사꾼들이 차지했다. 처음부터 그들이 황금을 얻기 위해 이 땅에 상륙했듯이, 그들은 북미대륙을 샅샅이 훑으며 황금이 묻힌 땅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첫 쾌거가 1848년 캘리포니아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인접한 콜로마(Coloma)에서 벌어졌다. 개척자 존 셔터(John Sutter)와 제임스 마샬(James W. Marshall)이 마침내 노다지를 찾아낸 것이이다. 골드러시의 열풍이 미 동부를 강타했고, 일확천금의 꿈에 부푼 수많은 백인들이 서부를 향해 길을 재촉했다. 이후 애리조나와 네바다, 뉴멕시코 등지에서 속속 금광과 은광, 또 구리 광산이 발견되었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1869년 마침내 대륙 횡단 철도가 완성되면서 골드러시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기차는 많은 수의 광부와 군대, 장사꾼들을 서부로 실어 날랐으며, 이름난 광산 마을에는 동부의 도시 못지않게 술집과 사창가, 노름판 등이 생겨나 광산에서 나온 돈을 움켜쥐려는 이들로 흥청거리게 되었다. 300년에 불과한 미국 역사에서 그야말로 가장 역동적인 황금광 시대였던 것이다. 제롬은 애리조나를 대표하는 광산마을의 하나였다. 적어도 마을 밑까지 굴착작업을 하는 바람에 땅이 기울어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돈에 눈이 멀어 마을 밑의 땅을 파내면서 땅이 기울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이 희한한 일은 일확천금을 노리던 백인들이 얼마나 황금에 목을 매었는가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세도나 남쪽에 위치한 코튼우드(Cottonwood) 마을에서 US-89A번 도로를 이용해 클레오파트라 힐(Cleopatra Hill)까지 꺾어지는 코너를 대여섯 개쯤 지나 가파른 고갯길을 타고 오르면 산비탈에 덕지덕지 허름한 집들이 붙어 있는 제롬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비좁은 산비탈에 서 있는 집들은 유럽의 외진 곳에 자리한 성처럼 우아한 자태를 갖춘 곳도 있다. 그러나 번듯한 집들은 몇몇 곳에 불과하고, 폐광 뒤에 버려진 을씨년스러운 건물과 광부들이 살다가 버린 폐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유령의 도시’라는 별명처럼 절반은 허물어져 내린 빈집들이 쓸쓸하게 마을을 채우고 있다. ☞Arizona Ghost Town Jerome


1870년 이곳에서 은광이 발견되면서 제롬 마을은 본격적인 광산 타운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이것은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1912년 한 탐사꾼이 두께가 1.5m나 되는 엄청난 구리광맥을 발견했으며 2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구리는 총알과 대포 등 전쟁에 필요한 무기를 만드는 데 아주 귀중한 광물이었으므로 당연히 구리 가격은 상종가를 달렸다. 이 덕분에 제롬은 서부에서 가장 주목받는 광산이 되었고, 광산에서 한몫을 챙기려는 광부들과 그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장사꾼과 매춘부, 노름꾼들이 전국 각지에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제롬의 인기가 절정을 이루던 때였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제롬의 영화도 채 15년을 넘기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면서 구리 가격은 폭락했고, 어느새 제롬 마을은 거주자가 3만 명에 달할 만큼 이미 포화상태로 비대해져 있었다. 그들은 더 많은 구리를 캐내야 했고 결국 이 것이 화를 불렀다. 구리 광맥을 좇아가던 이들이 자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 밑까지 파고 들어간 것이다. 계속되는 다이너마이트 발파작업으로 인해 클레오파트라 힐이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1953년을 지나면서 마을은 10cm씩 기울어져 갔다. 급기야는 건물의 벽이 갈라지고, 도로는 주저앉았으며 결국 구리광산은 폐광이 되었다. 밥줄이 사라지자 사람들도 하나둘 마을을 뜨기 시작해 1960년대 초반에는 거의 유령마을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제롬의 운명은 그렇게 쉽게 막을 내리지는 않았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다시 이 마을을 찾은 것이다. 버드 계곡(Verde Valley)을 내려다보는 훌륭한 전망대였던 이곳은 그들에게 창작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그들이 작업실과 갤러리를 열면서 ‘유령의 마을’과 그 마을에서 창작의 불꽃을 태우는 예술가들을 보기 위해 호기심 어린 이들이 하나둘씩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제 2의 제롬 붐’이 일어나게 되었다. 마을 곳곳에 모텔이 생겨나고 기념품 가게가 들어섰고 시간이 지날수록 관광객들의 발길은 수를 더해 가기 시작했다.  

제롬은 애리조나주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비좁고 가파른 비탈에 자리한 제롬의 오후는 한가하다. 갤러리와 기념품 가게도 일찍 문을 닫아버린다. 거리는 두 집 건너 한 집 꼴로 벽만 남은 채 허물어진 집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마을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드는 폐가도 있는 그냥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그것이 제롬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마을이 허름해질수록 드라마틱한 광산마을의 영화와 몰락에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옛날 서부 개척시대’는 미국인들의 자긍심이자 뿌리이며 영원한 향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운타운 한가운데 제롬의 역사와 함께 하는 120년 된 붉은 벽돌로 지은 낡은 호텔(☞Connor Hotel)이 있다. 이 호텔은 100여 년 전 서부에서 가장 번창했던 광산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름난 관광지라 여느 도시에 비해 방 값은 배 이상 비싸다. 이 호텔의 낡은 외양을 보면서 애리조나뿐 아니라 미국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롬 마을을 느끼게 된다.  


- 자료 출처 : ‘나는 미국서부를 여행한다’ : 김산환 著 -


바쁜 일정 속에서 “그런 고스트 타운에 볼 게 뭐 있다고 가느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우리나라 자동차여행객들의 일반적인 동선에선 조금 벗어난 곳이긴 하지만 미국여행에서 이런 고스트 타운을 아무 의미없이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주로 19세기 골드러시 시절에 붐을 이루었던 곳들이 폐광이 된 후에 결국 고스트 타운으로 전락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몰락해 버린 배경과 과정을 알고나면 미국여행이 훨씬 더 재미있습니다. 세도나에서 피닉스로 향할 때 ‘블레이징 엠 랜치(☞Blazin' M Ranch)’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지극히 미국적인 관광지에서 19세기 개척민들의 복장을 입고 재미난 기념사진도 한 장 남길 수 있답니다. 시간이 난다면 이곳 제롬과 함께 코튼우드 마을의 근처에 있는 몬테주마 캐슬(Montezuma Castle)도 구경할 수 있을 텐데요, 피닉스로 가기 전에 중간에 하루 자고 간다면 근처의 인디언 카지노(☞Cliff Castle Casino)에 들려서 숙박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2006년 3월 30일 게시된 글을 다시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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