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경험 캘리포니아의 겨울비와 옛 경험담

2005.01.16 11:52

baby 조회 수:6852 추천:100


LA지역 집중호우와 폭설로 몸살
폭우 5일째, 지금까지 11명 사망, 내일부터 맑아

산사태가 발생한 캘리포니아 라콘치타의 기차 선로가 흙으로 뒤덮인 가운데 두 청년이 폐허의 참상을 바라보고 있다바위가 굴러 떨어진 말리부 토팽가 캐년 로드오후 진흙더미가 무너져내려 마을을 덮친 벤추라카운티 라콘치타에서 구조대원들이 한 부상자를 들것으로 옮기고 있다

주말에 이어 10일에도 LA 인근지역은 집중호우와 폭설로 몸살을 앓았다. 남가주를 강타한 겨울태풍으로 곳곳에서 산사태와 홍수, 대형 교통사고 등이 잇따라 주민 11명이 사망하고 한인들도 재산피해를 당하는 등 날씨로 인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 사흘간 LA일원은 6인치의 비가 쏟아져 곳곳에서 진흙사태, 홍수, 정전, 교통사고 등이 잇따랐다. 9일 밤부터 10일 오전까지 LA카운티 내 프리웨이 선상에서 무려 720여건의 교통사고가 발생, 평균치를 3배 이상 웃돌았다. 한인 타운에도 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10일 폭우로 평소 윌셔(Wilshire Blvd.) 길을 걸어 점심식사를 하러나오던 한인들이 일제히 자동차를 타고 나와 교통 혼잡은 물론 가뜩이나 부족한 타운 내 주차장이 평소보다 더욱 붐벼 북새통을 이뤘다. 식당들은 며칠씩 이어지는 폭우로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 매상이 감소했다며 울상을 지었다. 타운 아파트와 콘도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지난 주말부터 비가 들이쳐 아파트 내 현관 카페트까지 젖는가 하면 타운 내 빌딩의 파킹건물에도 들이친 비로 주차장 건물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겨 차량과 보행자 모두에게 불편을 주는 등 10일 하루도 곳곳은 비피해로 몸살을 앓았다. 주말에 이어 집중호우가 쏟아진 10일 오후 벤추라카운티(Ventura County)의 작은 해변마을 라콘치타(La Conchita)에서 발생한 진흙산사태(Mudslide)로 2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올 겨울폭우로 인한 최대 피해가 발생했다.
샌타클라리카 인근 범람한 샌타클라라 강물에 잠긴 모빌 홈
최소 20채의 주택이 파손된 이날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수백 명의 경찰과 소방대원, 의료진이 현장에 출동했으며 주민 200여명이 긴급 대피하는 일대 소동이 빚어졌다. 한 목격자는 “언덕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마치 갈색의 강물이 덮치는 것 같았다”며 “마을역사상 가장 큰 재앙”이라고 경악했다. 또 9일 밤 팜데일(Palmdale)에서는 소방대원들이 물에 잠긴 차량 안에 타고 있던 일가족을 구출하는 도중 2세 여아가 잡고 있던 엄마 손을 놓치면서 급류에 떠내려가 사망했으며 이날 오전 다저스 구장(Dodger Stadium) 인근 엘리시안 파크(Elysian Park)에서는 진흙사태가 일어나 노숙자 1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가 하면 샌타클라리타(Santa Clarita)에서도 모빌홈 한 채가 급류에 떠내려가는 불상사가 발생했으며 글렌데일(Glendale)에서도 산악지대에서 진흙사태가 발생, CA-2번 프리웨이가 통제되었다.

집중호우로 언덕에서 무너져 내린 진흙속에 주택들이 파묻혀버린 해변마을 라콘치타 전경 한인밀집 지역에서도 비 피해가 속출했다. 10일 새벽 노스리지(Northridge)에 있는 한 타운홈 단지에서 고목이 비바람에 쓰러지면서 주차된 한인소유 차량 2대를 깔아뭉개 지붕이 내려앉고 유리창이 박살났다. 출근길에 이를 발견한 차주 이모, 서모씨는 이웃주민들과 함께 전기톱으로 나무를 잘라내 치운 뒤 만신창이가 된 차를 몰고 가까스로 출근하기도 하였다. 남가주 최대 한인교회중 하나인 풀러튼(Fullerton) 은혜한인교회의 경우 본당과 붙어있는 데이케어센터의 천장에서 빗물이 새고 정원에 있는 100년 된 고목이 넘어졌다. 이날 아침 경비원의 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교회에 나온 일부 교인들은 물바다가 된 데이케어 센터에서 물을 빼내고 비바람에 쓰러진 정원 내 개천 울타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느라 한바탕 홍역을 치르기도 하였으며 10일 오전 폭우가 유발한 교통체증으로 한인 직장에서도 지각사태가 속출했다. 발렌시아(Valencia)에서 LA로 출퇴근하는 곽모(34)씨는 “이날아침 집에서 회사까지 가는데 꼬박 3시간이 걸렸다”며 “차에서 내리니 걷기가 힘들 정도로 허리가 뻐근했다”고 전했다. 폭우로 인해 팍 라브레아(Park La Brea), 할리웃(Hollywood), 어바인(Irvine), 팔로스버디스(Palos Verdes), 퍼시픽 팰리세이즈(Pacific Palisades) 등 한인선호 지역을 중심으로 LA와 오렌지카운티(Orange County) 내 1만8,000여 가구가 정전돼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기도 했다. ☞LA지역 일기예보
소방대원들이 캘리포니아 라콘치타의 부서진 가옥 사이로 생존자 수색 작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 연말부터 13일째 계속되고 있는 비로 교통사고나 정전사고 외에 직장인들의 출근길과 학생들의 등하교길 등 실생활 곳곳에서도 불편이 쏟아지고 있다. LA지역의 초, 중, 고교가 일제히 개학한 10일 ‘개학 교통체증’에다가 폭우까지 쏟아져 한인들이 출근길 큰 혼잡을 빚었다. 발렌시아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경우 LA의 한인 타운까지 평소 1시간 정도 걸리던 출근길이 평소보다 2배 늘어난 2시간 30분가량 걸렸으며 이외에 샌퍼낸도(San Fernando), 라크레센타(La Crescenta), 다이아몬드바(Diamond Bar) 등에 거주하는 한인들도 LA까지 출근시간이 평소보다 크게 늘어 한인 운전자들의 지각사태가 속출했다. 개학 첫날 등하교 길도 평소보다 차량 소통이 지체되면서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뤘다. 시내의 초등학교 앞에는 학교 앞 길이 물에 잠긴데다 자녀들을 내려주고 픽업하려는 학부모 차량들이 뒤엉켜 일대 혼잡을 빚어 자녀들을 등하교 시키려는 학부모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물에 잠긴 자동차 하지만 휴교를 한 학교도 많이 있다. 이번 겨울 폭우로 인해 10일 안전사고 예방이나 캠퍼스 내 진흙사태 등으로 LA 곳곳의 학교들이 연달아 휴교를 선언하면서 연말연시 분위기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학생들은 하루 동안의 휴식을 만끽하기도 했다. 산기슭을 깎아 만든 지형에 자리 잡은 글렌데일 커뮤니티 칼리지는 이날 오전 학교 인근 마운틴 길과 캠퍼스 내 일부 지점에서 진흙사태가 발생하자 모든 수업 일정을 취소하고 학생들을 귀가시켰다. LA통합교육국도 토팽가캐년(Topanga Canyon) 등 산사태 발생 지역의 일부 학교에 대해 휴교령을 내렸고, 샌버나디노(San Bernadino) 산간의 학교에 내린 휴교령을 하루 더 연장했다. 국립기상대는 올겨울 LA지역에 21인치의 비가 내려 연 겨울평균 강우량인 15인치를 훨씬 웃돌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국립기상대는 지난 연말부터 계속되고 있는 이번 폭우는 오늘(11일) 밤까지 계속되다 수요일인 12일 오전부터는 점차 맑은 날씨를 보일 것으로 예보했다.


- 이상 미주 한국일보와 중앙일보의 보도내용 중에서 -

PCH CA-1번 하이웨이에서의 경험담
위에 사진에 나온 것처럼 산사태가 나서 도로가 막혔을 때의 경험담인데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그때도 지금과 같은 겨울비가 자주오던 93년 1월말 미국 프로미식축구(NFL)의 슈퍼볼 시합이 열리는 때의 캘리포니아 여행이었습니다. 저와 남동생, 그리고 저의 친구 한명과 미국으로 건너가서 LA에 사는 친구 한명이 합류해서 모두 4명이 포드 토러스(Taurus)를 빌려 타고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구경하고 머세드(Merced)에서 하루를 머물고 이어서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몬트레이와 카멜에서 각각 며칠을 보내고 난 후 계속해서 LA로 향하는 여정이었습니다. 샌시미언(San Simeon)에 있는 허스트캐슬(Hearst Castle)을 관광하기 위해 카멜을 출발하는 어느날이었습니다.

실컷 늦잠을 자고 점심때가 다 되어 일어나 대충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바닷가(Carmel Beach)로 향했습니다. 좀 더 일찍 일어났더라면 솔뱅(Solvang)이나 샌루이스 오비스포(San Luis Obispo)까지 가려고 했으나 늦게 일어난 탓으로 샌시미언까지만 가자고 협의한 다음, 이날 하루에 샌시미언까지 약 100마일만 운전을 하면 되는 간단한 일정이니 좀 더 놀고 대충 그냥 가보다가 또 해지면 아무 때나 빈 방 찾아 들어가서 자자는 식으로 계획했습니다. 당시에는 숙박예약 같은 건 전혀 없었고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봐가며 그날 일정은 그날 아침에 밥 먹으면서 즉석으로 정하는 딴따라(?) 식의 여행이었습니다.

바닷가에서 연을 날리고 있던 사람들과 어울려 “우리도 좀 해봅시다.” 하고 연 하나를 빌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사진도 찍고 놀다가 오후에 천천히 출발을 했습니다. 그날 날씨가 끝내주게 좋더군요. 겨울에도 이런 날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청명한 가을하늘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좋던 날씨가 갑자기 폭풍으로 돌변할 줄이야! 지금도 이날 낮에 찍은 사진과 밤에 찍은 사진을 보면 그야말로 ‘비교체험 극과 극’ 이랍니다. 빅서(Big Sur)의 해안절벽을 보며 감탄을 하던 중 하늘이 심상치 않더니 갑자기 천둥소리와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하더니 그토록 화창하던 오후에 말입니다.

CA-1번 해안도로그런데 그 비는 그냥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가 아니라 겨울태풍이 온 것처럼 세찬 돌풍과 천둥번개와 함께 하늘에서 장대비가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길을 재촉했습니다. 와이퍼를 제일 빠른 속도로 작동을 시켜도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순간적인 폭우가 퍼붓는 상황이라 조심조심 해안도로를 따라 달려 내려갔습니다. 루시아(Lucia) 마을을 지나고 샌시미언까지 약 20마일 정도를 남겨두었을 때 시간은 오후 5시가 다 되어 가더군요.

서쪽으로 해가지기에 완전히 어두워지려면 몇 분의 시간이 더 남았을 때입니다. 구불구불한 CA-1번 해안도로를 드라이브 하다보니 저 멀리 앞의 절벽길이 바라보이는 그런 상황에서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가을 swiss님의 여행기에 실렸던 오른쪽 사진과 같은 바로 저런 절벽의 모습이었죠. 저는 당시 조수석에 앉아 네비게이터의 역할을 하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함께 출발했던 저의 친구가 핸들을 잡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갑자기, “어! 어~~ 어~~ 저거바라 저기 머꼬?” 하는 소리에 우리는 모두 일제히 그가 가리킨 쪽을 쳐다보았습니다. “오~~마이 갓!”

절벽 밑 커브 길에서 저 멀리 약 0.5마일 정도 앞 쪽의 커브 길을 보니 산사태가 일어나 바위와 흙이 도로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비가 많이 오기에 창문을 닫고 있어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꾸르릉! 콰~~’ 하면서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무너져 내리더군요. 급정거를 하고 차에서 내려 그 모습을 쳐다보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더군요. 무너져 내린 흙더미와 바위덩어리들로 도로가 완전히 끝장이 나버렸습니다. 뒤따라오던 차들도 모두 멈춰서서 불과 몇 초 후엔 자신들이 지나가야했던 도로가 흙과 돌무더기에 처참하게 깔리는 모습을 라이브 상황으로 지켜보게 된 것입니다. 산사태가 나는 순간에는 다행히도 지나가는 차는 없었나 봅니다. 곧이어 앞서 갔던 몇 대의 차량들이 뒤돌아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창문을 열고 “길이 막혔으니 빨리 다른 길로 돌아가라” 고 큰소리로 외치며 하나둘씩 사라져 갔습니다. 우리는 사고 현장 가까이 한번 가보고 싶었으나 행여 다시 추가로 산이 무너져 내릴까봐 더 이상 접근은 하지 못하였습니다.

주위에 있던 차량들이 모두들 하나둘 떠나고 날은 어두워 졌으나 소나기처럼 퍼붓던 비는 다행히 그쳐 있었습니다. 차를 돌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전에 차 안에서 지도를 펴보니 루시아(Lucia)마을에서 연결되는 실처럼 가느다란 길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더군요. 지도의 범례(Legend)를 참고해서 보니 산을 넘어가는 비포장도로였습니다. 눈대중으로 살펴보니 약 50~60마일의 거리로 짐작되었습니다. 왔던 길을 돌아가기엔 너무나 먼 거리를 우회해야 하는 상황이라 혈기왕성했던 우리들은 그 길을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비포장도로입구에 세워진 표시판을 보니 동쪽으로 산을 넘어가면 US-101번 하이웨이까지 연결되는 도로였습니다. 비포장이긴 했지만 도로상황도 그다지 나쁜 것 같지는 않아 보였기에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잠시 후 닥쳐올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상태로 “댔나! 댔다. 함 가보자” 부르릉! 시동을 걸고 산 속으로 들어섰습니다. “와~~너거 밨제! 산사태 직이네! 이런 것도 다 재미아이겄나.”면서 말이죠.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즐거웠습니다. 그런 산사태를 직접 눈으로 본 것도 완전히 재수라고 생각하며 낄낄거리며 산길을 따라 올라가보니 웬걸? 이 도로가 갑자기 아주 좁아지며 울퉁불퉁한 돌길로 변하더군요. 좀 더 가면 나아지려니 하면서 이제는 완전히 어두워진 돌길을 계속 올라갔습니다. 차 한대가 지나가기에도 좁은 길이라 나뭇가지들이 창문을 긁어대고 있었습니다. 사실 속으로는 차를 돌려 다시 내려가고 싶었지만 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돌부리에 바퀴가 걸리는 바람에 내려서 밀기도 했습니다. 뒤에서 차를 밀어 올리니 자동차 바퀴가 윙윙 소리를 내면서 품어대는 흙탕물을 왕창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죠.

10분 가다가 내려서 밀고 또 10분 올라가고..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겁이 덜컥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길은 자동차가 갈 수 있는 도로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등산로(Trail)에 가까운 길이었습니다. 경사가 30도는 되어 보이는 길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어찌나 경사가 가파른지 앞좌석에 앉아서 앞을 쳐다보면 노면이 보이는 게 아니라 하늘이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빗물에 흘러내리는 돌과 진흙이 계속해서 우리차를 덮쳐 내리는 바람에 10m 올라가고 또 5m 뒤로 밀리는 상황이 연속되더군요. 차를 돌릴만한 공간이 없어 후진으로 내려가 보려고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것은 더 위험해 질수도 있어 무작정 계속 위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시간은 어느새 8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고 정말 겁이 났습니다. 20대 중반의 겁 없는 나이였지만 그처럼 무서운 적은 없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안전 불감증’ 환자들이었습니다. 3시간동안 깜깜한 산중턱에서 흘러내리는 흙탕물에 휘말려 끙끙거리고 있는 상태였죠. 게다가 기름도 얼마 남지 않았기에 정말 이러다 이 산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갇히는 것 아닌가 무서운 생각이 들더군요. 길이 갈수록 좁아져 이제는 차문을 열수도 없을 정도로 좁아져 버렸습니다. ‘그르릉’ 거리는 엔진소리와 자동차의 문짝과 지붕을 긁어대는 나뭇가지의 소리에, 두려움은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잠시 쉬려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겨보아도 저절로 차가 뒤로 밀려 내려갈 만큼 급경사가 연속되었습니다. 모두들 “이제 여기서 갇혀 죽는구나.” 란 생각은 들었지만 차안에 그 어느 누구도 그따위 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굴러 떨어진 돌이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한 쪽을 부숴버렸습니다. 이제는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미친 듯이 죽기 살기로 산꼭대기를 향해 차를 몰아갔습니다. 어느덧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정상에 도착해 있더군요. 300평은 훨씬 넘어 보이는 널따란 평지가 있었고 손전등으로 주변을 비춰보니 그 곳은 바로 헬기의 착륙장처럼 보였습니다. 커다란 H자가 흰색으로 칠해져 있더군요.

차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 우리차를 보니 정말 가관이더군요. 앞 범퍼는 물론이고 차의 옆, 지붕까지 나뭇가지에 긁히고 찍히는 바람에 형편없이 구겨진 모습은 차라리 믿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야. 일단 오줌 한판 때리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모두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갈겼습니다. 그때 우리가 올라왔던 길과는 반대방향에서 ‘드그득 드그득’ 들려오는 심상치 않은 소리!, 깜깜한 밤에 들리는 그 소리는 마치 온천지를 울릴듯 크게 들렸습니다.“헉! 머고 빨리 차에 타라” 우리는 멧돼지같은 야생동물이 나타나는 줄 알았습니다. 나오던 오줌을 억지로 끊고 모두 차에 올라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밖의 상황을 주시했습니다. 잠시후, 두두둥둥! 나타난 것은 말은 탄 산악관리인(Ranger) 같아 보였습니다. 차에 탄 채로 눈만 껌벅거리고 있던 우리들에게 서치라이트처럼 생긴 커다란 손전등을 비추니 눈이 부셔 제대로 앞을 볼 수도 없었습니다. 이윽고 양손을 머리에 올리고 곱게 차에서 내리라는 확성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야~~우짜노? X땠다, 아이다. 개안타 우리 머 잘못한기 머가 있노.” 왁자지껄 했습니다.” 동생은 그 상황에서도 “행니마 설마 우리 오줌 눈 거 때문에 노상방뇨라고는 시비 안 걸겠제?” 라고 묻더군요. 우리는 모두 손을 머리에 올리고 천천히 차에서 내렸습니다. 2명의 레인져 중에 여자 대원 한명이 권총을 꺼내 겨누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우리들의 신분증을 조사하고 “도대체 왜? 이 밤중에 이 깊은 산속을 저런 차를 타고 올라왔는지?” 에 대해 물었습니다. 우리는 도로가 막힌 상황을 설명하고 여차저차해서 이리 오게 되었다고 하니까 그 레인져가 한마디 하더군요. 아마 그때 저에게 했던 말이 “Are you crazy?”로 기억됩니다. 4WD 차량 외엔 출입금지이고, 특히나 비 오는 날엔 진입금지라는 푯말 보지 못했냐고 물어봤는데, 우리는 어두워서 그런 푯말은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한밤중에 산을 올라가는 수상한 자동차 불빛 때문에 연락을 받고 출동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즉, 그들도 한 밤중에 산꼭대기까지 우리를 잡으러 온 것이죠.

다행히 레인져들이 자신들이 갖고 있던 자세한 지도를 펼쳐 보여주며 하산하는 길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힘들게 올라간 만큼 또 조심조심 깜깜한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얼마 후 비포장도로가 끝나고 반가운 아스팔트도로와 함께 커다란 호수가 보이는 평지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불빛하나 없는 칠흙같이 어두운 밤, 달빛에 비친 고요한 호수가 무척이나 멋지더군요. 나중에 알았지만 그 호수는 레이크 샌안토니오(Lake San Antonio)라는 호수였습니다. 우리가 타고 넘어왔던 길은 샌타루시아 산맥(Santa Lucia Range)을 넘어오는 로스 파드리스 국유림(Los Padres National Forest) 지역이었고요. 레인져들이 우리를 그토록 경계했던 이유는 산 정상의 헬기장, 바로 그곳이 중요한 군사지역에 해당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자세한 지도를 보니 ‘포트 헌터 리짓(Fort Hunter Liggett)’ 이라는 육군기지라고 표시가 되어 있더군요. 그런데 훗날 이 기지는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 주연의 영화 ‘긴급명령(Clear and Present Danger)’에도 등장한답니다. 영화를 보면 콜롬비아 마약조직을 공격하기 위해 저격수를 선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막에 이 기지라고 나오더군요. 아무튼 그날밤 죽도록 고생을 하고 비 맞은 옷에 진흙이 들러붙어 얼굴은 머드팩을 한 것처럼 엉망인 모습에다가 마치 무장간첩 같은 몰골로 US-101 도로를 달려 새벽 1시가 다 되어서 샌루이스 오비스포(San Luis Obispo)에 도착했습니다. 주유소의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옷에 묻은 흙을 대충 털어낸 다음, 손가락 하나 꼼짝할 힘도 없이 기운이 다 빠져 주유소 구석에 차를 세우고 모두들 잠들었습니다.

날이 밝자 계속해서 일정을 이어가려고 했으나 더 이상 그 차로는 운행이 어려웠습니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느라 오토매틱 자동차의 기어를 계속해서 저단으로만 사용했던 탓인지 엔진이 맛이 간 모양입니다. 또 마후라가 깨졌는지 차에선 연신 ‘그르르 그르르’ 소리가 나더군요. 일단 차를 바꾸기로 하고 인근의 셀프세차장으로 갔습니다. 차에 붙은 진흙덩어리들을 씻어내야 하니까요. 옐로페이지를 뒤져 가장 가까운 곳의 허츠(Hertz)社의 차고로 갔습니다. 사고리포트를 작성해야 하는데 차마 비포장산길을 올라갔다고는 못 적겠더군요. 약관엔 엄연히 비포장도로에서의 운행을 금지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모텔에 차 세워 놓고 자고나니 이렇게 되어있었고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라는 얼렁뚱땅한 내용의 리포트를 적어 냈습니다. 몇 가지 확인 질문이 있었지만 특별한 질문은 없더군요. 혹시나 잘못되면 어떡하지 걱정을 하면서 시치미를 뚝 떼고 앉아있으니 곧바로 다른 렌트 계약서와 함께 똑같은 차량을 내 주었습니다.

출고되어 만마일도 채 안된 멀쩡한 차 한대를 우리가 망쳐 놓은 셈이었죠. 이윽고 94년 1월에 다시 그곳 루시아(Lucia)를 지나게 되었는데 참으로 새삼스럽더군요. 차안엔 그해 겨울 김종서가 불러 한창 유행했던 ‘겨울비’ 테이프를 틀어놓고 말입니다. 그 이후로도 수없이 PCH를 드라이브 했지만 항상 그 산악도로 입구에선 차를 멈추고 진흙탕속의 그날 밤을 떠올리며 담배 한대를 피우게 된답니다. 작년 연말에도 루시아(Lucia) 부근의 도로에서 산사태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폭우와 폭설이 이어졌던 며칠 전 캘리포니아의 상황을 보도한 신문기사를 편집하면서 새삼스레 기억나는 옛 경험을 적어보았습니다. 일요일인 오늘, 제가 살고 있는 이곳 부산에도 오랜만에 많은 눈이 내리는 덕분에 아이들과 눈사람도 만들고 놀았습니다. 미국여행을 하시는 모든 분들의 안전을 빕니다.



댓글은 로그인 후 열람 가능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2024년 요세미티(Yosemite) 국립공원 입장 예약 필수 [2] 아이리스 2023.12.23 1907 0
공지 2주 정도 로드 트립 준비중입니다. 어떻게 식사를 해결해야 할 지 고민중입니다. [16] 쌍둥이파파 2023.01.17 6425 1
공지 미국 국립공원 입장료, 국립공원 연간패스 정보 [4] 아이리스 2018.04.18 215739 2
공지 여행계획시 구글맵(Google Maps) 활용하기 [29] 아이리스 2016.12.02 630902 4
공지 ㄴㄱㄴㅅ님 여행에 대한 조언 : 미국여행에 대한 전반적인 준비사항들 [39] 아이리스 2016.07.06 817305 5
공지 goldenbell님의 75일간 미국 여행 지도 [15] 아이리스 2016.02.16 676285 2
공지 렌트카 제휴에 대한 공지입니다 [7] 아이리스 2015.01.31 675551 1
공지 공지사항 모음입니다. 처음 오신 분은 읽어보세요 [1] 아이리스 2014.05.23 728445 2
3430 미국내국내선 티켓예약 [3] 이지현 2010.05.07 3636 0
3429 여행 일정 문의드립니다. [8] Min 2010.05.05 2999 0
3428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문의합니다. [2] 김국환 2010.05.03 2847 0
3427 미국 차량 여행시 필히 알아야 할 대상 ... 경찰 ... [12] ints1978 2010.05.01 9743 2
3426 미국 전역의 아울렛 쇼핑몰의 위치와 입점 가게들 정보 짱아 2010.05.01 11035 2
3425 가족여행 계획입니다. 다양한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5] 열정찾기 2010.04.30 3313 0
3424 5년만에 다시 미국 서부 갑니다.^^. [2] 주니아빠 2010.04.30 3014 0
3423 엘에이공항에서 한인타운까지택시로? [3] 이지현 2010.04.29 10706 0
3422 미국서부 7월 여행 [4] 어눌이 2010.04.29 3450 0
3421 여행일정 문의 [4] 준돌이 2010.04.29 3033 0
3420 2010년7월 미서북부 여행일정 문의 [1] 전동호 2010.04.28 2943 0
3419 엘에이와 시애틀 에서 카시트 사용에 대해 문의 드려요 [2] 이지현 2010.04.27 8365 0
3418 그랜드 캐년 여행 일정 조언 부탁합니다 [1] ints1978 2010.04.24 3305 0
3417 라스베가스에서 데쓰밸리 가는 길 중에 [3] 샌디 2010.04.23 3556 0
3416 세코야 ->요세미테 3박4일 일정좀 도와주세요 ㅠ.ㅠ [3] 안광혁 2010.04.23 7976 0
3415 보트빌려 레인보우 브릿지 가기 가보자 2010.04.22 3749 0
3414 미국동부자동차여행 [1] 방대원 2010.04.22 8794 0
3413 미국 중서부 22일 여행 일정 조언 부탁드립니다. [3] 서준호 2010.04.17 2900 0
3412 일리노이에서 워싱턴 가는 중에 가볼만한 곳 추천 [1] 김영학 2010.04.16 5594 0
3411 california road trip [2] julie 2010.04.15 3053 0
3410 요세미티 picnic area 사용문의 [1] jung 2010.04.15 2951 0
3409 LA에서 Death Valley 당일치기 [2] 부털이 2010.04.15 11431 1
3408 그랜드서클여행(11박) [5] 여행좋아 2010.04.14 3303 0
3407 5월초 팜스프링 날씨 문의 [2] 정연희 2010.04.14 4237 0
3406 여행 일정 문의 드려요..(자이언, 브라이스, 아치스, 캐년랜드,모뉴먼트,세도나..) [4] 김지은 2010.04.06 4605 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