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시주 멤피스의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향집 그레이스랜드

Some Kings Have Castles. Graceland..Home of Elvis A. Presley
캘리포니아 바스토우(Barstow)에서 미국 대륙을 가로 질러 대서양과 마주하는 노스 캐롤라이나의 윌밍턴(Wilmington)까지 이어지는 2,800마일의 I-40번 하이웨이의 중동부에 위치한 테네시주(Tennessee : Volunteer States)는 미국에서 34번째로 큰 42,144평방마일에 570만명 인구가 살고 있는 전형적인 백인 보수성향의 주인데 주도(州都)이자 컨트리 뮤직의 메카인 내슈빌(Nashville)과 동남부의 관광타운 차타누가(Chattanooga), 동북부의 낙스빌(Knoxville) 그리고 남서부의 멤피스(Memphis) 정도의 도시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오늘날 테네시주의 별명이 된 ‘Volunteer States’란 의미는 미국이 멕시코와 전쟁을 벌일 때 3천 명의 자원군을 뽑는데 테네시주에서만 무려 3만 명이 스스로 지원했다고 해서 유래되었다. 주당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메리칸 위스키 ‘잭 다니엘(Jack Daniel's)’의 고장이기도 한 테네시주는 미국 동남부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으며 미국의 그 어느 주보다 많은 볼거리와 관광명소들이 있는 곳이다. ☞Tennessee Vacation


블루스와 록큰롤, 그리고 맛있는 바베큐의 고장 멤피스
그 중에서 오늘 여행할 멤피스의 유명한 것 하나로 페더럴 익스프레스(FedEx) 택배회사가 있는데 몇해전 톰 행크스(Tom Hanks)와 헬렌 헌트(Helen Hunt)가 주연한 ‘캐스트어웨이 (Cast Away)’란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멤피스는 서부에서 동부로 진입하여야 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오른쪽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아칸소주와 경계를 이루는 미시시피 강의 동쪽에 도시가 위치하기 때문이다.

미시시피 강 위에 놓인 4개의 아치 철교는 하나 같이 한 폭의 그림이다. 다리를 건너 미시시피 강변도로를 따라 남쪽 출구의 큰 사인을 보고 내리면 공원(☞Mud Island River Park) 내에 있는 비지터센터에 테네시주가 자랑하는 두 음악 영웅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블루스 음악의 대가인 기타리스트 B.B. 킹과 또 하나는 미국인의 우상인 록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동상이다. ☞Memphis Travel Guide

멤피스를 찾는 이유는 모두가 엘비스의 추억을 회상하는 여행이기 때문에 동상 앞에서 사진 찍는데는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 최고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라고 하면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미국의 대표가수이다. 미남 가수인데다 영화배우로도 활동해 한때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고 하늘을 찌를듯한 명성과 인기도 대단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비록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죽은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세계인들의 우상으로 남아있는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줄로 안다.

다운타운인 시내로 들어가면 전형적인 중세도시의 고풍스런 붉은 벽돌과 황금색 치장을 한 상당히 화려하게 보이는 거리 풍경(☞Beale Street)이 뉴욕이나 LA 등 다른 대도시에 살던 사람에게는 색다른 감동을 준다. 제일 먼저 찾는 곳는 유니언 거리에 있는 ‘선 스튜디오(☞Sun Studio)’. 엘비스가 18세 때 처음 음반을 취입한 록큰롤의 산실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녹음실인 스튜디오의 건물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지만 역사적인 가치 때문에 절대 지나치지 않는 곳인데 여기서 엘비스의 새로운 많은 역사를 배우게 된다. 그가 생전에 출연한 영화 편수만도 33편이나 되며 수백번에 달하는 라이브 공연에다 레코드 판매량만도 10억장이 넘는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구름같이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하늘을 찌를듯한 인기 속에서도 3년동안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이같은 군복무 자세는 일부 한국의 운동선수들이나 연예인들이 군복무를 기피하기 위해 편법과 불법을 일삼다 적발되는 모습과 비교할때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 알려진바와는 달리 사실 엘비스가 실제 태어난 곳은 테네시가 아니다. 엘비스는 멤피스에서 남동쪽으로 약 100마일 떨어진 미시시피주 투펠로(☞Tupelo)라는 소도시의 방 2개짜리 작은집에서 1935년 1월 8일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나 어려서 형제를 잃는 등 아주 어렵게 살아왔다.

11세 때 $12.95를 주고 처음 기타를 구입하였고 1948년 그가 13세때 멤피스시로 이사해 53년에 흄스(Humes)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트럭운전수로 일하면서도 음악에 취미가 많았으며 늘 가수가 되는것이 꿈이었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1954년 우연한 기회에 드디어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천부적인 재능과 타고난 기질로 처음에는 교회의 성가와 팝송, 컨트리뮤직 등 닥치는대로 불러 조금씩 인기를 얻어가다 2년 뒤인 1956년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한창 때 엘비스의 불타는 인기는 마치 하늘이 놀라고 땅까지 뒤흔든다는 경천동지(驚天動地)란 말처럼 그 인기를 도저히 잠재울 수가 없을 정도였다.




☞Graceland Photo Gallery

엘비스의 고향집 그레이스랜드
엘비스는 그의 최전성기 시절인 1957년 3월에 멤피스시의 ‘그레이스랜드(Graceland Mansion)’라는 저택을 당시 가격으로 102,000달러에 매입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고 싶어하는 집이 백악관이며 그 다음이 바로 이 그레이스랜드란 것이다. 그레이스 랜드의 일년 방문객수만 해도 60~7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레이스랜드의 주인은 지금껏 엘비스의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Lisa Marie Presley)로 되어있는데 최근 그 일부를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레이스랜드에는 4채의 건물 안에 엘비스의 소장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주로 의상과 트로피, 목걸이와 반지, 공연할때 찍은 사진들, 또 그가 소유했던 22대의 자동차 중 가장 아끼고 좋아했던 1954년형 핑크 캐딜락 등이 있고 오토바이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Elvis Presley & Graceland

멤피스 다운타운에서 ‘프레슬리 거리(Presley Blvd)’를 따라 10마일 정도 남쪽에 ‘그레이스랜드’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엘비스가 죽을 때까지 ‘멤피스 마피아(Memphis Mafioso)’로 불리는 경호원과 함께 생활하던 곳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그의 자가용 비행기가 전시되어 있는데 호화의 극치를 이룬다. 그가 당구를 즐겨 치던 정글 룸은 천장이 온통 전구로 장식되어 있고 트로피가 진열돼 있다. 구석구석 설치된 스피커를 통하여 엘비스의 노래가 온종일 흘러나오며 구내 카페 식당엔 구식 주크박스도 있어 25센트 동전을 넣고 노래를 선곡하기도 한다. 기념품 가게에는 수도 없이 많은 종류의 엘비스 캐릭터 상품이 판매되며 그의 CD도 전문가들도 잘 모르는 처음 듣는 곡들이 많이 있다. 길 건너편에는 그의 무덤이 있는데 철문이 굳게 닫쳐 있고 경비원도 있다. 여기를 가려면 18달러를 내고 ‘엘비스 무덤 투어 쿠폰’을 사서 관광 차량으로만 구경할 수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호피를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옛말이 실감난다.

기념품 가게에서 20달러를 지불하면 손님 취향대로 엘비스 사진을 골라 손님 사진과 합성해 준다. 그가 타고 다니던 2대의 자가용 제트기 중 한 대는 딸의 이름을 따서 ‘리사 마리(Lisa Marie)’라고 명명했다. 특이한 점은 비행기 내부 장식을 자기가 살고 있던 집 내부와 색깔까지 똑같게 꾸며 어디를 가도 집안에서 생활하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했다는 것이다. 엘비스가 죽고 난 뒤 처음에는 공원 묘지에 안치했었으나 극성 팬들에 의해 훼손될 것을 우려해서 나중에 그레이스랜드 안으로 이장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영웅을 찾던 그 시기에 혜성처럼 나타나 화려한 의상과 현란한 몸짓으로 기타를 치면서 특이하고도 신들린 가창력으로 뭇사람을 매료시키던 때를 생각하면 30년이 지난 지금도 광적인 팬들이 그레이스랜드의 담벼락에 빈틈없이 낙서를 하거나 기일 전날부터 길거리에 서서 밤을 꼬박 지새우며 그를 흠모할만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시골 트럭운전수로 시작해 대스타의 입지에 올랐다가 1977년 8월16일 42세의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의 명성은 영원히 이곳에 남아있다. 멤피스를 미국의 제일가는 음악도시로 태어나게 한 원동력도 그의 힘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다.


- 미주 한국일보와 중앙일보 중에서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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