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30일(월)-여행 13일째

오늘의 주요 코스: 백만불짜리 도로, I-70 도로의 절경(콜로라도주 Dillon에 있는 ‘Days Inn’에서 숙박)


콜로라도주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잠을 깼다.  8시 10분.  알람을 맞춰 놓지 않고 며칠만에 편안하게 자고 일어났다.  오늘부터는 저녁때 숙소를 예약해 놓지 않았기에 이제는 저녁때 목적지에 그렇게 얽매여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였다.   LA를 떠난 금요일부터 오늘 아침까지는 미국의 여행 대목의 기간이라서 특히 우리가 거치는 그랜드캐년 근처의 숙소에서 주말에 여행하려면 숙소예약은 필수이기 때문이고 예약없이 당일에 방을 잡는다고 해도 훨씬 비싸게 얻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혜는 9시 10분쯤 일어났다.  콜로라도가 1시간 빠른 것이기에 다혜의 몸의 사이클은 지금 8시 10분에 깨어난 셈이니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이다.  아침먹고 짐정리하고 나서 출발한 시각이 10시 10분. 오늘 아침은 매시 10분이 기준시각이 되고 있다.  오늘은 아침에 다혜 엄마에게나 다혜에게 늦었다고 서둘러야 한다는 말도 안하고 맘 편하게 출발하다보니 10시가 넘었다.  숙소에서 출발해서 1분도 안갔는데 다혜 엄마가 화장실에 들렀다 가는게 좋겠단다. 마침 바로 옆에 월마트가 있어서 월마트에 들어갔다. 다혜 엄마는 화장실 가고, 다혜와 나는 입구에 있는 동전 넣고 이용하는 자동차 놀이기구에서 잠시 놀았다.  다시 다혜 엄마랑 만나서 썬크림을 한 통 사고 다혜 껌과 다혜 엄마 티셔츠를 하나 샀다.  그리고 나서 다시 출발했는데 몇 분 가다보니 길이 잘못된 것 같았다. 옆으로 세워서 지도를 확인해 보니 북쪽으로 올라가야 하는 길을 숙소에서 잘못 나와서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던 길이었다. 다행이 2마일 정도밖에 내려오지 않았기에 다시 돌려 550번 도로 북쪽 방향을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매일 출발한 후에 처음 보이는 주유소에서 개스(휘발유)를 넣고 가려고 하기에 인근의 주유소에서 차도 배를 채워 주었다.  

오늘의 하일라이트는 지금 이 550번 도로의 주변 경관.  이 도로의 이름이 ‘One Million Dollar Road’ 곧 백만불짜리 도로라고 불리는 것으로 주변 경관이 뛰어나다고 한다.  두랑고를 벗어나니 바로 산악지역이 시작되고 주변에 멋진 집들과 아름다운 산림이 기가 막히게 어울어진 모습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산을 더 올라가니까 이제는 멋진 자연의 경관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운전대를 붙잡고 있는 나의 시선을 자꾸 유혹한다.  산을 올라가다 보니 ‘Coal Bank Pass’의 정상까지 올라섰는데, 여기의 높이가 10,640피트라고 적혀있다.  1피트가 30cm 정도니까, 이것을 미터로 환산하면 해발 3,000m가 넘는 위치였다.  그러니까 백두산보다도 3~400m는 더 높은 지역이다.  아침에 옷을 입을 때 이 도로가 그냥 주변 경관이 멋진 도로라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높은 지역인줄 몰라서 반바지와 반팔 차림으로 왔는데, 여기 정상에 내려서 사진을 찍는데 얼마나 추운지 한기가 막 느껴진다.  주변에는 눈이 지천으로 깔려있고.. 얼른 사진 몇 컷 찍고나서 다시 차로 뛰어들어가 다시 산을 내려가며 또 멋진 경치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린다. 산을 다 내려가니까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화창하다.  높은 산악지역을 통과할 때 날씨가 변화무쌍한 것을 여러 번 겪었는데, 여기에서도 역시 높은 산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산 아래의 Silverton 마을을 지나니까 또 다시 아까와 같은 높은 산이 이어진다.  이번엔 산이 붉은 흙으로 뒤덮인 산이다.  산위에 올라가면서 보니까 이 산이 Red Mountain이고 그래서 이 산을 넘는 고개의 이름도 ‘Red Mountain Pass’였다.  숙소에서 지금 지도를 보니 이 산의 높이가 11,018피트이다.  이 곳들의 절경에 감탄하면서 가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가끔 내려서 사진도 찍다 보니까 더 그렇고.  11시가 넘어서 월마트를 출발했고, 높은 고개를 두개나 넘었으니 거리 상으로는 얼마 가지 못했는데, 벌써 시간이 1시 30분이나 되었다.  다혜는 12시 반부터 배고프다고 엄마에게 김밥 달라고 보챈다.  김밥은 도시락 밥에 포장김을 싸서 주는 것.  그런데 다혜 엄마는 지금 구불구불한 지역을 지나고 있으니까 여기서 김밥싸면 엄마가 멀미하고, 다혜도 이런 길에서 먹으면 토한다고 하면서 겨우겨우 달래며 갔다.  1시반.. 배고파서 나도 밥이 먹고 싶어서 한적한 길 옆에 세워놓고 매일 우리가 하는 스타일의 점심식사를 했다.  다혜는 엄마아빠와 이렇게 밥먹는 것이 너무 좋단다.  오늘은 식사 후에 한숨 잘 여유도 없이 바로 출발했다.  가야할 길이 너무 멀기에..  식사후에 바로 가다보니 식곤증이 몰려와서 엄청나게 졸려온다.  그래도 가야 한다.  이제부터는 550번 백만불짜리 도로도 끝났고, 산길도 아니었고 쭉 뻗은 길이다.  우리가 계속 동쪽으로 타고 가야 하는 I-70번 고속도로를 만나기 위해 Grand Junction까지 한참을 올라갔다.  
다혜는 2시 50분쯤부터 잠이 들었다.  그랜드 정션 지역에 접어드니 여기도 캐년들이 엄청나게 눈에 띈다.  거대한 캐년들이 만나는 곳이기에 아마도 그랜드 정션이라 이름 붙였나보다.  

I-70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가는데 경치가 멋지다.  콜로라도 강을 끼고 고속도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콜로라도 강은 이름은 강이지만 강이라 이름 붙이기에는 조금 미안한 수준의 물줄기이다. 고속도로 타고 가다가 중간에 Rest Area에 들러 소변도 보고, 콜로라도 인근의 모텔 할인 쿠폰북을 챙겨서 다시 출발했다. 미국 최대의 노천 온천이라는 Glenwood Springs를 그냥 지나쳐서 동쪽으로 가니 환상적인 경관이 이어진다.  내가 볼 때는 백만불짜리 도로에서 볼 수 있는 좌우의 경관보다 이곳의 경관이 더 멋진 것 같다. 특히 Eagle에서 Vail 사이의 도로는 달력에서 스위스의 자연경관이라고 하면서 뒤에는 눈덮힌 알프스산과 그 밑에 올망졸망 세워진 예쁜 집들, 그리고 그 주변에 어우러진 푸른 초원… 바로 그런 풍경이었다.  그리고 푸르른 하늘에 정말 운치있게 구름도 떠 있어서 한 폭의 그림과 같은 풍경이 계속 되고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어서 차를 세울 수 없는게 얼마나 안타까운지..  눈으로만 열심히 그 풍경을 가슴에 찍어 놓았다.
Vail 마을을 지나니까 계속 산 위로 올라간다. 이미 주변에는 모두 눈이다.  다혜가 3시간 20분 정도를 자고 나서 깨서 화장실을 가기 위해 Rest Area에 들어섰는데, 여기가 Vail Pass 였고, 여기의 높이도 10,603피트이다.  여기와 오늘 처음에 지나온 Coal Bank Pass가 높이는 비슷한데, 거기에 비해서 여기 베일패스는 한 겨울이다. 지금 여기는 록키산맥의 한 가운데를 넘어가는 중이기에 그런지 5월 30일인 날씨에도 바닥에는 아스팔트가 깔린 곳만 빼고는 잔디밭 등에도 온통 눈밭이고 바로 옆에 있는 나뭇가지들에도 눈이 덮여서 하얗다.  그리고 바람이 얼마나 센지 반바지를 입고 있는 나는 뼛속까지 추위가 파고든다.  위에 잠바를 하나 걸치긴 해서 그나마 낫긴 했지만, 감기들까봐 사진 한 장 찍고서 얼른 차로 대피(?)했다.  화장실 가기 위해 레스트 에리어에 들어서는데 다혜가 “나는 여자야, 남자 아니야, 그래서 여자 화장실에 가야해! 수교가 남자야!”하는거다.  수교는 다혜가 OOOOO교회 영아부에서부터 계속 같은 반을 했던 친구다.  이 얘기를 듣는데 얼마나 웃긴지.. 이미 시간은 6시 40분 정도 되고 있고, 산 속이라서 그런지 조금씩 어둑해지고 있는데, 지도를 보니 조금 더 가면 이보다 더 높은 11,990피트인 Loveland Pass를 넘어가야 하기에 인근에 있는 Dillon에 들어가서 숙박장소를 찾기로 했다.  
쿠폰북에 보니까 Super8이 $50정도면 묵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다 세금을 붙이면 $55이 될라나?  Dillon에 들어가서 ‘Super8’을 금방 찾을 수는 있었으나, 어제도 그 체인모텔에서 잔 터라서 만일 다른 모텔을 찾아봐서 같은 값이면 다른 데서도 자보기로 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I-70 고속도로 반대편에 있는 ‘Days Inn’에 가봤다.  미국에 수없이 많은 모텔 체인들이 있는데, 모텔들마다 조금씩 등급이 다르다.  물론 가격도 그에 따라 다르고.. 내가 주로 이용하는 ‘Motel6나 Super8’과 같은 것들은 가격으로 승부하는 비교적 저렴한 곳들이고, 그보다 조금 나은 시설의 모텔이 Days Inn이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비싸고 시설도 더 좋은 곳이 ‘Best Western’이고.  낼과 모레 중 만약 가격이 저렴하게 잘 수 있으면 거기서도 한 번쯤 자보려고 한다. 어쨌든 그래서 아직까지는 Days Inn에서도 하루도 못잤는데 혹시나 해서 가봤는데 세금까지 해서 $55에 퀸 사이즈 베드가 2개 있는 방을 주겠단다. 그래서 두말 없이 체크인 했다.  들어와 보니 어제 $60에 묵었던 ‘Super8’보다 훨씬 좋다.  어제는 퀸 사이즈 침대 하나에서 다혜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다혜 엄마랑 내가 자느라고 떨어질까봐 중간에 몇 번씩 잠에서도 깼었다.

다혜 엄마가 저녁을 하는 사이에 아래에 내려와서 둘러보니 목욕탕과 같은 따뜻한 물의 풀이 2개나 있다. 그 중 하나는 뽀글뽀글 거품이 일고 옆에서는 지압인지, 안마의 기능인지 하는 물살이 나오는 풀이고.   참고로 미국의 목욕탕은 수영복을 입고 남녀가 함께 들어간다.  만일 한국의 목욕탕 문화를 생각하고 수영복 준비 없이 벌거벗고 들어갔다가는 쉽게 말해서 ‘개망신’을 당한다.  멋모르고 한국 목욕탕 문화 개념을 가지고 벌거벗고 탕 속에 들어가 있다가 나중에 미국 여자들이 탕 속에 들어와서 나가지도 못하고 망신당했다는 한국남자의 일화들이 각 지역의 한인커뮤니티마다 비일비재하게 떠돈다.  나도 물론 시애틀에 있을 때 들었었고.
그 풀(Pool)을 보고 와서 밥먹기 전에 다혜에게 밥 잘먹으면 목욕탕에 데려간다니까 다혜가 좋아한다.  그리고 다혜 엄마가 저녁은 참치 김치찌개를 끓여서 다혜와 내가 꿀맛같이 먹었다.  콜로라도 지역은 평균 적으로 해발 2,000m 이상이라서 그런지 어제와 오늘 전기밥솥으로 밥을 했는데 꼭 설익은 밥과 같았다.  다혜 엄마는 밥솥이 고장난 것 아니냐고 하는데, 나는 아마도 높은 고도에 있기에 밥이 잘 안되는 것 같다고 하면서 내일 저녁때는 콜로라도를 벗어나서 머물 것이니까 그 때와 비교해 보자고 얘기했다.   아마도 콜로라도 덴버에 사는 한인들은 밥솥을 꼭 압력밥솥으로 사용해야 할 것 같다.

밥 먹고 나서 방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위에 옷 하나씩만 더 걸치고 1층의 풀로 내려갔다.  다혜는 신나서 어쩔줄 모른다. 그런데 아직 겁이 많아서 그런지 처음에는 가슴까지 차는 곳에는 무섭다며 들어오지 못한다.  아마도 낯선 목욕탕이라서 그런가보다.  여기에 같이 투숙한 다른 투숙객들도 들어왔다 나가곤 했다. 30분쯤 거기서 놀다가 다혜가 방에 가자고 해서 나왔다.  이렇게 해서 13일째 여행의 하루가 마무리 된다.  차타고 오면서 다혜 엄마랑 나눴던 얘기인데, 그랜드 캐년과 같은 다른 곳들도 참 멋졌지만, 하루의 일정 중 한 두 곳만의 전경이 아닌 하루 종일의 전체적인 풍경들을 비교해보면 오늘이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본 날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이 글을 보는 미래의 여행객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랜드 정션에서 덴버까지 이어지는 콜로라도주의 I-70고속도로 구간을 꼭 타보라!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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