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경험 미서부 로드트립 2017.7.26~8.7

2017.09.1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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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서부 로드트립 2017.7.26~8.7

2017 여름 우리 가족(대학,고등 아들 둘)의 미국 서부 여행 계획 및 실제 일정을 요약하면 이렇다. 남들 처럼 시간대 별로 정교한 계획은 세우지 못했다.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만 가기 전  후기 들을 읽다 보면 좀 이해도 안가고 지루했다.  그러나  다녀와 봐야 '아 그렇지' 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잘 알고 익숙한 것을 보려고 가는 게 아닌 것이  여행이니 이는 영원한 딜레마다. 

7/26 20:00 KAL ICN->LAX 
7/26 15:30 LAX 도착 입국 후 쉐비 트래버스 렌트카 수령, AIRBNB CARLYLE 1가 l숙소 이동  
7/27 LA 시내 관광,  파라마운트 투어
7/28 마트 쇼핑, 윌리암스로 출발, 모텔 투숙 
7/29 그랜드캐년 사우스림 탐방, 페이지 이동 및  호슈 밴드 관광, 모텔 투숙 
7/30 9:20 앤털로프 로워 탐방, 브라이스 캐년 관광 후  26 South Main Street, Bryce Canyon City (Utah)  호텔로 이동, 투숙 
7/31 자이온 이동 후 트래일, 오후 늦게 라스베가스 파리스 호텔 이동, 투숙 
8/1  호텔에서 휴식, 저녁 태양의 서커스 관람 
8/2  06:00 데스밸리로 출발,  단테스뷰 통과 , 오후  Mammoth Lakes 투숙 
  --> 갑작스런 폭우로 비티로 우회 하여 숙박
8/3  티오가 로드 통과, 요세미티 공원 탐방 , 요세미티  Bug Rustic Mountain Resort 투숙 
  --> 오후에 도착하여 요세미티 탐방 못함
8/4  나파 밸리 관광 후 샌프란시스코 트윈픽스 옆 AIRBNB 숙소 이동 
  --> 나파밸리 생략, 요세미티 등산 후 샌프란시스코 이동
8/5  샌프란시스코 관광 (롬바르드 거리, 피어 39, 금문교, 소살리티, 차이나 타운)
8/6  10:00 SFO 렌트카 반납, 13:00 SFO->ICN 
8/7  17:30 ICN 도착

대략적인 실제 행적 3,550Km
2017.7.26 (수) 맑음
  몇 달의 준비 끝에 출발이다. 회사에서 일찍 퇴근하고 식구들을 재촉하여 큰가방 4개와 배낭 등을 메고 끌고 1km 떨어진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걸어서 갔다. 
휴가철이라 인천공항은 몹시 붐볐다.
저녁 9시반에 이륙하여 11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치고 보니 시간을 거슬러 같은 날인 7월 26일 오후 5시, LA 국제 공항 (LAX)에 착륙하였다.
 
LA국제공항의 입국장은 정말 크고 넓었다. 복잡한 키오스크에서 어렵사리 사진과 지문을 찍고 입국심사대 줄을 서 있자 안내인들이 줄이 짧은 창구로 이리 저리 가라고 지시를 했다.
예전에도 몇번 왔었지만 이 같은 미국의 크고 넓은 공간은 일종의 문화 충격으로 그 후로도 내내 익숙해지기 어려운 느낌을 주었다.
입국장 밖으로 나오자 덥지만 습하지 않은 LA의 공기가 우리를 반겼다.

예약된 렌터카를 받기위해 AVIS의 주차장에 내렸다. 예약한 차는 쉐비 트래버스. 그런데 지금 차가 없다며 같은 '급'의 히운다이(현대) 산타페를 가져가란다.  숙소는 좀 마음에 안들어도 다음날 이면 떠나지만 차는 그렇지 않다.  현대 차는 좀 좁을 것 같았다.  신청한 차를 달라고 어필하자 그럼 기다리란다.
잠시 후 네바다 번호판을 단 쉐비 트레버스 SUV가 세차한 물을 뚝뚝 흘리며 나타났다.  
나는 처음 몰아보는 미국 SUV에 잠시 긴장했다.
지나는 직원에게 뭐 주의할 점 없냐고 묻자 웃으며 별 문제 없을거라고 가버린다. 



타 보니 좌석 높이가 높고 엑셀을 밟아보니 3.4리터 휘발유 엔진은 부드러웠다. 
 3열 시트를 접자 많은 짐을 싣기에 충분한 트렁크가 나타났다. 이 차는 적당한 크기와 출력으로 든든히 우리 가족을 지켜 주었다.
나가면서 출구에서 운전면허증을 확인한다. 
뭔가 이상하다. 사무실에서 안보던 면허증을 한참 차 몰고 나오자 보자고 하니. 하긴 자동차 운전 쯤은 신발끈 매기 쯤으로 여기는 나라다.
첫 행선지는 레돈도 비치.
조심스레 차를 몰았다.
야자수 가로수 그늘이 늘어진 LA 시내를 지나며 언제 이곳에 왔는지를 회상했다.  16년 전 출장 끝의 관광이었다.
그 때 랍스타를 맛있게 먹었던 레돈도 비치의 '한국횟집'을 다시 찾았다. 
게찜과 매운탕을 시키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석양이 물드는 미서해안은 아름다왔다.


게 맛은 좀 싱거웠다. 가격도 비쌌고...(게 3마리 + 매운탕 $220) 그래서 인지 빈자리도 많이 보였다. 16년 전 붐비던 맛집이 맞나 싶었다.

식구들이 오늘 내일은 시차 적응 탓에 많이 힘들 것이었다. 일찍 숙소로 향했다.
AIRBNB를 통해 예약한 LA의 숙소는 2박에 47만원으로 좀 비싸지만 호텔 보다는 색다른 미국 주택가 가정집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 택했다.
미국 치곤 집이 조금 작았지만 깔끔했다. 부엌 집기도 완벽했다. 심지어 컵라면 4개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친절한 집주인은 며칠 전부터 문자를 보내 주며 위치와 현관 사진 같은 세세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2017.7.27(목) 맑음
 일찍 눈이 떠졌다.
피곤한 데 잠이 안오는 묘한 느낌이었다.
아침 일찍 동네를 둘러 보았다. 분위기를 보아 그다지 고급 주택가는 아닌 듯 했다.
아침을 주인이 준비해준 컵라면으로 먹고 LA관광을 나섰다.
'HOLYWOOD' 간판이 보이는 그리피스 천문대로 올라갔다.
천문대 옆에 차를 대자 오전까지 주차 무료라고 한다. 여행 내내 주차 운은 좋은 편이었다.  

천문대에서 내려다본 LA 시내는 정말 컸다. 서울과 다른 점은 산이 없고 끝없이 펼쳐진 바둑판 모양의 블럭의 반복이라는 점이었다. 서울-대전 간이 모두 도시라고 보면 되었다.

다음은 차이니스 시어터.
주차장을 찾느라 헤메고 있는 데 옆으로 경찰차가 굉음을 울리며 지나간다.
지나며 보니 경찰이 거리를 막고 출입 통제 선을 치고 있었다. 뭔가 큰 사건이 난 것이다.
차를 세우고 경찰에게 물어보니 총격 사건이란다. 하늘엔 헬리콥터가 오가고 있었다. 뭔가 느낌이 안 좋았다.

자칫하면 오도가도 못할 것 같았다. 할리우드 관광을 포기하고 바로 다음 코스인 파라마운트 영화사로 차를 몰았다.
파라마운트 투어를 신청하여 영화 촬영의 현장을 볼 계획이었다.
그전에 점심을 먹기 위해 정훈이가 먹고 싶다던 인앤아웃 버거 매장에 도착하자 인산인해였다.
한참을 서서 기다려 주문하고 다시 목 빠지게 기다려 음식을 받아 간신히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가게 구석에서 갑자기 10여명의 초등생 들이 교사의 지휘로 응원가 같은 노래를 크게 합창했다.
난 속으로 시끄럽게 무슨 짓인 가 했으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기다리는 동안 파라마운트 투어 예약 사이트에 들어가서 카드 결제를 시도 했으나 계속 에러가 났다. 그런데 나는 잠시 후 폰에 뜬 문자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212 이 3회 결제되었다는 문자가 뜬 것이었다.
놀란 가슴을 안고 파라마운트 투어 입구에 도착하여 여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금발의 여직원은 난감해 하더니 예매 대행사에 적극적으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 사이 놀랍게도 한국 카드사에서 전화가 와서 이상 거래가 감지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이윽고 미소를 띄우며 결국 청구하지 않는 것으로 되었다는 대답을 전해주었다.
일이 해결되자 그녀는 활기차게 한 손을 들어 나와 '하이 파이브' 를 했다. 
이 일로 시간은 좀 잡아먹었지만 시차로 피곤한 참에 좀 쉬었다가 3시 30분 투어를 할 수 있었다.

   
안내인이 끄는 8인승 골프 카트에 타고 파라마운트사 곳곳을 누볐다.
우리와 같이 한 미국인 3명은 단역배우도 했다고 하는 데 다들 TV, 영화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자신 들이 즐겨보던 시트콤, TV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곳을 직접 본다는 데 큰 흥미를 가질 법했다. 우린 그 정도로 잘 알지는 못해도 할리우드 영화 찰영의 산실을 본다는 데 의미를 두었다.
우연히 ‘왈가닥 루시’의 리메이크 버전의 여주인공과 조우했다. 어릴 때 흑백 TV로 보던 미국 코메디였었다.

안내인은 탑건의 한장면을 찍은 곳이 허름한 구내병원 휴게실 이라는 식으로 내눈에 성수동 공장 같은 촬영소 곳곳이 나름 유명한 영화에 이런 저런 모습으로 비춰졌다는 것을 아이패드로 보여주었다.

마지막 코스는 ‘포레스트 검프’에 나온 벤치였다.

아내의 친구 현숙씨는 어바인에 살고 있었다. 오후에 카톡으로 올 수 있냐고 연락이 왔다. 가지 뭐. 
그러나 LA 시내에서 어바인은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퇴근 시간의 정체와 겹쳐 거의 2시간이 걸렸다.
늦었지만 어바인에 간 김에 아이들의 우상인 블리자드사의 정문에도 가보았다. 그러나 장시간 차 속에서 시달린 아이들은 의외로 심드렁했다.

그렇게 아내의 초등 동창인 현숙씨와 저녁 식사를 같이하고 나와 아이들은 마트에 가서 식품과 아이스 박스를 샀다.
다시 1시간 반을 차를 몰아 왔는 데 좀 이상하다… 엉뚱한 동네를 찍고 왔던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급히 차를 돌리다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내려 보니 도로 한 가운데 튀어나온 경계석을 밟은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 좌충 우돌하는 LA 관광 첫날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2017.7.28 (금) 맑음
차가 심상치 않았다. 계기판에 앞타이어 공기 압력 경고가 떴다. 어제 사고가 생각났다. 오늘 윌리암스까지 800KM를 가야 하는 데...
LA의 시내 도로는 매우 복잡했다.
 걱정이 되어 시내의 AVIS 지점을 어렵게 찾아 갔으나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1시간 거리인 공항에 가서 바꾸라고 하며 나와 볼 생각도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코리아 타운의 자동차 정비소를 찾아갔다.  한국인 사장님이 체크해 보고 다행히 이상이 없단다. 
돈도 받지 않았다.  이역만리에서 느끼는 한국인의 인심이었다.
 유명한 한남체인에 들러서 먹거리를 보충했다. 수퍼 분위기는 딱 우리나라 좀 큰 수퍼 였다. 단지 캐셔가 백인이고 한국말을 조금 한다는 것이 달랐다. 
먼길을 떠가기 위해 처음으로 휘발유를 넣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미리 결제하고 기름 넣고 거스름돈을 카드로 다시 받으면 되었다.
그러나 여행 내내 만나는 주유소의 노즐 모양이나 들어 가는 각도가 가지 각색이라 고생 좀 했다. 캐셔에게 물어보면 귀찮아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윌리암스를 가기 위해 패사디나를 거쳐가야 했다.
패사디나의 한적한 주택가를 지나며 사진을 몇장 찍었다.

정훈이는 초등학교 때 패사디나에서 3개월간 생활한 적이 있었다. '어 저기 내가 지나던 길인데 .. ' 하며  기억을 되살렸다.

금요일 오후 바스토우 행 도로는 차로 메워져 있었다.

그나마 좀 나을까 해서 카풀 레인으로 갔지만 별 차이는 없었다.  이 때 카풀레인과 옆차선 사이를 달리던 오토바이 한대가 우리의 끼어 들기가 마음에 안들었는 지 뒤돌아 보며 가운뎃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시 경계를 벗어나자 황량한 황무지 펼쳐졌다. 우리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휴게소를 찾았으나 쉽지 않았다. 미국 고속도로는 톨비를 받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처럼 굳이 고속도로 옆에 바짝 붙여서 휴게소를 짓지 않은 듯 하다.
족히 2Km는 될만한 화물 열차를 내려다 보며 바스토우에서 잠시 쉬기 위해 차를 내렸다. 곧장 안면을 강타하는 모하비의 열풍!
끝도 없이 이어지는 황량한 사막을 지겹도록 달려서 윌리암스의 모텔에 도착한 것은 11시가 다 되어서 였다.
   

2017.7.29 (토) 맑음
 일찍 일어나서 아이스 박스에 얼음을 채우고 전기 밥솥에 밥을 지었다. 여행 내내 이 얼음 기계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 였다.

그랜드 캐년 사우스 림으로 향하는 길은 2100m 고원지대라서 인지 상쾌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넓게 펼쳐진 숲을 지나 그랜드 캐년 비지터 센터에 도착했다.
9시에 시작하는 그랜드 캐년 소개 영화를 잠시 감상하고 Mather point 를 시작으로 투어를 나섰다.
수십억년 억겁의 세월 동안 켜켜히 쌓인 지층을 거인이 썰어낸 시루떡처럼 거대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 밑 바닥엔 누런 콜로라도 강이 가늘게 흐르고 있었다.
Hopy point를 지나자 이 곳의 특이한 암석을 전시해 놓고 여성 레인저가 열심히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장구한 세월을 마일스톤 축소판으로 만들어 시간의 길이를 가늠 할 수 있게 만들었음.

피크닉 테이블이 놓인 곳을 찾아 밥통을 꺼내 놓고 김치, 샐러드 만으로 소박한 점심을 들었다.
바로 옆은 천길 낭떠러지, 맑은 하늘, 울창한 숲속에서 먹는 밥은 찬밥이지만 꿀맛이었다.

Dessert view의 첨성대 같은 건축물에도 올라보았다.

그랜드 캐년 동문을 지나 Page 로 향하는 길은 어제의 모하비 사막과는 또 다른 지형의 연속이었다.
돌이켜 보니 이렇게 산이라곤 없이 수 십킬로 전방까지 툭 터진 넓은 공간에서 운전 해보기는 정말 난생 처음이다.


서울 시내 에선 좀 몰기 버거운 묵직한 자동차 였지만 광대한 평원 속에선 깃털보다 가볍고 작게만 느껴졌다.
여름의 그랜드 캐년은 국지성 소나기와 번개가 잦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보면 햇볕 쨍쨍한 데 왼쪽을 보면 마치 만화의 한장면처럼 소나기를 쏟아 붇는 한 무더기의 먹구름이 보였다. 소나기를 이렇게 완벽하게 제3자의 입장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 우린 대부분 산 넘어 에서 내리거나 아니면 직접 맞거나 둘 중 하나 아니었나...


사진과 후기를 통해 관광 명소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그것들을 잇는 길에 대해선 들은 바 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미서부 자동차 여행의 백미는 이런 붉고 황량한 황무지를 가로 지르는 검은 도로 인 것 같다. 나무 라곤 없는 황무지는 퇴적, 침식, 융기, 침강 등 온갖 지각 변동의 현장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었다.


중간 중간 주름진 지형 위에 도로를 만들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이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곳이 많아 단전 부위를 짜릿하게 했다.
그랜드 캐년의 발원지에 해당하는 지점에 잠시 차를 대고 둘러 보았다.


위의 가족사진을 부탁한 독일인 부부와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서울에도 몇번 와봤다고 한다.
그랜드 써클에 여행 온 유럽인이 정말 많았다.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한해 2천만 명이 찾는다고 한다.
미국은 유럽의 고성 같은 유서 깊은 관광지는 없지만 유럽에는 없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대자연이 있다.

해가 뉘엿뉘엿 할 무렵 Horseshoe bend 에 도착했다. 
모래 언덕을 넘어 서쪽으로 1km 쯤 걸어 가야 했는 데 햇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가야 해서 무척 더웠다.
이 곳은 깊이가 2km 넘는다. 그런데도 난간 같은 것은 없었다.
지난 몇 달간 사무실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보던 Horseshoe bend를 눈 앞에서 3D로 보자 감동이 밀려왔다.

숙소를 찾다 우연히 실내 사격장을 발견했다.
1인칭 슈팅게임 'OVER WATCH' 를 많이 했던 아이들은 진짜 총을 쏴보고 싶어 했다.
지훈이가 선책한 총은 저격용과 짧은 경기관총.
   
사격 코치는 대머리의 덩치 큰 군인 출신으로 체험 관광 비즈니스의 요령을 아는 사람이었다.
쉴 새 없이 아이들에게 농담을 걸며 재미 있게 총 다루는 방법을 교육 했다.
바닥에 흩어진 탄피를 보며 탄피 하나 잃어 버리고 뺑뺑이 돌던 군대 시절이 아련히 떠올랐다. 재미있게 할 수도 있는 데 왜 그리 힘들게 훈련했던 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데 내게도 서비스라며 10발 쏴보라고 한다.
20m 정도는 쉽지, 영점 조절용 아닌가... 코치가 잘 쐈다며 호들갑이다.
이윽고 비용 정산을 위해 카드를 꽂자 단말기에 팁을 얼마 낼 거냐고 뜬다.
처음 보는 프로세스에 다소 당황해서 사격 코치를 쳐다보자 활기차던 모습은 어디 가고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속으로 웃음을 참으며 현금으로 팁을 지불했다.

LAKE POWELL 모텔을 찾아 체크인을 하고 아까 사격장 점원에게 추천 받은 바베큐 식당을 갔다.



과연 이 동네 최고의 맛 집이었다. 열 댓명이 줄선 가운데 한참을 기다려 자리를 잡고 앉았는 데... 눈을 의심할 일이 벌어졌다.
바로 배우 '이서진'이 옆 테이블에 앉기 위해 들어 서는 것이었다.
인사를 건네자 가볍게 목례를 하고 일행과 자리해서 식사를 시작한다.
지훈이가 흥분한 것 같았다. 나중에 일행에게 사진 찍어도 되냐고 제스추어를 날렸으나 거절당했다고 털어놓는다.
 한국사람 보기 쉽지 않은 곳으로 휴가를 온 듯 했다. 그의 휴식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 이서진 나오는 여행 프로그램 참 많이도 봤는 데…
 밴드는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며 손님 중의 어린 소녀들을 무대위로 올려 관객 참여를 유도했다.
붐비는 집이다 보니 서비스는 좀 불친절 했지만 바비큐 맛은 괜찮았다. 컨트리송과 맥주 한잔과 함께 기분 좋게 Page의 밤이 마무리 되었다.


2017.7.30 (일) 맑음
 8시 40분까지 Lower Antelope canyon 에 가야 해서 서둘러야 했다. 
8명 정도를 한 팀으로 묶어서 인디언 가이드가 데리고 다니는 형식이었다.
사암의 틈새로 물이 흘러 조성된 이 곳은 한마디로 자연의 회랑을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우리를 안내하는 인디언 가이드는 집사람의 최신 삼성 갤럭시 폰을 받아 들고 능숙하게 화이트 밸런스를 조절해서 환상적인 사진을 만들어 냈다.  마치 부드러운 비단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조각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Powell 호수의 전망대에 들러서 그 깊은 캐년을 물로 채운, 주변에 녹지대라곤 없는 다소 낯선 호수의 경치를 내려 보았다.
Powell 호수는 1966년 Glen 댐이 완성되며 생긴 호수이다. 수면 아래로는 2km의 깊은 골짜기가 있겠지.

 
이 전망대에서 부천에서 온 3명의 아줌마와 어린 아이들을 만났다. 다들 바쁜 남편은 떼어놓고 패키지로 여행 중 이었다. 
가다가 Lone rock 이라는 곳이 눈에 띄어 핸들을 꺽었다. 호수 가운데 큰 바위 섬이 불쑥 솟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나 보다.


이 곳은 고운 모래 비포장 도로가 많아 운전에 주의하라는 경고 문이 붙어있었다.  조심해서 물가로 차를 몰았다. 모래에 빠지면 골치 아픈 상황이 된다.
모래 언덕으로 4륜 구동 차들이 넘나드는 흔적이 많이 보였다. 
이 곳까지 오면서 많은 차량이 트레일러를 달고 개인 요트나 제트스키를 싣고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이 이곳 Powell 호수에서 즐기기 위한 것 이었다.  미국인들이 레저에 투자하는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거대한 버스 전체를 캠핑카로 개조한 것도 모자라 SUV를 꽁무니에 달고 달리는 모습도 여럿 보았다.
몇몇 이들은 수영복 입고 파웰 호 물 속에 들어가 놀고 있었다.
그러나 기름 냄새가 나는 물과 그늘 한점 없는 물가에 오래 있기 어려웠다.


지나다 보니 마치 물 빠진 호수 같은 지형이 나타났다.
그 곳에 있는 공룡 박물관에 들러보았다. 차에서 내려 마침 구경을 마치고 차에 오르는 흑인 커플에게 여기에 공룡 화석이 있냐고 하니 산을 가리키며 저 위로 가면 2~3마일 가면 있다고 한다.  나는 이게 농담인지 3초 뒤에 깨달았다. 


 붉은 돌들에 질릴 무렵 반가운 숲이 나타나고 공기도 선선해졌다. Bryce canyon에 도착한 것은 저녁이 다되어서 이었다.
캐년 입구의 리조트 마을을 지나 기분 좋게 액셀을 밟으며 올라갈 때 갑자기 뒤에서 경찰차가 나타났다.
아차 싶었다. 공로에서 공원으로 접어드는 길에 제한 속도가 줄어드는 것을 놓친 것이다.
40마일 지역에서 57마일을 달렸다고 한다. 뭐 군소리 없이 인정했다.
그러자 경찰관은 큰 인심 쓰듯 원래 $200 인데 $120불로 깍아서 끊어준다고 한다.  일주일 내로 내야 하니 내일 아침 리조트 우체국에 가서 ‘머니오더’로 내면 된다고 덧붙였다. 우린 일주일 뒤면 한국 가는 데요.. 하니 잠시 난감한 표정이 스친다. 
‘머니 오더’ 가 뭔진 잘 모르겠지만 전신환 같은 것이겠거니 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떠났다.  속도 제한 표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Bryce canyon으로 진입했다. 한국에서 항상 과속 단속 경고 해주는 네비에 의존하던 것이 구글 네비로 바꾸면서 안 통한 것이 변명라면 변명이다.

해발 2500m의 고지는 서늘 했다. 그간 더위에 시달린 터라 이마에 스치는 시원한 바람이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종점 격인 rainbow point에서 바라보는 불쑥불쑥한 Hoodoo 의 군락은 마치 판타지 영화 속 오래 전 몰락한 고대 도시의 스카이 라인을 보는 듯 했다. 


숙소를 예약한 리조트의 식당에서 부페로 식사를 했다. 셀프서비스인 부페에서 팁을 얼마를 줘야 하나 하고 고민 할 때 가져온 계산서를 보니 이미 팁이 포함되어 있어서 실소를 자아내었다.
이 곳은 강원도 평창 같은 서늘한 기온 때문인 지 미국인들이 피서지로 많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전거 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서 타보고 싶었지만 바쁜 일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2017.7. 31 (월) 맑음
 이 곳에 오기전 Zion canyon 을 유튜브에서 찾아 보니 예쁜 레인저 아가씨가 성수기에 혼잡하니 일찍 오셔야 차를 댈 수 있다고 했다. 6시에 일어나 서둘러 출발 했다.
2시간을 달려 Zion 에 들어서자 거대한 돌산이 우리를 맞았다.

차를 몰아 꼬불꼬불한 도로를 따라 가자 문자 그대로 점입가경 이다.  이건 숫제 자동차가 아니라 놀이동산의 라이드를 탄 느낌이다.
'앤젤스 랜딩' 코스는 고소 공포증이 있는 집사람 탓에 일찌감치 포기하고 시원한 'The narrows' 트레일 을 택하였다.
지나고 보니 굳이 비지터 센터에 차를 대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다. 대부분 라스베가스에서 오지만 우린 반대로 왔으므로 중간 지점에 적당히 차를 대고 셔틀에 오르면 되었다.
도착하니 9시. 다행히 주차장은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셔틀 정류장 앞은 수 십미터의 줄이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셔틀을 타는 데 Zion 홍보 영화의 나레이터로 나왔던 그 레인저 아가씨가 한손에 카운터를 들고 인원 수를 체크하고 있었다.  왠지 탤런트라도 본 듯 반가왔다.

종점인 'Temple of Sinawava' 에 내려 올라가자 깍아 지른 절벽 틈새로 풍부한 수량의 물이 흐른다.  대체 돌산 어디에서 저 물이 발원하는 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드디어 물속으로 발을 디밀었다. 비록 사암 성분이 들어서 그렇지 유속이 빠른 물은 깨끗했다. 혹시나 미끄러져 발목이라도 삐면 어쩌나 걱정 했으나 바위에 이끼 따위는 없어 좀 덜 미끄러웠다.



많은 사람이 첨벙 거리며 흔치 않은 물 길 하이킹을 즐기고 있었다.  정오가 가까워 햇볕은 뜨거웠으나 물속은 시원해서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깊은 곳에선 젊은이들이 다이빙을 하며 놀고 있었다.  
좁고 깊은 계곡에 정오의 햇빛이 수직으로 떨어지며 멋진 그림자를 만들어내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계곡은 좁아지고 물살이 빨라졌다. 아차 하는 순간에 등산용 스틱을 놓쳤다. 이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우리의 반환점은 좁은 절벽이 이어지는 이름도 멋진 ‘Wall street’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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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다치지 않고 무사히 물길 4시간을 마무리 했다.


이제 라스베가스다.
사막을 한참 달려가는 데 갑자기 저 앞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른다. 
     

정체된 차량의 행렬 옆으로 맞은편에서 급히 경찰차가 유턴하고 있었다.
불이다. 갓길에 세운 차에 불이 난 것이었다.
별다른 통제는 없어서 지나 갔지만 차창으로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뜨거운 날씨에 차에 불이 붙은 모양이다. 우리 차의 온도계에도 신경이 쓰인다. 

저녁 무렵 라스베가스 파리스 호텔에 도착했다.
엄청난 규모의 호텔이다.  네바다 사막의 더위를 피해 실내 마을을 건설한 느낌이었다.
호텔 체크인을 하기 위해 한참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예약한 퀸배드 2개짜리 방은 지금 없으니 스위트 룸을 주겠단다. 
대신 보조 침대 2개를 들이는 조건이었다. 1박에 $500 짜리 방이다.
이런 곳에 자게 되다니, 우린 모두 기뻐하며 좋아했다.

2017. 8. 1 (화) 맑음
 느지막이 눈을 뜨니 10시 반이다.
이곳 라스베가스는 에어컨의 발명이 없다면 있을 수 없는 도시이다.
방안은 서늘해도 창가에 다가가면 바깥 공기의 뜨거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아침은 건너뛰고 방송에 나온 시저스 호텔의 바카날 부페를 갔다.  거리로 나서며 이럴 때를 대비해 준비해간 미니 선풍기를 꺼냈으나  마치 드라이기를 틀어 놓은 듯 열풍을 선사해서 곧 바로 용도 폐기 해야 했다. 
 시저스 호텔 바카날 부페의 500가지가 넘는 산해진미가 우리를 반겼다. 아시아 음식도 괜찮았다.

2시 쯤 부페에 식구들을 남겨두고 나는 과속 티켓을 해결하러 먼저 나왔다.  물어 물어 어렵게 찾은 웨스턴 유니온 은행은 어이 없게도 기념품점 내에 직원 1명의 작은 부스 였다.
   

내가 상황을 설명하자 사정이 딱해 보였는지 여직원은 범칙금 양식을 혼자서 작성할 수 있냐고 한다. 잘 모르겠다고 하자 친절하게도 복잡한 양식을 대신 작성해 주었다.
‘머니 오더’란 우편환 이었다. 돈을 지불하면 영수증을 끊고 편지봉투에 넣어서  관할 법원으로 보내는 것이다. 말로만 듣던 우편환을 미국에서 해보았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식구들과 아웃렛 쇼핑에 나섰다.  
이천 아웃렛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선물과 모자 등을 사다 보니 어느새 6:40 이다. 예약한 ‘태양의 서커스’를 보려면 7시까지 트래셔 아일랜드 호텔을 가야만 했다.
긴장하며 운전 했으나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해 준비된 표를 받아 들고 입장했다.
안내에 따라 정해진 자리에 앉아 한숨을 돌렸다.
마침 광대가 관객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도입부를 맡고 있었다.  이어지는 곡예들은 과연 ‘태양의 서커스’ 명성대로 볼만했다. 얼마나 연습을 해야 저런 것이 가능할까.. 인간의 신체능력에 대해 다시 한번 경이로움을 느꼈다.

공연을 끝나고 인파를 헤치고 나오자 불야성을 이룬 라스베가스의 밤 거리가 펼쳐진다.  


베네치아 호텔을 지나며 가족이 3년 전 다녀온 진짜 베네치아를 떠올리며 얘기를 나누었다. 손님을 끌기 위해 세계의 명소는 죄다 복사해 놓은 듯 했다.  베네치아를 본따 커다란 풀장 같은 수로 위를 조명이 설치된 곤도라가 떠있는 모습이나 무빙 워크가 설치된 리알토 다리를 지나며 확실히 이 사람들은 멋보다 실질적인 효용성에 더 가치를 두는 것 같다고 느꼈다.

2017. 8. 2 (수) 맑음 – 뇌우
 2일간의 라스베가스 일정을 마치고 데스벨리를 거쳐 요세미티 초입의 매머스레이크 숙소로 가는 날이다.
가는 길에 식당이 여의치 않을 것 같아 라스베가스 월마트에 들러 장을 보았다.
호텔과 도박으로 지새우는 환락의 도시의 또 다른 면을 보는 느낌이었다.
월마트를 지나다 보니 중국어가 쓰인 건물이 많아 이 곳도 중국인 커뮤니티가 발달한 곳 같았다.
월마트 옆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로 아침을 때우고 열사의 사막으로 떠났다.

‘단테스 뷰’에 올라 내려다 보니 하얀 소금 밭이 저 멀리 보인다. 

숨이 턱 막히는 뜨거운 날씨 탓에 카메라가 달아 올라 셔터에 손을 올리기도 어렵다. 선글라스 테가 뜨거워 졌다. 잠시후 손끝이 벌겋게 변했다. 건식 사우나에 들어선 느낌이다.
이 곳은 ‘악마의 골프장’, ‘단테스 뷰’ 등 지옥과 관련된 지명이 많았는 데 와보니 왜 그런지 이해가 갔다.
자브라스키 포인트에 올라 구겨진 지옥의 입구 같은 풍경을 보니 그 옛날 이곳을 지나던 개척자의 타는 목마름이 느껴졌다.


샌드듄즈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헉' 하며 열기에 일그러진 내 표정을 보고 마주친 미국 아줌마가 공감을 표한다.  고운 모래밭의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사막의 모습이다. 어찌나 모래가 고운지 들어서면 어느새 스며들어 신발이 모래로 가득 찬다.

차의 온도계는 화씨 120~125도( 섭씨 49~52도 )를 가르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 뜨거운 지역을 여행용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커플이 있었다. 아지랭이 속으로 멀어져 가며 마음 속으로나마 응원했다.

이름 조차 뜨끈한 Stovepipe Wall을 지나 산악지역에 진입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날씨가 좀 수상했다. 앞 쪽에 소나기가 내리고 번개가 많이 쳤다. 먹구름에 어두워진 산길 위로 낙석이 가득했다. 운전에 집중해야 했다.
어렵사리 산길을 넘어와 평지로 접어 들어섰다.  갑자기 차들이 줄지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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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을 모르고 세운 뒤 내려서 300M 가량을 걸어서 가자 경찰관이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내린 비가 강물이 되어 콸콸 흐르고 있었다.
기가 막혀 경찰관과 레인저에게 물으니 다시 뚫릴려면 최소 서너 시간을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 앞쪽으로도 이 같은 도랑이 2개 더 있다고 한다. 아니면 3시간 가량 되돌아가는 방법 뿐이라고 한다.


DEATH VALLEY 는 일년 강수량이 60mm를 넘지 않는 곳이다. 그 대부분이 오늘 내린 것이었다.
행렬 속에서 RV차를 끌고 온 독일 사람과 지도를 놓고 우회로를 검토했다. ‘군터’ 라는 이 가족은 행선지가 매머스 래이크로 우리와 같았다. 자기들은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캠핑용 RV는 마치 집과 같아서 오래 있어도 편히 쉴 수 있을 듯 했다.
그러나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나는 차를 돌리기로 결심했다.
이번엔 왔던 길도 쉽지 않았다. 비가 곳곳에 천둥 번개와 같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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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을 넘어 넓은 황무지 골짜기에 들어서자 길이 아니라 한강이 되어있었다.
곳곳에 물이 넘치고 돌이 흩어져서 잘 못 밟으면 큰일날 지경이었다.
마침 공원관리 차량이 조심스럽게 지나가고 있었다. 난 그 뒤를 졸졸 따라가며 간신히 저지대를 통과했다.
다시 산길로 들어서니 다행히 불도저 같은 장비를 장착한 큰 트럭 2대가 낙석을 도로 옆으로 쓸어 버리고 있었다.
어렵사리 Stovepipe wall에 되돌아 오니 벌써 저녁때가 되었다.
기념품 가게에 들어서자 반도체 공장 입구처럼 에어샤워가 입구에 설치되어 있었다.
바깥은 온통 모래 폭풍에 뒤덮혔다. 하늘 끝까지 시커먼 모래 바람이 덮치는 광경은 공포스럽기 까지 했다. 
놀란 표정의 우리에게 여자 점원은 툭 내뱉는다.
  ‘Welcome to Death valley!’
 가게 옆 호텔로 가서 예약한 숙소에 전화하니 무료로 취소할 테니 걱정 말란다.  카운터 여직원의 구글링 도움을 받아 거의 1시간 동안 전화기와 씨름하며 몇 군데 숙소를 전화해서 알아보고 낯선 소도시 ‘BEATTY’의 모텔로 정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현재 도로 상황에 대해 확신할 정보를 주지 못했다. 그 동안에도 길이 막혀 차를 돌린 여행객들이 계속 들어서며 빈방을 찾았다.

마침내 10시쯤 비티의 익스체인지란 모텔에 들어서며 참으로 긴 하루를 보냈구나…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네바다에 온 셈이다. 이 곳은 라스베가스에서 2시간 거리에 불과하다.
 이곳 모텔의 '제레미'란 접수원은 한국에서 왔다 하니 반가와 한다. 자신도 군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용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기억을 되새기는 듯 '감사합니다.' 라고 짧은 한국말을 했다.  40대로 보이는 제레미가 어릴 때 한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 식당을 찾았으나 자리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들른 수퍼에  슬롯머신이 있는 것을 보고 여기가 네바다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2017. 8. 3 (목) 맑음

 예기치 않게 하룻밤 머문 비티를 뒤로 하고 다시 요세미티로 출발한다.
어제의 예상치 못한 사막의 폭우로 인해 Death valley 북쪽으로 멀리 우회하기로 했다.


사막 가운데로 난 인적 드문 도로를 달리고 또 달려 황량한 풍경에 지칠 무렵 Mono lake옆 Tioga road 입구에 위치한 휴게소에 도착했다.

조금 전까지 뜨겁던 날씨는 어디 가고 서늘한 공기가 우릴 감싼다.
Tioga road 를 오르자 아름다운 호수 가에서 히스패닉 한 가족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얼핏 보니 장난감 같은 낚시대로 송어를 몇 마리 낚아서 우리에게 자랑을 했다.


그늘진 곳에 아직도 눈이 쌓여 녹지 않고 있었다.

 
티오가 로드는 구비 구비 절경의 연속 이다.
역시나 우린 산과 물, 그리고 숲이 어우러져야 보기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언뜻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때가 다되어 간다. 오늘 밸리지역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마리포사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나는 마리포사에도 등산할 만한 곳이 있을 줄 알았는 데 산불이 휩쓸고 간 삐쭉 삐쭉한 나무 등걸만이 무수히 남아 있었다.
산중의 숙소는 그리 좋지 못했다. 아이들 입이 나왔다.  밸리 내 롯지를 예약했다가 취소한 것이 생각나서 잠시 속이 쓰렸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요세미티 등산을 마치고 여기 마리포사를 거쳐 내일 아침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면 되었으나 어제의 폭우로 인해 일정이 조금 밀렸다.
 
2017. 8. 4 (금) 맑음
오늘의 일정에 대해 가족 회의 한 결과 그래도 요세미티를 왔으니 보고 가자는 의견이 우세해서 1시간 거리인 밸리를 다시 되돌아가야 했다.
그것은 나파 밸리 관광을 포기하자는 것과 같았다.
요세미티 밸리는 워낙 넓은 지역이라 처음 이 동네의 개념을 잡지 못해 우왕 좌왕 했다.
결국 Vernal 폭포로 가기로 정하고 걸음을 옮겼다.
설악산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이곳의 다람쥐들은 겁이 없었다. 사람 주위에 얼쩡거리며 먹을 것을 받아 먹는 것에 익숙해진 듯 했다.

폭포 앞에 서니 쏟아지는 물의 양이 엄청났다. 흩어지는 물안개 사이로 무지개가 선명했다.



하산 후 차에 올라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길을 떠났다.

갈수록 풀로 뒤 덮힌 평원 일색이다. 그런데 한여름임에도 누렇게 색이 바래어 마치 늦가을 같이 보이는 게 좀 의아했다.

오후 늦게 먹거리 장만을 위해 MODESTO에 있는 코스트코에 들렀다.
양재동 코스트코와 뭐가 다른 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교양 부족한 내눈엔 박물관 가는 것 보다 마트 순례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시식코너에서 주는 샌드위치가 무척 크다.

큼직한 킹크랩 다리와 안심 스테이크를 샀다.
다시 샌프란시스코 아웃렛에 들러 지난 번에 못 산 선물 등을 샀다.
쇼핑을 마치니 오후 9시가 다되었다.
오클랜드 베이 다리를 건너려 하자 입구의 톨게이트에서 $4을 받는다. 통행료 부스를 보니 덩치 큰 흑인이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있었다. 지훈이가 한마디 한다. ‘역시 미국이다!’
다리를 건너며 고층 빌딩의 야경이 멋지게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샌프란시스코다. 괜시리 'IF YOU COME TO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FLOWERS ~' 콧노래가 나왔다.


AIRBNB로 예약한 숙소는 트윈픽스 옆에 있었다. 산 비탈을 깍아 빌라를 지어 놓은 독특한 구조다.  옥상이 입구인 셈이었다.


잠시 방문한 집주인과 만나 얘기를 했다. 뚱뚱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백인 남자다. 개를 끌고 왔다. 거실, 부엌에 개가 지나다닌 흔적이 많이 보였다.  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우리는 배어 있는 개의 오줌 냄새가 조금 불쾌했다. 2박에 50만원 인데 ... 
어쨌든 코스트코에서 사온 게와 스테이크는 맛이 좋았다.


잠자리에 올라가보니 아이들 침대가 벽장 속에 있었다. 오기 전 이 문제를 집주인과 문자로 상의했지만 별 문제 없겠거니 했는데 아이들이 갑갑해 해서 밖으로 꺼내놓았다.
AIRBNB는 표준화된 모텔이 아닌 일반 가정집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을 만날 지 모른다.  


2017. 8. 5 (토) 맑음 안개
 아침에 일어나 창 밖을 보자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안 보인다. 지훈이가 ‘여긴 원래 안개 많대.’ 라며 아는 체를 한다.
아침 일찍 트윈 픽스를 가보려고 했는 데 틀린 것 같다.
 
오늘 하루는 온전히 샌프란시스코의 아름다움을 느껴보리라 작정하고 나섰는 데 안개가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천천히 차를 몰아 롬바르드 거리로 향했다.  넓은 공간을 향유하는 미국인들이 좁은 곳에 살아야 할때 어떻게 집을 짓고 사나 잘 볼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오르막 내리막이 정말 많다.  간신히 주차를 했다. 주차를 하고 보니 벽에 '창문 깨고 가는 도둑을 조심하라' 고 써있다.  다소 불안해져서 트렁크의 물건들을 대충 덮어 놓았다.
롬바르드 거리에 서서 인파를 안내하는 흑인 아저씨에게 화장실을 물어 보았다. 저기 나무가 보이지 않냐고 싱거운 농담을 한다. 이번엔 바로 알아듣고 응수 했다.


거기서 걸어서 피셔맨스 워프로 갔다. 그야말로 인산 인해다.
피어 39에서 바다사자 떼가 노는 모습도 보았다.
 
바로 옆에 안내인을 배치하여 바다 사자의 생태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클램차우더 스프가 들어간 빵으로 점심을 먹고 전차를 타볼까 하고 28번 종점으로 갔다. 그러나 서있는 줄에 질려서 포기했다.

주차 위치까지는 심한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거의 등산이다.
문득 내려다 보니 금문교가 멀리 보이는 경치가 멋지게 들어왔다.


차를 몰아 금문교를 건넜다.
포트 베이커 공원에 들러 기념사진을 찍고 소살리토로 갔다.
부자들이 많다는 이곳은 요트 정박장이 개방되어 있었다. 갖가지 화려한 요트를 보며 역시나 최고의 오락은 뱃놀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금문교를 건너다 보니 톨게이트가 영업을 안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중에 집으로 날아온 $30의 문자를 보고 AVIS에 전화를 걸고 나서야 우리 차에 하이패스 같은 것이 붙어있었고 한번이라도 통과하면 빌린 기간 전체의 요금을 부과한다는 것을 알았다. 

 시내로 가서 길가 코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옆을 지나는 남자에게 물으니 다행히 오후 6시 부터는 무료라고 한다.
차이나 타운을 둘러보고 중국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아내 친구 현숙 씨가 볼 수 있냐고 연락이 왔다. 버클리 다니는 딸에게 전할 물건이 있어 부부가 왔다고 한다.

중국 식당에서 밥을 먹자 디저트로 포춘쿠키가 나왔다.  과자를 열자 이런 말이 나왔다.

포춘쿠키 - '네 삶이 창성 하리라.'


숙소로 돌아 오자  현숙 씨 부부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와인 한잔하며 이민 생활의 이모저모를 들었다. 현숙씨 남편은 마라톤 등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고교 동창 등과 LA에서 즐겁게 생활 하시고 계셨다.  
마지막 날 밤이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2017. 8. 6 (일) 맑음
 간밤에 술 한잔 해서일까 일어나니 8:30 이다. 역시나 주변은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안 보인다.
마침내 귀국일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식구들을 재촉해서 부리나케 짐을 싸서 싣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향해 액셀을 밟았다.
렌터카를 반납하며 물어 보니 3,550km를 달렸다. 무사히 반납하니 다행이다.

다시 긴긴 비행을 마치고 집에 오니 8/7 월요일 저녁이 되었다. 
지쳐서 버스 타긴 어려울 듯 했다. 대형 택시를 불러 집 앞까지 편안히 왔다.
아파트 문을 여니 13일간 밀폐된 공간에서 가열된 공기가 후끈하니 우리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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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가족이 한 차를 타고 12일 밤낮을 붙어 다니며 여러 가지 얘기를 많이 했다. 아이들에게서 평소 집에서 못느끼던 일면도 보았다.  지훈이는 영어 회화 학원에 등록했다. 
아이들에겐 나중에 이번 여행이 어떤 추억으로 남을 지 모르지만 우리 가족 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굵직한 이벤트였다.  나름 한다고 했지만 준비가 부족하여 놓친 부분도 있었고 예기치 못한 자연 현상으로 계획이 틀어지기 도 했다.  그러나 그 또한 여행의 한 부분이었다.   이번 여행이 애들에게 좋은 'EYE-OPENER'가 되어 세상 보는 눈을 넓힐 수 있다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램이다.


"아이리스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사히 여행 잘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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