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두 달 여행기를 올립니다. 여행지에서 전부 바로 올리고 싶었는데,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았고 일정도 빠듯해서 중후반부는 집에 도착해서 올립니다. 사진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사진까지 보시려면 제 블로그를 참조해 주세요.


블로그 주소 = https://blog.naver.com/jkahn98


2022년 7월 8일

Columbine Cabins - Alpine Ridge Trail - Ute Trail - Hidden Valley - Old Fall River Rd - Bear Lake - Saddle & Surrey Motel

산 위에 있는 평원은 한가롭고 사랑스러웠다. 그 평원 사이에 난 길에 잠시 누워 오랜만에 평온함을 맛봤다.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 보니 구름이 가까이 있었다.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듯 했다. 상큼한 꽃내음이 났다. 산에 핀 야생화가 내뿜은 것이었다. 나는 이 순간이 영원 만큼 길었으면 했다.

오랜 만에 잘 잤다. 비염이 심해진 탓에 요즘은 잠 자는 것도 힘든데, 날이 따뜻해 져서인지 비염이 덜했다. 숙소 상태도 좋아 자는 게 수월했다.

아침 9시 이전까지 로키 마운틴 국립공원(Rocky Mountain National Park)에 들어가야 해 서둘렀다. 이 공원은 요즘 방문객이 늘어 입장 예약을 받는다. 나는 늦장을 부리다 예약을 못 했다. 전날 부랴부랴 베어 레이크(Bear Lake)를 갈 수 있는 입장권 예약을 하긴 했는데, 입장 시간이 오후 4시부터 6시였다. 예약 없이 들어가려면 9시 전에 가야 했다.

아침 8시 반쯤 공원 서남쪽 입구를 통과했다. 아침이어서 대기하는 줄은 없었다. 로키 마운틴은 여름에만 온전히 열리는 트레일 릿지 로드(Trail Ridge Rd)가 핵심이다. 이 길만 따라가도 로키 마운틴을 어느 정도 느낄수 있다.

공원으로 들어서자 웅장한 로키 산맥이 펼쳐졌다. 길은 점점 구불구불 해지고 가팔라졌다. 차로 1만 피트(약 3050미터) 가량 올라간다. 우리가 들어간 남서쪽 입구에선 올라가는 길 쪽이 까마득한 낭떨어지다. 운전을 하며 고개를 잠시 돌렸더니 아찔했다. 곧이어 장관이 펼쳐졌다. 로키 마운틴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길의 정점 쯤에 알파인 방문자 센터(Alpine Visitor Center)가 있었다. 문 여는 시간이 9시 반이어서 들어가진 못했다. 그 옆에 있는 짧은 트레일을 올랐다. 거리가 0.6마일에 불과한데, 오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고도가 높아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빴다. 메마른 공기 탓에 입술도 바짝 말랐다. 올라가는 길에는 나무가 없었다. 나무가 살 수 있는 한계선(tree line)을 넘긴 영향이다. 풀과 꽃은 그럼에도 있었는데, 야생화가 지천에 피어 있었다. 야생화에선 꽃향기가 났다. 나는 야생화에서 꽃향기가 나는 것을 처음 알았다. 꽃향기는 달콤했고 상큼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엘크를 많이 봤다. 덕분에 엘크에 대해 잘 알게 됐다. 알파인 릿지 트레일에서 엘크를 봤다.

트레일을 올라 가는 길에 엘크가 있었다. 덩치는 송아지 보다 조금 컸고, 뿔이 달려 있었다. 엘크는 앉아서 가만히 있었다. 나는 엘크를 잘 보고 싶어 서둘러 트레일 윗쪽으로 올랐다. 트레일 윗쪽에 있는 바위에서 보니 엘크 다섯 마리가 있었다. 엘크는 다들 뿔이 달려 있었고, 덩치가 컸으며, 풀을 뜯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10분 정도 앉아서 엘크를 봤다. 지나던 사람들도 대부분 멈춰 엘크를 바라봤다. 엘크는 커다란 사슴 처럼 생겼는데, 사슴 보다 덩치가 크고 생긴 것도 더 잘 생겼다. 보고 있으면 왠지 계속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엘크 구경을 실컷 한 뒤 조금 더 걸어가니 해발 1만2005피트(3660미터)란 푯말이 있었다. 다 차로 가고 아주 조금 걸은 것 뿐이지만, 내 발로 걸어서 간 최고봉이었다.

알파인 방문자 센터에 들러 아이들은 도장(스탬프)을 찍었다. 로키 마운틴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국립공원이란 생각이 드니 아쉬웠다. 아이들도 아쉬운 지 방문자 센터 안에 있는 기념품을 이리저리 살폈다. 나는 커피를, 아내는 에코백을, 아이들은 엽서를 집었다. 여행 다니면서 산 것들은 집에서 쓸 때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아내는 플로리다 최남단 키웨스트에 갔을 때 커피를 샀다. 나는 그 커피를 마실 때마다 키웨스트를 생각했다. 이번에는 로키 마운틴의 추억을 가져가기로 했다.

방문자 센터 옆에는 카페도 있었다. 커피 한 잔에 3-4달러 밖에 하지 않았다. 해발 1만피트가 넘는 곳에서 마시는 커피 치곤 너무나 쌌다. 나는 이 지역에서 만든 시나몬 롤도 하나 시켜 경치를 보며 먹었다. 커피는 조금 썼고, 롤은 너무 달았지만 풍경 덕분에 그냥 맛이 있었다.

방문자 센터에서 나와 길을 조금 더 갔다. 유테 트레일(Ute Trail)을 하기 위해서였다. 유테 트레일은 로키 마운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트레일이다. 유테는 과거 이 곳에 살았던 원주민 인디언 부족이었다. 나는 그 길을 걸으며 과거 유테 인디언을 떠올렸다. 나무도 살지 못 하는 이 곳까지 올라와 엘크를 사냥하고 열매를 따먹는 광경을 그렸다.

조금 걷고 있는 데 털이 복슬복슬하고, 커다란 다람쥐 처럼 생긴 것이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마모트(Marmot)였다. 나는 마모트를 처음 봤다. 윤하가 마모트라고 해서 마모트인지 알았다. 마모트는 호기심이 많았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경계만 할 뿐 도망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한 마리가 보였고, 두 마리로 늘더니, 세 마리로 불었다. 마모트는 풀을 뜯고 땅을 팠다. 그러다 휙 가버렸고, 다시 나타나 주위를 맴돌았다. 아이들은 마모트를 보며 좋아했다. 한동안 마모트를 보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나는 목표 지점인 툼스톤 릿지(Tombstone Ridge)까진 가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재촉했다.

1마일 쯤 걸어갔을까. 사방팔방 야생화가 피었다. 야생화는 색과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종류가 10개 가까이 하는 것 같았다. 노랑색 꽃이 가장 많았고 보라색과 흰색, 파랑 꽃도 보였다. 나는 이번 여행을 하며 야생화를 많이 봤는데, 로키 마운틴에서 처음으로 향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꽃은 진하든 약하든 꽃내음이 있다. 나는 다만 인식을 못 한 것 뿐이었다. 나는 막힌 코로 야생화의 꽃내음을 킁킁 대며 맣았다. 그 향내가 상큼하고 달콤했다. 아이들은 지천에 널리 야생화를 보고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윤하는 그 모습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이댔다. 시윤이는 꽃이 좋은 지 몇 개 꺽어서 머리에 꽂고 꽃반지를 만들었다.

해발 3000미터가 넘는 유테 트레일에는 나무가 없는 대신, 야생화가 있었다. 아이들은 야생화를 보며 무척 좋아했다.

아내와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널브러졌다. 넓은 바위들이 있어 어디든 눕기 좋았다. 우리는 평평한 바위를 찾아 아예 자리를 폈다. 트레일 따위는 어떻게 되는 상관 없었다. 주변은 해발 4000미터 안팎의 커다란 산들이 둘러 싸고 있었고, 우리는 그 한 가운데 꽃밭에서 볕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이 영원 같았고, 영원이 순간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누워서 눈을 붙였는데, 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은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내도 더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우리는 그 곳에서 한 시간여 동안 평화롭게 지냈다. 그러다 산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데 아이들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지 천천히 왔다. 윤하는 연신 "이 곳이 너무 좋다"고 웃었다. 나는 웃는 아이들을 보며 웃었다.

유테 트레일에서 시간을 보낸 뒤 점심을 먹으러 근처에 피크닉 테이블을 찾았다. 지도에는 히든 밸리(Hidden Valley)에 있다고 되어 있었다. 산을 차로 내려와 히든 밸리로 가니 지붕 있는 피크닉 테이블이 있었다. 산 위쪽에 비해 기온이 높아 햇볕에서 밥 먹기가 힘들었다. 아내는 소고기 볶음을 점심으로 쌌다. 나는 밥을 쩝쩝 대고 먹다가 시윤이에게 '주의'를 받았다. 아이들은 과거 나와 아내가 지적했던 것을 우리가 하면 우리를 지적한다. 나는 할 말이 없어 "안 그러겠다"고 했다. 우리가 밥을 먹는 동안 주변에 있는 미국 사람들은 샌드위치, 과일, 과자를 먹었다. 나는 미국 사람들을 보면 늘 신기한 것이 먹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과자, 음료수, 과일, 빵, 햄을 먹는다. 내가 보기에 이런 것은 음식이 아니라 간식 정도인데, 어떻게 저렇게 큰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밥을 먹고 베어 레이크 길로 갔다. 베어 레이크 길은 별도의 예약을 해야 한다. 방문객이 특히 몰리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날 부랴부랴 오후 4시 것을 간신히 예약 했는데, 들어갈 때 시간은 오후 2시를 조금 넘겼다. 나는 혹시 갈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우리 차례가 되어 예약 바코드를 보여주니 공원 직원은 못 들어간다고 했다. 공원 내 다른 지역에서 조금 놀다가 시간 맞춰서 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티커 같은 것을 붙여줬다. 이 스티커는 나중에 다시 입장할 때 바로 통과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올드 폴 리버 길(Old Fall River Rd)로 차를 돌렸다. 못 들어갈 때를 대비해 정해둔 곳이었다. 이 길은 7월 4일부터 9월까지만 잠시 열린다. 비포장 길로 한 시간 가량을 산을 오른다. 가는 중간에 폭포도 있었다. 공원 홈페이지에서 워낙 좋다고 선전을 해서 나는 워낙 좋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미 트레일 릿지 로드를 달려서인지 감흥이 크진 않았다. 아래쪽에서 알파인 방문자 센터로 다시 올라, 같은 길을 또 내려와야 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져 오후 4시 반쯤 베어 레이크 길 입구에 도착했다. 차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 차례가 되자 직원은 스티커를 보고 바로 보내줬다. '얼마나 대단한 곳' 인지 나는 기대했다. 20분 가량을 들어가니 베어 레이크가 나왔다. 가는 길에 주차장이 만차여서 셔틀 버스를 타란 표시가 계속 나왔다. 하지만 주차장에 빈 자리가 많았다.

우리는 원래 베어 레이크 트레일과 인근 앨버타 폭포(Alberta Falls)를 가려고 했다. 하지만 아내가 무릎이 아파 잘 못 걷겠다고 해 계획을 수정했다. 베어 레이크 둘레만 잠시 걷고 나가기로 했다. 시간이 이미 늦어 빨리 나가야 하기도 했다.

베어 레이크는 작은 호수였다. 캐나다 로키의 상징인 레이크 루이스, 말린 레이크에 비하면 꼬마 호수쯤 됐다. 물 색도 에메랄드 빛인 캐나다 로키의 호수와 달리 평범했다. 하지만 이 작은 호수는 포근하고 아늑했다. 사람을 압도하는 캐나다 로키의 호수와 달랐다. 미국 사람들은 큰 덩치에 비해 아기자기 한 면이 있는데, 이 호수가 그런 느낌이었다. 우리는 천천히 걸으며 호수 주위를 돌았다. 안으로 갈수록 정감이 갔다. 이날 오후에 날씨가 흐려지더니 비가 왔다. 해가 있고 비가 와서 호수는 더 고왔다.

호수만 보고 숙소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우리는 저녁으로 립 아이 스테이를 굽고, 옥수수 밥을 짓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립 아이는 한국에서 먹던 등심과 비슷해 종종 먹는다. 내가 고기를 굽고, 아내는 밥과 찌개를 했다. 아이들이 잘 먹어 나는 덕분에 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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