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두 달 여행기를 올립니다. 여행지에서 전부 바로 올리고 싶었는데,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았고 일정도 빠듯해서 중후반부는 집에 도착해서 올립니다. 사진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사진까지 보시려면 제 블로그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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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9일

Paradise Inn - Sol Duc Hot Springs Resort

이동거리 220 mi.

눈 쌓인 산은 막막했다. 어디가 길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 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오직 바닥에 난 발자국을 따라가며 우리는 계속 올랐다. 더 오를 수 없을 만큼 갔을 때 비로소 돌아왔다.

레이니어산에 스키를 타고 오르는 사람이 많았다. 이렇게 가는 게 편한 것인지, 올라가서 시원하게 내려오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밤 새 아이들이 뒤척였다. 아이들은 좁은 침대와 싸우고, 뒤엉켜 자느라 싸웠다. 나는 아이들이 안쓰러웠지만, 자는 동안 나를 부르는 아이들을 외면했다. 잠에 취해 대꾸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새벽이 지나 아침이 왔다.

좁은 방에서 나와 로비로 갔다. 아침을 먹기 위해서였다. 아내는 베이글, 잼, 햄, 방울토마토, 상추 등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커피는 로비에 있는 카페에서 샀다. 여기에 어제 홀푸드에서 산 요거트와 우유를 먹었다. 나는 식빵 두 개를 더 먹었다. 트레일을 하려면 아침을 든든이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밥을 먹는 데 한국말이 들렸다. 나이가 일흔은 되어 보이는 노인 부부와 아들로 보이는 젊은 남자, 그리고 그 남자와 결혼한 것 같은 백인 여자가 있었다. 이들도 빵에 잼을 바르고, 딸기를 싸서 아침을 먹었다. 나는 인사한 뒤 스카이 라인 트레일(Skyline Trail)에 다녀 왔는 지 물었다. 갈 수 있을 지 계속 걱정이 됐다. 젊은 남자는 "어제 조금 올라가 봤는데 눈이 많이 쌓여 있다"고 했다. 오를 지 말 지 생각이 복잡해졌다.

체크아웃을 하고 방문자 센터로 갔다. 방문자 센터 앞에서 트레일이 시작된다. 시작점에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인솔자로 보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10여명쯤 됐다. 이들은 스키 부츠 같은 것을 신고 있었다. 눈길에서 신는 신발 같았다. 60리터는 족히 돼 보이는 커다란 배낭을 매고, 복장은 히말라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완전 무장 상태였다. 곧이어 또 다른 무리가 도착했다. 이들은 스키를 등에 매고 있었다. 인솔자와 함께 입구에서부터 스키를 신고 올라갔다. 스키는 일반 스키보다 폭이 넓고, 부츠 뒤쪽이 스키와 분리 되는 크로스 컨트리 용도로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기가 죽었다. 못 올라가겠다 싶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방문자 센터로 들어갔다. 방문자 센터는 9시반에 문이 열렸다. 레인저에게 "장비를 갖추지 않고 스카이 라인 트레일을 오르는 게 가능할 것 같으냐"고 물었다. 레인저는 "스카이 라인 루프(한바퀴 도는 경로)는 못 간다"고 했다. 루프의 오른쪽 부분은 눈이 녹아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했다. 장비 없이 갈 수 있는 곳은 글레이셔 비스타 까지라고 했다. 글레이셔 비스타는 평소에도 가는 데 한 시간 가량 걸린다고 했다. 레인저는 "되도록 스노우 슈즈를 빌려서 가라"고 했다. 스노우 슈즈는 설피 같은 넓적한 신발로, 일반 신발에 끼워서 신을수 있게 되어 있다.

레인저 말에 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내에게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고, 안 되면 돌아 나오자"고 했다. 중간에 나올 수도 있으니 스노우 슈즈는 빌리지 않기로 했다. 스카이라인 트레일은 레이니어산의 간판 트레일이다. 우리는 이 곳에 이왕 오르기로 했으니 눈이 와도 올라 보자고 했다.

트레일 시작 지점부터 눈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산을 올려다 보니 스키장에 온 것 같았다. 스키장으로 치면 중급 정도 되는 슬로프를 거슬러 올라 가는 느낌이었다. 10분 정도 오르니 앞이 10미터 정도만 보일 정도로 안개가 자욱했다. 구름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보슬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우리의 복장은 초라했다. 나와 아이들은 청바지를 입었고, 아내는 추리닝 바지 차림이었다. 신발도 보잘 것 없었다. 아내는 방수도 안 되는 등산화였고, 나와 윤하는 발목이 없는 트레일화였다. 이런 차림으로 눈 쌓인 산을 오르니 사람들이 힐끔힐끔 봤다.

20분 정도 올랐을 때 막내 시윤이가 계속 쳐졌다. 힘든 것 같았다. 내려갈 지 잠시 고민하다 올라온 것이 아까워 조금 더 가자고 했다. 가니 길이 어딘 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온 세상이 다 하얗게 변해서 애초의 길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보니 나침반 같은 것을 봤다. 우리는 그들이 지나가면 그 발자국을 따라 갔다. 발자국은 길을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발자국을 딛으면 눈 속에 푹푹 빠지지 않았다. 발자국이 난 눈은 이미 다져져서 깊게 들어가지 않았다. 발자국 없는 눈을 밟으면 무릎까지 빠졌다.

막내 시윤이는 힘들어 하면서도 열심히 갔다. 시윤이는 만 10살인데도 웬만한 어른도 힘든 길을 가곤 한다.

그렇게 40-50분을 갔다. 산길은 더 가팔라져 스키장 최상급 같은 급경사였다. 레인저가 내려오더니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글레이셔 비스타까지 간다"고 했더니, "그쪽까지 가려면 큰 경사 두 개를 더 넘어야 한다"고 알려줬다. 그러면서 방향을 가르켰는데, 우리가 가는 방향보다 20도 정도 왼쪽으로 틀어져 있었다. 발자국만 의지하며 갔더니, 다른 곳으로 갈 뻔 했다. 그는 "15-30분 정도만 가면 된다"고 덧붙였다.

글리이셔 비스타 방향은 발자국이 많이 없었다. 장비를 갖춘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 지 사라졌다. 발자국 없는 눈을 밟으면 깊이 빠졌다. 나는 더는 무리인 것 같아 "돌아가자"고 했다. 아내는 "그럼 뭐하러 여기 왔느냐"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뒤로 하고 아내는 씩씩하게 올랐다. 그 뒤를 윤하가 졸졸 따라갔다. 나는 계속 돌아가자고 했지만 아내는 그 말을 무시하고 계속 갔다. 나는 어쩔수 없이 따라갔다.

경사가 점점 가팔라져 올라가는 게 힘들었다. 그래도 방법은 있었다. 눈에 있는 발자국을 계단 삼아 올랐다. 어디가 어디인 지 분간도 안 되는 데 발자국이 있으니 길이라고 믿고 갔다. 어느 정도 올랐을 때 스마트폰을 봤다. 레이니어산에선 스마트폰이 터졌다. 구글 지도를 보니 글래셔스 비스타는 이미 지난 상태였다.

미국 최고의 등산로로 꼽히는 레이니어산의 스카이라인 트레일은 6월 중순인데도 눈에 덮혀 있었다. 우리는 눈과 사투를 벌이며 기어코 올랐다. 스카이라인 트레일의 글래셔스 비스타를 지나고 있다.

우리는 바위가 있는 곳에 앉아 쉬었다. 바로 앞에 파노라마 포인트가 있었다. 어제 산 육포를 우적우적 뜯어 먹었다. 육포는 처음 사 본 것이었는데 짜고 매웠다. 스프 건더기 같은 맛이 났다. 배고픈 우리는 육포 한 봉지를 금세 다 비웠다.

내려가는 길은 더 어려웠다. 나는 다리가 풀려 허우적 댔다. 아이들은 눈썰매를 탄다며 높은 경사에서 앉아 굴러다녔다. 시윤이는 바지가 다 젖었는데,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썰매를 탄다며 앉아서 기었다. 나는 힘든데, 아이들은 신이 났다. 나는 아이들이 어디서 힘이 솟는 지 의아했다.

위쪽에 올라오니 스키 타는 사람이 많았다. 보드를 타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그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거리를 두고 갔다. 이런 곳까지 스키를 매고 오는 열정에 감탄했다. 눈이 물기를 머금어 잘 뭉쳐졌다. 이런 날 스키타는 것은 위험하다. 나는 전에 질퍽이는 눈에서 스키를 타다가 넘어진 적이 있다. 그 때 발목을 다쳐서 몇 달을 고생했다.

간신히 시작 지점까지 내려오니 두 시가 다 됐다. 우리는 세 시간 반 동안 트레일을 했다. 너무 지치고 배고파 녹초가 됐다. 파라다이스 인 로비로 들어가 아내가 싼 도시락 점심을 먹었다. 몸을 녹이려고 컵라면도 먹었다. 다 먹은 뒤엔 바로 레이니어산을 내려왔다. 중간중간 전망대와 트레일이 있었지만 뒤도 보지 않았다. 5시간 가까이 달려 올림픽 국립공원에 가야 했다. 올림픽 국립공원은 미국 서, 북쪽 끝에 있다. 캐나다와 맞닿은 지역이다.

가는 길에 졸지 않으려고 애썼다. 추운 곳에서 트레일을 한 뒤 차에 오르니 눈꺼풀의 무게가 1톤쯤 됐다. 가족들은 모두 곯아 떨어졌다. 간신히 졸지 않고 포트 앤젤레스(Port Angeles)까지 세 시간 반 만에 갔다. 이 곳에서 우리는 저녁을 먹기로 했다. 스트레이이트 슬라이스 피자(The Strait Slice Pizza)란 곳이었다. 구글 평점이 4.7이나 됐다.

피자집에는 사람이 많았다. 우리 차례가 되어 주문을 하려는 데 "오븐 한 개가 고장나서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고민하다 이미 만들어진 피자를 데워서 달라고 했다. 의외로 맛있었다. 뭐든 다 맛있을 만한 상황이기도 했다. 피자집에서 한 시간을 더 달려 숙소인 솔덕 핫스프링 리조트(Sol Duc Hot Springs Resort)에 도착했다.

이 곳은 유황 온천이 유명한 곳이다. 온천은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우리는 저녁 8시 넘어 도착했는데 9시에 마감이었다.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온천으로 갔다. 온천은 메인 탕이 있고, 좁은 탕과 아이들 탕이 별도로 있었다. 한켠에는 찬물이 있는 수영장도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온천물에서 달걀 썩은내가 났다. 유황 냄새였다. 아내는 "진짜 유황온천이네" 하며 좋아했다. 아내와 훗카이도의 온천에 갔을 때 나는 이 냄새를 처음 맡았다. 온천물에 몸을 담그니 미끌미끌했다. 아이들은 선크림을 바르지 않아 얼굴이 다 탔다. 눈이 내린 산은 햇볕이 강해 얼굴이 금세 탔다. 벌겋게 달아 오른 채 탕에 들어가니 얼굴이 더 붉어졌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 온천을 하고 나가야 겠다고 하고 잤다.

설산은 위험하다. 그 산을 오르려면 장비를 갖추고 사람들과 같이 가야 한다. 우리는 무모한 것인지,용감한 것인지 그냥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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