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두 달 여행기를 올립니다. 여행지에서 전부 바로 올리고 싶었는데,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았고 일정도 빠듯해서 중후반부는 집에 도착해서 올립니다. 사진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사진까지 보시려면 제 블로그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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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6일

물 색이 온통 에메랄드 빛이었다. 강도, 호수도 이보다 더 고울 순 없을 것 같았다. 산은 높고 깊었다. 산 위쪽에는 눈이 쌓였고, 아래쪽에는 키 큰 삼나무 숲이 이어졌다. 산과 나무, 강과 호수, 하늘과 구름. 이 세상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 품은 듯 한 곳이었다.

트윈 픽스 리조트는 재스퍼 국립공원(Jasper National Park Of Canada)으로 가는 길목에서 머물기 좋은 곳이었다. 숙소는 충분히 넓었고, 바베큐 그릴 등 필요한 것이 대부분 있었고, 주인의 인심은 넉넉했다. 그러고도 1박 가격은 160달러쯤 했다. 재스퍼 안에선 이 두 배를 주고도 훨씬 뒤쳐진다.

우리는 주인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길을 나섰다. 주인은 개 4마리를 키웠는데, 그 중 송아지 만한 덩치큰 개가 뛰어와 깜짝 놀랐다. 주인은 "덩치 큰 치킨(겁쟁이)"라며 웃었다. 또 "로키 산맥 최고봉인 롭슨산(Mount Robson), 말린 호수(Maligne Lake)는 꼭 가보라"고 권했다.

롭슨산은 발레마운트(Valemount)에서 재스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었다. 애써 찾지 않아도 커다란 산봉오리가 위압적으로 우뚝 솟아있어 차에서 가는 내내 보였다. 롭슨산 방문자 센터(Mount Robson Visitor Centre)는 도로 바로 옆에 있었다. 계획했던 곳은 아니지만 숙소 주인의 조언을 듣고 들렀다. 센터의 영문 표기를 미국식인 'Center'가 아닌, 영국식 'Centre'로 한 것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주립공원에서 '주립'의 표기를 State가 아닌, 'Provincial'이라고 쓴 것도 독특해 보였다. 윤하는 "캐나다는 주가 아닌, 프로빈스(Province)로 나눈다"고 아는 체를 했다. 윤하는 미국 학교에서 세계 주요 나라에 대해 배운 것을 잘 써먹었다. 나는 이런 윤하를 보면 늘 대견하다.

방문자 센터 뒷편으로 가니 롭슨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롭슨산은 높이가 4000미터 가까이 됐는데, 거대한 로키 산맥의 캐나다 최고봉 치곤 그렇게 높아 보이진 않았다. 롭슨산에서 재스퍼 국립공원 드라이브 스루 매표소 까진 30분 가량 걸렸다. 직원은 재스퍼에 며칠 있을 것인지, 밴프도 머물다 갈 것인지 물었다. 나는 재스퍼 2박, 밴프 1박을 할 것이라고 했다. 직원은 70달러 조금 안 되는 금액을 내라고 했다. 돈을 내니 영수증을 출력해서 위, 아래로 테이프를 붙인 뒤 건네줬다. 차 앞쪽 유리창에 붙이고 다니라고 했다.

방문자 센터에서 조금 가니 재스퍼 마을이 나왔다. 캐나다 국립공원이 미국 국립공원과 다른 점 중 하나는 국립공원 안에 영리 목적의 사업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국립공원 내 숙박, 식당 등 돈 받는 대부분을 국립공원이 운영한다. 재스퍼 공원 안에는 호텔 체인이 즐비했다. 페러몬트 등 고급 호텔 브랜드도 있었다. 가격은 매우 비싼 편이어서, 2-3성 호텔이 400달러 안팎 했다.

오늘 트레일은 말린 계곡(Maligne Canyon)에서 하기로 했다. 재스퍼 마을에서 10분쯤 가면 나왔다. 트레일은 협곡을 따라 있는데, 우리는 다섯번째 다리(Fifth Bridge)에서 시작,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찻집(Tea House)까지 가는 것이다. 이렇게 왕복으로 다녀오면 2시간 가량 걸린다고 나와 있었다. 거리는 4.2킬로미터쯤 됐다.

우리는 트레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밥을 먹었다. 재스퍼로 들어오자 시간대가 바뀌었다. 원래 오전 11시쯤이어야 하는데, 한 시간 뒤로 늦춰져 12시였다. 당초 계획은 서둘러서 트레일을 돌고 밥을 먹는 것이었다.

다섯번째 다리 앞은 말린 계곡을 흐르는 거센 물줄기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그 강을 바라보며 자리를 펴고 밥을 먹었다. 좋은 자연에서 밥을 먹으면 너무 맛있다. 나는 부모님 세대가 산, 강, 들에만 가면 자리를 펴고 밥을 먹는 광경을 많이 봤다. 우리는 좋은 것을 보면, 꼭 뭘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민족인 것 같다. 미국, 캐나다 사람들도 피크닉 테이블에서 먹긴 했다. 하지만 그들은 주로 샌드위치와 과일, 과자를 먹었다. 우리 처럼 굽고, 끓이고, 지지는 음식은 잘 먹지 않았다.

트레일은 경치가 대단했다. 말린 계곡물이 거세게 내려오는데, 그 빛이 초록색이었다. 그 초록은 나뭇잎의 초록이 아니라 에메랄드 빛깔의 초록이었다. 나는 그런 초록색 물을 바하마의 바다에서, 하와이의 바다에서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계곡, 강의 물이 초록인 것은 처음 봤다. 나는 그 빛깔을 넋 놓고 봤다. 아내도 비슷했는 지 연신 사진을 찍었다. 올라가는 길은 좁았다. 건너편에서 사람이 오면 비켜주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 쪽은 에메랄드 빛의 계곡물이 내려오고, 멀리 보이는 산은 눈이 덮여 있어서 절경이었다. 아내는 그 풍경을 보며, "재스퍼가 다 이겼네" 했다. 한 달 넘게 미국 국립공원을 다니며 입이 떡 벌어지도록 절경을 봤지만, 재스퍼의 절경에 비할 바 아니었다.

트레일은 계곡 윗쪽으로 올라가면서 5,4,3,2,1 순서로 다리가 나왔다. 다리와 다리 사이의 거리가 점점 작아져서 다리 3 부터 다리 1 까진 10분 정도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관광객도 많아져서 구경하고 사진찍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다리 1 쪽에 주차하고 3 까지만 도는 듯했다. 중국인, 인도인 관광객들이 특히 많이 보였다. 다리 번호가 작아 질수록 계곡은 좁았다. 다리에 서면 계곡이 내려다 보였는데, 약 50미터 아래 쯤이었다. 계곡이 좁아 간신히 물이 보였다. 계곡 물이 거세게 흘러 계곡이 좁은 지역에선 바람이 셌다. 그 바람은 에어컨 바람 처럼 찼다. 계곡 아래에는 6월 하순인데도 녹지 않은 얼음들이 보였다. 이날 낮 기온은 23-24도쯤 했는데, 햇살이 뜨거워 그늘이 없으면 30도 처럼 느껴졌다. 계곡의 바람 덕분에 트레일을 하며 크게 덥지 않았다.

우리는 내려올 때 더 빠르게 갔다. 시간이 오후 3시에 가까워 숙소 체크인을 곧 해야했다. 나는 "트레일 끝나고 체크인을 하자"고 했고, 아이들은 "다른 곳도 가자"고 했다. 나는 이 다음 일정으로 말린 호수에서 카약을 타려고 했다. 아이들은 말린 호수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카약이 타고 싶어 빨리 가자고 했다. 아내는 내려가면서도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풍광이 너무 좋아 어쩔줄을 몰라했다. 아내는 좋으면 사진을 많이 찍는다. 나는 늘 그런 아내를 보채 빨리 가자고 한다.

말린 계곡에서 말린 호수까진 50분쯤 걸렸다. 가는 길에 차들이 모여 있어 섰더니 무스(Moose)가 있었다. 무스는 사슴 처럼 눈이 크고 순하게 생긴 동물이다. 덩치는 사슴보다 훨씬 커 소 만 하다. 무스는 뿔도 엄청나게 커서 아름답고 위압적이다. 나는 전에 본 엘크(Elk)인줄 알았다가 사람들이 무스라고 외쳐서 무스인 줄 알았다. 사진 찍는 사람에게 한번 더 확인했더니, 무스라고 확인해 줬다.

무스는 도로 옆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잡풀 중에 잎사귀가 큰 것을 주로 먹었다. 수 십여명의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어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우리도 계속 구경을 하는데, 반대편에서 캠핑카가 도로 한 가운데를 막고 사진을 찍었다. 캠핑카는 큰 소리를 내며 사이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그 소리에 무스가 놀라 쳐다봤다. 이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서 있었다. 이 차 뒤로는 10여대의 차가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종종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이 헷갈리는데, 이런 것은 괜찮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뒤에 차들은 그렇다고 빵빵 대거나 보채지 않았다.

나는 그 꼴이 보기 싫어 가던 길을 다시 갔다. 조금 가다가 또 차들이 모여 있었다. 이번에는 곰이었다. 재스퍼에 많이 산다는 흑곰(Blackbear)이다. 키는 2미터쯤 했고, 몸무게는 200킬로쯤 나가 보였다. 곰 중에선 다소 작은 편이었다. 이 곰은 도로 옆 풀숲에서 땅을 파고 무언가를 캐서 먹었다. 우리 차는 그 때 곰 바로 옆에 있었는데, 곰이 차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깜짝 놀라 차 유리창을 올렸다. 이 탓에 조수석에서 곰을 찍고 있던 아내의 손이 낄 뻔 했다. 아내는 바로 앞에서 곰 찍을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나는 멋쩍어서 아내에게 다칠까봐 그랬다고 했다. 아이들은 아빠가 겁먹었다며 낄낄 댔다. 곰은 그러거나 말거나 도로 한 가운데로 나와 뚜벅뚜벅 걸었다. 그러다 반대편에서 차가 오자 차도 밖으로 나가 차를 보내줬다. 무스든, 곰이든 관광객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다 제 갈 길을 갔다.

말린 호수에 도착하니 4시가 넘었다. 우리는 옷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말린 호수 렌털숍에 갔다. 하지만 렌털숍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빌리는 시간은 4시까지, 반납은 5시까지였다. 나는 온라인에서 5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해서 카약을 빌릴수 있는 줄 알았다. 하는 수 없이 호수 주변에 머물렀다. 아이들은 또 나를 탓했다. 아이들은 여행 중 뜻대로 안 되면 아빠 탓을 많이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나는 아이들을 잘 못 키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서운한 맘도 들었다. 아내가 눈치를 챘는 지 아이들을 혼냈다. 나는 못 듣는 척 가만히 있었다.

멀린 호수는 보는 것만도 충분히 예뻤다. 레이크 루이스와 함께 재스퍼, 밴프를 대표하는 호수란 말이 괜한 것은 아니었다. 호수에는 투어 하는 보트, 카약(노가 양쪽으로 있는 배), 카누(노가 한 쪽으로 있는 배), 패들 보드(서핑보드 같은 것에 노를 젓는 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윤이는 심술이 났는 지 그런 사람들을 쳐다보며 한참을 뾰루퉁 했다.

말린 호수에서 시간을 보낸 뒤 한 시간 가까이 재스퍼 빌리지 쪽으로 돌아와 숙소로 갔다. 숙소는 테카라 롯지(Tekarra Lodge)란 곳이었다. 여기는 별채로 되어 있고, 주방이 있어 예약한 곳이다. 우리는 숙소에 도착한 뒤 실망했다. 400달러 넘게 준 곳 치곤 좋지 않았다. 숙소는 작았고, 기대했던 바베큐 그릴은 없었다. 그 전 숙소 만도 못한데 가격은 세 배 가까이 했다. 재스퍼 공원 안에 있다는 것을 감안해도 비싸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이 숙소에선 재스퍼 마을을 가로 지르는 에쎄베스카 강이 보였다. 방에서 보이는 것은 아니고, 조금 나가야 했다. 숙소에서 보는 강의 모습도 좋았다. 우리는 저녁 밥으로 립 아이 스테이크를 구워서 먹고, 전망 좋은 곳에 앉아 조금 지내다 왔다. 아이들은 마시멜로를 장작불에 구워서 비스킷과 초콜릿 사이에 샌드위치 해서 먹었다. 아내는 요즘 너무 잘 먹어서 가족들 모두 살이 찐 것 같다며 걱정했다. 군것질을 안 해야 하는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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