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Europe with kids no 5.

2007.06.08 18:59

송은 조회 수:3787 추천:49

에구 이제 자야하는데 탄력받아서 다 쓰고 자련다.

할슈타트 5박 하면서 간 곳 중 제일 별로였던 곳은 오히려 잘츠부르크였다.

애들이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를 워낙 좋아하고 노래를 다 외워 따라부를 지경인지라

기대를 많이 한 곳인데,

역시 작아도 도시는 도시, 우리 가족은 도시보다는 자연을 좋아한다는 것을 재확인.

비싼 주차비에, 점심 싸게 먹어보려고 들어간 샌드위치 집에서 3유로짜리

샌드위치 고르고 좋아라 하다가 정작 내가 고른 새우 몇 마리 든 샐러드가 무려 17유로!

소스를 뿌려놓아서 무를 수도 없잖아잉..

그래도 참 맛있었다. -긍정적 사고방식이 여행의 최고 필수품.



모짜르트 집은 6유로의 입장료가 아까울 정도로 별게 없었다. 모짜르트 머리카락 몇 가닥

전시된게 좀 볼만했달까?

미라벨 정원은 좋은 시민의 휴식처이겠지만, 천하 절경과 그림같은 마을들만 2주 내내

보다가 들른 관광객의 눈에는 그냥 평범했다. 영화에 나왔다는 것 뿐이지..

잘츠부르크에서 좋았던 것은 막연히 영화에서 나오는 성이 올려다보이는 언덕길을 찾아보려고

낑낑대며 계단을 올라 언덕길을 걷다가 내려다 보고 올려다 본 풍경들.

- 좋았던 것은 이 언덕길에는 관광객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 나는 인간혐오자일까?



여행책자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모짜르트 초콜렛은 큰 딸내미의 현명한 제안대로

우선 낱개로 파는 것 한 개씩 먹어보기로 했는데, 책자에 서술된 켜켜이 초콜렛을 감싸고

있다는 캬라멜 등등은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스니커즈 풍의 잡다한게 많이 든

초콜렛을 좋아하는 우리에겐 낙제점의 달기만 한 초콜렛이었다.



가장 기대했던 헬브룬 궁도 가까스로 합격점 정도.

유럽여행에 대한 애들의 관심도를 인위적으로라도(?) 올려보려고

bedtime story로 유럽 각 명소를 손오공 일행이 떠돌며 각종 해프닝을 벌이는 이야기를

시리즈로 해 주었었는데, 헬브룬 궁에 대해서는 정원을 산책하면

오만군데에서 갑자기 물이 뿜어져 나오는 스릴 넘치는 곳으로 묘사를 했었다.

그런데, 정작 가보니 가이드 따라 다니며 가이드가 기계장치를 조작하면 물이 뿜어져 나오는 데다가,

특정 몇몇 곳에만 물이 흥건하게 젖어 있어 얼마든지 예측이 가능한 것이었다.

가이드는 손님들이 물에 많이 젖지 않도록 쓸데없는 배려를 하고 있는 듯 했고.

애들은 대실망이었다. 애들 데려가는 부모님들은 역발상으로 물이 뿜어져 나올 만한 곳으로

가족을 일부러 끌고가서 물을 비명을 지르며 피해다니도록 해야 재미있을 것 같았다.





여하튼, 이렇게 할슈타트 5박을 잘 마치고, 지금은 다시 인스부르크 쪽의 Natterer See 캠핑장 객실로

돌아왔다. 다음주에는 유로파파크에서 놀고, 스위스 그린델발트에서 피르스트 하이킹을 한 후

로이커바드에 가서 온천풀장에서 놀 예정이다. 그리고는 주말에 다시 여기로 돌아와서

일주일간 푹 쉴 예정이다. 이제 여기가 집 같다.

쉬고 나면 이탈리아 베로나 쪽으로 2시간 반 정도 가서 캐러비언 베이 풍의 워터파크

아쿠아 파라다이스에서 하루 놀고 돌아올까 궁리중이다.



이렇게 즐겁게 놀 것이 많은데,

왜 처음 여행을 계획하고 시작할 때에는 무슨 유럽 필수 찍고 턴 총정리 같은 일정에

매달렸을까.



자평해 보건대, 경제원리에 대한 착각 때문이 아닐까 한다.

흔치 않게 찾아온 장기간의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마치 두달 내에 다시는 유럽에 올 필요 없을 정도로 들를 곳을 다 끝내야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다.



유럽에 원수진 것도 아니고 왜 생전 다시는 안 오기 위해 용을 써야 하나.

그리 갈 곳이 많으면 사탕 아껴 먹듯이 한 입 한 입 아껴 먹으며

긴 인생, 다음에 또 올 거리를 남겨 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경제원리대로 하려면 이 여행을 통하여 최대의 효용/만족을 끌어내야 한다.

그런데, 애들 및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곳은 도시/미술관/유명 관광지가 아니다.

이름이 있던 없던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고, 사람들이 친절하고 깨끗하며 안전한 곳이다.

아이들은 신나는 놀거리가 있는 곳이다.

실제로 여행 전반부 한 달 동안 오만 유명하다는 곳들을 누볐지만

지금 기억나는 것은 별로 없고, 힘들었던 기억 뿐이다.

후반부 접어든 스위스, 오스트리아에서의 2주는 즐겁고 행복하다.

가족들이 느끼는 효용의 총량이 실제로 여행 도중에 최대화되는 것이 성공이지,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필수 코스를 빠짐 없이 돌았다는 자체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파리고 런던이고 로마고 내가 좋아야 좋은 거지

가서 즐겁지 않으면 안가면 그만이다. 안 간다고 인생에 손해 날 것 없다.





마찬가지로, 여행계획 단계에서는 경제적 부담감 때문에,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싼

숙소를 잡을까를 엄청 고민했었다.

그런데, 실제 다녀보니 10유로를 아끼려다가

눅눅하고 냄새나는 이불에서 잠을 설치는 경우와

10유로 더쓰고 뽀송뽀송하고 향기나는 이불을 덮고 꿈나라로 가는 경우를 비교해 보면

무엇이 낭비일지 돌아보게 되었다. 사치할 의사도 능력도 없지만,

그렇다고 유럽까지 가족을 끌고 오면서 숙소나 식사의 선택기준이 무조건 싼 것이라면 말이 안된다.

가족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것 중에서 가능한 한 경제적인 것을 고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요약하면, 돈은 더 쓰고, 일정은 더 줄이는 것이 즐거운 여행의 비결이었다.

그런데, 계획세울 때는 반대로 돈은 덜 쓰고, 일정은 더 늘여보려고 용을 쓰면서 이것이 경제적이라고

생각했으니 우스운 일이다.

100만원으로 20일 여행하면서 힘들고 쪼달려서 주관적 만족도가 0에 수렴하거나 심지어 - 가 되는 경우와

100만원으로 일주일 쾌적하게 여행하면서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기는 경우를 비교할 때 무엇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것일까?

자기 예산에는 한계가 있으니, 그 예산 범위 내에서 즐겁고 쾌적한 여행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여행을

해야지, 억지로 무리한 절약으로 여행기간과 일정만 줄줄 늘인다고 총 효용이 비례해서 커질리 없다.



....횡수가 되어가는 듯 하여 이제 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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