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웨이를 눈썹을 휘날리며 달려간..
첫날 우리가 도착한 곳은...
솔트레이크시티가 아닌...
그랜드캐년을 코앞에 둔 어느마을의 모텔..
무슨 마을인지는 모르겠다..(무슨 여행기가 이러냐...)
인터넷으로 숙소를 예약해둔..
케이형...
넓은 정원에...단층짜리 건물들로 이루어진 모텔...
일반적인 모텔이라기보다는 펜션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칼라풀한 침구와 몇점의 그림으로 인해..부티크호텔같은
아기자기한 느낌이 든다..
우리옆방에는 금발의 양넘커플이..묵는듯..
방입구 테라스에 앉아 기타를 치며 놀다가
하이! 하며 인사를 한다..
하여간..인사성 하나는.....
다음날아침..
식당에서...정말 심플하게 차려져있는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로 아침을 때우고 있으려니..
주위에 아무도 보이지않아..
꼭 뭐 훔쳐먹으러 들어온 사람들 같은 느낌이...
마침내 도착한 그랜드캐년...
노오스 림..
그런데..별 감흥이 없더라..
너무 기대가 큰탓이었을까...
저기 밑에 흐르고있는 콜로라도 강도...
중첩되어 펼쳐지는벌건색 땅무더기들도..
그다지..와..하는 느낌이 들지않는다..
뭘까..뭘까..왜일까...생각해봤는데...
아마도..조명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해뜰무렵이나..해질녁의 절묘하게 명암이 드리워진 풍경이어야만..
그랜드캐년의 진가를 맛볼수있을것 같은데...
태양이 내리쬐는 낮시간에는 원근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인지..
기대보단 밋밋하다..
그렇게..올나이트비슷하게...부어라 마셔라하면서..
인생전반에 걸친 진지한이야기로 거품을 물다가...
깜박 졸았다 눈을 뜬순간...
시계가...7시50분이었다...
벌떡 일어난 나..케이형과 와이프를 깨웠다..
잠결의 와이프도 깜짝놀라 일어나며..후다닥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8시30분에..라스베가스로 떠나는 그레이하운드를 타기로
예약 되어있던거였다...비행기를 타도 되긴했지만..
꼭 한번 버스여행을 해보고싶었던 터였다..
5분만에 짐을싸고...케이형은 차의 시동을 걸고..
차안에서 눈꼽떼면서...
그렇게.. 버스터미날을 향해 달렸다..
아니나 다를까...불난 목욕탕 마냥 급하게 뛰쳐나오다보니..
점퍼다..선글라스다..펼쳐놓았던 수많은 물품들을
챙기지못하고..나왔던지라...몇달뒤에..케이형이 한국오면서..
가지고 왔더라...
버스터미날에 도착하자..출발 3분전...
부리나케...티켓팅을 하고...어수선하게..케이형과..작별인사를한후..
버스에 오른 우리부부...
운전사뒷자리 빈좌석에 앉으려다..기사에게..욕들어먹고...
(운전사 뒷자석은..장애인석)
결국..와이프는..입구쪽의 어떤 백인여자 옆자리에..
나는..맨뒷자리..화장실옆...흑인아저씨들과..히스패닉아저씨들과의
공동좌석으로...
극과극 완전한 이산가족이 되어버렸던것인데...
유색인종들이 살기엔 너무심심할것같은 도시인..솔트레이크시티
..거리에서..눈에 띄는사람은 거의다 백인들인데..
라스베가스행 그레이하운드 버스안에는 흑인과 히스패닉 일색이다..
하긴..차없이..생활한다는게 거의 불가능한 미국에서..
차없는 사람들은..사회의 하층을 이루는 사람들일수밖에 없겠지만..
그사실이 나로서는.. 얼마나 다행스러웠던지 모른다..
버스가 출발한지 얼마되지않아..
화장실변기를 부여잡고..울부짖기 시작한 나...
첫째는 버스에 화장실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고...
둘째는..주위의 동료들의 인간미 어린..반응들이 다행스럽다..
바리 바리 오바이트하면서..헬렐레..하고 있는나에게..
흑인아저씨와 히스패닉아저씨들은..경멸의 시선대신에...
내가 화장실에서...눈풀린 상태로 나올때마다...
"아유 오케이"하면서..진정 걱정스러운 표정으로...물어주더라..
친구들 중에..비슷한 사람들이 많아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때부터...
화장실은..나의 독무대...
9시간인가..뭔가하는 ..부산에서..평양거리보다도 긴 거리를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달리는 와중에...
내가..주로 시간을 보낸 자리는 좌석이 아니고...
흔들리는 변기앞이었다..
휴게소에 내릴때마다...
안타까움과..책망이 섞인 와이프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역시나.. 제일 먼저향해야만했던곳은..휴게소 화장실...
앞으로 내가..평생 미국 화장실을 이용할 시간보다도..
(갈일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더많은 시간을 그렇게..
그레이하운드 화장실에서 보낼수밖에 없었던거였다.
와이프와 손을 꼭잡고..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창밖경치를 즐기면서..라스베가스로 가고자했던 버스여행이..
변기를 부여잡고..울부짖는 여행이 되고만거였다..
해질무렵...어둑 어둑함속에서..더더욱빛을 발하기시작하는
라스베가스의 현란한 네온사인불빛을 바라보던...
핼쓱한 얼굴의 한 인물이 있었으니...
눈과 다리는 풀려있었고...머리속은..진공상태 그자체였다..
리빙 라스베가스의 니콜라스 케이지의 막판모습을...
이제 막 라스베가스에 들어서면서부터..연출하고 있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