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4.06 22:26
런던을 떠나며
아침 7시 민박집을 나서는데 추적 추적 비가 내린다. 비 때문에 짐이 젖지 않을까 걱정을 하는데, 진영이가 영국에서 비오는 것도 구경을 하고 간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런던의 날씨는 비가 자주 오고 흐리며 햇빛을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다고 하는데, 우리는 운좋게도 관광할 때 비가 오거나 흐리지 않고 아주 맑은 날씨여서 다행이었다.
비를 맞으며 무거운 짐을 질질끌고 빅토리아 코치스테이션까지 갔다. 스테이션 내에는 밤샘한 것으로 보이는 몇몇 관광객들이 첫차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가 탄 버스는 내셔널 익스프레스 코치. 나이가 지긋하고 친절해 보이는 버스기사에게 도버까지 갈거라고 얘기한 뒤 버스를 탔는데, 버스안은 화장실까지 갖춰진 아주 편안한 고급 버스였다. 버스는 직행은 아니었고, 중간 중간 정류장에 멈춰섰다. 비가 내리는 런던을 빠져 나오며 버스에서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겼다.
똑같은 곳에 가서 비슷한 경험들을 하지만 그 느낌과 평가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모양이다. 그간 여행기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영국은 이제 "해가지는 나라", 이성씨의 경우에는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 숨죽이고 사는 사람들의 나라"라고 그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글들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나역시 아마 그럴 것이라는 공감대와 선입감을 가지고 갔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게 아니었다. 가는 곳마다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거리는 활기를 띠고 있었다. 토요일 저녁 음악회를 즐기기 위해 넓고 푸른 공원에 가족단위 혹은 연인끼리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의 밝은 표정에서, 버킹엄 궁전 앞에 모여든 엄청난 관광인파에서, 오히려 런던은 희망과 역동적인 도시로 비춰지고 있었다. 흐리고 우충한 날씨에 거리의 분위기는 음산할 것이라는 생각도 빗나갔다. 화창한 날씨에 거리는 활력이 넘쳐나 보였고, 결코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마다 깨끗하게 차려입은 옷차림에서 어딘가 신사다운 기품이 묻어 있었다.
역동적이라고 하는 표현은 다소 지나친 과장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눈에 영국은 여전히 저력과 정중동의 활력이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다. 비록 경제가 기울어져 가고 로마처럼 웅장하거나 파리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관광과 문화산업 만큼은 여전히 선진 강국이었다. 언젠가 꼭 다시한번 찾고싶은 멋진 문화도시로 그 여운이 가슴에 진하게 남아있다. 어쩌면 이번 유럽여행에서 첫 여행지, 강한 첫 이미지 효과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와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비틀즈의 고향 리버풀에 가보지 못한게 다소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설혹 볼거리를 다 못보고 왔어도 훗날을 위해 남겨두었다고 위안하며 여유를 가져야 겠다. 기회는 만들기 나름아닌가? 비록 중년에 접어든 삶이지만 행복은 남겨둔 꿈을 실현하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버스가 런던 시내를 벗어나면서 차창에는 비에 젖은 푸른 들판과 숲들이 펼쳐지고 켄트 지역에 이르니 집집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푸른 잔디와 잘 가꾸어진 정원을 가진 예쁜 집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으로 비춰진다. 미국 샌디에고 코로나도 섬의 예쁜 집들이 다분히 인위적인 느낌이었던 반면에 이곳의 집들은 주변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잘 이룬 자연친화적인 느낌이 강하다.
드디어 도버항구에 도착했다. 어제 표를 끊으며 창구에서 버스를 탄채 여객선에 올라 프랑스 깔레까지 가는 것으로 분명히 확인을 했기 때문에 내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데, 운전기사가 이곳에서 내리란다. “아니 우리 이곳에서 안내려요. 이 버스타고 계속 갈건데요?”라고 했더니 이곳에서 내려야 한단다. 처음에 이 아저씨가 잘못 알아듣는 줄 알고 “우리 이 버스탄 채 깔레까지 그냥 갈거예요”했더니, 이 버스는 깔레까지 가는 게 아니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하니 이곳에서 내려야 한단다. 헐~ 어제 표를 끊으며 분명히 버스를 탄채 가는 것으로 얘기를 들었는데, 내가 잘못 들었나? 버스안의 승객들이 일제히 우리를 쳐다 보고 있다. 이곳에서 당연히 내려야 하는데, 우리가 떼를 쓰고 있는 모양새였다. 무안함을 느끼며 버스에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버스에서 내리고서야 이곳이 여객선 터머널이고, 우리가 탔던 버스의 종점도 이곳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도버해협 횡단
비를 맞으며 짐을 끌고 여객터미널 안으로 들어가니 창구에서 어제 끊은 표에 여객선을 탈수 있도록 체크를 해주며, 이층 Immagration으로 가라고 한다. 여권을 보여주는 것으로 형식적인 프랑스 입국심사를 마치고 여객선에 올랐다.
여객선은 P&O Stena line( http://www.poferries.com )이었고, 레스토랑과 샵들이 여러 개가 달린 무척 큰 호화 여객선이었다. 비가 약간 뿌리는 흐린 날씨에 바다에는 작은 파도가 있어 울렁거림이 조금 있었다. 여객선 위에서 바라보는 도버해안은 하얀 석회석 절벽으로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이 30km 남짓한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섬나라 영국과 거대 대륙의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숱한 대치와 경쟁을 해왔고, 지금까지도 여러면에서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영미법과 대륙법으로 구분되는 법체계와 정치체제 면에서 한편은 의회중심이요, 다른 한편은 대통령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취하고 있다. 도량형 등 각종 제도와 사용하는 언어도 판이하게 다르다. 자동차 통행방식은 영국은 왼쪽, 프랑스는 오른쪽으로 하고 있으며, 문학과 예술에 있어서 영국은 시와 문학으로, 프랑스는 미술로 대표되고 있다. 사람들의 기질은 영국인은 위스키처럼 투명한 지성을 갖고 있는 데 반해, 프랑스인은 포도주처럼 달콤한 감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런던과 파리는 3시간만에 주파하는 해저터널을 통과하는 고속철을 이용하게 됨으로써 영국은 이제 더 이상 섬나라가 아닌 사실상 대륙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예전에 두 나라간 수송을 주로 담당했던 여객선은 해저터널 고속철에 손님을 많이 빼앗기고 있는 실정이어서 여객선 업체간 출혈 경쟁이 심하다고 한다. 그런 덕분에 저렴한 비용으로 이런 사치스런(?) 여객선도 타보게 되는 셈이다. 어쨌든 이제 도버해협을 건너 자동차를 이용해 자유로운 유럽여행을 시작한다고 생각이 가슴이 벅차오른다.
차량 픽업
1시간 15분의 항해끝에 드디어 프랑스 땅 깔레에 도착했다. 깔레는 교통의 요지로 영국의 도버와 최단거리에 위치해 있다. 배에서 내려 셔틀버스를 타고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니 그안에 내셔날과 푸조가 같이 사용하고 있는 렌트카 사무실이 있었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 렌트카 픽업시 프랑스 인들은 점심시간을 철저히 지키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도착하면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2시간 동안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국내에서 렌트카 계약시 이 시간을 피해 런던에서 일찍 출발하여 픽업시간을 11:40분 정도로 계약을 하고 갔으나, 도착시간이 점심시간에 걸릴 것 같아 전날 영국에서 14:00경에 픽업할 것이라고 푸조 사무실에 미리 전화를 해두었다.
간단한 기능 확인과 함께 주차장 한바퀴를 돌고 난후 브뤼셀행 고속도로 A16 E40을 타고 가족과 함께 23일간의 자동차 유럽여행의 장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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