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4.06 14:58
9.29 (수) 19일째 코스 Lauterbrunnen → Auxerr 주행거리 633km 숙소 Hotel (59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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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트호른에 오르다
아침 6시경 눈을 떴는데 아내가 발코니에 나와 별을 보라고 하여 내다보니 찬 새벽 하늘에 맑고 영롱한 별들이 너무도 선명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먼동이 트기까지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주위가 어스름한 가운데 만년설의 거대한 산봉우리가 저만큼 어둠 속에서 그 속살을 살포시 드러내어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었다.
새벽 날씨가 좋아 쉴트호른과 융프라우요흐 두군데 다 가기로 하고 서둘러 아침 밥을 먹고 짐을 챙겼으나 집을 나선 시간이 이미 7:10. 할인요금이 적용되는 07:05에 출발하는 융프라우요흐행 새벽 첫차를 타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다. 쉴트호른을 먼저 다녀온 후 융프라우요흐를 가기로 하고 가까운 라우터브룬넨 역으로 가 국내에서 미리 준비해 간 할인권을 내고 융프라우요흐 행 티켓을 끊었다. 쉴트호른 행 표는 슈테헬베르그에서 출발할 경우 그곳에 직접 가 끊어야 했다.
융프라우요흐나 쉴트호른에 오를 때 차를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인터라켄 OST가 아닌 라우터브룬넨에서 숙박, 출발하는 것이 여러모로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다.
또 쉴트호른에 오를 때 라우터브룬넨에서부터 등산열차를 타고(라우터브룬넨→그뤼트샬프→뮈렌) 출발할 게 아니라, 슈테헬베르그까지 차로 이동하여 그곳에 주차시키고 케이블카로 바로 이동(슈테헬베르그→김멜발트→뮈렌)하는 것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절약할 수 있고 지루함을 줄일 수 있다.
슈테헬베르그로 이동하여 표를 끊으려고 하니 진영이의 경우 주니어 카드를 작성하면 반액이 아닌 공짜로 탈 수 있으니 주니어 카드를 작성하는 것이 좋다며 빈 카드를 내민다(만들 때 20Sfr 필요). 루체른에서 리기쿨룸 행 티켓을 끊을 때 얘기를 들었거나 사전에 정보를 좀더 꼼꼼히 챙겨 그때 미리 만들어 두었으면 이번엔 공짜로 이용할 수 있었을텐데... 사전정보 부족으로 20Sfr을 날린 셈이다.
이른 아침이라 케이블카에는 우리를 포함 7~8명 뿐이었고, 오르는 도중 날씨가 무척 맑아 만년설로 뒤덮힌 거대한 산봉우리와 산중턱의 넓고 푸른 초원과 마을 풍경들이 멋진 조화를 이루며 눈앞에 펼쳐진다. 쉴트호른 정상에 도착하니 알프스의 웅대한 대자연의 장관이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어제 리기쿨룸에서 봤던 경관이 여성스런 신비감과 섬세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면, 이곳은 다분히 남성다운 기개와 장엄함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였으며 그곳과는 또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아이거, 뮌흐, 융프라우요흐의 봉우리 들을 조망하며 경치감상과 함께 실내 기념품 가게에서 아이쇼핑을 즐겼다. 진영인 007 마크가 선명한 시계에 눈독을 들이며 시계 앞 진열장을 왔다갔다 하며 무척 갖고 싶어하는 눈치인데, 가격이 비싸 차마 조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큰맘먹고 하나 사주니 너무 좋아한다.
융프라우요흐 포기
정상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니 10시 30분. 내려오는 도중 융프라우요흐는 가지 말자고 진영이가 계속 조른다. 방금 구경한 쉴트호른과 크게 다를 것 같지않고, 날씨도 그리 좋지않으니 하나는 생략하는 게 좋겠다는 이유다. 아마도 비싼 티켓요금에다 비싼 시계까지 선물로 받으니 제딴엔 무척 미안했나보다. 두번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고 이미 끊어놓은 것이니 가자고해도 싫단다. 얼른 파리에 갔으면 좋겠다고. 아내도 동조하고 나서니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렇지 않아도 당초 계획에 융프라우요흐는 꼭 가봐야 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솔직히 요금이 너무 비싼 탓이고 --;, 둘째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더라'는 속담처럼 늘 사람이 많고 북적댄다는 말을 들어 그런 혼잡한 분위기는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라우터부룬넨 역에가 융프라우요흐행 표의 반환을 요구하는데 젊은 남자직원이 반환이 곤란하단다. 이유는 표 구입당시 할인권을 내고 샀기 때문이라며 반환은 할인권없이 정상요금을 내고 구입한 경우에만 가능하단다. 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불만섞인 목소리로 “그런 불합리가 어디있어? 난 도대체 네말을 이해 못하겠어. 반환을 원하니 돈으로 돌려도!!!”하고 버티니, 잠시 후 고참으로 보이는 옆에 있던 50대 아줌마가 그 남직원으로부터 표를 건네받더니 아무 소리없이 반환을 해준다. 여태 선진문화와 친절한 서비스로 부럽게만 각인됐던 스위스의 이미지와는 전혀 걸맞지 않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을 해야하나? 머리 속에 잠시 혼란이 인다.
표를 반환하는 도중 한 미국인이 창구 직원에게 융프라우요흐 정상의 날씨가 어떤지 물으니 모니터로 융프라우요흐와 쉴트호른 정상을 번갈아 비춰주며 괜찮은 날씨라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날씨가 점점 흐려져가고 있었고, 정상의 날씨도 아침보다 많이 흐려보여 다소의 위안(?)을 삼았다.
그린덴발트
표를 반환받은 후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그린델발트로 드라이브 삼아 차를 몰았다. 길 왼쪽으로는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리는 물이 거의 회색에 가까운 빛을 띠고 있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안으로 진행해 갈수록 전형적인 알프스의 풍경이 펼쳐지며 점입가경을 이룬다. 그린덴발트 마을은 라우터부른넨보다는 훨씬 더 동화같은 정경이었고, 피르스트를 오가는 조그마한 빨간색 리프트가 무척이나 앙증맞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이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가 중간에 내려 걸어 내려오며 하이킹을 즐길 수 있을텐데...
드라이브를 마치고 남은 스위스 프랑을 환전하기 위해 인터라켄 시내에 들렀다. 역근처에는 배낭을 맨 한국인들이 꽤 많이 보이고 우리말 간판도 눈에 종종 띈다. 인터라켄 서역에서 환전을 하고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떼운 후, 드디어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프랑스로 향했다.
프랑스 이동
당초는 프랑스의 휴양도시 안시에 들러 하룻밤 묵은 후 밀레의 고향 바르비종을 거쳐 베르사이유, 파리 순으로 이동할 계획이었으나, 남은 일정이 충분히 여유가 있어 보여 내심 뚜르에서 몽생미셀까지 거쳐 파리로 입성할 생각으로 곧바로 뚜르로 향했다. 그러나 이런 즉흥적인 생각은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유럽의 성과 성당을 많이 봐온 탓인지 아내와 진영이는 뚜르의 여러 성들과 몽생미셀에 대해서 아무리 꼬드겨도 심드렁한 반응이었고, 그곳에 가는 걸 한사코 반대하여 결국 실속없이 동선만 늘어난 꼴이 되었다. 수도없이 고민하며 짰던 동선이라 계획대로 안시-->바르비종-->베르사이유를 향해 진행했어야 했는데... 내심 계획과 준비없는 '의외의 여행 묘미'를 한껏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프랑스 고속도로는 독일의 아우토반 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황토색의 고른 노면과 드문 차량들... 아무리 달려도 피로감이 없었고 따분함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처음엔 과속을 자제하느라 속도계가 150~160km 유지되었으나 이내 190km 까지 올라가곤 하였다.
산은 보이지 않고 숲과 평야만이 끝도없이 펼쳐져 있었다. 밀레의 작품이 연상되는 광활하고 비옥해 보이는 경작지와 간간히 보이는 고풍스런 시골 교회당의 모습에서 프랑스 농촌의 전형적인 풍경을 엿볼 수 있었지만, 독일의 목가적인 풍경에 비하면 그저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뚜르까지는 무리일 것 같아 국도변 농가 민박같은 곳에서 묵어보기로 하고 무작정 고속도로에서 빠져 국도를 탔으나, 숙소가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Auxerr로 향하여 가는 길에 캠핑장 3~4곳을 발견했으나 이미 시즌 종료로 문을 닫은 곳들이었다. 마을 몇군데를 지나며 혹 농가민박이 있는지 레스토랑 같은 곳에 들어가 물어봤지만 말도 잘 통하지 않았고, 간혹보이는 불어 간판은 독어와는 또 달라 도통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우리의 읍 규모나 될까? 지나치는 마을들은 불켜진 집이 거의 없었고 동네마다 너무 적막하고 고요하여 무서움마저 들 정도였다. 초저녁이라 술집 한두개 정도는 눈에 띌만도 한데 이 마저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일찌감치 가족과 함께 조용히 저녁시간을 보내는 것일게다.
그렇게 묻고 찾고하며 결국 Auxerr 시내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웬걸 시내에 호텔들은 모두 full이었다. ibis 호텔을 찾아 그 이유를 물으니 내일 이곳 연고인 Auxerr 팀이 다른 팀과 축구 경기가 있어 모두 찼단다. 생각보다 프랑스의 시골 구석 구석까지 축구열기가 대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ibis 역시 빈방이 없어 리셉션의 종업원에게 부탁하여 중급호텔을 겨우 잡을 수 있었다.
여행중 터득한 노하우 하나! 호텔에서 묵어야 하나 빈방이 없어 숙소를 구하기 힘들 때, 이런 경우에는 무작정 헤메고 다닐 게 아니라, 가까운 호텔에 가 리셉션의 종업원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빈방이 있는 호텔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하면 친절하게 전화로 알아봐 주며, 요금과 조건이 괜찮은지 확인한 후 결정을 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방을 구할 수 있다.
호텔 종업원을 비롯 이곳 사람들 역시 한결같이 친절하고 매너가 좋았다. 역시 선진국은 뭔가 다르다는 생각과 함께 선진문화는 선진 시민의식에서 비롯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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