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6 (목)

코스 Rothenburg ob der tauber → Eisenach → Weimar → Leibzig→ Dresden

주행거리 642km

숙소 드레스덴 호텔 (80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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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제나흐를 향해 고속도로 A7을 타고 달렸다. 아우토반의 명성답게 고속도로 상태가 무척 양호했고, 화물트럭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엄청 과속하는 차들이 많다. 분명 제한속도 130km라고 적혀 있는데 전혀 개의치 않았다. 도로 위에 과속단속 카메라 같은 것이 설치돼 있는 것 같은데 한결같이 무시하고 내달린다.


나역시 평균 160~170km, 틈틈이 190km까지 밟으며 가는데 속도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과속을 할 수 있는 건 노면이 고르고 굴곡이 없는 등 도로상태가 좋은 탓도 있겠지만, 차들이 철저히 주행선과 추월선을 잘 지키기 때문인 듯 하다. 유럽의 다른 이웃나라 들과는 달리 중형이상의 고급 승용차들이 눈에 많이 띄었고, 200km 이상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들은 주로 아우디, BMW, 벤츠 등이었다.


 


괴테가도


이 구간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하여 라이프찌히까지 연결된 문학과 클래식 음악등 독일문화의 발상지이며 구동독 도시인 아이제나흐, 바이마르, 라이프찌히, 드레스덴 등 아직은 자본주의의 색채가 덜한 곳이라 여행의 감흥을 더욱 불러 일으키게 하는 곳이다.


한때 클래식 음악에 심취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는 까닭에 대음악가 바흐와 헨델, 바그너, 베토벤, 멘델스존, 슈만, 리스트 등이 태어나고 자란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과 그들의 발자취와 무대를 더듬어 보는데 많은 기대를 하였으나, 일정을 너무 촉박하게 잡은 탓에 대충 눈도장만 찍고 와야 하는 곳이었다.

일정을 이틀정도 더 머물러도 됐는데... 두고 두고 아쉬움과 미련이 남아있다.


유럽여행을 하며 각 지역의 특색이 연상이 될만한 클래식 곡들을 따로 CD에 담아 듣고 다녔는데, 이 구간 라이프찌히에서 주로 활동하였던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는 특히 아내가 좋아하는 곡으로 여행중 그 긴곡을 진영이가 흥얼흥얼 외울 정도로 많이 들었다. 평소 말초적인 가사와 랩등이 섞인 정체불명의 가요만 편중해 들어 은근히 ‘정서의 편식’을 염려해 오던 마당에 이 기회에 다소나마 클래식을 접함으로써 균형있는 섭취를 하게된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제나흐


옛 동독 땅이었던 이 조그마한 도시의 첫느낌은 세련된 남부 독일과 확연히 달랐다. 오랫동안 사회주의에 시달려서인지 곳곳에 빈곤의 흔적이 남아있고 아직 자본주의 색채가 거의 없는 듯 했다. 시내의 도로는 중앙선 표시가 아예없어 차로인지 인도인지 구분이 안됐고, 교통 신호등도 없어 사람이나 차량이나 대충 알아서 다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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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트 광장 한쪽 길옆에 주차하고 관광에 나섰는데, 우선 재래시장 골목이 눈에 들어온다. 시장이라고는 하지만 특유의 시장바닥 분위기나 활기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사람들의 왕래도 적었으며 가게 앞에 진열해 놓은 물건들도 값싸고 조악해 보였다.


거리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해 보였고, 우리가 지나가자 생소하다는 듯 힐끔 힐끔 쳐다보는 이들이 많았으며, 가끔 묻는 얘기에 영어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건물들은 낡고 퇴색돼 방치된 듯한 느낌이었으며, 여기저기 공사를 하고 있는 곳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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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것은 화장실이 시내 곳곳에 이동식 간이 화장실 형태로 설치돼 있어 무척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여행의 감흥만큼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더 크고 진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여행을 하는동안 내내 나는 내가 밟는 이국 땅이 설레임과 호기심을 잔뜩 불러 일으키는 처녀지이기를 기대하며 다녔는데, 어쩌면 그런 기대를 가장 잘 충족시켜 준 곳이기도 하였다.


재래시장을 나와 인포메이션이 눈에 띄길래 들어갔는데, 새로운 정보가 될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고, 교통편이나 지도가 수록된 팜플렛보다도 자기 고장이 배출한 위대한 예술가와 관련한 정보들이 많이 비치돼 있었고, 이러한 것들이 더욱 이 도시를 돋보이고 인상깊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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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이 지역의 괜찮은 전통 레스토랑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해 봤으나, 데스크에 진열된 팜플렛을 가리키며 이곳에 많이 나왔다고만 한다. 그곳을 나와 주변의 적당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슈니첼과 피자로 점심을 먹었는데 레스토랑 역시 도시의 세련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점심을 먹은 후 루터의 집과 바흐의 집을 차례로 구경했다. 바흐의 집에서는 CD 3장으로 된 마태수난곡을 살까 몇번씩이나 망설이다 비싸서 사지 못하고 그냥 나왔는데 아직도 미련이 남는다.






바이마르


독일의 파리라 불리는 아름다운 도시로 괴테와 쉴러의 고향이자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최초의 민주주의 헌법인 바이마르 헌법이 제정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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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광장 부근 주차장에 주차하고 괴테와 쉴러의 동상이 있는 국민극장 쪽으로 걸어가는데 깨끗하고 잘 정돈된 듯한 건물과 거리가 잘 조화돼 있었다. 거리에는 꽤 많은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쳐나 보였으나, 다소 상업적인 느낌의 남부 하이델베르크와는 분명 다른 분위기와 느낌이 있는 곳이었다. 과연 이곳이 사회주의 체제하에 있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며 정감이 가는 도시였다. 거리의 시민들도 노천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에서 한없이 여유롭고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도 노천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시 길거리 풍경을 즐겼다.


괴테 기념관을 들러 그의 성장과정과 일용품들을 둘러보며, 그당시 그가 얼마나 부유한 환경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랐나를 짐작할 수 있었고, ‘유노의 방’에는 낡은 피아노가 눈길을 끌었는데 12세 소년이었던 멘델스존이 앉아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고, 당시 72세의 괴테는 그의 솜씨에 경탄해 마지않는 상황이 어렴풋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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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이집에서 청년기를 보내며 “눈물을 흘리며 빵을 먹고 슬픈 밤을 울며 지낸 사람이 아니고서는 인생을 알지 못할 것이다.”로 유명한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등의 대작을 썼다고 한다.


괴테의 필생의 역작 ‘파우스트’는 명작이기 때문에 반드시 읽어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10대의 감수성으로 호기있게 덤벼들었다 너무 어려워 중간에 그만 두었고, 이후 어렵다는 선입감 때문에 내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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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가는 곳마다 엽서를 사곤 하는는데, 이곳 기념관에서도 역시 예외는 없다. 


다시 쉴러의 집에 이르렀는데 괴테 기념관에 비하면 훨씬 소박한 모습이었다. 독일문학의 쌍벽을 이룰 뿐만 아니라 문학과 사상에서 각별한 우정을 지속한 걸로도 유명한 괴테와 쉴러, 다정하게 느껴지는 그들의 동상을 구경하고 5시가 지나 리스트의 집 구경은 생략하고 바로 라이프찌히로 향했다.


 



라이프찌히


라이프찌히는 바흐가 생의 후반부를 이곳 토마스 교회에서 보내면서 위대한 음악적 업적을 달성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라이프찌히를 바흐의 도시로 부르기도 하며, 바그너가 태어나고 멘젤스존이 생을 마감하였으며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의 결실이 맺어진 곳이기도 하다.


현재도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교회 소년 합창단으로 유명한 명실상부한 전통의 음악의 도시이자, 독일 통일운동의 기초를 닦았던 니콜라이 교회와 괴테의 파우스트의 무대가 되었던 아우어바흐스 켈러 레스토랑, 세계 최초의 신문발행 및 출판사, 인쇄소 등으로도 유명하다.


18:00시경 이곳에 도착하니 시간이 꽤 돼 벌써 문닫은 가게가 많다. 당초 이곳은 에탑호텔에서 묵을 생각을 했었으나 인터넷 예약을 하지 않아 포기하였고, 캠핑장에 관한 상세 정보없이 캠핑장을 찾기위해 헤멨으나 도시가 커 찾기가 쉽지 않았고, 게다가 시내 도로에 트램 철로가 많아 무척 생소했다.


중간 중간 차를 세워 캠핑장을 묻는 데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캠핑장을 찾지 못하면 호텔이라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시내를 돌다 길을 묻기위해 차를 세웠는데 바로 앞이 성 토마스교회다. 이 교회는 바흐가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때까지 약 27년간을 오르가니스트겸 합창단 지휘자로 활동했고, 바그너가 세례를 받았으며, 마르틴 루터가 설교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교회 바로 앞과 옆에는 바흐의 무덤과 동상, 기념관 등이 있다고 하는데 지금 그걸 찾을 여유는 없다.


숙소관련 정보를 미리 준비안한 상태에서 언제 숙소를 구할지 모르겠고 다음날 일정을 위해 차라리 드레스덴으로 옮겨 그곳에서 묵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전체 일정이 그리 촉박하지도 않고 계획대로 이곳에서 하루를 묵었어야 했는데, 드레스덴으로 옮긴게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고, 지금까지 그 미진한 마음은 풀길이 없다. 더욱이 이곳은 바흐, 바그너, 멘델스존, 슈만 등 음악의 대가들이 태어났거나 활동했던 무대였고 기대가 무척 컸던 곳이기 때문이다.


 


드레스덴 야경

 

드레스덴 도착 후 시간이 깊어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로 저녁식사를 대신하였다. 종업원들은 대부분 15세 안팎의 어린 소녀들로 매우 귀엽게 보였다. 그들 중 한 종업원에게 숙소가 많이 있을 만한 곳을 물어보니 서툰 영어로 수줍어 하며 열심히 설명해 준다. 귀엽기도 하고 고마워 선물을 건네니 쑥스러워하며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곳에서 역시 호텔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도시의 그 흔한 호텔이 아무리 돌아다녀도 눈에 잘띄지 않는다. 시내도로는 트램과 버스, 일반차량 들이 함께 뒤섞여 다니고 있었으며 차량운전자를 위한 도로 표지판이 부실해 길 찾아 다니는게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트램 철로와 차로가 함께 있어 거리가 낯설고, 거리변에는 가끔 흉물스럽게 창고같은 것이 방치돼 있는데 문과 벽등에는 과거 피폭으로 인한 상흔이 남겨져 있어 이 도시의 아픈 역사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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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을 찾기위해 시내를 빙빙돌다 조명을 받아 너무도 아름답게 빛을 발하고 츠빙어 궁전을 발견하고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차에서 내렸다. 조명 때문에 더욱 위용이 있어 보였고 바로크 양식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 했으며, 엘베강에 비치는 야경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환상적인 경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궁전 바로 앞 젬퍼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오페라가 방금 끝났는지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숙소를 잡기 위해 강을 중심으로 다시 시내를 몇바퀴 돌다 외곽쪽에서 별셋 90유로 짜리 호텔을 발견, 흥정하여 80에 묵기로하고 짐을 풀었으나, 별셋짜리 평가와는 다르게 시설이 별로였다

 

 



꼬리말 쓰기
unique영 여행기 잘 읽고있습니다,저는 드레스덴에는 가보았는데 예전 수도였던 곳이라그런지 고풍스러움을 느낄수있었던곳이었어요 [2004/12/03]
victor 호화와 사치와 절대권위를 잘 나타내고 있는 절대왕정 하의 바로크 양식의 특징때문에 더욱 고풍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호응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2004/12/03]
나의하루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2004/12/23]
버섯돌 너무너무 잘 읽고 있습니다. 쉬는시간 틈틈이 읽고있어요^^ [200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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