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4.06 14:00
눈도장만 찍은 퓌센 여행중 제일 이른 시간인 7시 전에 안냐 집을 나와 로만틱 가도를 따라 퓌센을 향해 떠났다. 로만틱 가도는 그 명성에 비해 주변 풍경이 기대에 훨씬 못미쳤지만 숀가우에 이르러 퓌센까지는 독일 특유의 넓고 푸른 초원과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 멋지게 펼쳐져 드라이브의 분위기가 한층 고조된다.
퓌센에 들어서니 노이반슈타인 성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성은 루드비히 2세가 바그너의 오페라에 나오는 기사의 성을 상상하여 온갖 악조건과 막대한 경비를 무릅쓴 채 17년간의 공사 끝에 완성한 것으로 독일 관광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성이다. 라인강변과 고성가도를 달릴 때 자주 보이던 육중하고 볼품없는 고성들의 외관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그간 사진에서 봐온 것처럼 동화같다거나 기대했던 만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고, 그저 그렇게 와 닿는다.
루드비히 2세의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의 흉상이 있는 호수와 주변의 수려한 경관을 잠시 구경한 후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관광객 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대부분 노인과 동양인 들이 포함된 단체 관광객 들이다. 저 틈바구니 속에서 구경을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올라가는 것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지정된 시간에 가이드 투어 형식으로 관람을 해야 하는데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갈등이 생긴다. 기다렸다 보고가야 할지, 그만한 가치가 있을지... 아내와 진영이도 저런 분위기는 싫다며 성에 별 관심이 없다는 눈치다. 그러나 이곳까지 온 이상 성 전체의 외관과 성을 둘러싼 주변의 조망이 뛰어나다는 마리엔느 다리까지는 가야 하겠기에 몇겹으로 길게 S자를 그리며 늘어선 버스 줄에 서 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전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자꾸만 는다.
비싸더라도 마차를 타고 가는 게 낫겠다 싶어 마차타는 줄에 다시 서서 옆의 미국인 아가씨가 들고 있는 지도를 잠깐 빌려보니 마리엔느 다리는 버스를 타고 중간에 내리던지, 마차를 타고 종점인 정상에 내렸다 다리까지 다시 걸어 내려와야 하는 코스였다. 걷는게 너무 힘들다고 해 걷는 것은 처음부터 아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모두들 바로 베네치아로 가는 게 낫겠다고 하여 이에 흔쾌히 합의, 퓌센은 그렇게 눈도장만 대충찍고 나와야 했다.
퓌센에서 인스부르크를 거쳐 가는 산길을 탔는데, 길이 매우 구불구불하여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했지만, 알프스로 둘러싸인 경관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가는 도중 중간 중간에 내려 절경을 감상하였고, 어제 안냐 집에서 충분히 자지 못한 탓인지 졸음이 쏟아져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대고 30분 정도 눈을 붙이고 다시 출발하였다. 1964년과 1976년 동계 올림픽을 개최했던 곳이라 그런지 가는 곳마다 휴게소 시설이 매우 잘돼 있었다.
오스트리아를 벗어나 이탈리아 고속도로에 접어드니 고속도로 표지판 체계가 약간 달랐으나, 조금 달리다보니 이내 적응이 되었다. 퓌센의 노이반슈타인 성 투어를 생략하여 시간을 조금 벌었으니 오늘은 일찍 캠핑장에 도착하여 밀린 빨래도 하고, 베네치아 야경감상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힘차게 엑셀을 밟았다. 그런데 뻥 뚫렸던 고속도로가 갑자기 정체돼 꼼짝을 하지 않는다. 앞 차량 운전자들이 차에서 내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1시간 이상이 흐르고 다시 차가 움직였는데 사고가 났던 흔적이 보였다. 이탈리아인 들의 운전습관으로 볼 때 어찌보면 사고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베네치아 근방에 와 고속도로에서 푸지나 캠핑장으로 빠지는 길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메야만 했다. 고속도로 표지판이 명확치 않은데다 화물트럭이 너무 많아 이들 트럭에 가려 표지판을 찾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고속도로의 차량들은 엄청난 과속을 했고, 규정속도에 상관없이 앞차와의 거리를 두고 조금만 늦게가도 바짝 따라붙으며 쌍 라이트를 켜댔고, 주행차선 추월차선 구분없이 틈만 있으면 여지없이 끼어들기를 하는 등 난폭 운전을 일삼았다. 이들의 운전습관이 안좋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어 마음의 준비와 방어운전 태세는 갖추고 있었지만 정신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어둑 어둑해지고 안개까지 끼어 매우 위험한 상황에서 2차선은 화물트럭이 줄지어 점령하고 있어 시야가 가리기 때문에 2차선으로 끼어들지 못하고 1차선을 계속 유지할 수 밖에 없었고, 1차선에서는 앞차를 바짝 붙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앞차를 바짝 따라가다 앞차가 급 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나도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뒷차로부터 큰 추돌사고를 당할 뻔 하였다. 간담이 서늘해 지는 순간이었다. 빽미러를 통해 뒷차를 보니 혼비백산했는지 그제서야 거리를 두며 조심 운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베네치아에서는 숙소요금이 매우 비싼데다 잡기가 쉽지않아 유일하게 이곳의 푸지나 캠핑장만 인터넷으로 사전예약을 했던 곳이다. 푸지나 캠핑장은 베네치아 섬과 가까운 탓에 젊은 배낭객들로 만원이었고 단체 관광객도 많이 이용하는 대규모 캠핑장이었으나, 방갈로가 컨테이너 박스같은 곳에 나란히 연결돼 있어 옆방, 주변소음 등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우리가 도착한 날은 캠핑장에 무슨 행사가 있었나 보다. 많은 젊은이 들이 캠핑장 내 바에서 밤새 술마시고
춤추고 노래하여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화장실에는 화장지가 없었고 청결하지도 않았으며, 취사와 식탁이용이 불편해 방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식사를 해야만 했다. 3인 이상의 가족실이 별도로 없고 2인용 방갈로만 있어 세식구인 우리는 2인용 방갈로 2개를 사용해야 했다. 가족이 머물기에는 여러모로 적합치 않는 곳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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