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Europe with kids no 3.

2007.06.08 18:52

송은 조회 수:4108 추천:37

로마를 떠나며 앞으로의 여행일정을 모두 바꿀 것을 결심함.



1. 대도시, 유적, 미술관 등은 가지 말자.

2. 차를 오래 달려야 하는 곳은 가지 말자. 애들이 너무 힘들어 한다.

3. 한 곳에 오래 머물자.

4. 애들 눈높이로 애들이 좋아할 곳을 고르자.

5. 유럽 여행 중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그냥 당장의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낼 만한 놀거리를 찾자.



예약취소로 인한 어느정도의 손실을 감수하고 비엔나, 파리, 프라하 등

대도시에 예약한 숙소를 모두 취소함.

동선을 극히 단순화함.

개인적으로 꼭 달려보고 싶었던 그레이트 돌로미티 패스 드라이브도 포기함.

나에게는 천하절경 드라이브지만, 아이들에게는 멀미나고 힘들게 자동차 안에

갇혀 있는 고역일 뿐임. 애들은 굽이굽이 가는 절경 길이 아니라

최단거리를 곧게 뻗은 고속도로로 빨리 숙소로 이동하는 것을 원함.



애들이 좋아할 곳들을 열심히 검색한 결과, 다음의 곳들이 있음.

놀이공원: 독일 프라이부르크 근처의 유로파 파크(유럽 최대의 놀이공원)

              이탈리아 베로나 근처 Garda 호수 근처의 Garda Land와

                                           워터파크인 아쿠아 파라다이스.

스위스 로이커바드에 있는 설악 워터피아 같은 온천 야외 풀장들. 슬라이드, 키즈 풀 있음.

잘츠부르크 헬브룬궁전의 깜짝 분수 정원, 할슈타트의 나무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는 소금광산



이런 곳들 위주로만 다니기로 마음 먹음. 애들이 유럽 여행 가자고 조른 것이 아니라

내가 데려 온 것인데, 그 동안 아테네, 피렌체, 로마 등등을 끌고다니며 너무 고생시킨 것 같아

마음이 아팠음.



다행히 이탈리아를 떠나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쪽에 도착하니, 애들 표현에 따르면

지옥에서 천국에 온 듯했음.

소매치기 걱정 안 해도 되고, 거리 지저분하지 않고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고속도로에서 무지막지하게 달려대는 차들의 등쌀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어디가나 영어 잘 통하는 편이고,

심지어 220볼트 콘센트 구멍도 한국 것과 맞았다!



유럽 제1의 캠핑장이라는 Natterer See에 도착해보니,

시설 자체는 그동안 사진만 보고 과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음.

사진에 보이는 드넓은 잔디밭은 캠핑장 옆에 있는 사설 주차장이었고,

Natterer See는 호수라기보다는 연못 정도였으며,

시설부지는 그다지 넓지 않았고,

호수(연못)으로 뛰어드는 워터슬라이드는 보수중인데다가 따로 수영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연못에서 수영하는 것인데, 물고기들은 좋은데 올챙이 떼 수만마리가 우글거리는

자연 그대로의 연못이라 아직 자연주의자가 덜된 우리로서는 연못가에서 노는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했음.

게스트룸(호텔식 방)은 깨끗했고, 간단한 조식 포함.



어떤 분이 PIC 같은 리조트 같다고 표현하시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양평 같은 곳에 있는 청소년 수련원 같은 곳이라고 표현하고 싶음.



여기까지 좀 실망한 듯이 쓰고 있지만,

이 곳에서 1박 후 나는 결국 이 곳에서 10박을 예약하고 말았음.

(그 중 7박은 맘편하게 요리해 먹기 위해 풀 키친이 딸린 아파트먼트를 예약)

주변을 둘러보면 눈 덮인 신비로운 봉우리들,

단지내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와 올챙이, 물고기가 있는 연못,

하루 5유로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무선 인터넷,

인근에 널린 하이킹 코스, 그림같이 아름다운 티롤 지방의 마을들,

가까운 곳에 있는 스와로프스키 크리스탈 월드 등 관광거리 등등도 좋지만

결정적으로 이곳에는 무료 키즈클럽이 있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5시까지. 5유로를 내면 점심도 먹여준다.



바깥놀이, 인디언 캠프, 그림 그리기, 만들기, 게임 등등 대단할 것은 없지만

애들은 좋아라 하는 프로그램 들을 진행하는데

미국에 산 적이 있어서 영어가 익숙한 애들이라 영어가 가능한 교사와

재미있게 논다. 현지 애들은 독일어만 하는지라 의사소통이 어렵지만

애들끼리는 말이 안 통해도 잘 놀더라.



한 달간 유럽을 떠돌며 하루종일 애들을 돌보느라, 나는 나대로

신경이 곤두서 있고, 애들은 애들대로 나를 따라다녀 주느라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오니 비로소

애들은 애들끼리 자기들이 좋아하는 놀이를 하고,

나는 나대로 내가 좋아하는 놀이를 하며 쉴 수 있었다.

인근 골프장에 가면 하루 50유로(5일권 등을 끊으면 하루 40유로선) 정도에

눈덮인 봉우리들을 멀리 바라보며 혼자서 라운딩을 즐길 수 있었음.

노트북으로 로마인 이야기도 읽다가, 조정린의 아찔소를 보며 킬킬대기도 하고 말야...



캠핑장이 위치한 Natters는 알프스나 티롤 지방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그대로의

동화같이 예쁜 마을이다. 그런데 이런 마을이 주변에 널렸다.

바로 옆 마을 Mutters에 가면 대형 슈퍼마켓도 있어서

신선한 쇠고기와 연어를 사다가 스테이크도 해먹을 수 있다.

이렇게 신선놀음을 하고 있다보니 한 달간 왜 사서 고생을 하고 다녔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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