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짐을 찾긴 하였지만 깔레에서 차를 받아 짐을 싣기 전까지는 이 무거운 짐들을 번거롭게 들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심란하였다. 편하게 택시를 탈까 잠시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냥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고생이야 조금 되겠지만 이런 류의 고생은 사서도 할만한 가치가 있고, 여행다운 분위기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우리 가족에게 더욱 오래 안겨 줄 것 같은 야릇한 기대감 때문이다.

공항 터미널에서 지하철 매표소까지는 다행히 계단이 없고 바닥이 매끄러워 짐을 운반하기에 수월하였고, 매표소에서 튜브나 코치(영국에서는 지하철을 Tub 혹은 Underground, 버스를 Coach라고 부른다)를 주말동안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저렴한 Weekend trarvel Card 구입(£14.4)하여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은 서양인들의 큰 체구에 어울리지않게 좁고 아기자기한 느낌이었으며, 실내 환경은 우리의 세련되고 쾌적한 지하철보다 훨씬 뒤져 보였으나 역간 거리와 환승역, 출구는 우리네처럼 멀지않고 아주 가까이 있어 많은 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동하고 갈아타는 데는 무척 편리하게 느껴졌다.
인구 천만이 북적거리는 거대 서울에서 한번 이동하려면 기본 1시간 내외는 잡아야 하고, 환승한번 하려면 짜증날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의 지하철 이동 여건과 비교가 됐다. 이곳 런던뿐 아니라 로마, 파리등 유럽의 지하철은 이동하기에 무척이나 편리하고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런던의 지하철은 세계 최초 19세기 중반에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각 지하철 역사들은 매우 허름하고 낡아 보였으며, 차창 밖으로 보이는 담벽 등에는 온통 페인트와 스프레이를 이용한 낙서들로 얼룩져 있어 우리와는 문화가 전혀다른 환경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낙서는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배설구인 것일까? 유럽 어디를 가도 이렇게 낙서가 많았는데, 특히 런던이 제일 심한 것 같았다.


우리가 묵기로 한 민박집은 빅토리아 코치스테이션 근방에 있기 때문에 중간에 한번 갈아타야 한다. 빈자리가 한두개 눈에 띄었지만 짐이 많아 앉을 생각은 아예 포기하고 짐을 붙잡은 채 환승역과 내릴 역이 어디있는지, 몇 정거장을 더가야 하는지 세며 가고 있는데 바로 옆좌석의 여인 2명이 손으로 코를 살짝 가린 채 자기네끼리 웃으며 뭐라고 얘기를 한다. 코가 예민한 아내가 이내 눈치를 채고 김치냄새인데 아마도 봉지가 터진 모양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방에서 나는 김치냄새가 틀림없다. 이마트에서 김치 4봉지를 사며, 아주머니에게 부탁해 랩으로 수십겹을 쌌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냄새가 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아마도 짐을 비행기에 싣고 내리며 옮기는 과정에서 봉지가 터진게 아닌가 싶다.

평소 코가 좋지않아 냄새에 무감각한 내게도 자극이 될 정도인데, 서양인 들에게는 얼마나 고약할까 쉽게 짐작이 갔다. 그 시간 이후 미안함을 감추고 애써 태연한 척하며 가는 데 지하철이 덜컹거릴 때마다 냄새는 차안에 더욱 고약하게 퍼지는 것 같아 지하철에서 내릴 때 까지 좌불안석이다. 다른 사람들은 참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걸까? 눈치들을 보니 모두들 무표정하게 앉아있다. 유독 그 두 여인네만이 신경이 많이 쓰인다. 우리가 자꾸 신경쓰는 걸 눈치 챘는지 나중엔 짐짓 모르는 체 하는 눈치다. 이윽고 환승역인 그린파크 역에 도착, 도망치듯 짐을 내려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발길을 재촉했다.

빅토리아 역에 내려 계단을 오르는데 짐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낑낑대며 계단에 하나씩 올려놓고, 다른 것도 그렇게... 어렵사리 지하철 역사를 빠져 나오니 바로 빅토리아 역 주변이다. 생경스런 런던과의 첫대면의 느낌이 몹시도 가슴 설레게 한다. 어딘가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웅장하고 고풍스런 건물들과 북적대는 외국인들... 촌놈이 처음 서울역에 도착해 주변의 화려함으로 잠시 얼이 빠진 모습이다. 그러나 한시바삐 저 낯선 환경과 사람들 틈에 끼어 호기심을 충족해 보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일단 민박집에 전화를 걸어 비행기가 연착이 되어 예정보다 늦게 도착했다는 얘길 전하는데, 금방 데리러 나올테니 기다리란다. 잠시 의아했다. 당연히 차를 가지고 픽업하러 나올 줄 알았는데... 차와 관련된 한마디의 언급도 없다. 짐도 많은데... 잠시 후 걸어서 마중을 나온 민박집 주인과 짐을 나눠들고 걸어가며 얘기를 들으니 런던의 교통여건과 주차비 등이 장난이 아니므로 집에 차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수긍이 가는 얘기다.

민박집에 도착하여 준비해간 햇반으로 점심을 떼웠다. 당초 민박집에 늦어도 9시 전에 도착, 오전중 버킹엄 관광 후 오후에 옥스퍼드를 다녀올 예정이었는데 비행기 지연과 공항 터미널에서 헤메고 짐찾느라 시간을 허비해 결국 오후의 옥스퍼드 방문은 포기하여야 했다.
옥스퍼드행 왕복버스는 국내에서 인터넷으로 저렴하게 예약(
http://www.megabus.com £7.5 할인된 총 £15)을 하고 간 상황이라 돈 아까워 오후에 옥스퍼드에 다녀와 저녁시간과 다음날 런던시내 구경을 할까 생각도 하였으나 그렇게하면 일정이 너무 촉박해질 것 같아 아깝지만 옥스퍼드를 포기하기로 했다.

꼬리말 쓰기
나의하루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200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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