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벗어나기전 까루프에 들러 야외용 식탁이랑 어제 빠트린 식료품 몇 가지를 더 샀습니다.
한국에서 준비해간 도로 정보(http://www.viamichelin.com)가 꽤 정확했고
조수석의 마누라가 미쉘린지도를 보며 네비게이터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고  
이정표와 도로망이 좋아서인지 별어려움 없이 독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산지가 거의 없는 넓은 평야가 프랑스가 농업 강국입을 반증하고 있었습니다.
국내 정치상황이나 농민정책을 생각하면 답답해졌습니다.
한국의 농업정책이나 농업환경이 경쟁력을 갖을 수가 없겠더군요.
농사꾼이며 공인중개사인 내눈에는 농사짓기 편하고 넓은 땅 덩어리가 하냥 부럽기만 했지요.
아마도 한필지가 수천에서 몇 만평 단위는 될 듯싶습니다.  정말 부러웠습니다.
가도 가도 한없는 평원.... 그넓은 들에 사람도 거의 없고 간혹 소 몇 마리가 넓은 땅을 독차지하고 있었지요.

도로를 달리며 150km를 넘게 달리고 있는 나를 보고 흠짓 놀라기도 했으나
여기에서는 130km는 기본인 듯했고 가끔 200km이상 되는 듯한 차들이 바람처럼 옆을 스칩니다.
그리고 하이델베르그로 향하는 이도로는 화물차보다 캠핑차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유럽은 캠핑중...

여행기를 써야겠다는 욕심이 없어서 우리가 어느곳을 지나고 있는지
무엇을 얼마에 어떻게 먹었는지 중요하질 않았습니다.
특별한 사정이 발생한다면 모를까  절약하며 다녀보자라는게 여행 캐치플레이였습니다.

하이델베르크를 향하는 동안 경관이 좋은 곳에서 쉬엄 쉬엄 왔는데 여기가 어딘지...쩝
드디어 하이델베르그에 입성하여 곧장 네카강변에 있는 캠핑장을 찾았습니다.
하이델베르그 넥카강을 따라 캠핑장이 있는데 풍광이 아주 좋았습니다.
강으로 유람선과 바지선이 물살을 가르고 지나는 것이 강가의 운치를 한껏 도왔지요.
강건너 산중턱에 자리한 집들은 그림처럼 보기 좋았습니다.
강을 따라 잔디라 하기는 좀 그런 풀밭에 텐트를 치고 캠핑다운 첫날을 보냈습니다.
큰아이와 함께 텐트를 설치하고 마누라는 한국에서 가져온 대부분의 재료로 저녁을 준비해주었습니다.
시내를 관광하기에는 좀 늦은 시간이라  그간 지출내역을 되집어 보고
앞으로의 루트도 점검 할겸 일찍 저녁을 먹고 접이식 탁자에 가족이 둘러 앉았습니다.
옆으로는 네카강이 유유히 흐르고 시원한 여름날의 저녁바람은 만족 그자체였습니다.
아이들은 런던오는 비행기에서 얻은 카드로 원카드(윗 사진)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보니
"참 잘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히 행복하다할 만큼 좋았습니다.  

캠핑장안에서 난처하고 어색한일이 발생했습니다.
우리 텐트와 샤워장까지는 한 150m 정도 떨어졌는데
거기를 오갈 때마다 만나는 대다수 외국인이 hi ~  good #^%$$&$&&  하며 인사를 건네는데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적응이 않되 시선을 일부러 외면하곤 했는데
지나고 생각하면 낮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지요..
몇번 그러고 나서 약간의 용기를 내어 hi~ ,  good evening , 그리고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라고인사를 했습니다.
캠프장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다.
동양인 = 일본인으로 인식이 되어있고 간혹 중국인이냐고 물어왔습니다.  
일본의 위상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의 편협한 시선   일본 = 닭꽝  쪽발이.....등이지만
일본. 쪽발이.....    넘어야할 산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머믈던 자리를 개끗히 하여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주려고 최소한의 노력은 아끼지 않았습니다
저희 텐트옆에는 남아공에서 오신 노인 한분이 혼자 캠핑을 하셨는데
한국산 커피믹스를 대접해 드렸더니만 대만족이십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올림픽과 서울정도를 알뿐이었습니다.
이로인해 마누라와 아이들에게 저의 영어가 짧은게 탄로가 났습니다.
이런 아쉬운 밤이 깊어갑니다.

다음날 아침 야전 훈련하듯이 아침을 먹고 행장을 챙겨 하이델베르그성으로 향했습니다.
난생처음 가까이 보는 고성....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한적한 고성은
내게 무어라 선뜻 내어 줄 것만 같이 친근하게 제 눈속으로 들어왔습니다.
한쪽이 무너져버린 성채는 유구한 세월을 대변해주고 있었습니다.
복원하지 않은 것도 그나름의 운치가 있는듯했고, 성에서 내려다보는 하이델베르그 시내는 아름다웠습니다.
한참을 여유있게 관람하고 좀 시간이 지나자 많은 단체관광객이 입장하면서
고즈넉한 고성의 풍취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시장판이 되버렸습니다.
중국관광객팀 일본팀 한국인팀 일부 동유럽팀 제각기 가이드들이 성의 유래에 대해 정연하게 브리핑합니다.
저도 한국인팀 어깨넘어로 귀동냥을 했지요.
왕이 어떻고 왕비가 어떻고 *&*%%$
제가 방금전까지 느꼈던 좋은 감정이 흐려질까 두려워 그 자리를 급히 벗어났지요.
하이델베르그성의 유래나 역사적 사실보다 제 가슴속의 고성이 중요하다 판단해서요.

고성뒤뜰을 한가로이 거닐다 시내로 내려왔습니다.
고풍스런 건물들, 인도와 좁은 차도에 깔린 사각형 보도블럭, 깔끔한 상가등 인상적이었습니다.  
상점 간판들도 작고 예쁘다는 표현이 좋을듯합니다.

이제 프라히로 핸들을 돌려야합니다.
제 계획표에 그렇게 나와 있거든요.
물가가 여타유럽지역 보다 저렴하다는 이유로 과소비를 공언하며 아이들을 도닥거려 프라하에 도착했습니다.
프라하 외곽은 일기도 불순한데다 다소 음침하고 스산해 보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좋은 위치와 시설의 캠핑장은 이미 만원이어서 오랙이라는 캠프장을 찾아서 캠핑을 하였는데
유럽 여행중 최악의 캠핑싸이트였습니다.
시설, 환경, 이용객상황...     휴~ ,  
앞으로 캠핑장의 수준이 이렇다면 남은 숙박 모두를 호텔로 바꿀 각오를 생기게 하더군요.
잠자리 뒤숭숭하여 일찍 일어나 시내 구경을 갔습니다.

구시가를 중심으로 일정 반경은 고색창연한 건물로 고풍스러웠습니다.
시가 자체가 유네스코로부터 어떤 지정을 받아야 되지 안나 싶을 정도로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프라하성내의 대성당에 들어서는 그 웅장함과 섬세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아래 사진)
신은 참으로 위대하다,  
고로 인간이 더 위대한가?  아님 어리석음인가?

카를교를 지나 구시가지에서 제식구들은 이제사 기념품가게를 기웃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빠의 프라하 공수표가 실제로 집행되길 기대하며.
큰아이는 기념품으로 체스를 만지작거리다 결국 고가이어서 포기를 하고 딸아이는 작은 소품 몇가지를 샀습니다.
거의 매일을 식사를 해먹고 다녔던 우리가족에게 첨으로 노천 까페에서 저녁을 사먹는 호사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끔찍한 오랙에서 하루 밤을 더보내고 다음날 아주 일찍 오스트리아로 향했습니다.



프라하 최고 ==> 야경  집시 악사들의 연주와 저녁식사
프라하 최악 ==> 오랙 캠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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