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경험 야간 운전의 위험성! 로드킬 사고 경험담!

2008.10.29 09:39

스튜이 조회 수:6877 추천:45

빅터님, 그리고 다른 회원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초보 여행자 분들의 안전제일 정신무장(?)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지난 여름의 사고 경험담을 써보려 합니다. 저는 지난 여름에

미국 땅을 생전 처음 밟게 된 친구 2명을 데리고 캘리, 애리조나, 유타 지역 자동차 여행 가이드를 하게 되었습니다. 운전은 길을

아는 제가 거의 다 하기로 했고 차량은 엔터프라이즈에서 렌트한 매즈다 6였습니다.



사고가 있던 날, 아침 일찍 베가스를 출발해 후버댐을 지나 그랜드캐년에 도착해 주마간산으로 관광을 하고 마지막 데절 뷰

포인트에서 해가 거의 질 무렵, 숙소를 예약한 페이지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야간 운전이 위험하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날 전까지의 무사고 행진 기록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었을까 자만에 빠져 안전불감증에 걸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US-89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는데 그 날따라 느릿느릿 달리는 트레일러들이 유난히 많아 패싱레인이 나올 때마다 추월해 갔습니다.

반대편 쪽에 차가 오지 않으면 하이빔을 켜고 가다가 불빛이 보이면 끄고 하면서 달리고 있었습니다.

밤에는 너무 어두운 탓에 시야거리가 매우 짧고 야생 동물들이 활발하게 길을 건너다니기 때문에 조심 또 조심하면서 주행을 했습니다.

(꼭두새벽에 Dixie National Forest를 지나간 적도 있었는데 그 때는 거의 엑셀에서 발을 떼고 갔었습니다. 두어시간 동안 전방에

길을 건너 뛰어가는 토끼를 50마리쯤 봤고 토끼를 날파리 정도로 가볍게 여기고 쌩쌩 달리는 미국 놈들이 금방 막 깔고 간 토끼만

또 50마리. 도로 옆으로 내려와 풀 뜯는 사슴과 소는 30마리쯤 봤습니다. 한 곳은 소3마리가 반대 쪽 길을 완전히 막고 서있더라구요.

미국 놈들은 그래도 쌩쌩 달리는데 어디서 나오는 깡인지...)



슬슬 피로가 몰려와 빨리 숙소에 가서 쉬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데 그 순간!!

전혀 시야에 없었던 코요테 한 마리가 눈 앞에 떡하니 나타나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보통 동물들이 길을 건널 때 타이밍을 재다가 불빛이 한 번 쌩하고 지나가면-차가 한 대 지나간 직후에-스타트를 끊고 뛰어가는데

그 때 다른 불빛이 비추면 그 불빛을 보면서 순간 멈추더라구요.

밤이라 제한 속도보다야 당연히 아래였지만 꽤 빠르게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한 순간이었습니다.

어떠한 대응을 하기에도 너무 짧았습니다. 어어어! 비명을 지르면서 그대로 쳐버리고 말았죠.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차라리 브레이크를 밟을 것을 평소에 동물이 있으면 핸들 돌리지 말고 그냥 치라는 말에 거의 세뇌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무식하게 들이받았던 것 같습니다. 부딪히는 순간 스티어링휠에 충격이 전해지면서 휙 돌아가는 것을 꽉 붙잡았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계속 달리면서 보니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고 차도 잘 달리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되어 매쾌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며 최고조에 달한 냉각수 온도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말 그 순간 아..X됐다..(저속한 표현이라 죄송하오나 다른 말로 표현불가)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더군요. 길 옆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보니

냉각수 통이 터져 냉각수는 다 새버렸고 범퍼와 냉각팬이 찌그러져 들어가서 다시 시동을 걸면 엄청한 굉음을 내며 더 이상 탈 것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비상등만 깜빡일 뿐 일행들과 셋이서 한참을 아무 말도 못하고 그러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911에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전화기가 말썽이었습니다. 통화 가능 안테나 표시는 몇 개가 뜨는데 연결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이대로 이 곳에서 밤을 새야되는 건가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어둠 속에 있으면 눈이 적응을 하기 마련인데

너무 어두워서 그런지 한참을 어둠 속에 있어도 여전히 깜깜했습니다. 별의별 상상이 다 들기 시작했습니다. 무장 강도들이

우리를 다 죽이고 돈을 훔쳐간다든지 야생 동물들로부터 습격을 받는다든지 하는...시간은 흘러흘러 자정에 가까워졌고 지나가는

차들도 점점 줄어드는데 아무리 손전등을 흔들어 대고 모스 코드로 SOS 사인을 보내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간혹 속력을 늦추고

뭔 일인가 보는 것 같다가도 낯선 동양인 남자 셋이 있으니 다시 속력을 높여서 가버렸습니다. (우리가 생각해도 우리가 껄렁해

보인다는 사실이 더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래도 한참을 그렇게 해대니 결국 차가 한 대 섰습니다. 그런데 15m 정도 뒤에 차를 세우더니 마냥 기다립니다. 그들도 차에서

내리기는 겁이 났던가 봅니다. 손을 흔들며 다가가는데 경계하는 듯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동물을 쳤는데

차가 퍼졌다고 말을 하고 고맙다고 도와달라고 하니까 그제서야 앞쪽으로 옵니다. 우리를 구해준 히어로는 픽업트럭 뒤에 커스텀

바이크를 실은 트레일러를 끌고 여행 중인 나이가 지긋한 Jimmy King 이라는 바이커와 그의 부인이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와 자초지종을 말하고 전화기를 빌려서 경찰과 렌터카 긴급 서비스콜에 신고를 했는데 렌터카 긴급 서비스콜은

상담원에게 연결이 되더니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게 없고 가장 가까운 엔터프라이즈 로케이션은 플랙스탭에 있으니 내일 아침에

거기로 전화를 해보랍니다. 화를 내면서 긴급 서비스가 왜 이 따위냐고 따지니 일부 미국 흑인 여성들 특유의 (인종차별적 발언

죄송하오나 미국 생활 중 그들에게 당한 안좋은 기억이 너무 많아서...) 복장 터지는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King 부부는 고맙게도 경찰이 올 때까지 함께 기다려 주었고 40분이나 걸려서 경찰차 3대가 나타났습니다. (경황이 없어서 주소나

전화 번호를 묻지 못해 아쉽고 이 글을 볼 수는 없겠지만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미국에는 툭하면 총이나 빼들고 사람들 무릎 꿇리기 좋아하는 싸가지없고 지나치게 고압적인 태도의 경찰관이 있는가 하면 이 놈이

진짜 경찰인가 싶을 정도로 나사 풀린 애들도 있는데 사고를 담당하게 된 경찰관은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다른 경찰관이 동물 사체를

확인하러 갔다 오기를 기다렸다가 사건 경위서를 작성하고 견인차 오기까지 또 기다리고 하는데 거의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렸는데

가뜩이나 머리가 혼란스러운데 핫도그에 다리가 달리면 레즈독이라느니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해대는데 들어주면서 억지로 웃기도

정말 피곤했습니다. 법적인 책임이나 추후에 추가적인 조사는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한 숨을 내쉬었죠.

얼마 후, 커다란 견인차가 와서 차를 올리고 우리를 태워서 숙소로 향했습니다.



다음 날 차를 빌렸던 엔터프라이즈의 W.Pico (K타운 근처임) 로케이션에 전화를 하니 사고 접수는 되었는지 이미 알고 있더군요.

직원 중에 sean이라고 하는 젊은 교포 직원이 있었는데 (아마 그 로케이션 사장님이 한국인이고 그 아드님으로 추정) 너무 성실하고

친절하게 사고 수습을 도와주었습니다. 보험을 Damage Waiver만 구입을 해서 견인피라든지 추가 비용이 들까봐 걱정을 했는데 먼저

어디 다친 데 없는지 물어보고 돈 걱정은 하지 말고 플랙스텝까지만 가면 새 차를 받게 해주겠다 했습니다. 서툰 한국말로 한국의

자동차 보험 회사 직원들보다도 더 친절하고 믿음직스럽게 도와주는데 참 고맙더라구요. 캘리에서 빌린 차량을 사고로 파손시키고

몇 시간 거리 내에는 로케이션도 없는 페이지에 두고 애리조나에서 새 차를 받아서 캘리의 또 다른 로케이션에 리턴(사정이 그렇게

되었음)하는 무척 복잡한 상황이 되어버려 플랙스텝에서도 새 차를 받을 때나 리턴하고 어카운트를 클로즈 할 때나 그 로케이션 직원들이

서류 처리라든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지들끼리 헤매는데 그럴 때마다 숀이 직접 그들과 통화를 해서 모드 것을 직접

해결해 주었습니다. 미국에서 동포애랄까 이렇게 느낀 것도 처음이고 한국 사람이라서 더 혜택을 본 듯한 것도

처음이라 참 고맙고도 새로운 경험을 한 것 같아요. 암튼 덕분에 남은 여정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답니다.



페이지에서 새 차를 받기 위해 플랙스텝으로 갈 때 모텔 아줌마 소개로 그 동네 어떤 아저씨 차를 타고 가게 되었는데

그 아저씨 말로는 내이티브 아메리칸들은 US-89를 저주받았다고 생각해 Devil's Road라고도 부른다고 하더군요.

사고가 굉장히 자주 난다고 합니다. 그 지역 여행하시려는 분들꼐 괜히 찝찝한 얘길라나요;; 더 조심하시라고 드렸습니다^^;



이상, 지금까지 저의 로드킬 경험담이었습니다.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 정말 큰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픈 것은 야간 운전은 될 수 있으면 피하시는 게 좋구요. 과속은 절대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ㅎㅎ

야생 동물 조심하시고, 사막이나 산간 지역 여행하실 때에는 잘 터지는 핸드폰이 필수입니다.

모두들 즐겁게 무사히 여행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부족한 글솜씨로 장문의 글을 써보았습니다.

순간, 순간을 떠올리면서 글을 쓰다보니 추억에 젖어서 주절주절 많이도 썼네요.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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