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두 달 여행기를 올립니다. 이 곳에서 도움을 많이 받은 맘에 무언가 갚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여행지에서 바로 올리면 지금 가시는 분들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좀 길지만 따로따로 올리겠습니다. 사진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사진까지 보시려면 제 블로그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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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8일

곰이 나타났다. 키는 1.5미터, 무게는 100킬로그램 쯤 나가 보였다. 검붉은 털을 하고 있는 이 곰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새끼일 가능성이 높았다. 주변에 어미곰이 있다는 의미다. 고함을 치고 큰 소리를 내도 도망가지 않았다. 배가 고픈 듯 땅을 헤치며 한참을 서성이다가 사라졌다. 우리는 간신히 긴장을 풀었다.

아침에 짐을 싼 뒤 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이 집에서 두 밤을 편히 보냈다. 서두른다고 나왔는데, 이미 시간은 9시다.

오늘 목적지는 '안개 폭포'(Mist Falls)다. 윤하에게 일정을 짜 보라고 했더니, 대뜸 4-5시간 정도 하는 트레일을 하고 싶다 했다. 나는 무리가 될 것을 걱정했다. 지금까지 한 트레일은 길어야 2-3시간 코스였다. 하지만 군말 하지 않고 가자고 했다. 윤하는 한참을 찾아보고 이리저리 생각하더니, 가장 좋은 트레일을 찾았다고 좋아했다.

안개 폭포 트레일을 하기 위해선 킹스캐년 국립공원에서도 가장 안쪽까지 들어가야 한다. 공원 입구에서 산길을 따라 한 시간 반이나 가야 했다. 180번 도로가 끝나는 지점이었다.

가는 길은 절경이었다. 계곡을 따라 물이 흘렀고, 그 물이 돌을 깍아 더 깊은 계곡을 만들었다. 산은 바위가 많은 돌산이었는데, 돌산 위로도 나무가 자랐다. 물은 힘차게 흘렀다. 그 많은 물이 이 돌산에서 계속 흐른다는 게 신기했다.

차를 대고 트레일 입구에 가니 레인저가 있었다. 나는 안개 폭포에 아이들과 가는 게 괜찮은 지 물었다. 레인저는 가는 길에 뱀을 조심하라고 했다. 뱀이 막대기 처럼 보여서 잘 인식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나는 곰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도 물었다. 큰 소리를 내고, 막대기 같은 것을 휘둘러서 좇아내야 한다고 했다. 어릴 때 읽은 동화책에는 죽은척 하라고 했었던 것이 생각났다.

트레일 초반은 벌판 같은 곳이었다. 벌판에는 사방에 쓰러진 나무들이 있었다. 그 나무들은 대부분 불에 그을려 있었다. 불에 타서 죽었거나, 불에 탄 것을 누군가 벤 것이었다. 어제 세콰이어 국립공원에서 본 화재의 흔적이 이 곳에서도 있었다. 평지를 지나니 숲이 나왔다. 제대로 된 트레일을 하나보다 싶었는데,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곰이었다. 덤불에 숨어 있다고 한 사람이 이야기 해줬다. 우리 가족은 곰을 보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저었지만 찾지 못했다. 잠시 뒤 곰이 모습을 드러냈다. 털이 검붉었고, 키는 1.5미터 가량 됐다. 우리를 위협하는 기색은 없었다. 땅을 이리저리 파는 모습이 배고픈듯 했다. 사람들은 "소리를 내는 게 하나도 효과가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곰이 길에서 멀어 지기를 기다렸다. 곰은 한 마리가 보이면, 여럿 있을 가능성이 높다. 새끼곰이 있다는 것은 주변에 어미곰이 있다는 의미였다. 5-10분 가량을 서성이던 곰은 마침내 사라졌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지나갔다.

곰을 야생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날 곰을 네 마리나 봤다. 사람이 많이 없어서 멀리 있는 곰이라도 무척 무섭게 느껴졌다.

길이 점처 험해졌다. 길은 조금씩 가팔라 졌고 좁아졌다. 여기에 모기떼까지 있었다. 수 십마리의 모기들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붙어 괴롭혔다. 여기 모기는 도시 모기와 다르게 잘 도망가지 않았다. 손으로 툭 치면 그냥 죽었다. 워낙 수가 많아 다 잡을수는 없었다. 손과 발을 휘휘 저으며 빠르게 지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킹스캐년은 오가는 사람이 적어 한적했다. 하지만 풍경은 결코 한적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조금 더 시간을 내어 이 곳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올라가면서 본 계곡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등산로를 따라 계곡이 이어졌고, 그 뒤로는 높이를 가늠하기 힘든 거대한 산이 위용을 드러냈다. 좋은 경치를 뒤로 하고 산에 계속 오르니 저 쪽에서 힘찬 물줄기가 보였다. 안개 폭포가 나왔다. 폭포를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 가다가 왜 안개 폭포인 지 알았다. 한 참 떨어진 곳에서도 작은 물방울 같은 것들이 날렸다. 안개 보다는 안개비 같았다.

이 곳에서 우리는 도시락을 먹었다. 아내가 싼 연어 조림이 반찬이었다. 올라오는 데 두 시간 넘게 걸렸고, 시간은 이미 한 시를 넘어서 도시락을 허겁지겁 비웠다. 힘들게 메고 온 보람이 있었다.

내려가는 길에 시윤이가 갑자가 "뱀이다"고 외쳤다. 갈색과 검은색 얼룩 무늬가 있었고, 매우 위협적으로 '쓰루룹' 하고 소리를 냈다. 나는 "얼른 가라"고 한 뒤 나도 뒤따랐다. 그러다가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에 다시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은 곰도, 뱀도 등산하다가는 처음 본다며 좋아했다.

킹스캐년에는 뱀이 많다고 했다. 이날 트레일을 할 땐 두 마리를 봤다. 이 뱀은 '쓰르룹' 하는 소리를 크게 내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내려가는 길에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내가 먼저 들어가니 아이들과 아내도 따라 들어갔다. 물은 얼음장 처럼 차가웠다. 발을 대는 순간 땀이 한순간에 식었다. 아이들은 요즘 물만 보면 들어간다. 시윤이는 특히 물을 좋아해서, 한 번씩 물에 들어가게 하면 '까르르' 웃는다.

돌아오는 길에 아까 곰이 나타난 지역까지 갔다. 나는 또 곰이 있을까봐 경계했다. 곰이 아니라 이번에는 사슴이 나타났다. 사슴은 길에 서 있었는데, 우리가 가까이 가도 다른 쪽을 쳐다봤다. 나는 대체 무엇을 보는 것일까 궁금해 하다가, 곰이 아닌가 했다. 시윤이가 거짓말 처럼 "곰이다"고 했다. 나는 설마 했는데, 50미터 쯤 떨어진 바위 위에 곰이 있었다. 곰은 한 마리가 먼저 나타났고 뒤이어 새끼 두 마리가 모습을 보였다. 바위 위에서 곰은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사슴을 보고 있었는 지 모르겠다. 아내는 곰이 자기와 눈이 마주쳤다며 놀래 했다. 곰은 아내를 본 뒤 갑자기 바위 위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우리는 깜짝 놀라 후다닥 도망갔다. 조금 도망가니 사슴이 길 옆에서 곰 방향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와 사슴이 같은 처지가 됐다. 우리는 더 빠른 걸음으로 그 곳에서 벗어났다.

트레일을 다 마치니 기진맥진 했다. 5시간 가까이 걸어서 힘들었고, 곰까지 봐서 더 힘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은 신이 났다. 평생 못 잊을것 같다고 했다. 나는 곰보다 운전이 더 걱정이었다. 시간은 이미 오후 5시였고, 다음 목적지인 요세미티까지는 3시간 넘게 걸렸다. 가는 길에 우리는 프레노란 도시에서 인앤아웃 버거로 저녁을 때웠다. 작년 12월 LA 여행 때 워낙 맛있게 먹어서 기대가 컸다. 기대 만큼 버거는 맛이 있었다. 빵은 바삭하고, 채소는 신선했했다. 페티의 육즙도 넉넉했다. 우리는 치즈버거를 각자 한 개씩 먹은 뒤 하나를 더 시켜 나눠 먹었다.

요세미티 공원 내 숙소인 와와나 호텔에 도착하니 밤 9시를 훌쩍 넘겼다. 방은 욕실이 없고 방만 덜렁 있었다. 이 호텔은 18-19세기 지어져서 낡고 시설이 열악했다. 주차장도 부족해 차 대기도 힘이 들었다. 우리 방은 침대가 두 개였는데, 한 개는 더블 침대이고 또 하나는 싱글침대였다. 아이들은 "예약을 잘 못 한 것 아니냐"며 불평했다. 방 구석에는 아주 작은 세면대가 있어서 그나마 세수와 양치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수건에 물을 묻혀 몸을 닦았다. 아이들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웃었다. 시윤이는 나와 똑같이 자기 몸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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