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 화요일 날씨 여전히 맑음

일어나서 커튼을 열어 저치니 따가운 햇살이 방안으로 파고듭니다. 벌써 8시가 다 되었군요. 오늘도 여느 날처럼 출발을 서둘렀습니다. 오늘은 콜로라도 록키 마운틴을 봐야 합니다. 트레일도 해야 하고요.

9시 30분 쯤 랏지를 출발해 그랜드 레이크에서 산보 겸 기념촬영을 하고 서성대다가, 바로 록키 국립공원으로 진입했습니다. 연간 회원권을 내미니 친절하게 맵이 필요한지 물어봅니다. 물론 필요합니다. 조금 올라가니 비지터 센터가 나오는 군요. 편도 2마일 이내의 트레일 코스를 추천해 달라고 했습니다. 트레일 지도를 내밀고 열심히 설명해 주는군요.

미국의 비지터 센타는 어디를 가더라도, 심지어 아주 시골까지, 그 지역에서 가장 좋은 시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항상 친절하게 설명을 잘 해줍니다. 더러는 커피를 무료 서비스하는 곳도 있습니다. 물론 옆에는 작은 통과 함께 다른 사람에게도 커피를 서비스할 수 있도록 ‘donation'해달라는 작은 메모가 있습니다. 1불 지폐 한장 내면 창구직원의 서비스가 엄청 더 좋아집니다.

그런데 여기는 커피는 없고, 기부박스만 있습니다. 그것도 출신지 별로 기부금액이 잘 보일 수 있도록 돈 통을 구분 해놓았습니다. 허... 그런데 미국 50개주 외에 유럽 몇 개국과 아시아권에서는 일본이 유일하게 포함되어 있군요. 심장이 상했습니다. 갑자기 창구직원이 미워집니다. 산속에서만 돌아다니다 보니 사람이 참 단순 해 집니다.

첫 번째 코스, ‘holzwarth historic site’입니다. 록키 마운틴을 넘어가는 34번 도로상에서 벗어나 겨우 800미터만 걸어가면 됩니다. 그것도 풀밭사이를 가로질러 가는 겁니다. ‘웜업’으로 선택한 코스지만 너무 쉽고 좋습니다. 종착지는 과거 1920년대, 최초로 이곳에 들어와 랏지를 건설한 독일인 이름을 본 딴 곳입니다. 물론 지금은 역사적 장소로만 사용되고 실제 영업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 그들 가족이 쓰던 기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입니다. 설명에도 나와 있지만 얼마나 힘든 생활을 했을까요. 그 긴 겨울날, 어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들은?    

다음 코스는 'colorado river trailhead'에서 시작되는 꽤 긴 코스입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차량 몇 대는 이미 주인이 산으로 올라갔는지 인기척이 없고, 오직 미니밴 1대에 문이 열려있고 백인 부부가 짐을 정리하고 있군요. 씩씩하게 빽팩을 메고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코스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빼곡히 들어찬 숲속으로 오솔길이 나와 있습니다. 길 중간 중간에 짐승들의 배설물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군요. 어떤 것은 거의 새것(?)입니다. 10여분 올라갔을까요. 딸내미가 ‘아빠, 뭔지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하는 겁니다. 순간 침묵... 침묵... 휘이잉~ 바람소리, 그리고 긴장, 저와 집사람은 ‘에이 괜한소리...’하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넘기지만... 우리가족 모두 긴장했습니다.

다시 조금 더 올라갔습니다. 따다닥, 나무 부러지는 소리에도 걸음이 멈춰집니다. 자연스럽게, 눈빛과 눈빛으로, 그만 돌아가자는데 의견이 일치되는 것을 느낍니다. 발걸음을 서둘러 내려왔습니다.

입구에 돌아오니, 우리가 출발할 때 짐정리 하던 백인 여자가 돌아보고 묻더군요. ‘왜 금방 내려오니? 내가 지난번에 가봤는데 조금만 더 올라가면 경치가 끝내주는데’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곰 나올까봐 겁나서...’ 백인여자 웃으면서 왈, ‘내가 이쪽 동네 자주 와봤는데 곰은 절대 없어,(겁많긴...) 그러면 다른 코스하나 추천해 줄게, 있잖아 여기 밑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그랜드 레이크가 있는데 그기 'adams fall'이라고 있어요, 그기 끝내줘, 곰 안나와’합니다. 그리고 남편까지 불러서 지도까지 펼쳐가며 설명해 줍니다. 꼭 가보라고.  

성의는 고맙지만, 오늘 보아하니 가족 전체가 컨디션이 별로입니다. 아마도 곰은 핑계였고 다들 오랜 여행으로 지친상태라 걷기가 싫었던 겁니다. 차로 다시 산 정상부분으로 이동하여 'alpine visitor center'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글레이셔에서 봤던 ‘logan pass visitor center'와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트레일을 시작했습니다. 편도 400미터 정도를 올라가니 사방으로 장쾌한 산맥이 물결치며 흐르더군요. 장대합니다. 굉장합니다. 바람도 강하고 기온도 상당히 찹니다. 그런데, 젊은 백인 남자와 여자애들은 반바지에 반소매로 다니는 군요. 먹는 것이 달라서 그런가요?

다시 차를 타고 조금 이동하니 ‘tundra communities trailhead'가 나옵니다. 여기서는 편도800미터를 올라가야 합니다. 경사는 그렇게 심하지 않은데 상당히 숨이 찹니다. 아마도 현재 위치가 1만 1,500피트(미터로는 어떻게 되나요?) 정도의 고산지대라서 그런가 봅니다.  집사람은 속이 좀 거북하다고 하네요. 저도 학교 다닐 때 전력으로 장거리 달리기를 한 후 느꼈던 그런 매스꺼움을 느꼈습니다. 하여간 주변 산들이 1만 3,000피트급 이상 입니다.  정상부분의 ’mushroom rock'은 묘한 물건을 연상시킵니다.

다시 차로 조금 이동, ‘forest canyon'에서 차를 세우고 무려 100미터나 걸었습니다. 점점 지쳐갑니다. 100미터가 1,000미터 가는 만큼 힘이 듭니다. 여기는 눈 밑으로 검은 숲의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산의 높이가 표시되어 있군요. 아!! 여기는 친절하게 미터도 병기되어 있습니다. 파고다 마운틴의 높이가 4,114미터입니다.

록키 산을 크게 그려보면, 밑에서부터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내고, 거기서부터 능선을 따라 한참을 진행하다가 다시 estespark 쪽으로 내려가도록 코스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점이 캐나다 록키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역시 자동차의 왕국답게 자동차를 타고, 차에서 내리지 않고도 록키 산을 다 볼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습니다. 스케일이 상당합니다. 설악산 공룡능선을 차타고 지나간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글레이셔 국립공원과 분위기는 비슷합니다. 여기도 역시 벼랑 끝에 걸린 도로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규모가 훨씬 큽니다. 정상부분은 거의 편평한 툰드라 지역입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들의 규모가 훨씬 더 크고 장대합니다. 집사람은 그래도 글레이셔 쪽이 더 좋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히든 레이크’로의 트레일이 지울 수 없는 강렬한 느낌을 주었나 봅니다.

내려오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estespark에 있는 숙소로 일찍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fall river'쪽으로 내려오다 보니 엘크 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습니다. 여기는 옐로우 스톤 분위기가 나는군요.

숙소는 ‘lake estes inn & suite'입니다. 아침은 주고, 옥외 풀도 있고, 방도 무지 넓고 편안합니다. 그러나 인터넷이 안됩니다. 가격은 priceline.com으로 59불에 비딩 했습니다. 화장실쪽 창문으로 호수가 가까이 보이는 군요. 그러나 화장실 쪽 전망이라...      

오늘은, 정말 피곤해서 그런지 만사가 귀찮습니다. 사실 산 정상에서 차를 세워두고 가족 모두 30분여 눈을 붙였습니다. 그래도 피곤합니다. 일찍 들어와서 쉬기로 했습니다.

제법 넓은 저쿠지가 뜨끈뜨끈 합니다. 풀은 물이 제법 서늘한 것 같아 우리 가족 모두 저쿠지를 풀 삼아, 반신욕 하듯이 놀았습니다. 물도 매끈한 게 온천욕이 따로 없습니다. 백인 아줌마 둘이서 같이 놀다가 우리가 있으니 불편했던지 금방 가네요. 덴버에 사는데 남편이랑 애들 다 떼놓고 놀러왔는데 너무 편하고 좋답니다. 그런데, 흐흐흐, 아줌마 둘이 빠져나가니 저쿠지 수위가 엄청 내려갑니다.

내일이면 모든 일정이 끝납니다.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주부터는 다시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합니다. 어제부터인가 밀린 일을 처리할 생각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이제 휴가모드에서 점점 업무모드로 전환되기 시작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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