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4: 2023년 9월 16일 토요일

어느덧 여행은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혼자서 하는 미국 서부 3주 여행이 너무 길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오늘은 Moab에서의 넷째 날인데 다시금 빡센 하이킹에 하루를 온전히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걸을 길은 Canyonlands NP에 위치하고 있는 Upheaval Dome Syncline Loop Trail입니다.

Upheaval Dome Syncline Loop Trail
- 거리: 13 km
- 고도변화: 462 m
- 소요시간: 5~7시간
- Type: Loop
- 난이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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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이 길 관련 자료를 찾아 보면 'Primitive Trail' 또는 'Difficult to Follow" 같은 다양한 경고 문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하이킹을 하는 도중에도 길 초반에 큼지막한 대문자 WARNING 사인을 여러 번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국립 공원 홈페이지를 보면 이 길에 대해 "This is the most challenging trail in the Island in the Sky district, and most park rescues occur on this trail."라고 큼지막하게 써 놨을 정도로 이 길의 난이도는 최상위 레벨입니다. 제가 이 하이킹을 굳이 토요일에 시도한 이유도 혹시라도 이 길을 걷다가 문제가 생길 경우 사람이 거의 없을 주중보다는 그나마 사람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주말에 혹시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길을 걸어보면 특정 부분은 길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조악하고 두 손 두 발을 모두 이용해서 커다란 바위 더미를 헤치고 올라가야 하는 구간 및 길 바로 옆에 절벽을 끼고 걷는 위험한 구간도 있습니다. 하이킹 도중 마실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전혀 없고 제대로 된 휴식 공간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걷는 동안 위에서 내려 쬐는 햇빛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길에서 GPS 신호는 잡히지 않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길 초반에 협곡 바닥으로 급경사 구간을 통해 내려가는데 내려간 그 모든 고도 변화를 체력이 떨어지는 길 후반에 고스란히 올라가야 한다는 최대 난관이 도사리고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 길을 경사도에 따라 나눠 본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 Part 1: Trailhead에서 Upheaval Valley 상단 가장자리까지의 평탄한 구간
- Part 2: Upheaval Valley 위에서 바닥으로 내려가는 급경사 구간
- Part 3: Upheaval Crater Spur Trail 및 Campsite가 위치한 Upheaval Valley / Syncline Valley 바닥 구간
- Part 4: Lower Syncline Valley에서부터 Upper Syncline Valley로 올라가는 급경사 구간
- Part 5: Upper Syncline Valley에서부터 완만한 오르막길을 통해 Trailhead로 복귀하는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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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20분에 숙소를 나서 Canyonlands NP로 갑니다. 주중에는 거의 보이지 않던 자전거 타는 분들이 주말에는 도로 곳곳에 포진해 있으므로 안전 운전에 좀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습니다. Syncline Loop Trailhead는 Canyonlands NP의 Island in the Sky 구역에서 차량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도로 북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어서 Moab에서 이동할 경우 편도 기준 1시간은 잡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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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ilhead에 주차장이 있는데 이 곳이 Upheaval Dome Overlook Trail과 Trailhead를 공유하고 있어서 오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차량이 꽤 많았습니다. 오늘 같은 주말에 조금 늦게 오면 차량이 빠질 때까지 주차장을 빙글빙글 돌아야 할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피크닉 테이블이 바로 옆에 위치한 단독 주차장을 잽싸게 잡아 편안하게 차를 주차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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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ilhead 입구에 길 안내판 및 미국 서부 국립 공원에서 가끔 볼 수 있는 Heat Kills! 경고 간판이 서 있습니다. 이 경고 간판을 절대 우습게 볼게 아닌 것이 제가 예전에 Arches NP의 Devil's Garden Trail을 걸었을 당시 이와 똑같은 경고 간판이 Trailhead에 있었는데 그 날 오후에 실제로 남성 한 분이 하이킹 도중 안타깝게도 심장 마비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본인의 과거 하이킹 경험, 평소 체력 수준, 날씨 및 본인의 당일 컨디션까지 감안한 상태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에만 이런 종류의 하이킹을 시도해야 합니다. 그냥 별다른 준비 없이 충동적으로 이런 길을 걸어 들어갔다가는 중간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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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20분에 하이킹을 시작, 1분만 올라가면 Upheaval Dome Overlook Trail과 Syncline Loop Trail의 분기점에 도착합니다. Syncline Loop Trail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Loop 형태의 길이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저는 국립 공원 홈페이지에서 추천하는 시계 방향으로 걷기 위해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으며 여기서부터가 Part 1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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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초반은 거의 평지에 가까운 오르막 + 내리막인데 위에서 언급한 WARNING 사인이 바로 출몰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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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Trailhead 주차장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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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km 정도를 걸어 들어가면 길 앞 쪽으로 펼쳐지는 White Rim과 Stillwater Canyon 파노라마 경치를 볼 수 있습니다. 길 곳곳에 Cairn이 잘 설치되어 있어서 하이킹 초반에 방향을 잃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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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관목 그리고 잡풀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미국 서부 길을 좀 더 걸어 들어가면 지금까지 걸어왔던 Upheaval Valley의 끝에 도달하게 되는데 여기가 Part 1 종료 지점이며 이 지점부터는 눈 앞에 보이는 협곡 바닥으로 거의 수직 낙하하는 길 Part 2가 시작됩니다. 이 지점 도착 시간은 오전 9시 45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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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Warning 사인이 또 나타납니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굉장히 어렵고 험한 길이다'라고 점잖게 경고를 날리던 이전 사인과 달리 이 경고 사인은 '지금이라도 자신 없으면 1 마일 떨어져 있는 Trailhead로 당장 돌아가라'는 아주 직설적인 추가 경고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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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 바닥으로 급격하게 내려가는 이 길의 경사도는 약 20%이며 당연히 Switchbacks 형태로 길이 진행됩니다. 길 상태는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아주 울퉁불퉁한 자갈밭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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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길 경치가 아주 볼만한데 왼쪽에 보이는 Steer Mesa와 오른쪽에 보이는 Bighorn Mesa 중간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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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tchbacks 구간을 내려오다가 문득 위를 올려 보니 지금 얼마나 심한 급경사 구간을 내려오고 있는지를 한 눈에 알 수가 있었습니다. 무릎이 안 좋은 분들에게는 이렇게 급경사로 내려오는 구간 하이킹이 굉장히 괴로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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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 중간 지점에 도달하니 길의 경사도가 완만해지면서 좀 편하게 걸을 수 있는 Wash 구간이 나옵니다. 길 가장자리를 슬쩍 보니 그냥 낭떠러지 절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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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평탄한 구간은 금방 끝남과 동시에 길이 갑자기 막다른 곳에 도착하게 됩니다. 도대체 길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눈 앞에 놓여 있는 두 개의 대왕 Cairn 사이로 바위가 오목하게 파여 있는 지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끙끙거리고 이 곳을 통과하자 협곡 바닥으로 내려가기 위한 두 번째 급경사 구간이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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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고 생각했던 Switchbacks 구간을 통해 터벅터벅 아래로 향합니다. 이 곳 역시 길 상태는 그냥 험한 자갈밭입니다. 혹시라도 이런 곳에서 무심코 발을 잘못 디뎌 발목이라도 삐게 되면 정말 끝장이니 한 발자국씩 조심스럽게 내려갑니다. 여러 번에 걸쳐 말씀 드리지만 미국 서부 하이킹에서 명심해야 할 첫 번째 원칙은 "속도가 아닌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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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게 길인지 아니면 암벽에서 굴러 떨어져 깨진 바위 덩어리 틈을 그냥 눈치껏 알아서 비집고 가는 건지 분간이 안 가는 구간입니다. 길도 희미하고 길을 덮고 있는 바윗돌이 너무 많아서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하는 Cairn도 그다지 의미가 없는 구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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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정신을 차리고 길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제대로 된 Canyonlands NP의 중심부를 오늘도 역시나 홀로 걷고 있음을 말해주는 경치가 보입니다. 많은 분들은 '이런 사악한 곳에서 도대체 혼자서 뭐하고 있는 거냐?'라고 말씀하실 수 있지만 저는 이런 경치를 보면 정말 희한하게도 힘이 팍팍 솟아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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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를 올려다 보니 이 구간 역시 내려오는 경사도가 만만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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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걷다 보니 어느덧 주변 Mesa 꼭대기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 Upheaval Valley 바닥 Wash 구간에 도착하면서 Part 2 구간이 끝나고 Part 3 구간이 시작됩니다. 이 곳 도착 시간은 오전 10시 45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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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시작점인 Wash에 도착하면 Syncline Campsite 및 Upheaval Crater Spur Trail에 도착할 때까지 나름 평탄한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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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간이 Upheaval Valley 바닥이라서 위에서 굴러 떨어진 집채만 한 바위들이 길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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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아래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지금까지 시뻘건 사암으로 점철되어 있던 이 곳에 회녹색 바위들이 슬슬 드러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는데 지구의 새로운 지층이 드러나는 지점에 도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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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을 보면 Mesa Top에서 중간 지점까지는 시뻘건 사암층이지만 그 아래로는 회녹색의 다른 지층이 자리 잡고 있음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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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Wash 구간이 직선이 아니고 여러 차례에 걸쳐 코너를 돌아 나가야 하는데 길 옆에 펼쳐지는 바위들이 깎여 나간 형태를 보니 이 곳에 비가 쏟아져 물이 흐를 경우 물의 수위가 어디까지 올라가는지를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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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양 옆으로 펼쳐지는 Boulder Field와 끝없는 Mesa 그리고 그 중앙에 널려 있는 기묘한 바위들을 관통하는 길 주변의 경관은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Canyonlands NP 바닥으로 실제 내려와 걸어보니 The Island in the Sky에 위치한 주요 Viewpoint에서 바닥을 바라보는 것과 그 속을 실제로 두 발로 걸을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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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한 Wash 구간을 지나치자 Trailhead 출발 기준 약 4.6 km 지점에 위치한 Syncline Loop Trail과 Upheaval Canyon Trail 분기점에 도착했습니다. 도착 시간은 오전 11시 23분이었습니다. Upheaval Canyon Trail로 갈 경우 White Rim Road까지 다녀올 수 있으나 11 km나 되는 길을 추가로 걸어야 하기 때문에 백팩킹을 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Syncline Loop Trail을 걸으면서 하루 만에 이 길까지 추가로 걷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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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에 나와 있듯이 여기서 500 m만 더 걸어가면 Upheaval Crater Spur Trail과의 분기점에 도착합니다. 꽤 넓은 폭의 Wash 구간을 걷다가 갑자기 앙증맞게 놓여 있는 돌계단을 만났는데 자세히 보니 아기자기하게 아주 잘 만들어진 돌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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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 정상에서 뒤를 보니 지금까지 걸어왔던 바위 암벽 아래 Wash 구간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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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 및 언덕을 넘어서면 Upheaval Dome Spur Trail 분기점에 도착합니다. 여기 도착한 시간이 오전 11시 35분이었습니다. Crater 중간에 뚫린 커다란 틈으로 멀리 Upheaval Dome이 보이는데 만약 Upheaval Dome이 운석과의 충돌로 생긴 가설이 맞는다면 운석은 틀림없이 이 방향에서 지상과 충돌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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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heaval Dome Spur Trail의 경우 최초 하이킹을 계획할 때 반드시 가야겠다는 다짐은 사실 없었으며 당일 사정을 본 후 최종 결정하기로 했었는데 결국 Spur Trail은 걷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오늘 걸은 거리가 6 km였고 Spur Trail을 다녀올 경우 왕복 기준 4.8 km의 하이킹을 더 해야 하는데 아직도 더 걸어야 할 (급경사 오르막)길이 7.4 km나 남아 있는 점을 감안할 때 Spur Trail까지 걷기에는 살짝 무리라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Spur Trail을 걷는다고 해도 Upheaval Dome의 제대로 된 모습은 볼 수 없으며(이 길을 걷지 않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함) 따라서 Upheaval Dome의 모습을 100% 감상하기 위해서는 First & Second Overlook Trail을 반드시 걸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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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간만에 사방이 좀 탁 트인 Syncline Campsite 주변을 지나갔습니다. 그냥 봐서는 이 곳이 Campsite인지 전혀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는데 그나마 말뚝 안내판 하나가 이 곳이 Campsite임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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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에 Bighorn Mesa 그리고 오른편에 Buck Mesa가 위치한 이 Campsite는 평평한 바닥에 텐트를 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뿐이며 그 이외 어떤 편의 시설(화장실 없음!)도 없는 황량한 곳입니다. 최초 계획은 이 곳에서 점심을 먹을 예정이었는데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장소가 전혀 없어서 좀 더 걷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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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니 길 앞으로 커다란 협곡이 하나 보였는데 저 틈을 비집고 올라가야 한다는 느낌이 바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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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길 옆에 커다란 향나무 밑 그늘 공간이 있었으며 여기서 준비해 온 샌드위치로 간단한 점심을 먹은 후 20분 정도 휴식을 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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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후 오후 12시 12분에 다시금 걷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나름 평탄하게 진행되던 길이 슬슬 오르막으로 변하고 주변 환경 역시 좀 더 울퉁불퉁한 바위 및 암벽들로 점철되기 시작합니다. 얼마 전에 어렴풋이 보였던 협곡의 모습 역시 점점 그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길은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하는 자갈밭을 지나 시커멓게 그늘진 곳 급경사 구간을 기어오른 후 결국 오른쪽 능선을 넘어 계속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대략 이 지점이 Part 3의 마지막이자 Part 4의 시작점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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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자갈밭(영어로는 Boulder Field라고 칭하는 곳) 입구에서의 모습입니다. 여기부터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길은 없기 때문에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는 Cairn 및 사람들의 발자국 흔적 그리고 본인의 길 찾기 능력을 총동원해서 무조건 앞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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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번 서부 여행 기간 동안 걸었던 모든 길 가운데 이 구간이 가장 사악한 구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체력적으로 엄청나게 고생했던 Zion NP의 Subway 바위 더미 구간도 힘들기는 했지만 적어도 Subway 구간은 이렇게 급경사로 치고 올라가지는 않았습니다.

자갈밭 초입에 뜻밖에도 물이 고여 있는 곳을 볼 수 있었는데 흐르는 물이 아니라서 정수 후 마실 수 있는 물은 아닌 듯 싶었습니다. 이 길을 걷기 위해서는 일인당 적어도 4리터 이상의 물과 이온 음료를 가지고 올 것을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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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험난하기 그지 없습니다. 도처에 굴러다니는 죽은 나무와 바위덩어리 사이로 간간히 놓여 있는 Cairn이 여기서 그나마 하이커가 의지할 수 있는 생명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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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좀 고르기 위해 중간에 한 번 서서 걸어온 길을 뒤로 바라보니 저 멀리 보이는 Bighorn Mesa를 배경으로 사방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자갈 및 바위로 뒤덮인 Syncline Valley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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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돌려 올라가야 하는 방향을 쳐다보니 지금까지 걸어온 구간보다 더 가관입니다. 여기까지 들어온 이상 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다시금 앞으로 꾸역꾸역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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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깎아서 만든 것이 분명해 보이는 계단을 지나니 길 오른편으로 갑자기 깎아지른 절벽 구간이 나타났는데 이 길을 걸으면서 이 곳이 가장 위험한 구간으로 보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예전에는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철기둥을 심어 쇠줄 펜스를 쳐 놓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철기둥 잔해만 남긴 채 기존에 설치된 안전 장치는 국립 공원 측에서 모두 제거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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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간에 도착하자 길의 방향이 처음에 제가 생각했던 두 바위 암벽 사이의 바닥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 왼쪽 바위 암벽의 중간을 타고 어정쩡하게 올라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길의 위치가 산등성이도 아니고 바닥도 아닌 중간이다 보니 위에서 무너져 내린 수많은 바위 더미를 끊임없이 헤치면서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Cairn을 따라 계속 올라가다 눈 앞에 사람 키보다 높은 바위들만 보이는 이 곳에서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바위 틈으로 기어 올라갈 수 있는 틈새가 있었고 거기에는 고맙게도 Trail의 방향을 알려주는 조그만 안내판이 바위에 박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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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Trail 안내판을 지나 위로 기어올라가는 아래 사진 부분이 이번 하이킹에서 가장 난감했던 구간이었습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아주 좁은 틈 사이로 박혀 있는 기다란 바위를 올라가야 했는데 홀드로 삼을 만한 구멍도 없어서 양쪽 바위에 손을 죽 밀고 스파이더맨 자세로 정말 고생스럽게 기어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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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를 통과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집채만 한 바위들은 계속해서 깔려 있고 오르막의 끝 역시 어딘지 보이지 않아 살짝 화가 났지만 그래도 길 여기 저기에 위치한 Cairn을 따라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걸으면 바위 사이를 비집고 계속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올라가는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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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올라가다 보니 드디어 협곡이 만나는 V자 지점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지점이 자갈밭 구간의 막바지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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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치고 올라온 급경사 자갈밭 구간을 실제로 걸어 보니 국립 공원 측에서 경고한 "Most park rescues occur on this trail"은 바로 여기서 발생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정보를 찾아 보니 이 구간의 가장 심한 경사도는 무려 37.4%에 달합니다. 길의 경사도가 이 정도일 경우 당연히 두 발로 우아하게 서서 걸을 수가 없기 때문에 두 손 두 발을 모두 사용해서 바위 암벽 경사 구간을 기어올라 갈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이 길을 걷고자 하는 분들은 반드시 튼튼한 목장갑 한 벌을 가지고 와야 합니다.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를 지나자 드디어 급경사 자갈밭 구간이 끝나고 양 옆의 절벽이 어느덧 눈높이와 비슷해지는 Wash 구간으로 접어 들었습니다. 붉은 바위로만 점철되었던 급경사 구간과 달리 여기서부터는 듬성듬성 자라고 있는 관목 및 나무들 그리고 길 주변에 피어 있는 노란 꽃들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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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h 구간은 길 양 옆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바위 암벽 사이로 길이 진행되기 때문에 고맙게도 위에서 내려 쬐는 햇빛을 하이킹 도중 처음으로 피할 수 있게 됩니다. 오후에 조금이라도 햇빛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 국립 공원 안내 자료에 이 길을 시계 방향으로 걸으라고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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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편안함은 이번에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았고 길은 오른쪽으로 급속하게 꺾인 이후 야속하게도 다시금 험난해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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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The Breach라고 불리는 엄청난 높이의 두 바위 암벽 사이 좁은 틈을 지나 바위 더미를 헤치고 지나가야 하는 구간으로 향했고 결국 이 길의 마지막 급경사 구간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여기 도착 시간이 정확히 오후 2시였습니다. 모든 구간에서 급경사 바위 더미를 헤치고 기어 올라가야 했던 바로 전 구간에 비해 이 구간은 경사도도 훨씬 덜하고(경사도 12.2%) 길의 구성 역시 바위 더미를 헤치고 올라가는 구간과 가파른 Slickrock을 걸어 올라가는 구간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 그나마 작은 위안거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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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역시 앞으로 펼쳐진 모양새를 보니 저 멀리 솟아있는 뾰족한 봉우리를 넘어서야 길이 좀 평탄해 질 것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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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Slickrock을 올라가는 구간, 모래 바닥으로 이뤄진 구간, 바위 틈으로 비집고 올라가는 구간, 바위 더미를 그냥 기어 올라가는 구간 등 다양한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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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간에서 오늘 하이킹을 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길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던 남자 한 명을 만났습니다. 오후 시간에 지금 이 지점을 걷고 있다면 오늘 중으로 반대편으로 못 나갈 것이라고 했더니 본인은 Syncline Campsite에 Permit을 받아 놨고 거기서 하루 자고 내일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날 시계 방향으로 하이킹을 하면서 제가 앞서 걷던 사람을 따라 잡은 경우도 없었고 그렇다고 뒤에서 저를 따라 잡은 사람도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결국 오늘 하루 동안 이 길을 걸었던 사람은 딱 두 명인 셈입니다.

오르고 오르니 아까 멀리 보였던 뾰족한 봉우리 바로 아래에 도착하게 됩니다. 여기가 Part 4의 종착점이자 Part 5의 시작점입니다. 도착 시간은 오후 3시 17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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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시작 지점에서 Trailhead까지는 약 3.5 km 정도의 완만한 오르막 Wash 길인데 정말 아쉽게도 이 구간이 Part 4까지는 거의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던 Syncline Loop Trail에 유일한 오점으로 남는 구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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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에 해당하는 길에서 볼 수 있는 경치는 앞선 구간의 드라마틱한 경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나 밋밋합니다. 거기다가 길 자체도 더 이상의 도전 의욕을 불러 일으키는 어려운 구간이 없이 잡풀, 관목 그리고 향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평탄한 길만 약 1시간 넘게 지속되기 때문에 길을 걸으면서  '도대체 이 지루한 구간이 언제 끝나냐?'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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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간의 결정적인 단점은 주변에 펼쳐지는 풍광에 입체감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Syncline Loop Trail의 앞선 모든 구간들이 복잡 다단한 총 천연색 3차원 공간이었다고 한다면 Part 5는 흑백의 2차원 공간처럼 느껴져서 걸으면 걸을수록 속이 꽉 막히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걸어 나오던 도중 뭐가 이리 답답한지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뒤로 돌아서서 걸어 온 길을 조망해 보았습니다. 사진 가운데 멀리 보이는 바위산 앞에서부터 양 옆에 나지막하게 펼쳐진 바위 암벽 중앙에 위치한 Wash 구간을 통해 지금까지 걸어온 것인데 사실 또 어떻게 보면 그렇게까지 혹평을 퍼부을 구간도 아닌 듯 싶지만 앞선 구간들이 저에게 너무나 압도적인 인상을 남겨서인지 이 구간에서 느끼는 상대적인 실망감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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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왼쪽에 길게 늘어서 있는 Whale Rock이 눈에 들어오고 길 옆에 나란히 놓여 있는 도로를 오고 가는 차량 소리가 들리자 드디어 이 길이 끝나감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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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지점에 시작 지점에서 볼 수 있었던 WARNING 사인이 똑같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는 하이커들을 위한 WARNING 사인인 셈입니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걸을 경우 지루한 Part 5를 길 초반에 끝낼 수 있는 장점이 있겠으나 Part 4에서 일정 부분 그늘에서 걸을 수 있는 기회를 날림과 동시에 경사도가 가장 심한 Boulder Field를 내려가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미국 서부에서 많은 길들을 걸어보니 경사도가 심한 길은 본인이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내려가지 말고 약간 힘이 들더라도 올라가는 편이 그나마 무릎 관절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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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NING 사인을 지나자 Trailhead 주차장이 보였고 다시금 Loop 출발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도착 시간은 오후 4시 12분입니다. 점심 시간 및 모든 휴식 시간 포함 Loop 완주에 대략 7시간이 소요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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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 Second Overlook Trail은 예전에 다녀왔기 때문에 오늘 이 길들까지는 굳이 가지 않고 바로 주차장으로 내려왔습니다. 주차장 앞 Trail 안내판에서 Syncline Loop Trail 완주를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한 장 남겼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Loop 하이킹을 하면서 제가 들어간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평평한 Campsite 아니면 Spur Trail 분기점에서 삼각대를 이용해서 기념 사진을 한 장이라도 찍어야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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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돌아와 차량을 픽업한 후 바로 숙소로 가지 않고 Grand View Point로 향했습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Part 5를 걸어 나오면서 속이 꽉 막히고 너무 답답해서 그냥 이 상태로 숙소로 가다가는 중간에 체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Island in the Sky District에서 Syncline Loop Trailhead는 북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고 Grand View Point는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차량으로 이동하는데 편도 기준으로 20분이나 걸립니다. Grand View Point에 서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끝없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Canyonlands의 경관 및 White Rim을 보니 마치 활명수 한 병을 마신 것처럼 답답했던 속이 뻥 뚫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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