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두 달 여행기를 올립니다. 여행지에서 전부 바로 올리고 싶었는데,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았고 일정도 빠듯해서 중후반부는 집에 도착해서 올립니다. 사진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사진까지 보시려면 제 블로그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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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7일

일어나자 마자 차 수리를 맡기러 갔다. 오일을 우선 갈아야 했다. 빨리 달릴 때 브레이크를 밟으면 핸들이 떨리는 현상도 있었다. 며칠 전 전화로 예약해 둔 카센터로 갔다.

카운터에는 멋있게 콧수염을 기른 중년의 백인 남성이 있었다. 전화로 뭘 해야 할 지 설명해 둔 터라 주소 등록 등 간단한 정보만 추가로 입력하고 나왔다. 나는 "오후에 차가 필요하니 가급적 오후 1시 전에 끝내 달라"고 했다. 그는 "아마 그 시간이면 끝낼수 있다"고 했다.

차를 맡기고 호텔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다시 나갔다. 차가 없으니 오전에는 다운타운 구경을 하려고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우산 쓰기엔 번거롭고 맞기엔 부담되는 비였다.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우산을 안 쓰고 다녔다. 우리는 둘씩 짝을 지어 우선을 썼다. 나와 아내, 아이들이 짝이었다. 파이오니어 플레이스(Pioneer Place)부터 갔다. 숙소인 마크 스펜서 호텔서 10분쯤 걸렸다. 문 여는 시간인 아침 10시가 채 안 됐는데도 문이 열려 있었다. 들어가니 루이비통 토리버치 등 고가 브랜드들이 주욱 있었다. 자라 H&M 등도 매장을 크게 운영했다. 아내는 시큰둥 했다. 명품은 살 처지가 아니고, 자라 같은 브랜드는 한국 가도 있으니 여기서 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어정쩡하게 있다가 커피 마시며 쉬기로 했다.

이 곳의 커피 가게 상당수는 매장 안에서 커피를 먹을수 없었다. 스타벅스에 갔더니 탁자와 의자를 전부 빼놨다. 이곳저곳 다니다가 바리스타(Barista)란 곳을 찾았다. 간판부터 커피 잘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매장은 작았다. 우리 넷은 나란히 창 밖을 바라보며 앉았다. 나는 바닐라 라떼를, 아내는 그냥 라떼를 마셨다. 바리스타가 우유 거품으로 예쁘게 그림을 그렸다. 나는 아내의 잔을 유리컵으로 바꿔 달라고 하고 팁으로 1달러를 줬다.

포틀랜드 시내에 있는 바리스타 커피숍에서 마신 커피는 맛있었다.

비 오는 날 마시는 커피는 더 좋다. 아내는 포틀랜드 시내가 특색이 없다며 관광하기에 좋지 않다고 했다. 금요일 오전인데 시내에는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내는 사람 없는 곳에 가면 불안함을 느끼곤 한다. 한가하게 커피 한 잔을 다 비운 뒤 조금 걷기로 했다. 나는 포틀랜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윌러밋강으로 갔다. 도시에 있는 강은 늘 좋았기 때문에 아내 기분이 조금 나아질 것을 기대했다. 아내는 뉴욕의 허드슨강, 보스턴의 찰스강을 걸을 때 좋아했다. 윌러밋강은 달랐다. 강 주변 산책로는 예쁘지 않았다. 바닥은 똥밭이었다. 나는 거위가 싼 똥이라고 생각했다.아내는 똥을 밟고는 빗물이 고인 곳에서 바닥을 닦았다. 강에서 조금 벗어나니 노숙자들이 보였다. 아내는 거리에서 찌른내가 난다고 했다. 포틀랜드와 아내는 궁합이 안 맞는다고 나는 생각했다.

전차를 타기로 했다. 아내는 포틀랜드 시내를 가로지르는 전차가 이색적인 모양이었다. 전차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간 뒤 25분을 걸어 장미정원(International Rose Test Garden)으로 가기로 했다. 전차는 한국의 지하철을 작게 해 놓은 것 같았다. 이 전차는 도로에서 차들과 함께 달리는 게 특이했다. 전차를 타니 아내 기분이 조금 좋아진 것 같았다. 우리는 5분 가량 전차를 탄 뒤 내려서 장미정원 방향으로 걸었다.

걷는 길은 주택가였고, 경사가 가팔랐다. 가는 길에 아이들은 계속 싸웠다. 가방 때문이었다. 가방을 한 개로 해서 짐을 같이 싸서 가져왔는데 서로 안 매겠다고 했다. 윤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매자고 했고, 시윤이는 힘들어서 못 매겠다고 했다. 들어보니 가방이 돌덩이였다. 아내는 보다 못해 앞으로 가방을 가지고 오지 말라고 했다. 내가 가방을 잠시 매줬더니 아내는 매주지 말라고 했다. 아이들이 아웅다웅 싸우는 동안 장미정원에 도착했다.

장미정원의 첫 인상은 '에버랜드 만 못하네' 였다.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장미의 핀 모양은 에버랜드가 더 예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장미의 종류가 다양해서 보는 재미가 컸다. 구역 별로 다른 장미를 심어 놨는데 수 백 종류의 이름이 특이한 장미가 한가득 있었다. 장미의 이름은 트와일라잇 존, 스위트 프래그런스 따위였다.

장미들은 만개했고 향이 진했다. 나는 가는 내내 코를 들이대며 향기를 맡았다. 어떤 장미는 향이 얕고, 일부 장미는 향이 강했다. 향이 강한 장미는 충격적일 정도로 강했다. 비염 탓에 코가 3분의 2는 막혔는데도 콧속으로 향이 강하게 들어왔다. 그 향은 달콤했고, 새콤했고, 떫고, 화사했다. 꽃에서 이런 향이 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화려한 것도 있었다. 일부는 화장품이나 향수를 통해 맡아본 것도 있었다.

장미정원에는 연도 별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장미를 심어 놓은 구역이 있었다. 1919년이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대회 초반에 우승한 장미는 향이 거의 없었으나, 최근으로 갈수록 향이 강했다.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향을 맡고 모양을 보느라 신이 났다. 아내는 장미정원이 너무나 좋다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런 아내를 또 찍었다. 우리는 찍고 찍히면서 행복하게 돌아다녔다. 포틀랜드에 장미정원이 있어 너무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포틀랜드 장미정원은 신세계였다. 나는 장미향에 취해 정신이 몽롱할 지경이었다.

장미정원에도 기념품 판매점이 있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활짝 웃었다. 우리가 가장 좋다고 한 장미향이 그 곳에 있었다. 아내는 장미향초를 샀다. 윤하도 학교 친구에게 주겠다며 초를 샀다. 기념품점에서 나오니 비가 거세게 왔다. 우리는 그 곳에서 보라색의 무료 셔틀버스를 잡아 탔다. 이 셔틀버스는 워싱턴 공원 안을 빙 도는 버스였다. 공원 안에는 우리가 본 장미정원 이외에도 동물원, 시크린가든, 일본정원 등 관광지가 죽 있었다. 우리는 버스를 탄 지 10분여 만에 오레건 동물원에서 내렸다. 동물원을 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아까 탄 블루, 레드 라인 전차 표시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전차만 타면 다시 왔던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생각 대로 전차는 시내 쪽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시내 쪽에선 차와 함께 다녔던 전차가 이 곳에선 지하철 처럼 지하로 빠르게 다녔다. 때론 차도로, 때론 지하로 다니는 하이브리드 전차였다. 시내까진 금세 갔다. 우리는 가면서 부두 도넛(Voodoo Doughnut)에 가기로 했다. 부두도넛은 포틀랜드의 명소 같은 곳이었다. 우리는 플로리다 올랜도에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부두도넛에 몇 번 갔었다. 지나가다 긴 줄이 있어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맛있어 종종 사서 먹었다. 이 곳에서 부두도넛을 볼 줄은 몰랐다. 전차에서 내려서 가는데 노숙인들이 많았다. 이 곳 노숙인들은 주로 텐트에서 생활하는 듯 보였다. 지나가면서 힐끔 봤더니 텐트 안에 온갖 살림이 있었다. 우리는 눈도 안 마주치고 빠르게 지나갔다.

부두도넛 앞에는 보안 요원이 지키고 있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면 문을 열어주고 들어가라고 했다. 명품 가게를 지키는 기도 같았다. 우리는 라즈베리 로메오(Raspberry Romeo), 더트(The Dirt), 초콜릿 링(Chocolate Ring) 등을 시켰다. 도넛 네 개에 10달러 안팎 했다. 나는 올랜도의 부두도넛을 가 본 적이 있다며 이 곳이 첫 매장이냐고 물었다. 점원은 이 곳이 오리지널 1호점이라고 했다. 아내는 1호점에 온 것이 좋다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부두도넛의 핑크색 박스에 넣어 명품 다루듯 소중하게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나는 숙소에 도착한 뒤 차를 찾으러 갔다. 콧수염을 기른 남자는 앞쪽 브레이크 로터 두 개를 갈았다고 했다. 부품을 갈고 시내주행을 해봤는데 괜찮다고 했다. 엔진오일과 브레이크등 교체까지 해서 650달러 수리비가 나왔다고 했다. 나는 두 말 않고 돈을 내줬다. 엔진오일 교체 비용을 보니 70달러 안팎이라 괜찮다고 생각했다. 설명도 잘 해줘서 신뢰가 갔다. 이 남자는 다만 뒷바퀴 타이어 마모가 조금 있으니 조지아로 돌아가기 전에 교체하면 좋을것 같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하며 흘려 들었다.

숙소로 와선 가족들을 다 이끌고 호텔 옆 파타고니아 매장에 갔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여행 때 파타고니아 매장에서 옷을 사려고 했다가 못 샀다. 이번엔 문 닫기 전에 가기로 하고 빨리 이동했다. 매장은 규모가 꽤 있었다. 물건 구색도 꽤 있었다. 우리는 미국에서 가격은 둘째 치고 물건이 없어 못 산 적이 많았다. 나는 미국에서 싸게 사는 것은 포기했다. 환율이 너무 올라 한국보다 싼 게 별로 없었다. 그나마 가끔 하는 세일도 요즘은 하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사려고 하는 물건이 있으면 다행이었다. 맘에 들면 크기가 안 맞고, 크기가 맞으면 색상이 맘에 안 들 때가 많았다.

나는 점퍼 두 개와 티셔츠를, 아내는 남방과 티셔츠를 골랐다. 아이들은 패딩 점퍼와 티셔츠를 사줬다. 계산을 하는데 윤하가 영수증을 열심히 봤다. 우리는 마트에서 몇 번 계산이 잘 못 된 적이 있는데, 이미 길을 떠나 따져보지도 못하고 가야할 때가 많았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자 셈이 빠른 윤하는 자동으로 계산이 맞는 지 확인한다. 윤하가 셈이 맞다고 했다.

나와 아내는 영수증을 보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택스(세금)가 없었다. 그렇다. 포틀랜드는 세금이 없었다! 갑자기 지난 일들이 생각났다. 우리는 점심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파치니(Pastini)에 갔는데 세금을 내지 않았다. 이 레스토랑은 점심 메뉴로 12.75달러에 파스타, 샐러드 콤보를 줬다. 맛도 있고 양도 많고 분위기도 좋았다. 우리는 '가성비' 최고의 레스토랑이라며 좋아했었다. 그런데 그 때도 세금이 없었다. 나는 다시 자동차 수리 내역서를 봤다. 부품에는 일부 세금이 있었지만, 공임에는 세금이 없었다. 찾아보니 오레건주는 소비세(Sales Tax)가 없다고 한다. 세금에는 다양한 게 있겠지만 여행자에게 세금은 소비세가 전부나 마찬가지다. 아내는 "포틀랜드가 엄청난 곳이었다"며 정색하고 좋아했다. 포틀랜드가 갑자기 좋은 도시가 됐다. 나는 포틀랜드의 자유로움에 또 한번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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