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 2023년 9월 6일 수요일

어제 숙소에 들어와 몸의 전반적인 상태를 살펴보니 말이 아니었습니다. Subway 하이킹이 바위로 점철된 길을 걷는 하이킹이라서 그런지 온 몸에 아프지 아니한 부위가 없었고 특히나 발의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원래 좀 걸으면 작은 물집이 간간히 잡히는 오른발 새끼 발가락은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왼발 넷째 발톱에 든 피멍은 좀 다른 문제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발톱 오른쪽 끝에 웃자란 부분이 있었고 아마도 내려가는 도중 바위더미에서 길을 헤맬 때 이 곳이 계속해서 신발과 마찰되면서 결국 피멍이 든 것 같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조금만 더 충격이 가해지면 발톱이 아예 빠질 것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이킹 전에 이런 문제가 없도록 발톱 정리에 나름 신경을 썼는데도 결국 이런 문제가 생겼습니다. 더 이상 불필요한 충격이 가해지지 않도록 문제가 된 발톱 부분을 조심스럽게 손톱깎이로 잘라냈고 상처 부위가 잘 아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오늘 하이킹 일정을 취소하고 쉴 수 있었다면 그리 했겠지만 불행하게도 오늘 하이킹 일정은 취소할 수 없는 Shuttle Bus 예약이 포함되어 있어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West Rim Trail(Top-Down)
- 거리: 23 km
- 고도 변화: 971 m
- 소요 시간: 8~10시간
- Type: Point to Point
- 난이도: 상

오늘 하이킹하는 길은 Zion NP 서쪽 Wilderness에 위치한 West Rim Trailhead에서 출발해서 The Grotto로 내려오는 West Rim Trail(Top-Dow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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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출발점과 종착점이 다른 Point to Point 타입입니다. 종착점인 The Grotto는 Zion NP Main Area에 자리잡고 있어서 국립 공원 측에서 운영하는 Zion NP Shuttle Bus를 타고 The Grotto에서 Springdale로 쉽게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출발점인 West Rim Trailhead까지 어떻게든 이동해야 하이킹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본인의 차량을 가지고 West Rim Trailhead로 가도 하이킹이 끝난 후 다시 끌고 나올 방법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아침에 여기까지 데려다 줘야 합니다. 이러한 하이커들을 위해서 Springdale에 있는 몇몇 사설 업체들이 Shuttle Bus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용한 업체는 Zion Adventures입니다. 사무실 위치가 숙소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어서 접근성도 좋고 여러 조건(당일 이용객이 만약 혼자여도 추가 비용만 지불하면 무조건 출발 등)이 다른 업체에 비해서 좋았습니다.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전화 예약만 받았었는데 그 이후에 홈페이지를 통한 예약 시스템(https://www.zionadventures.com/zionwesterntrailheads.html)으로 변경되어 Zion NP에서의 모든 일정이 확정된 7월에 편안하게 예약할 수 있었습니다. 이용 가격은 $49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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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ttle Bus 출발 시간은 오전 6시 15분이었는데 15분 전까지 사무실에 도착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서 새벽 5시 50분에 숙소를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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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된 6시 15분에 버스는 정확하게 출발했고 출발 당시에는 저 혼자였으나 중간에 다른 사람들도 버스에 탔습니다. 버스 이동 경로는 아래와 같았는데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어제 Subway Bottom-Up Trailhead인 Left Fork Trailhead(빨간색 별)에 자기 차를 세우고 버스에 탄 다음 Subway Top-Down Trailhead인 Wildcat Canyon Trailhead(검은색 별)로 이동하는 경로였습니다. 이렇게 할 경우 출발지와 종착지가 다른 Subway Top-Down 하이킹을 당일 끝내고 자기 차로 편안하게 숙소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중국계로 보이는 여자 두 명과 미국 남자 한 명이 이런 이동 경로를 통해 Wildcat Canyon Trailhead까지 이동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다시 홀로 West Rim Trailhead까지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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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 Rim Trailhead 도착 시간은 오전 7시 30분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고생하신 기사님께 팁(아까 먼저 내린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자세히 보았는데 중국계 여자 두 명은 팁을 안 주고 그냥 갔고 미국 남자는 팁을 줌)을 드리고 버스 앞에서 기념 사진 한 장 찍은 후 바로 하이킹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이 곳 Trailhead 텅 빈 차량 상황을 보니 오늘 West Rim Trail은 아무도 없이 혼자 걸을 확률이 99.9%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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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West Rim Trailhead 옆에 Zion NP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Lava Point Overlook이 있습니다. 여기서 Zion NP의 멋진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데 이번 하이킹 때 이 곳을 방문하지 못 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만약 이 곳에서 하이킹을 시작하고자 할 경우 버스 기사님께 미리 이야기해서 (1) Lava Point Overlook에서 버스 하차 (2) 전망대 구경 후 (3) West Rim Trailhead까지 30분 정도 걸어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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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 Rim Trail 구간을 굳이 나눠 보자면 (1) Trailhead에서 Potato Hollow를 지나 Telephone Canyon Trail 분기점까지 가는 Horse Pasture Plateau 평지 구간 및 (2) Telephone Canyon Trail 분기점에서 West Rim Trail을 따라 The Grotto까지 굽이굽이 내려 가는 구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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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초입에 있는 안내판입니다. 중간 주요 지점까지의 거리가 잘 표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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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뒤에는 삼일 연속으로 만나서 이젠 제법 친숙한 Wilderness 안내판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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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한 지 5분 정도 지나면 첫 번째 분기점인 Wildcat Canyon Trail 분기점이 나옵니다. 여기서 가끔 길을 바로 잘못 드는 분들이 있는데 그냥 똑바로 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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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기점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Horse Pasture Plateau의 소나무 숲 속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른 아침 나지막하게 떠올라 대지를 따뜻하게 비춰주는 태양을 앞에 두고 상쾌한 아침 공기를 온 몸으로 듬뿍 마시면서 혼자 걷는 숲 속 길 하이킹을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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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킹 시작 약 5 km 지점에 도달하면 처음으로 협곡이 멀리 보이기 시작하다가 아래와 같이 두 눈을 시원하게 만드는 경관이 눈 앞에 딱 펼쳐지는데 SGA Teaser Viewpoint라고 불리는 지점입니다. Subway가 위치한 Left Fork of North Creek이 흘러가고 있으며 그 끝에는 멋진 모습의 South Guardian Angel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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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혼자여도 사진을 안 찍을 수 있는 곳입니다. 삼각대 이용해서 증명 사진 한 장 남기고 계속해서 길을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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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약 3.6 km 정도는 Potato Hollow로 가는 완만한 내리막 길인데 이 곳의 경치는 소위 말하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경치입니다. 야생화와 억새밭 사이로 가느다란 길이 끊임없이 나오는데 아무도 없는 길에서 혹시 뭐라도 갑자기 튀어 나오지 않을까 살짝 무섭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정보에 따르면 이 길에서 때때로 Mountain Lion이 목격된다고 합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한국에서 호루라기를 가지고 왔는데 오늘 하이킹 도중 목에 차고 있던 호루라기를 아쉽게도 분실했습니다. 아마 하이킹 도중 배낭을 풀었다 짊어졌다 하는 과정에서 호루라기가 쓸려 나간 것 같았습니다. 한국 다이소에서 천 원에 2개 세트로 파는 호루라기를 미국에서는 한 개에 $5이 넘는 가격으로 팔기래 그냥 안 사고 나머지 일정 하이킹 버텨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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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ato Hollow 표지판입니다. 이 곳 도착 시간이 오전 10시 30분이었습니다. 사흘째 계속되는 장거리 하이킹으로 인해 다리도 욱신거리고 특히나 발이 정상이 아니어서 그런지 8.6 km를 걷는데 평소라면 2시간 언저리면 될 터인데 이 날은 무려 3시간이나 소요되었습니다. 하지만 괜히 속도를 내다가 피멍이 든 왼발 넷째 발톱에 더 충격이 가해져서 혹여 발톱이 빠지기라도 한다면 나머지 하이킹 일정이 폭삭 망할 것이기 때문에 빠르게 걷는 것보다는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내딛는 것이 훨씬 중요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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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ato Hollow 표지판 옆에 보면 Campsite 8번 표지판이 있는데 이 샛길을 따라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레펠 전문 산악인들이 Canyoneering 활동을 위해 즐겨 찾는 Imray Canyon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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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 Rim Trail은 Zion NP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Lava Point에서 시작되는 Top-Down 방식의 길이라서 전반적인 경사가 평평하거나 아니면 완만하게 내려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Potato Hollow를 지나자 갑자기 예상치 못 한 오르막 길이 나타났습니다. 약 120 m 정도 올라가는데 우리 나라의 등산길 바로 그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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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뒤를 보면 지금까지 걸어왔던 Horse Pasture Plateau가 시원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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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왼쪽에 있는 Sleepy Hollow를 지나 더 걸어 내려가면 Hammerhead Viewpoint에 도착하는데 이 곳 역시 탁 트인 경치라서 사진 찍기에 아주 좋은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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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여기를 지나면 오르막길이 또 나온다는 것입니다. 속으로 "이거 왜 이러냐?" 슬슬 짜증이 날 무렵 바로 Horse Pasture Plateau의 정상에 도달하게 되고 이 곳에 Telephone Canyon Trail과 만나는 첫 번째 분기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기가 Trailhead로부터 11 km 떨어진 지점인데 도착 시간이 오전 11시 45분이었습니다. Trailhead에서 오전 7시 30분 출발했으니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아무리 늦어도 이 지점에 10시 30분에는 도착했어야 하는데 오늘 페이스는 평소보다 30% 정도 느린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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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분기점에서 왼쪽으로 빠지는 Telephone Canyon Route가 아닌 오른쪽으로 빠지는 Canyon Rim Route로 이동해야 정식 West Rim Trail을 계속해서 걷게 됩니다. Telephone Canyon Route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전에 실제 전화선을 깔았던 구간인데 숲 속으로 가는 길이라서 Rim을 타고 내려가는 Canyon Rim 구간에 비해 경치가 많이 떨어집니다.

Canyon Rim Route쪽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해서 걸으면 Rim 구간이 선사하는 멋진 경관이 길 옆 멀리서 슬슬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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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yon Rim 구간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경관은 Great West Canyon을 바라볼 수 있는 아래 경관입니다. 여기에서 The Right Fork, Greatheart Mesa, Ivins Mountain, Inclined Temple 등을 전부 다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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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도중 Campsite 5번에서 실제로 캠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습니다. 오늘 하이킹을 하면서 처음으로 본 사람들인데 텐트 옆에 해먹까지 설치해 놓고 아주 편안하게 쉬면서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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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오후 12시 30분이 지나니 슬슬 배도 고프고 어디선가 점심을 먹으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늘진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Campsite 5번 조금 지난 지점에 번개에 맞아 죽은 나무가 그늘진 부근에 마치 잘 만들어진 벤치처럼 놓여 있었고 이 곳에서 편안하게 쉬면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은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온 핫앤쿡이라는 휴대용 전투 식량을 먹었는데 파우치 안에 발열 고체 연료가 들어 있어서 그냥 찬물만 부어도 파우치 안에서 물이 10분 동안 팔팔 끓어 요리가 완성되는 아주 신박한 제품입니다. 식사 종류도 라면&밥, 짬뽕&밥 또는 각종 비빔밥 등 여러 가지가 있고 양도 보통 및 곱빼기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모든 종류를 다 시험 삼아 먹어 봤는데 제 입맛에는 라면&밥이 제일 맞아서 이걸로만 6봉을 준비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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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휴식을 취한 후 오후 1시 15분에 다시금 걷기 시작했습니다. Rim Route 구간으로 옆에 기본적으로 Rim을 타고 걷기는 하지만 중간에 수풀 속을 헤치고 가야 하는 구간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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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psite 4번과 3번을 지나 Rim Route의 남쪽 하단 부분에 도착하니 Heaps Canyon, Castle Dome, Behunin Canyon 그리고 Mount Majestic까지 한 눈에 싹 담을 수 있는 구간이 나옵니다. 아이폰 사진기 셔터 누르느라 손가락이 바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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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psite 1번을 지나면 다시금 Telephone Canyon Route와 Rim Route의 분기점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 때 시간이 오후 2시 17분이었습니다. Trailhead로부터 약 16 km 지점인데 전체 하이킹의 3분의 2 지점입니다. 여기서부터 남아 있는 7.5 km 구간은 급격한 내리막 길인데 The Grotto까지 약 750 m 정도 고도 변화가 있습니다. 하지만 100% 내리막이 아닌 중간에 마지막으로 180 m 정도를 올라가는 구간이 남아 있는 것이 이 구간의 함정 아닌 함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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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길을 걷다 보니 드디어 Grotto Trailhead를 알리는 안내판이 나오는데 이 지점이 West Rim Trail의 하이라이트 구간으로 접어드는 본격적인 내리막 길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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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Zion NP를 생각할 때 마음 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광경 가운데 하나인 하얀 절벽들이 눈 앞에서 마구 펼쳐집니다. White Cliff라고 불리는 이 절벽들은 정말 봐도 봐도 질리지 않고 항상 경탄을 자아내는 매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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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니 나무에 이상한 박스가 하나 붙어 있어서 도대체 무슨 목적의 박스인가 살펴 봤는데 매일 이 길을 지나가는 하이커들의 인원수를 파악하는 센서 박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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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내려가는 급경사 길이다 보니 Switchback 길이 없을 수 없습니다. 절벽 경사면으로 아슬아슬하게 만들어 놓은 Switchback 길을 지그재그로 계속해서 내려갑니다. 길 자체는 꽤 넓지만 길 바로 옆의 협곡으로 인해 고소공포증 있는 분들에게는 굉장히 괴로운 구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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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 않겠지만 작렬하는 태양 아래 절벽 정상에서부터 아래로 계속해서 내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레펠링이 아닌 두 발로 걸어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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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끌과 정으로 갈아서 새겨 놓은 듯한 Switchback 구간을 탈출하는데 대략 20분에서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저는 문제가 생긴 발톱에 무리가 가는 것을 방지하게 위해 40분에 걸쳐 이 구간을 정말 천천히 걸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오르막 길보다 내리막 길에서 발 앞부분이 신발에 더 쓸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 급부로 이 아름다운 구간의 경관을 더 오랜 시간 동안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으니 느리게 내려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완벽하게 사람 얼굴 이모티콘 모양의 암벽이 있어서 사진 한 장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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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tchback 구간을 지나 Scout Outlook으로 가는 구간입니다. 꽤 아래로 내려와서 그런지 이제 주변의 절벽들을 올려봐야 하는데 사람 한 명 없는 고요한 이 곳에서 이런 절경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이 Wilderness의 길을 걷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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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le Siberia라고도 불리는 구역을 지나면 지금까지 사람이 별도로 설치한 시설물 도움 없이 자연 그대로 걷던 West Rim Trail에 처음으로 인공 구조물인 다리가 하나 나타납니다. 크게 파여 있는 작은 협곡 구간을 건너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다리 앞으로 조그만 바위 언덕 하나가 버티고 있는데 이 구간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오르막 구간입니다. 저 바위 언덕을 한 번에 확 치고 올라가면 좋을 터인데 막상 언덕을 넘는 길은 또 하나의 Switchback 형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아주 짧은 오르막 길이지만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걸어야 하니 엄청 힘들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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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위 언덕을 넘어 왔던 길을 되돌아 보니 아래와 같은 풍광이 펼쳐집니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절벽 정상에서 여기까지 내려온 것입니다. 오늘 하늘에는 티끌만한 구름 한 점 없이 무심한 오후의 뜨거운 태양만 머리 위에서 하루 종일 이글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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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발걸음을 재촉하니 드디어 Angels Landing 정상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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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바로 옆으로 길이 이어지는데 길이 끝나면서 꽤 넓은 평평한 바위 구간으로 접어들기 직전에 Walter's Wiggles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Zion NP의 대표 상징 가운데 하나인 Walter's Wiggles를 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특권은 오직 West Rim Trail을 걷는 하이커들만 누릴 수 있으며 따라서 하이킹 도중 절대로 이 지점을 놓치면 안 될 것입니다. 문제는 길 어디에도 이 지점을 알려 주는 표지판이 없기 때문에 본인이 눈치껏 알아서 잘 찾아야 한다는 것이고 더 큰 문제는 그냥 눈 앞에 보이는 길만 걸어서는 이 광경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팁을 드리자면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벗어나 옆에 있는 가파른 절벽 쪽으로 내려가라는 것인데 절벽의 경사가 나름 완만한 편이어서 크게 위험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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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하이커들이 작성한 West Rim Trail 리뷰들을 몇 개 읽어 봤는데 의외로 이 중요한 지점을 언급하는 글들이 하나도 없는 점도 신기했습니다.

제가 이 곳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 15분이어서 이미 Walter's Wiggles의 많은 부분이 그늘로 가려져 있었던 점이 못내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기를 놓치지 않고 본 게 어디냐"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길이 끝나면 앞서 말씀 드린 넓고 평평한 바위 구간을 가로 질러 가는 구간이 나오는데 혹시라도 이 구간에 도착할 때까지 Walter's Wiggles 전경을 못 봤다면 왔던 길을 신속히 돌아가야 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Cairn이라고 불리는 작은 돌탑으로 길의 방향을 표시해 놓았을 텐데 이제는 저렇게 앙증맞은 등산화 발자국 모양 말뚝을 곳곳에 심어 놓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자연의 일부로 보이는 작은 돌탑이 훨씬 더 낭만적이지만 이 구간의 길을 계속해서 관리해야 하는 Ranger들의 노고를 덜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이런 말뚝 표시도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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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간에서 몇몇 하이커들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아마도 The Grotto에서 Scout Outlook을 거쳐 West Rim Trail을 올라오는 하이커들로 보였는데 Shuttle Bus까지 이용해야 하는 Top-Down 방식의 West Rim Trail 횡단이 부담스러운 하이커들이 Out & Back 형태로 West Rim Trail의 일부 구간이나마 걸어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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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s Landing 정상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곧 Scout Outlook에 도달하는데 이 때 시간이 오후 4시 50분이었습니다. 이번 여행 계획을 세울 때 Angels Landing은 애당초 올라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사전 Permit을 신청하지도 않았으며 만약 Permit을 받았다고 해도 오늘 체력 상황 및 시간을 고려했을 때 어차피 못 갔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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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ut Outlook 이후 아까 바라봤던 Walter's Wiggles 및 Refrigerator Canyon 구간을 거쳐 The Grotto로 내려갑니다. 예전에는 없었는데 Refrigerator Canyon 앞뒤로 소음에 민감한 Mexican Spotted Owls이 여기에 서식하고 있으니 조용히 하라는 Quite Zone 경고판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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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otto로 내려 가는 길에 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Zion NP의 전경이 나타납니다. 한 폭의 병풍처럼 Virgin River 양쪽으로 펼쳐지는 절벽을 배경으로 협곡 중앙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는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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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50분에 West Rim Trail 안내판이 있는 The Grotto에 도착하면서 오늘 하루 기나긴 West Rim Trail 하이킹이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이킹에 소요된 시간은 휴식 시간 포함해서 총 10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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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otto에서 Zion NP Shuttle Bus를 타고 Visitor Center까지 이동 후 공원 밖으로 나가자 마자 Zion Canyon Brew Pub에서 저녁 식사 냄새가 솔솔 풍겨왔고 이 냄새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식당으로 들어가 버거 세트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버거 세트만 먹어도 현지에서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 팁 포함하면 대략 $25이니 사실 굉장히 비싼 저녁이지만 그래도 긴 하이킹을 끝내고 먹는 저녁이라 맛있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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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번 여행 때 제가 경험한 미국 팁 문화의 결론은 "미국 대도시 상황은 모르겠지만 국립 공원 여행지에서의 식당에서는 큰 문제 없이 18% 팁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입니다. 식당에서 영수증을 줄 때 견본으로 제시되는 팁 종류도 15%, 18% 그리고 20%를 예시로 보여주는 곳이 많았으며 숙소의 미국 직원과 이와 관련 대화를 나눴을 때도 15%는 정말 서비스가 별로일 때만 사용, 20%는 정말 서비스가 좋았을 때만 사용 그리고 나머지 일반적인 경우는 18%만 주면 식당에서의 팁 관련 아무 문제가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Subway나 Tacos에서는 계산시 화면에 팁 입력 화면이 뜨는데 다들 담당 직원들이 0%로 처리한 후 최종 결제 화면으로 바로 넘겨 버리기 때문에 직원들 보는 앞에서 제가 0% 팁을 선택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숙소에 저녁 7시 30분에 들어갔습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고 숙소 잔디밭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사슴들이 몰려와 평화롭게 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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