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 2023년 9월 7일 목요일

3일 연속 장거리 하이킹에 지쳐 버린 몸을 이끌고 원래 계획했었던 East Rim Trail을 걷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계획이라는 것을 어제 숙소에 오자 마자 바로 깨달았습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피멍이 든 발톱의 상황이 West Rim Trail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조금씩 아물기 시작한 것이 그나마 큰 위안거리였습니다.

아침에 좀 느지막이 일어나 조식을 먹고 그 동안 쌓인 빨래를 먼저 했습니다. 오전이라서 그런지 세탁실에 사람도 없고 해서 오전 10시 경에 세탁 및 건조를 모두 끝낼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다리가 아파도 이 좋은 날 숙소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냥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나 전날 저녁에 좀 고민하다가 다리를 최대한 쓰지 않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EBike를 타고 Zion NP에서 하루 종일 편안하게 멍을 때리기로 결정했습니다.

Springdale 숙소인 La Quinta Inns & Suites가 Zion Guru라고 하는 자전거 대여 업체와 같은 출입구를 쓰고 있었고 따라서 아주 편하게 EBike를 대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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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전 여행기를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과거 2번이나 Zion NP에서 자전거 여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만 두 번 모두 일반 자전거 여행이어서 EBike로는 어떤 느낌인지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었는데 오늘 딱 기회가 온 것입니다. 과거에는 EBike가 많지 않아서 사전 예약 없이는 EBike 대여가 어려웠는데 그 동안 대세가 일반 자전거에서 EBike로 변경되었는지 당일 업체 사무실 현장에서 예약 없이 바로 대여가 가능할 정도로 EBike 공급이 엄청나게 늘어나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 날 빌린 EBike입니다. 일인용 모델인데 이외에도 유모차가 달린 모델도 있고 어린 아이 한 명을 뒤에 태우고 갈 수 있는 모델도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성인 두 명이 같이 탈 수 있는 모델은 없습니다. 전기를 공급해 주는 배터리가 자전거 중앙 몸체에 붙어 있어서 자전거 자체의 무게는 꽤 나가는 편입니다. 대신 타이어가 산악 자전거처럼 굉장히 두껍고 튼튼하며 좌석 뒤에 배낭을 실을 수 있는 바구니 및 Narrows 하이킹에 사용되는 나무 막대를 꽂을 수 있는 기다란 관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다른 업체의 경우 좌석 뒤 바구니가 없는 EBike를 대여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른쪽 사진이 EBike 기어 조작판입니다. 전원 버튼 누르면 조작판에 불이 들어오고 +/- 버튼 누르면 기어를 0단에서 4단까지 조정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 실제로 타는 동안 기어는 평지 1단, 얕은 오르막 2단, 가파른 오르막에서 3단을 이용하면 충분했고 4단 기어는 사용할 일은 없었습니다. 전원 위에 어두워지면 사용할 수 있는 전조등 버튼이 있고 맨 위에 배터리 잔량 표시등(총 5칸)이 있는데 하루 종일 몰아도 배터리는 두 칸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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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 Day(8시간) 대여 비용은 보험 및 세금 포함 대략 $90인데 만약 가족 수가 많을 경우 상당히 부담되는 가격일 수도 있습니다. Half Day(4시간) 대여도 가능한데 가격 차이가 불과 $10이어서 그냥 여유롭게 하루 종일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참고로 일반 자전거 대여 비용은 EBike의 절반 수준입니다. 업체 측에서는 EBike를 이용할 경우 일반 자전거의 10분의 1 정도 힘으로도 자전거를 굴릴 수 있다고 광고하는데 결코 허언이 아닙니다. 기어를 가장 높은 4단으로 놓을 경우 10분의 1은 커녕 거의 100분의 1 수준으로만 페달을 굴리면 EBike는 마치 스쿠터처럼 튀어 나갑니다.

오전 10시 30분에 업체에서 EBike를 빌려서 길을 떠났습니다. 업체에서는 EBike 기어 조작법 설명 및 안전 교육 비디오 관람을 시킨 후 헬멧 및 자전거 자물쇠와 함께 EBike를 대여해 줍니다.

Springdale에서는 도로 양 옆에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기 때문에 편안하게 Zion NP 입구까지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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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on NP 입구를 통과하면 보행자와 함께 이용하는 Pa'rus Trail로 접어들게 됩니다. 국립 공원 내에서 보기 드물게 애완 동물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이며 사진 찍기에도 아주 좋은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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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슬슬 올라가면서 초반에 볼 수 있는 경치 가운데 가장 좋은 곳은 역시나 Towers of Virgin과 Court of the Patriarchs입니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Zion NP 최고 절경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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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올라가다 보니 어느덧 7번 Weeping Rock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2019년에 무너져 내린 동쪽의 Cable Mountain 절벽은 여전히 손도 못 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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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시는 못 걸을 것이라 여겼던 Weeping Rock Trail이 소리 소문 없이 재개장(인터넷 자료를 찾아보니 산사태 이후 3년이 지난 2022년 11월에 복구 완료)되어 사람들이 다시금 이 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우고 Weeping Rock을 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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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il 자체는 복구를 완료했지만 그 주변에서 산사태로 무너져 내린 흔적은 길을 걷는 내내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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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ping Rock이 자리한 Alcove 안에서 바라볼 수 있는 Zion NP의 전경입니다. 오늘 수량은 그리 많지 않아서 사진으로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담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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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짧은 길을 걸어 올라가는데 정말 다리가 천근 만근이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10분만에 갈 수 있는 길을 20분이나 걸려서 올라갔는데 마음 속으로 '내일부터는 다시 하이킹 일정을 시작해야 하는데 어떡하냐?'는 걱정이 끊임없이 몰려들었습니다.

짧은 하이킹을 끝내고 8번 Big Bend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후 이 곳에서 한참 멍을 때렸습니다. 제 생각에 이 곳이 Zion NP에서 혼자 앉아서 멍 때리기에 최적의 장소인데 왜냐하면 사람으로 붐비는 7번 Weeping Rock 버스 정류장이나 9번 Temple of Sinawava와는 달리 이 정류장에는 내리고 타는 사람이 거의 없고 또한 버스 정류장 그늘에 앉아서 편하게 바라볼 수 있는 Organ, Great White Throne 그리고 Cable Mountain으로 구성된 아래 전경이 기가 막히게 좋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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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le of Sinawava 가는 길에 Virgin River를 보니 땡볕이긴 하지만 그래도 시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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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le of Sinawava 정류장까지 갔다가 오후 1시 반에 5번 Zion Lodge 버스 정류장으로 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예전에는 주차장 바로 옆에 있는 카페테리아를 이용했었는데 오늘은 Zion Lodge 안에 있는 Red Rock Grill에서 좀 폼나는 식사를 했습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식사를 해 봤는데 식당 내부는 엄청 넓고 쾌적합니다. 실외 발코니 좌석도 있어서 본인이 원하면 실외 식사도 가능한데 이 날 날씨가 더워서 에어컨 바람 시원하게 나오는 내부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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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p Soup와 버거 세트를 먹었는데 가격은 버거 세트만 먹었던 어제 저녁보다 오히려 저렴했습니다. 영수증 하단 보시면 팁 선택으로는 15%, 18% 그리고 20% 3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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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끝내고 Zion Lodge 내부에 있는 기념품 가계로 가서 여기 저기 구경하다가 갑자기 미국에서 흔히 Camelbak이라고 부르는 하이드레이션 팩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지금까지 하이킹을 하면서 제가 겪은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하면 꾸준히 그러나 편안하게 몸에 수분을 공급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이킹 길이에 따라 좀 다르긴 했지만 음료수까지 포함하면 보통 4리터에 달하는 물을 배낭에 지고 다녔는데 목이 마를 때마다 배낭을 풀고 물병을 꺼내 수분 보충을 하고 다시 배낭을 짊어지는 일련의 행동이 체력적으로 너무나 힘들고 시간도 꽤 많이 잡아 먹었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목이 마를 때마다 조금씩 물을 섭취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반드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 하이드레이션 팩을 발견한 것입니다. 가격은 $45 정도였는데 이 하이드레이션 팩을 배낭에 집어 넣고 연결된 튜브를 통해 수시로 물을 섭취하는 방법은 제 남은 하이킹을 훨씬 더 수월하게 변화시킨 일종의 Game Changer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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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레이션 팩을 구매하고 난 후 Zion Lodge 앞에 있는 넓은 잔디밭에 널브러져 거의 2시간 동안 낮잠을 잤습니다. 예전 여행 스케줄이었다면 꿈도 못 꿀 한가로운 일정인데 이 날은 제대로 된 휴식이 목적이기 때문에 마음 편안하게 이 곳에서 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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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20분 경에 일어나서 자전거 반납하기 전에 한 번 더 Temple of Sinawava 정류장까지 다녀 왔습니다. 늦은 오후 시간이라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던 태양도 이미 절벽 뒤로 넘어갔고 Zion Canyon 내부 곳곳에 기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서 한결 더 즐겁게 자전거를 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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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오후 5시 20분에 돌아와서 자전거를 반납(아래 사진 가운데 길 왼쪽이 자전거 대여한 Zion Guru 사무실이고 오른쪽이 숙소)한 후 본격적인 내일부터의 하이킹을 마음 속으로 준비하며 저녁을 먹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한식도 며칠 연속해서 먹으니 좀 지겨워지고 해서 집 앞 슈퍼마켓에 가서 구입한 스파게티에 수박 팩을 곁들어 저녁을 먹었는데 이것도 과히 나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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