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다섯째날) - 그랜드캐년

어제 너무나 흡족한 여행을 해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서 체크한 몸상태가 날아갈 것 같다.
아이들과 집사람도 기분이 좋은 듯 모텔에서 주는 부실한 아침식사에도 불구하고 싱글벙글이다.
혹 'Super 8'에 가시면 세탁소나 인터넷 등 여행에 편리한 면도 있지만 아침식사만은 기대하지 마시길...
겨우 토스트에 베이글빵에 시리얼과 우유, 오렌지쥬스, 커피, 맛없는 미국사과 정도...여기만 그런가?

어제 크루즈로 관광하였던 'Antelope Canyon'을 가려고 의향을 또 보았더니 모두들 시큰둥하다.
가 봐야 어제 크루즈로 본 것보다 못할텐데 날씨도 덥고 그냥 가잔다. 아쉽기는 한데 그냥 떠나기로 했다
여행계획도 중요하지만 팀구성원들이 싫다고 하면 수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 한군데 정도는 남기고
따나야 다음에 왔을 때 새롭게 가보는 코스도 있을게 아닌가?  내가 너무 긍정적인가?

홀가분한 기분으로 08:50분경에 Check-out을 하고 월마트에서 간단한 여행용품을 산 다음 US-89번
South를 따라 그랜드캐년으로 향했다. 바로 출발 하자마자 한 5분 거리에 어제 분명 지나쳐 왔는데도
보지 못하고 지나간 'Horseshoe Bend'가 눈에 띄었다. 이게 왠 횡재인가? 무조건 차를 돌려 들어갔다.
이곳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켜놓고 약 15~20분 정도 사막길을 따라 Trail을 해야 했다.
기온은 약 34~5도 정도 되는데 그것도 모래사막을 걷는 일은 쉽진 않았다. 그래도 도착하고보니 실제
말발굽 모양을 한 거대한 바위와 이를 감싸고 도는 초록색의 콜로라도 강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바로 발아래로 펼쳐지는 절벽의 아찔함에 가까이 가기에 발이 저렸는데, 다소 위험하지만 있는 그대로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서 난간도 설치하지 않은 깊은 배려가 엿보였다.

그런데 구경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딸 은진이가 열사병 증세를 보이며 주저 앉았다.
연일 계속되는 여행에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도 썸머로 공부하느라 체력소모가 많았던 모양이다.
잠시 물을 마시게 하고 황량한 사막 가운데라서 웃도리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한 20분 정도나
쉬었을까 갑자기 Ranger한명이 나타났다. 아마 지나가던 여행자가 신고 했나보다. 그는 여러가지
질문을 하며 증세를 알아본 후 별 이상이 없을거라며 혹시 호흡이 곤란하면 산소호흡을 해 주겠다고
하였다. 다시한번 이네들의 안전에 대한 철저한 시스템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흔히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바로 국립공원이라고 하지 않은가. 바로 이런 공원내 Ranger들의
철저한 책임감과 봉사정신의 결과가 아닐까...

다시 그랜드캐년을 향하여 기수를 돌렸다. 여기서부터는 집사람에게 운전을 맡기기로 하였다.
국내에서 부터 국제운전면허증으로 교환하여 미국에서 자동차를 운전해 보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운전대를 맡기자 매우 좋아했다. 규정속도와 단속에 위반되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속도를 알려주고
도로상의 목적지를 일러주었다. 사실 미국에서는 규정속도에서 10마일 정도는 오버해도(아닌가?)...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평이하고 옆으로 빠지는 도로가 없어서 한잠 부칠 수도 있었다. 간간히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이 그랜드캐년이 곧 나타날 것 같은 기운이 맴돌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64번 도로 웨스트로 진입하여 그랜드캐년 동쪽입구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오는 중에 띄엄띄엄 자리잡은
인디오들의 노점상 가게에는 그들이 전통적으로 만들어 왔던 각종 장신구나 보석들을 팔고 있었다.
그랜드캐년 입구에 거의 도착하여 들렸던 어느 Scienic Point에서 있었던 해프닝은 주변에 있었던
유럽인 관광객들까지 박장대소를 터뜨린 기가막힌 사건인데 어디까지나 가족간의 체면을 중시하여
여기에 공개할 수 없는 극비사항으로 남겨 놓기로 하였다(무슨 일인지 궁금하시죠? ㅎㅎㅎㅎ)
  
드디어 그랜드캐년에 도착하였다. 입장료는 $25, 지금까지 들렸던 국립공원들 보다 살짝 비싸다.
그래서 그랜드인가...? 오랜만에 다시 들리는 곳이지만 워낙 처음에 그 규모에 놀랐던 옛날 일을
상기하자 마음이 설래기 시작하였다. 입장하자마자 들린 곳은 그 유명한 'Desert View'다.
마치 우리나라 첨성대 모양을 한 전망대에서 바라다 보는 그랜드캐년의 장관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여전하였다. 과연 그랜드로다...! 웅장하고 거대한 몸집이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아이들도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엄청난 캐년의 규모에 압도당하는지 계속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이곳을 난생처음 들렸던 시절이 유학중이던 총각때인 1983년도 인데 그때 이곳에서 다짐하기를
언젠가는 우리 미래의 가족에게 이 엄청난 광경을 구경시켜줘야지 하고 약속했는데 23년만인 오늘
에서야 그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 너무 늦었지만 그 약속을 지켰다는 기쁨에 감개무량하다.

'Mather Point, Moran Point, Yavapai Point'등을 거치며 사진도 찍고 관광을 하며 거의 3시20분
경에야 그랜드캐년 빌리지에 도착하였다. 구경하느라 점심식사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지나쳤는데
그제서야 'Bright Angel Lodge'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너무 늦게 식사를 해서 그런지
센드위치 위주의 전형적인 미국식 점심식사였는데도 다들 맛있게 먹었다.

식사후에는 서쪽 West Rim을 관광하기로 하였다. 그동안 브라이스, 자이언을 거치면서 캐년에 대한
적응도 되고 면역이 되어서 그런지 막내딸 유진이는 이곳이 크다는 것 외에는 별로 감흥이 없다고 하며
또 바위돌 구경이냐고 다소 짜증을 부렸다. 그러나 잠시후 상황은 달라졌다. 셔틀버스를 타고 웨스트림으로
가서 보는 풍경은 달랐다. 캐년 안쪽으로 삐쭉 돌출되어 있는 'Powell Point'에서 바라다 보는 전경은
너무 멋진 광경이었으며, 이곳에서 만난 일본 처녀관광객들과 얘기를 하다보니(이중 재일교포 처녀가
한명 있었음) 유진이 마음도 풀렸다. 이곳에서 재일교포 처녀가 찍어준 우리 가족사진은 이번 여행 중에
찍은 약 800여장의 사진중에 가장 멋진 작품으로 선정(우리 가족끼리 결정)되어 대형으로 크게 확대하여
집안 거실에 걸어 놓았다. (처음에 올린 사진임)  

해가 서쪽 하늘끝에 걸려 석양의 붉은 빛이 비치는 그랜드캐년의 또다른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아쉽지만 'Hermits Rest'까지 가지 못하고 'Hopi Point'에서 리턴하는 버스를 타고 빌리지로 돌아왔다.
유진이도 기분이 Up 되어 최고조가 되어 있었다. 돌아오는 도중에 운전사 아저씨가 그러는데 미국에 있는
약 390여개(어느 소개책자를 보니 정확히 388개였다)나 되는 국립공원 중에 이곳 그랜드캐년이 두번째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곳이라고 한다. 1년에 약 500여만 명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러면 제일 많이
찾아 오는 곳은 어디일까? 그 양반 소개로는 'Great Smoky Mountain'이란다. 나도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한다. 옛날에 미국에서 공부할 당시 그 곳에 가봤는데 미국의 동부지역인 이 곳은 좌로는 켄터키와
테네시주에 접하고 있으며 우로는 사우스/노스 케롤라이나주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애팔레치아산맥의
남단 산악지역이다. 내가 갔던 시절이 가을이었는데 온 산이 빨간 단풍으로 온통 물들어 있고 그 사이로
깊은 계곡과 수많은 폭포들이 흐르고 있었는데 너무도 자연의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우리는 64번 도로를 따라 그랜드캐년을 휘감고 넘어가는 붉은 석양을 뒤로하며 오늘의 숙소가 있는
윌리암스로 향했다. 그런데 여기도 저녁무렵에 도착하자 방이 없단다. 역시 유명한 명소주변의 도시는
맘에 드는 호텔에서 자고 싶으면 여행 떠나기 전에 반드시 예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두번째로 들린 Day's Inn에서 소개해준 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모텔인 'Grand Canyon
Country Inn'에 여장을 풀었다. 모텔 규모는 아주 큰 것 같고 조금 오래된 흔적은 보이지만 규모가 제법
큰 실내풀장도 있고 윌리암스에서는 상당한 역사를 가진 좋은 모텔 같았다. 아마 체인모텔이 아니라서
외부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요금은 어제 잤던 슈퍼8 정도로 $87(AAA 가격) 이었다.

오늘은 사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이라서 오래도록 추억에 남게 하기 위해서 야영을 전문으로 하는
'KOA' 야영장에서 야영을 하기로 계획을 하였는데 사전에 전화를 해보니 이 부근에 있는 3곳의 야영장
모두다 덥고 잘 이불을 제공하지 않는단다. 사전에 알고는 있었지만 세곳 중에 한곳 정도는 이불을
줄줄 알았는데 아쉽다. 하는 수 없이 모텔을 택했는데 다음에는 꼭 이불을 가지고 다니면서 하루밤
정도는 천막을 치거나 야외 랏지 또는 캐빈 등에서 야영을 해 봐야겠다. 이불을 제공하는 곳과 제공하지
않는 KOA야영장에 대한 사전 정보도 필요한 것 같다.

저녁식사 메뉴는, 오늘은 야영에 대비해서 오면서부터 준비했던 육계장 사발면과 햇반, 김, 고추장,
밑반찬 등...정식 만찬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푸짐하게 차린 한식에 아이들도 매우 좋아하고 나도 입맛이
개운해지는 것 같아 어느 저녁식사보다도 맛있는 만찬이었다. 더구나 더 경제적이고...
벌써 내일이면 가족여행이 끝난다는 생각에 못내 아쉬움이 들었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들자
그랜드캐년의 웅대한 모습과 그동안에 여정에서 가족들과의 같이 했던 즐거웠던 시간들이 교차하며
슬라이드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아이들은 실내풀장에서 10시가 훨씬 넘었는데도 즐겁게 놀고 있고,
집사람은 피곤한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
내일 마지막 일정을 체크한 후 나도 그만 스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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