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두 달 여행기를 올립니다. 여행지에서 전부 바로 올리고 싶었는데,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았고 일정도 빠듯해서 중후반부는 집에 도착해서 올립니다. 사진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사진까지 보시려면 제 블로그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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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6일

오랜만에 서점에 들렀다. 책 내음이 확 밀려 들었다. 순간 책 속에 빠져 한참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책이 그리워졌다. 언일주일쯤 책만 보고 싶었다.

벤드의 좋은 숙소를 뒤로 하고 가려니 아쉬움이 컸다. 아내는 주방이 특히 좋았다고 했고, 나는 한국 가서 주방을 바꾸자고 했다. 한국 가면 빚부터 갚아야 할 처지지만, 요리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주방 만은 바꿔주고 싶었다.

목적지는 포틀랜드 동쪽에 있는 멀트노마 폭포(Multnomah Falls)였다. 가는 길은 또 광활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운전하며 미국이 왜 땅덩이가 큰 나라인지 알게됐다. 미국에는 노는 땅이 엄청나게, 혹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놀리는 이유가 다양했다. 어떤 곳은 너무 황량해서, 어떤 곳은 너무 비가 많이 와서, 어떤 곳은 바위가 많아서 등이었다. 그런데 오레곤은 놀리는 땅이 적었다. 소를 키우든, 농사를 짓든 뭐든 하고 있는 게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세 시간을 달려 폭포에 도달했다. 도로가 컬럼비아강 바로 옆에 나 있었다. 컬럼비아강은 한강 하구보다 폭이 컸다. 나는 살면서 이렇게 폭이 크고 물이 많은 강은 본 적이 없다. 이 강이 원래 이렇게 큰 것인지, 요즘 비가 많이 와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포틀랜드는 며칠 전부터 홍수주의보 상태였다.

폭포 주차장은 독특했다. 84번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데,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빠졌다. 주차장은 가는 방향과 오는 방향 중간에 섬처럼 놓여 있었다. 이 곳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아내는 도시락으로 닭 안심 볶음을 했다. 나는 아내가 해주는 도시락은 무조건 맛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싸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주차장에서 폭포가 보여 풍경이 좋았다.

도시락을 다 비운 뒤 폭포 쪽으로 갔다. 폭포 밑부분에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이 폭포가 이 근방에선 꽤 유명한 지 작년부터 사람수를 통제하려고 사전 예약까지 받았다. 나는 2달러를 내고 예약을 미리 해두었다.

폭포 위쪽까지 가는 트레일은 길이 좋았다. 경사가 제법 있는데도 대부분 아스팔트를 깔아 놓았다. 길이 좋아서인지 경치가 좋아서인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다닐 정도로 많았다. 폭포 위쪽까지 가는 데 1.3마일이었다. 우리는 한 시간 조금 못 걸려 폭포 위쪽에 도달했다. 오랜만에 트레일을 하니 좋았다. 폭포 위에선 정작 폭포가 잘 보이진 않았다. 대신 컬럼비아강이 잘 보였다. 우리는 폭포 위쪽을 조금 거슬러 올라 물에 발을 담궜다. 시윤이는 물을 좋아하는데, 내가 운을 떼주면 더 잘 논다. 그래서 나는 물만 보면 양말을 벗고 발을 담근다. 역시나 시윤이는 이번에도 선뜻 물에 들어갔다.

물은 찼지만 킹스캐년, 요새미티의 계곡 처럼 얼음장 같진 않았다. 물은 순한 느낌이 들었다. 오레건은 물이 많아서 지나는 길에도 폭포를 많이 봤다. 이 곳의 물은 서부의 다른 국립공원 처럼 사납거나 거친 느낌이 없었다. 물에서 노는데 한 꼬맹이가 자기 머리 만한 돌을 냇가에 던졌다. 한 번 던지고, 두 번 던지고, 계속 던졌다. 돌이 돌끼리 부딪혀 꽝 하는 소리를 냈다. 아내는 그 소리를 듣고 놀라 힐끔 쳐다봤다. 꼬맹이는 그치지 않고 계속 돌을 던졌다. 꼬맹이의 아빠는 돌을 계속 건네 줬고 자기도 던졌다. 돌을 잔득 던져서 냇가를 막을 기세였다. 아내는 인상을 썼고, 나는 그만 가자고 했다. 때론 사람들이 이해 못 할, 그래서 불편한 행동을 할 때가 있었다. 나는 그들을 이해 못 한다고 해서 나쁘게 생각하진 않으려 노력해 본다. 어떤 행동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이해 못 할 행동에는 더더욱.

멀트노마 폭포 위쪽에서 아이들과 함께 간단히 물놀이를 했다. 물은 찼지만 얼음장 같지 않았고, 유속은 빨랐지만 물이 거친 느낌이 없었다.

폭포에서 내려와 차를 몰고 포틀랜드 시내로 향했다. 포틀랜드 도로에 전차가 다녔다. 도로에 차와 전차가 뒤엉켜 다니는 게 신기했다. 호텔은 시내 한복판에 있었다. 나는 시내에 주방 있는 숙소를 찾았고, 그 곳이 마크 스펜서 호텔이었다. 호텔은 방이 하나 있고 거실 겸 주방이 있었다. 전 숙소에 비해 훨씬 작았지만 시내 치곤 괜찮다고 아내를 '위로' 했다.

호텔은 옛날 느낌이 물씬 났다. 호텔 앞에 차를 대니 짐을 부리는 흑인 사내가 왔다. 우리는 차에 한가득 실은 짐을 거의 다 뺐다. 짐이 너무 많아 그 사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아내에게 팁을 조금 더 주라고 얘기한 뒤 호텔 바로 앞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댔다. 로비에 가니 나이는 지긋하고, 키는 190센치 미터 쯤 되어 보이는 산만한 덩치의 백인이 프론트에 있었다. 덩치 큰 백인은 호텔 규정과 시설에 대해 찬찬히 설명했다. 나는 옛날 미국 영화에 나오는 집사같다고 생각했다. 호텔은 꽤 오래된 건물을 고친 것 같았다. 엘레베이터는 무척 작았는데 카페트를 깔아 퀴퀴한 냄새가 났다. 근데 그 냄새가 마냥 싫은 것이 아니라 친숙했다. 나는 이 냄새가 나면 미국에 있다는 게 실감난다.

포틀랜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한곳인 파월 서점. 이 곳 주변에는 홍대 거리에서 자주 보이는 힙스터들이 많다.

짐을 풀고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중고책 서점에 갔다. 파월 시티 오브 북스(Powell's City of Books)란 곳이었다. 이 곳은 구글 리뷰가 3만개에 육박하는 곳이다. 그만큼 포틀랜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 서점은 정말 커서 웬만한 한국의 대학 도서관보다 더 큰 느낌이었다. 중고책 뿐 아니라 새책도 팔았다. 가격표를 보니 더 정감이 갔다. 중고책 상태에 따라 가격이 크게 차이났다. 예컨대 새책이 20달러면, 손때가 많이 묻은 여러번 접힌 책은 4달러쯤 했다. 새책에 가까우면 13-14달러쯤 했다. 책장은 색상으로 구역이 정해져 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책 코너에 가선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윤하는 지난 학기 후반부터 미국책을 많이 읽었는데, 책 욕심이 많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면서 이것저것을 담았다. 하이디, 시크릿가든 등 주로 고전이었다. 나는 윤하가 영어로 된 책을 읽는 것이 신기하고 대단하게 여긴다. 윤하는 반 친구 오드리가 추천해 준 워리어스를 읽고 싶어 했는데 시리즈로 된 것이었다. 나와 아내는 한국에 가져갈 것이 걱정 돼 못 사게 했다. 윤하가 미국에 있었으면 원없이 읽었을 텐데 하며 아쉬운 맘이 들었다. 윤하는 시윤이에게 책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시윤이도 요즘 책에 맛이 들려 시간 나면 책을 읽는다. 주로 한글로 된 것을 읽지만 영어책도 언니를 따라 흉내내며 읽는다.


아이들이 책을 고르는 새 나도 '책 구경'을 했다. 나는 책을 살 엄두를 못 내고 살펴만 봤다. 한글로 된 책 처럼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세심하게 몇 권을 들어서 봤다. 파월 서점에는 직원들이 고른 책이 정문 앞에 있는데, 그 이유가 적혀 있었다. 직원들은 책을 한두줄로 간단히 평가했는다. 그 평가가 카피 라이터 처럼 정교했다. 예컨대 이 책에서 작가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 삶 그 자체이지만, 어려움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진 않는 것 같다는 식이었다. 나는 파월 서점 처럼 중고책과 새책을 골고루 팔고, 직원들의 추천평이 책을 읽고 싶게끔 하며, 책 읽고 놀기 좋은 서점이 집 가까운 곳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포틀랜드 사람들은 좋겠다. 파월 서점이 있어서.

아이들은 놀이공원에 온 듯 신이 나서 돌아다녔다. 나도 원없이 책 읽는 시간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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