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28일(토)-여행 11일째

오늘의 주요 코스: 자이언 국립공원, 그랜드 캐년 국립공원(노스림), 리스페리(아리조나주 Page에 있는 ‘모텔6’에서 숙박)

오늘이 지금까지의 여행 중 가장 볼거리들이 많고 구경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날이기에 아침부터 서둘러야 한다고 했지만, 역시나 출발시각은 지연됐다.  캘리포니아 시각으로 9시10분쯤 출발했다.(여기 유타주 시각으로는 10시 10분이었지만, 우리가 오늘 아리조나 주의 그랜드캐년에 들어가고, 숙박도 아리조나의 Page에서 할 것이기에 어짜피 오후와 저녁시각은 캘리포니아 시간과 동일하게 될 것이기에 시계를 돌리지 않았음. 아리조나주는 섬머타임을 채택하지 않아서 여름 시즌에는 캘리포니아쪽의 시간과 동일함)

Hurricane은 자이언국립공원 근처라서 금방 공원에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멀다.  30분 정도를 더 가야 한다.  그리고 오늘이 메모리얼데이 연휴(월요일이 메모리얼데이라서 금요일 오후부터 월요일까지 긴 휴일)인 토요일이라서 사람들이 많이 놀러왔기에 공원 진입로부터 차량이 진을 치고 있다.  결국 10시 조금 넘어서 공원 파킹장에 주차했고, 이 공원은 공원내를 구경하기 위해서는 여름 시즌에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이것을 타고 다니느라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됐다.

오후에 그랜드 캐년도 봐야 하기에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니 자꾸 쫒기는 맘이 들어서 여기 자이언에서는 여유있게 구경하지 못했다.  그래도 중간에 ‘The Guetto’에서는 1시간 정도 트레일(높지 않은 산길을 걷는 것)을 했다.  역시 이런 국립공원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트레일 코스를 밟아봐야 구석구석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이 때 트레일하며 본 경치가 자이언 중에서는 가장 멋졌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의 외국여행은 시간이 부족하기에 제한된 시간 안에 한 군데라도 더 가서 ‘찍고 턴(나 여기 왔었다는 증거를 남기는 사진찍기와 그 후에 바로 그 경치나 그 관광지의 특성을 느낄새도 없이 바로 돌아서 버리는 것)’을 해야 하기에 2-3시간 짜리 트레일 코스들은 사실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미국 관광객들은 차에 자전거도 많이 가지고 다니는데, 자전거 타고 다니며 여기저기 구석구석 보며 돌아다닌다거나 산의 트레일 코스를 여기저기 다니면서 한 곳에서도 며칠씩 머무는 것이 예사다.  이런 점에서 여행하는 방식에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Zion N.P.
[트레일 도중에..]

계속 협곡으로 이어지는 캐년 지역이 이어져서 다혜에게 물어봤다. “다혜야, 이렇게 생긴 산들도 멋있지?”  그러자 다혜는 “싫어” “왜?” 그랬더니, “나무가 없잖아!”  다혜는 워싱턴주와 오레곤주와 캘리포니아 북부의 요세미티 공원 등을 지나며 본 나무 많은 산이 더 좋단다.

차타고 9번 도로를 타고 그랜드캐년으로 가야 하기에 차를 운전하고 자이언 국립공원의 다른 코스를 관통하는 코스를 거치게 됐는데, 이 곳의 전경이 셔틀버스타고 다니는 메인코스보다 훨씬 멋졌다.  그래서 거기를 지나며 자이언 국립공원의 셔틀버스를 타고 돌며 보느라 머문 3시간 반의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오늘같이 바쁘고 빠듯한 일정 속에서 말이다.
Zion N.P.
[자이언 국립공원의 셔틀버스]

Zion N.P.
[자이언 국립공원을 빠져 나오며]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반 이상 늦어져서 도저히 시간을 뺄 수가 없기에 점심식사는 도시락에 싸온 밥을 김에 싸서 먹으며 차로 이동 중에 해결하기로 했다. 다혜는 김밥을 몇 개 먹인 후에 베지밀 먹이며 자라고 해도 안자고 버틴다.  오늘의 코스의 계획상 다혜가 보통 낮잠을 자는 오후 4-6시에는 그랜드 캐년일대를 볼 것이기에 잠을 잘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미리 자라고 한 것인데, 여태까지는 잘 잤는데 오늘은 안자겠다고 버티니..

아리조나주의 89번A의 지방도로를 거쳐 69번 도로를 통해 그랜드캐년 North Rim을 향해 들어가는 그 길이 정말로 멋진 길이었다.  89번 도로 주변에는 온통 캐년지역이다.

그랜드 캐년 근처에 가니까 하늘에 잔뜩 먹구름이 뒤덮였다. 저 멀리에는 번개가 번쩍이는 모습들이 여러 번 눈에 들어왔다.  자이언 국립공원을 볼 때는 날씨가 정말로 맑았는데 여기오니까 갑자기 이렇게 급변할 수가 있나.  너무 안타까웠다.  제발~ 제발~ 우리가 도착해서 구경할 때 쯤에는 다시 화창해 지기를…

다혜는 안자고 계속 버티다가 3시 30분에 소리도 없이 혼자서 스르르 잠들었다.

Grand Canyon N.P. North Rim
[까맣게 구름이 덮여 버려 비가 쏟아지는 그랜드 캐년의 하늘 ]

4시에 그랜드 캐년 공원 매표소를 통과해서 4시 20분쯤에 비지터센터에 도착했는데, 바람이 차를 삼켜버릴 만큼 셌었고, 비가 막 쏟아진다. 정말로 멋지다는 Bright Angel Point에 가기 위해서는 잠시 걸어가야 한다.  어떻게 해서 온 그랜드 캐년인데 비온다고 조금이라도 보지 않고 그냥 갈 수가 있나!  그래서 다혜 엄마가 준비해 온 1회용 비닐로 된 비옷을 입고 우산 1개에 바람만 막으며 들어갔다. 다혜는 얼마 전에 잠에 골아떨어져서 차에 남겨 두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미국에는 잠시라도 아이를 차에 혼자 남겨두면 안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보고 신고하면 된통 고생한단다.  그게 미국실정이다.  그래도 지금 환경상 비바람 부는데 아이들 데려갈 수도 없고 다혜는 골아떨어져서 깨울 수도 없고 해서, 햇볕을 막는 앞 유리용 햇볕차단 은박 가리개로 앞 유리를 전부 가리고, 옆에도 유리창에 붙여서 햇볕을 차단하는 것으로 전부 가려 놓은 후에 다혜 엄마랑 뛰어서 나갔다.
비가 오고 있기에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혹시 비가 덜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먼저 Gift Shop에 들러 마그넷 카드 한 개와 예뻐보이는 $15짜리 다혜 티셔츠 하나를 샀다.

Grand Canyon N.P. North Rim
[비가 갠 후에 비지터센터를 배경으로]

밖에 나오니 너무 바람불고 비가 세차게 왔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 여기 온것인데.. 아무렴 안돼지.  지금 가면 평생 다시는 못올지 모르는데!  그 비를 헤치며 Bright Angel Point까지 갔다.  우산 하나는 카메라 가진 사진찍는 사람용이고, 포즈 취하는 사람은 비옷입고 바람에 비옷의 모자가 날라가니까 그것을 붙잡고 엉거주춤한 포즈로 찍었다.
바람이 너무 세니까 다혜 엄마는 무섭다며 그냥 가자고 한다.  비가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아서 나는 다혜 엄마를 꼭 붙잡고 결국 Bright Angel Point까지 갔다.  잔뜩 먹구름이 끼어서 그 멋진 그랜드캐년의 노스림 전경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그래도 대충이지만 그 엄청나고 숨이 막힐 만큼 대단한 전경의 감격이 느껴진다.  비록 전경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라도 기념으로 남겨야 한다며 빗속에서도 사진 몇 장을 찍고 차로 돌아왔다.  처음에 차에서 내린 후에 다시 돌아온 시각이 50분 정도 걸렸다.

다혜는 아직까지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출발해서 주차장을 빠져 나와서 3-4분쯤 달리는데 갑자기 날씨가 맑아졌다.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게 안타까워하며 조금 더 달리다가 차를 다시 돌렸다.  다혜 엄마는 만류한다. 그래도.. 그 멋진 경치를 평생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데 이제라도 다시 맑아지는데 30분이나 한 시간 정도 숙소에 도착하는게 늦어지더라도 꼭 다시 보고 가자고 설득해서 다시 비지터 센터 주차장에 들어갔다.  역시 차는 핸들 잡고 있는 사람의 맘대로 되기 마련이다.  차가 멈추는 그 순간까지도 다혜 엄마는 계속 만류한다.  다시 보러 나간 사이에 다혜가 깨면 어쩌겠냐고.. 나는 다혜에게 잘 얘기하면 이해할 꺼라고 하면서 데리고 갔다.  다혜 엄마는 역시 아이 엄마였다.  비지터센터에서 가까운 뷰 포인트 몇 곳에서만 사진 몇 장 찍더니 차에 먼저 가 있겠다고 나만 혼자 다녀오란다.  그래서 혼자 가서 더 환하게 개어가고 있는 그랜드캐년 노스림의 광대한 장면을 느끼며 카메라에 담았다.   역시 다혜는 깨지 않았다.
Grand Canyon N.P. North Rim
[비가 갠 후의 그랜드 캐년]

결국 다시 차를 돌려 오는 덕분에 45분이 지체됐다. 그렇지만 평생 아쉬워하게 될 시간과 비교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 멋진 뷰를 보고나니 더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이 일을 겪으면서 그런 맘이 들었다.  지금 잠시 편하거나 주저하지 않을 지는 모르지만 그 일을 하지 않은 것이 나중에 평생토록 후회하거나 아쉬워하게 될 일이 있다면 그렇게는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Grand Canyon N.P. North Rim
[5월 말의 그랜드캐년 노스림 입구쪽 길가에 눈이 쌓여있는 모습]

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들의 평이 노스림이 사우스림보다 더 멋지다고 하던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여기를 보고 나니 다른 캐년들은 여기랑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전의 멋졌던 전경들이 다 그랜드 캐년에게 “형님!” 하면서 고개숙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혜가 또 3시간 동안 자고나서 깼는데, 깨자마자 뻥튀기 찾았다.  결국 엄마 뻥튀기를 혼자서 다 먹었다.

Near Grand Canyon N.P.
[다혜가 잠에서 깬 후.. 그랜드캐년을 나와 리스페리쪽으로 가는 도중에]

그랜드캐년에서 미리 예약해 놓은 숙소가 있는 ‘Page’로 가는 길에 마블캐년, 리스페리를 봐야 하는데 시간이 늦었다.  이미 해가 거의 다 져서 땅거미가 지고 있고, 어두컴컴해 지는 상황에서도 잠시라도 들러서 분위기라도 느껴보자고 해서 들어간 리스페리는 멋졌지만 이미 어두워져 버린 날씨 때문에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리스페리를 막 벗어난 후에 Navajo Bridge에서도 잠시 내려서 그 다리 아래로 펼쳐진 멋진 캐년의 광경을 바라봤었고, 깜깜해진 밤길을 80마일로 달려서 Page에 밤 8시 반에 도착했다.
Navajo Bridge
[나바호 브릿지]

오늘 머문 숙소는 냉장고가 없다.  다혜 엄마가 아이스박스에 있는 음식물들을 어떻게 하나하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내가 숙소를 둘러보다가 아이스 머신을 찾아서 얼음을 잔뜩 받아다가 아이스 박스에 채워 넣었다.(서부쪽의 모텔들에는 시원찮은 것들이라도 냉장고가 많이 있었는데, 아리조나주 이후로 중부의 모텔들에서는 냉장고를 구경할 수 없었다-추후 삽입).  이것으로 해서 오늘의 파란만장했고 이번 여행 중 가장 스펙타클했던 하루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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