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두 달 여행기를 올립니다. 여행지에서 전부 바로 올리고 싶었는데,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았고 일정도 빠듯해서 중후반부는 집에 도착해서 올립니다. 사진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사진까지 보시려면 제 블로그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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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4일

"겨울을 선물 받은 것 같다."

아내가 말했다. 그랬다. 이 곳은 6월 중순인데 겨울이었다. 온 산에 눈이 가득했다. 눈은 나무 가지 위에도, 드넓은 벌판에도, 높은 산 위에도 있었다. 눈이 없는 곳은 저 발 아래 호수 뿐이었다. 크레이터 레이크(Crater Lake)는 하얀 눈을 배경으로 새파란 물을 머금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 여행이 길어진 영향인 것 같다. 어제는 일정의 절반도 소화하지 못했는데, 숙소에 늦게 들어온 탓에 다 늦게 잠들고 늦잠을 잤다. 아내에게 오늘 내일은 조금 쉬어가자고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풍경도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행인지 오늘은 동선이 짧다. 그랜츠 패스(Grants Pass)에서 크레이터 레이크 국립공원(Crater Lake National Park)까지 두 시간 밖에 안 걸렸다. 운전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가는 길에 눈이 있었다. 눈은 길 주변의 나무 밑에 듬성듬성 보이더니 이내 길가 전체를 덮었다. 이 지역이 춥다는 말은 들었지만 6월 중순에 눈이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공원 쪽으로 올라갈 수록 눈 세상이었다. 나무가지 위에도 눈이 있었다. 땅에 있는 눈은 오래된 눈 처럼 보였는데, 나무 위의 눈은 이제 막 온 것 같았다. 아이들은 눈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눈에서 놀고 싶다고 난리가 났다. "조금 더 가서 놀자"고 달래고 계속 위로 올라갔다.

공원 매표소를 지나 스틸 방문자 센터(Steel Visitor Center)에 갔더니 문을 닫았다. 지나가는 레인저에게 "어딜 가야 패스포트 도장을 찍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국립공원을 도장 찍는 재미로 다닌다. 레인저는 "더 올라가 림 마을(Rim Village) 카페로 가보라"고 알려줬다.

10분 가량을 더 올라갔더니 림 마을이 나왔다. 크레이터 레이크는 화산 분화구 호수다. 백두산 천지, 한라산 백록담 처럼 분화구에 물이 고여 호수가 됐다. 림 마을은 그 분화구 호수를 빙 둘러 싼 길이 시작되는 곳에 있다. 림 마을의 기념품점에 갔더니 사람들이 많았다. 간단히 밥을 먹고, 림 방문자 센터로 갔다. 이 곳에 아이들이 찾던 도장이 있었다. 나는 직원에게 트레일이 가능한 지 물었다. 눈이 쌓여 할 수 있는 지 불안했다. 역시나 "길이 열린 트레일은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어제까지 눈이 와 트레일은 전부 폐쇄됐다"고 했다. 맥이 조금 빠졌지만 어쩔수 없었다. 눈을 핑계로 숙소에 빨리 들어가 쉬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레이터 레이크를 빙 둘러 싼 도로는 3분의 1 정도만 열려 있었다. 주로 서쪽 방향이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열려 있는 전망대를 갔다. 디스커버리 포인트(Discovery Point), 와치먼 피크(Watchman Peak)였다. 전망대에서 본 호수는 깊었다. 물이 너무나 파란색이서 그 깊이가 가늠이 안 됐다. 분화구의 그 파란 물은 주변의 하얀 눈과 대조를 이뤄 더 파랗게 보였다. 나는 불멍을 하듯, 물멍을 했다. 호수는 나의 눈 뿐 아니라 영혼까지도 빨아 들이는 것 같았다. 나는 계속 보고 있으면 호수로 떨어질 것 같은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이 곳 호수는 물의 양도 정말 많았다. 나는 천지, 백록담을 가 본 적이 없지만 이 곳 만큼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열린 트레일은 없었지만 걸을수 있는 길이 있었다. 메리암 포인트(Merriam Point) 앞 교차로에서 북쪽으로 난 도로를 갈 수 있었다. 도로는 폐쇄 됐지만, 걷거나 자전거로 갈 수는 있다고 했다. 우리는 교차로 바로 앞에 차를 대고 북쪽으로 걸었다. 빈 도로를 걸으니 자유로웠다. 이 도로 위를 차는 쌩쌩 다녔을 것이다. 우리는 그 길을 전세낸 것 마냥 걸으며 천천히 갔다. 빈 길에는 종종 사람들이 지나갔다. 일부는 걷고 일부는 뛰었다. 이 길 위를 뛰는 것은 어떤 기분일 지 생각했다.

크레이터 레이크 도로 대부분은 6월 중순인데도 폐쇄된 상태다. 하지만 폐쇄된 도로 위를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도로 주변은 눈을 치운 흔적들이 있었다. 옛날 눈에 새로 온 눈이 쌓여 눈은 높이가 3미터를 넘겼다. 한쪽에는 눈 벽이, 다른 쪽에는 눈 밭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눈을 보며 신이 나 눈싸움을 했다. 처음에는 저희들 끼리 하더니, 아빠와 같이 하자고 보챘다. 10번 맞추기 게임을 하기로 하고, 나도 눈을 뭉쳐 아이들에게 던졌다. 길 위에서 서로 맞추겠다고 뛰어다니다가 이내 지쳤다. 눈을 몇 번 뭉쳤더니 손은 금세 얼음장 처럼 차가웠다. 아이들은 아빠와 눈싸움 하는 것이 좋은지 계속 웃었다. 아이들이 웃으니 나도 웃었다. 정말 오랜만에 눈싸움을 해 본것 같다. 아이들은 내친 김에 눈 뭉치를 굴려 눈사람도 만들었다. 눈에 습기가 많아 잘 뭉쳐졌다. 아이들은 오크 처럼 생긴 못생긴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래도 재밌는 지 계속 깔깔댔다.

시윤이는 눈만 보면 좋아한다. 손이 빨갛게 얼었는데도 눈 장난을 했다. 6월 중순 크레이터 레이크 주변은 온통 눈 세상이었다.

생각해보니 눈을 제대로 본 게 오랜만이다. 작년 여름 미국 조지아에 온 뒤로 한두번 흩뿌리는 눈만 봤다. 쌓인 눈을 본 것은 1년 반도 넘은 것 같다. 아이들은 한국에서도 눈만 오면 좋아했다. 서울에선 최근 몇 년 간 눈이 많이 안 내려 아이들은 서운해 했다. 스키를 타러 가도 날이 따뜻해 제대로 못 탄 날이 많았다. 나는 일본 훗카이도, 캐나다 밴프 같은 곳에서 아이들과 스키 타는 것을 버킷 리스트에 올렸다.

숙소인 크레이터 레이크 롯지(Crater Lake Lodge)에는 오후 5시에 체크인 했다. 분화구 주변에 있는 유일한 숙소얐다. 예약 잡기가 어려운 곳이라는데 나는 몇 번의 시도 만에 잡았다. 롯지 1층에는 엄청나게 큰 벽난로가 있었고, 그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방 안은 히터가 아니라 에어컨 같은 것이 나왔다. 온도 조절이 되지 않아 프론트에 물어보니 따로 조정은 안 되는 모양이었다. 하는수 없이 담요를 요청했는데, 방금 다 떨어졌다고 했다. 대신 히터를 가져다 준다고 했다. 에어컨이 나오고 방에서는 우리는 히터를 틀었다. 오늘 밤에 잘 잘수 있을 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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