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경험 자이언 내로우의 추억 [펌] (The Narrows)

2005.10.06 06:23

baby 조회 수:7129 추천:95


자이언 국립공원 내로우 방문기

- 미주 중앙일보에 실린 LA 한인 마라톤 동호회인 동부달리기모임 코치 임무성씨의 자이언 공원 방문기 -
  
아득히 멀리 보이는 광활한 사막 끝 산 너머 서편엔 아직도 저녁노을이 사라지지 않았어도 사막은 벌써 어둠으로 덮혀 선인장을 비롯한 모든 물체들이 점점 검게 보이기 시작했다. 해가 질 무렵부터 기다리던 달은 애타는 내 마음을 아랑곳 하지 않고 한참이나 뜸들이다 까만 하늘에 하얀 안개 같은 노을 속에서 무늬가 들은 은빛 쟁반같이 희고 빛났으나 수줍은 여인이 담 너머로 몸을 숨기고 얼굴을 살며시 내밀듯 힘겹게 떠올랐다.

땅바닥에 나무 가지 검은 그림자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이른 새벽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밤새도록 지치지 않고 변함없이 우리를 비쳐주던 달이 서쪽 하늘로 기울며 아침이 밝아왔고 늦저녁부터 불던 바람에 나뭇잎들은 팔랑거렸다. 뛰어들 신발과 옷으로 갈아입고 점심뿐만 아니라 식수까지 배낭에 채운 후 자이언 내로우를 향해 떠나는 셔틀버스에 오를 때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비장한 각오를 했다. 그러나 물이 찼다. 또 계곡에 부는 바람은 체감온도를 내려 더 추웠다.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흐르는 물의 반대 방향으로 오르니 힘이 들었다. 세상이 그렇다. 순리대로 살아야지 역류한다면 얼마나 힘든가를 배운다. ☞Zion Hiking Guide - The Narrows

시즌이 몬순 기후라 산발적으로 비가 오고 그 빗물은 검붉은 돌산을 씻고 내려와 황갈색 흙탕물로 변해 흘렀다. 흙탕물 때문에 물속이 보이지 않아 계곡 밑바닥에 아무렇게나 깔려있는 돌과 바위에 채여 넘어지고 무릎이나 정강이를 다치는 것은 예사였다. 급류를 만나면 휩쓸리지 않으려고 몸의 균형을 잡느라 온 힘을 쏟았고 더욱이 키가 넘는 웅덩이를 만나면 수영을 하거나 우회했다. 물줄기는 계곡의 넓이에 따라 빠르고 느렸다.

나는 새로운 경치를 볼 때마다 밀폐봉투 속에 넣어둔 카메라를 꺼내 계곡과 계곡 칼로 자른 것 같은 절벽들, 또 그 절벽에서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나무들 그리고 하얀 구름이 흐르는 파란 하늘을 담으며 굽이굽이 돌아가는 계곡의 절경을 볼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감탄사만 연신 토해냈다.

그 시대 천지창조를 그린 미켈란젤로가 자이언 내로우를 봤었다면 그림의 배경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했다. 그늘진 계곡에선 햇볕이 그리웠다. 한 여름 위 아래턱이 서로 부딪히며 떨어보기도 처음이지만 그래선지 하루 종일 덥지 않았다. 내려오면서 늦게나마 물살 타는 방법을 배우며 아쉽게 자이언 내로우를 나와야했다. 머리부터 신발까지 물에 젖어 철벅거리며 셔틀버스 타는 곳까지 걷는 우리는 개선장군이나 된 것처럼 어깨에 힘을 주었다. 자이언 내로우는 이제 나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가고 있었다. ☞Zion Photo Gallery

물속에서 나온 우리는 다시 천사들이 내려온다는 앤젤스 랜딩을 올라갔다. 트레일은 거의 포장이 됐고 벽돌과 돌을 쌓아 축대를 만들었으며 약 0.6마일의 급경사 지역은 쇠말뚝을 박고 체인을 달아 붙들고 오르도록 배려함에 고마웠다. 그리고 꼭대기는 이름에 걸맞게 정말 천사가 내려와 앉은 것처럼 아름다웠다. 그곳을 내려오니 벌써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산 속은 일찍 밤이 찾아왔다. 얼마 후 저 아래 캄캄한 사막 속에 화려한 불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라스베가스였다. 그곳에 들러 허전한 배를 채우고 다시 달 뜬 사막을 가로질러 밤새 쉬지 않고 달려 새벽에 집에 도착했다.


댓글은 로그인 후 열람 가능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2024년 요세미티(Yosemite) 국립공원 입장 예약 필수 [2] 아이리스 2023.12.23 2893 0
공지 2주 정도 로드 트립 준비중입니다. 어떻게 식사를 해결해야 할 지 고민중입니다. [16] 쌍둥이파파 2023.01.17 6722 1
공지 미국 국립공원 입장료, 국립공원 연간패스 정보 [4] 아이리스 2018.04.18 216059 2
공지 여행계획시 구글맵(Google Maps) 활용하기 [29] 아이리스 2016.12.02 631248 4
공지 ㄴㄱㄴㅅ님 여행에 대한 조언 : 미국여행에 대한 전반적인 준비사항들 [39] 아이리스 2016.07.06 819050 5
공지 goldenbell님의 75일간 미국 여행 지도 [15] 아이리스 2016.02.16 676469 2
공지 렌트카 제휴에 대한 공지입니다 [7] 아이리스 2015.01.31 675683 1
공지 공지사항 모음입니다. 처음 오신 분은 읽어보세요 [1] 아이리스 2014.05.23 728610 2
11296 하와이-캘리포니아-플로리다 3주 동선 한번 봐주세요! 카라멜팝콘 2022.01.08 7133 0
» 자이언 내로우의 추억 [펌] (The Narrows) baby 2005.10.06 7129 95
11294 [re] 미국시차/우리나라와 다른 도량형 홈지기 2003.01.14 7128 109
11293 유타주 오지여행 (6) : 그랜드 스테어케이스-에스클란티 지역의 바위산과 괴상한 돌기둥들 baby 2013.01.25 7126 0
11292 뉴욕업스테이트에서 자동차여행갈 만한 곳? [1] shine 2011.12.16 7126 0
11291 서부여행 공원들 입장료 정리 확인좀 해주세요 [4] 서준 2012.07.16 7125 0
11290 LA 2박3일 일정과 더불어 질문 드립니다. [3] 림쇼 2011.10.25 7123 1
11289 13년 여름 2주간 서부국립공원 여행일정 경험 공유 [1] file 포에버 2014.03.24 7120 0
11288 미 서부지역 여행 후기 [6] 문강 2004.05.30 7115 94
11287 [re] 미서부 렌트카여행시 업체 선정 victor 2004.02.06 7114 148
11286 렌트 후 차에서 자기. [4] 허근 2006.07.11 7113 96
11285 Sandiego Sea world, 11달러 내고 들어가기 [4] 루시남 2007.03.15 7112 104
11284 옐로우스톤 여행일정 조언 부탁드립니다. [4] 콩자반 2012.02.27 7104 0
11283 요세미티 국립공원 2월 풍경 [5] file January 2012.03.21 7102 1
11282 Las Vegas 호텔 프로모션 코드 공유 싸이트 소개 [1] windbell 2007.05.18 7100 126
11281 옐로스톤-그랜드티턴 국립공원 일정/코스 문의드립니다 [2] Jesse 2012.05.23 7099 0
11280 엘로우스톤 캐나다 록키 일정 좀 봐주세요. 감사 [3] 제리아빠 2011.05.08 7093 0
11279 [2011년 미국국립공원 탐방] Yellowstone National Park 3 오대장 2011.10.14 7090 1
11278 LA 지역의 산불 주의보 [펌] baby 2006.02.08 7081 122
11277 혹시 미국(버지니아)한인 민박하는곳 아세요? [2] 민정 2006.05.08 7080 182
11276 다녀왔다는 인사가 늦었습니다. (미 동북부 여행후기) [2] baby 2003.11.10 7079 124
11275 2월 여행기 7 - Yellowstone Snowcoach Tour: Old Faithful편 [8] file snoopydec 2016.08.02 7069 1
11274 Koa 캠핑장 캐빈 정원에 대해 궁금합니다.. [2] 수목원 2013.05.04 7066 0
11273 라스베가스 쇼티켓할인(cirque du soleil 인당 50$)이 있어 올립니다. [1] 제이이오 2007.07.11 7056 108
11272 미서부일정 문의입니다 [1] mayqueen 2012.03.09 7055 0
XE Login